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표를 붙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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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이제 케케묵은(!) 브랜드 스토리를 듣는 것보다 ‘나’를 보여주길 좋아한다. 하이패션에 불어닥친 이름 새기기 현상에 대해.

1. 자신의 이름이 크게 쓰인 사라 바타글리아의 클러치를 들고 있는 안나 델로 루소. 2. 고객의 이니셜을 새겨주는 펜디의 새 백 바이더웨이. 3. 자신의 이니셜이 새겨진 블랭킷을 걸치고 버버리 프로섬 피날레에 선 모델 카라 델레바인. 4. 2014 F/W 랙앤본 쇼 백스테이지의 샤오웬주. 5. 이니셜을 펀칭 장식해주는 롱샴의 메이드 투 오더 라인.

1. 자신의 이름이 크게 쓰인 사라 바타글리아의 클러치를 들고 있는 안나 델로 루소. 2. 고객의 이니셜을 새겨주는 펜디의 새 백 바이더웨이. 3. 자신의 이니셜이 새겨진 블랭킷을 걸치고 버버리 프로섬 피날레에 선 모델 카라 델레바인. 4. 2014 F/W 랙앤본 쇼 백스테이지의 샤오웬주. 5. 이니셜을 펀칭 장식해주는 롱샴의 메이드 투 오더 라인.

2014 F/W 컬렉션 랙&본 쇼의 백스테이지, 모델과 스태프, 취재진이 한데 뒤엉킨 아비규환 같은 현장의 사진가들이 이번만큼은 자신의 렌즈에 담을 톱모델을 빨리 찾아내기 위해 그리 큰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모델들이 입은 옷에는 ‘Georgia May’, 또는 ‘Jordan’ 처럼 그들의 이름이 큼직하게 쓰여 있었으니까. 가슴팍에 이름 석자를 궁서체로 수놓은 초등학교 시절 체육복을 떠올리게 하는 이 룩이 그토록 쿨해 보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지금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에디터 혹은 디자이너라는 직함 없이도 그 누구든 패션계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세상이다. 고고한 패션 하우스와 셀레브리티를 흠모하며 그들의말씀과 룩을 착실히 받들던 때가 언제인가 싶게, ‘나’라는 단어는 이제 패션계에서 칼 라거펠트, 마크 제이콥스를 능가하는 입지를 다지게 된 것이다. 일반인이 런웨이에 서고, SNS를 통한 공개 캐스팅으로 광고 캠페인의 모델을 뽑는 지경이니까(마크 by 마크 제이콥스의 F/W 시즌 광고 캠페인을 기대하시라!). 그래서일까? 거대 패션 하우스들이 개개인의 입맛대로 만든 세상 단 하나의 제품을 만들어주는 커스터마이즈 서비스뿐만 아니라, 자신의 이름 혹은 이니셜을 각인해주는 서비스를 선보이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2008년 시작돼 현재까지 그 범위를 점차 넓혀온 루이 비통의 몽 모노그램 서비스가 대표적인 예. 시그너처 백부터 트렁크, 지갑 및 다이어리 등에 개인의 취향에 따라 스트라이프와 이니셜을 더할 수 있는 이 서비스는 현재 무려 2억 가지가 넘는 다양한 옵션을 구비하고 있어 ‘나만을 위한 단 하나의 루이 비통 백’을 만드는 것이 말 그대로 실현 가능하다. 비슷한 서비스를 시행 중인 고야드와 롱샴, 그리고 구찌 백의 주문 제작 서비스로도 나의 고유한 취향에 내 이름의 이니셜을 더한 ‘나만의 백’을 가질 수 있다.

6. 2014 F/W 랙앤본 컬렉션에서 자신의 이름이 크게 수놓인 보머 재킷을 입고 있는 모델 조지아 메이 재거. 7. 이름이 새겨진 에디 파커의 비스포크 클러치. 8. 루이 비통 몽 모노그램 서비스. 9. 프라다의 슈즈 맞춤 제작 서비스. 10. 이니셜이 새겨진 프라다 맞춤 제작 슈즈의 밑창.

6. 2014 F/W 랙앤본 컬렉션에서 자신의 이름이 크게 수놓인 보머 재킷을 입고 있는 모델 조지아 메이 재거. 7. 이름이 새겨진 에디 파커의 비스포크 클러치. 8. 루이 비통 몽 모노그램 서비스. 9. 프라다의 슈즈 맞춤 제작 서비스. 10. 이니셜이 새겨진 프라다 맞춤 제작 슈즈의 밑창.

올 7월 국내에서도 진행될 서비스인 프라다 맞춤 제작 슈즈의 밑창에도, 발렌티노 가라바니 루주 앱솔루트 컬렉션의 오더 메이드 라인 클러치의 앞면, 혹은 슈즈의 앵클 스트랩에도 이 ‘이니셜’ 장식이 빠지지 않는다. 한편 단순히 이니셜을 새기는 차원을 넘어 ‘이름’을 보다 적극적인 디자인 요소로 활용하는 브랜드도 있다. 에디 파커와 사라 바타글리아 클러치! 두 브랜드 모두 이름, 혹은 원하는 메시지를 넣어 디자인한 비스포크 클러치로 눈에 띄기 좋아하는 스트리트 패션 스타들과 사진가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중이다.

줄곧 브랜드를 상징하는 아이코닉한 아이템을 이용한 ‘떼샷’으로 피날레를 연출해온 버버리 프로섬이 이번 2014 F/W 시즌에는 자신의 이니셜이 새겨진 블랭킷을 걸친 모델들로 피날레를 장식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옷과 가방을 장식하는 브랜드 로고가 당연하게 여겨지던 시대가 가고 레이블을 꽁꽁 숨기는 것이 시크한 태도로 변모하더니, 이제 그 자리가 제품을 소유한 사람의 이름으로 대체되는 것은 아닐지! 곧 생로랑 바이커 재킷의 등이나 왼쪽 가슴에 자신의 이름을 자랑스럽게 각인하는 것이 패션의 가장 쿨한 애티튜드로 떠오를지도 모를 일이다

에디터
패션 에디터 / 이지은(Lee Ji Eun)
기타
COURTESY OF FENDI, PRADA, LOUIS VUITTON, LONCHAMP(이름표를 붙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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