60년대 패션의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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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말했다. 인생은 60부터라고. 그렇다면 이번 시즌에야말로 ‘패션은 60부터’다. 바로 이번 2014 F/W 시즌, 하이패션의 열렬한 지지를 받는 60년대의 흥미로운 패션 유산이 그 어느 때보다 신선한 출발점을 예고하고 있으니까.

1,2,3,5. 런던 킹스로드부터 일본행 비행기까지, 전 세계를 종횡무진하며 미니 드레스와 풍성한 퍼 코트, 롱 부츠 등으로 일컬어지는 60년대 룩의 전형을 보여준 모델 트위기.4. 앤디 워홀과 60년대 그의 뮤즈로 이름을 높인 에디 세즈윅.

1,2,3,5. 런던 킹스로드부터 일본행 비행기까지, 전 세계를 종횡무진하며 미니 드레스와 풍성한 퍼 코트, 롱 부츠 등으로 일컬어지는 60년대 룩의 전형을 보여준 모델 트위기.
4. 앤디 워홀과 60년대 그의 뮤즈로 이름을 높인 에디 세즈윅.

한동안 80, 90년대에 심취해 스트리트 무드를 운운하던 패션계가 금세 또 시들해진 걸까. 이번 F/W 시즌, 트렌드 리포트들은 한결같이 ‘60년대가 돌아왔다’고 외치고 있으니 말이다. 우선 루이 비통, 생로랑, 발렌티노, 미우미우, 파코 라반, 까르벵, 마르코 드 빈센초 등 파리에서 쇼를 선보이는 유서 깊은 빅 하우스부터 주목받는 신진 디자이너에 이르기까지 주요 디자이너들이 런웨이 위에 60년대의 환영을 소환했다. 그리고 이 레트로 트렌드엔 파리를 넘어 밀라노, 뉴욕, 런던의 디자이너들까지 동참했는데 구찌, 디스퀘어드2, 마크 제이콥스, 톰 포드, 토리 버치, 크리스토퍼 케인, 마리 카트란주 등 올 가을을 겨냥한 수많은 런웨이 위에 60년대의 환영이 강렬하게 등장했다.
사실 60년대 트렌드는 한두 해가 멀다 하고 찾아오는 철새와 같다. 지난 2013 S/S 시즌의 옵아트풍 패턴의 모즈 룩도, 2010 F/W에 이은 2011 S/S 시즌의 레이디라이크 룩도 모두 60년대를 주요하게 이야기한 것들이다. 하지만 솔직히 고백하자면 한동안 내게 60년대 트렌드를 향한 디자이너들의 뜨거운 러브콜은 그리 달갑지 않았다. 그건 마치 그렇게 예쁘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여배우가 작품을 바꿀 때 마다 완소남과 연분이 난 얘기를 들으며 ‘도대체 무슨 매력이 있는 걸까’를 곱씹는 기분을 느끼게 한다. 그렇게 60년 대를 논하는 룩을 보며 ‘저 성숙하지 못한 어린 여자아이에게나 어울릴 법한 우아하지 못한 실루엣의 툭 잘린 드레스는 뭐지’, ‘저렇게 올드해 보이는 부츠를 매치하면 바로 서프라이즈 재연 배우가 될 것만 같아’라고 구시렁대는 내게 이번 시즌 패션계는 크게 한 방을 가했다. 바로 지극히 모던하고 탐스럽게 재해석된 60년대 아이템과 신선한 스타일링의 조화를 통해서 마치 패션 만유인력의 법칙을 적용한 듯 내 마음을 60년대로 끌어당긴 것. 그래서 내 머릿속에 자리한 성숙하지 못한 어린 여자아이는 곧 트위기나 에디 세즈윅의 계보를 잇는 쿨한 영국 모델 에디 캠벨로, 우아하지 못한 실루엣의 툭 잘린 드레스는 경쾌함과 글래머러스함을 동시에 추구한 2014년 버전의 미니 시프트 드레스로, 그리고 올드해 보이는 부츠는 스트리트 무드에도 제격인 쿨한 첼시 부츠나 플랫 슈즈로 치환되었다. 즉 미니멀한 실루엣과 화려한 색감, 그래픽적인 패턴이라는 3박자를 갖춘 60년대 패션이 반세기를 지나 이러한 조건들을 명민하게 비틀고 재정비해 진화한 것. 그래서 오늘날 레트로적 취향을 지닌 클래식 마니아뿐만 아니라 젊은 트렌드세터들의 동시대적 취향도 만족시켜줄 60년대 아이템들이 탄생한 것이다.

GUCCI

GUCCI

MIU MIU

MIU MIU

SAINT LAURENT BY HEDI SLIMANE

SAINT LAURENT BY HEDI SLIMANE

왼쪽부터 SAINT LAURENT BY HEDI SLIMANE, ALEXANDER McQUEEN, GUCCI

왼쪽부터 SAINT LAURENT BY HEDI SLIMANE, ALEXANDER McQUEEN, GUCCI

6. 60년대 스타일의 정수를 담은 화려한 리버티 프린트의 셔츠 드레스와 스카프. 7. 60년대 팝 문화를 휩쓴 비틀스의 영향을 보여주는 룩. 8. 60년대 모즈 룩을 하이패션에 대입한 마리 퀀트 등 다양한 60년대 비주얼로 채워진 보드. 그 앞에 선 인물은 마리 퀀트와 함께 일했던 디자이너 캐롤린 찰스. 9.그래픽적인 패턴의 미니 드레스를 입은 트위기.

6. 60년대 스타일의 정수를 담은 화려한 리버티 프린트의 셔츠 드레스와 스카프. 7. 60년대 팝 문화를 휩쓴 비틀스의 영향을 보여주는 룩. 8. 60년대 모즈 룩을 하이패션에 대입한 마리 퀀트 등 다양한 60년대 비주얼로 채워진 보드. 그 앞에 선 인물은 마리 퀀트와 함께 일했던 디자이너 캐롤린 찰스. 9.그래픽적인 패턴의 미니 드레스를 입은 트위기.

그렇다면 이번 시즌에도 60년대 트렌드가 과연 거리의 승자가 될까? 그 결과는 당신에게 달려 있다. 만약 A라인 미니 스커트와 짧은 코트가 촌스럽고 단아한 소녀를 연상시켜 불만이라면 매끈한 가죽 소재와 은밀한슬릿을 연출하는 지퍼 장식, 모던한 메탈 주얼리를 더한 제스키에르의 루이 비통 데뷔작이 스타일링 해법이 될 것이다. 한편 60년대 이탈리아의 팝아트 여류 화가들로부터 영감을 받은 발렌티노의 그래픽 연작은 깊게 파인 네크라인의 미니 드레스로 연출되어 60년대 옵아트풍에 부족했던 우아한 관능미를 채워준다. 여기에 한동안 70, 80년 대에 빠졌던 에디 슬리먼이 선택한 60년대 무드는 그의 대중문화 코드에 대한 관심을 반영하며 60년대 당시의 역동적인 팝 문화를 동시대적으로 승화시켰다. 예를 들어 반짝이는 라메 소재와 시퀸 장식, 반복적인 권총 프린트가 더해진 팝아트풍의 미니 드레스, 경쾌한 퍼 코트, 메탈릭한 메리제인 슈즈와 고고 부츠를 연상시키는 롱부츠 등을 차려입은 에디 슬리먼의 뮤즈들(모델 에디 캠벨을 포함한)은 60년대 앤디 워홀의 에디 세즈윅에 버금가는 매력을 보여주었으니. 그렇다면 하우스의 전성기로 손꼽히는 60년대에서 영감을 얻은 구찌 컬렉션은? 우선 프리다 지아니니가 가다듬은 60년대 무드엔 롤리타를 연상시키는 그 어떤 낯간지러운 장치나 인공적이고 딱딱한 퓨처리즘의 요소는 배제되었다. 대신 그녀가 택한 건 감미로운 파스텔 컬러의 나파 가죽 미니 드레스와 풍성한 퍼로 뒤덮인 탐스러운 코트, 그리고 장인의 손길이 더해진 크리스털 장식의 그래픽적인 배치 등 미니멀과 관능, 매니시와 페미닌의 매혹적인 교집합이다. 또한 60년대 스윙 런던의 쿨한 무드를 담은 큼직한 프레임의 선글라스와 홀스빗 메탈 장식을 더한 로퍼 부츠, 이그조틱 가죽으로 와일드함을 더한 롱부츠, 60년대 재키 케네디를 오마주한 미니멀한 백 등은 60년대 룩을 손쉽게 완성할 수 있는 액세서리 스타일링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을 듯.
그러니 여기 장인의 한 수를 보여주는 테일러링 감각과 쿠튀르적 터치, 동시대적 감각을 더해 새롭게 재해석한 60년 대 룩들. 다시 말해 에디터가 메가 트렌드라고 이름 붙이고, 현실적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컬렉션이라고 인정한 이 주인공들을 주저하지 말고 만나볼 것. 이번 시즌, 그 어떤 취향이라도 만족시킬 만한 60년대의 정수가 어쩌면 지친 당신의 일상에 새로운 스타일의 출발점을 안겨줄지도 모를 일이니.

왼쪽부터 TORY BURCH, VALENTINO.

왼쪽부터 TORY BURCH, VALENTINO.

DSQUARED2

DSQUARED2

LOUIS VUITTON

LOUIS VUITTON

에디터
패션 에디터 / 박연경(Park Youn Kyung)
기타
PHOTOS | COURTESY OF INDIGITAL, GETTY IMAGES/MULTIBITS, SAINT LAURENT, ALEXANDER McQUEEN, GUCC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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