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이제 케케묵은(!) 브랜드 스토리를 듣는 것보다 ‘나’를 보여주길 좋아한다. 하이패션에 불어닥친 이름 새기기 현상에 대해.
2014 F/W 컬렉션 랙&본 쇼의 백스테이지, 모델과 스태프, 취재진이 한데 뒤엉킨 아비규환 같은 현장의 사진가들이 이번만큼은 자신의 렌즈에 담을 톱모델을 빨리 찾아내기 위해 그리 큰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모델들이 입은 옷에는 ‘Georgia May’, 또는 ‘Jordan’ 처럼 그들의 이름이 큼직하게 쓰여 있었으니까. 가슴팍에 이름 석자를 궁서체로 수놓은 초등학교 시절 체육복을 떠올리게 하는 이 룩이 그토록 쿨해 보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지금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에디터 혹은 디자이너라는 직함 없이도 그 누구든 패션계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세상이다. 고고한 패션 하우스와 셀레브리티를 흠모하며 그들의말씀과 룩을 착실히 받들던 때가 언제인가 싶게, ‘나’라는 단어는 이제 패션계에서 칼 라거펠트, 마크 제이콥스를 능가하는 입지를 다지게 된 것이다. 일반인이 런웨이에 서고, SNS를 통한 공개 캐스팅으로 광고 캠페인의 모델을 뽑는 지경이니까(마크 by 마크 제이콥스의 F/W 시즌 광고 캠페인을 기대하시라!). 그래서일까? 거대 패션 하우스들이 개개인의 입맛대로 만든 세상 단 하나의 제품을 만들어주는 커스터마이즈 서비스뿐만 아니라, 자신의 이름 혹은 이니셜을 각인해주는 서비스를 선보이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2008년 시작돼 현재까지 그 범위를 점차 넓혀온 루이 비통의 몽 모노그램 서비스가 대표적인 예. 시그너처 백부터 트렁크, 지갑 및 다이어리 등에 개인의 취향에 따라 스트라이프와 이니셜을 더할 수 있는 이 서비스는 현재 무려 2억 가지가 넘는 다양한 옵션을 구비하고 있어 ‘나만을 위한 단 하나의 루이 비통 백’을 만드는 것이 말 그대로 실현 가능하다. 비슷한 서비스를 시행 중인 고야드와 롱샴, 그리고 구찌 백의 주문 제작 서비스로도 나의 고유한 취향에 내 이름의 이니셜을 더한 ‘나만의 백’을 가질 수 있다.
올 7월 국내에서도 진행될 서비스인 프라다 맞춤 제작 슈즈의 밑창에도, 발렌티노 가라바니 루주 앱솔루트 컬렉션의 오더 메이드 라인 클러치의 앞면, 혹은 슈즈의 앵클 스트랩에도 이 ‘이니셜’ 장식이 빠지지 않는다. 한편 단순히 이니셜을 새기는 차원을 넘어 ‘이름’을 보다 적극적인 디자인 요소로 활용하는 브랜드도 있다. 에디 파커와 사라 바타글리아 클러치! 두 브랜드 모두 이름, 혹은 원하는 메시지를 넣어 디자인한 비스포크 클러치로 눈에 띄기 좋아하는 스트리트 패션 스타들과 사진가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중이다.
줄곧 브랜드를 상징하는 아이코닉한 아이템을 이용한 ‘떼샷’으로 피날레를 연출해온 버버리 프로섬이 이번 2014 F/W 시즌에는 자신의 이니셜이 새겨진 블랭킷을 걸친 모델들로 피날레를 장식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옷과 가방을 장식하는 브랜드 로고가 당연하게 여겨지던 시대가 가고 레이블을 꽁꽁 숨기는 것이 시크한 태도로 변모하더니, 이제 그 자리가 제품을 소유한 사람의 이름으로 대체되는 것은 아닐지! 곧 생로랑 바이커 재킷의 등이나 왼쪽 가슴에 자신의 이름을 자랑스럽게 각인하는 것이 패션의 가장 쿨한 애티튜드로 떠오를지도 모를 일이다
- 에디터
- 패션 에디터 / 이지은(Lee Ji Eun)
- 기타
- COURTESY OF FENDI, PRADA, LOUIS VUITTON, LONCHAMP(이름표를 붙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