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겨울을 지배하는 두 가지 절대 색조

W

가볍고 달콤하거나, 깊고 그윽하거나. 2013년 가을/겨울을 지배하는 두 가지 절대 색조에 대하여.

VALENTINO

VALENTINO

1. 연한 하늘색 가죽에 은색 잠금 장식으로 포인트를 준 자넬라토의 토트백. 2. 메탈릭한 골드와 앞코의 핑크색이 대비를 이루는 미우미우의 앵클부츠. 3. 연핑크색 원석을 대담하게 세팅한 디올의 반지.

1. 연한 하늘색 가죽에 은색 잠금 장식으로 포인트를 준 자넬라토의 토트백. 2. 메탈릭한 골드와 앞코의 핑크색이 대비를 이루는 미우미우의 앵클부츠. 3. 연핑크색 원석을 대담하게 세팅한 디올의 반지.

SWEET SORBET

한 달간에 걸쳐 진행되는 수백 개의 캣워크를 지켜보면 몇 가지 뚜렷한 기류가 뇌리 속에 남게 된다. 기상천외한 실험 정신, 하우스의 자존심이 드러나는 럭셔리의 정수, 소장 욕망을 자극하는 상업성이 얽히고설키는 양상은 매시즌 되풀이되는 현상이지만, 2013 F/W 시즌을 남다르게 기억하도록 만든 요소는 전혀 예상치 못한 지점에 있었다. 그것은 바로 색상! 베이비 블루, 연한 라벤더, 상큼한 민트, 그리고 파우더리한 핑크에 이르기까지, 봄의 전유물인 파스텔 색상이 전 도시를 휩쓸었는데 빨강, 노랑, 파랑 등 원색이 묵직한 색조 사이에서 포인트로 쓰이는 경우는 많아도 달콤한 파스텔 색상이 가을 컬렉션에 대거 등장한 것은 대단히 이례적이다. 큼직한 분홍색 코트로 시선을 모은 까르벵, 옅은 분홍색 울 실크 코트 드레스를 선보인 디올, 가벼운 시폰과 풍성한 퍼에 똑같이 분홍색을 쓴 지암바티스타 발리와 구름 같은 하늘색 반소매 니트가 돋보인 소니아 리키엘, 슬립 위에 연보라색 니트를 매치한 루이 비통과 매니시한 코트에 민트색과 분홍색을 쓴 셀린로샤스, 보송보송한 하늘색 퍼 재킷을 내놓은 겐조에 이르기까지, 특히 파리 디자이너들이 파스텔 열풍에 앞장섰다. 밀라노에서는 하늘색과 분홍색 깅엄 체크 시리즈를 내놓은 프라다, 프린지 장식 하늘색 니트 아우터가 돋보인 블루마린, 런던에서는 피트&플레어 실루엣의 드레스를 선보인 사이몬 로샤 등이 파스텔 계열에 합류한 대표 브랜드들이다. 주로 두터운 아우터에 적용되었다는 점과 단일 색으로 스타일링을 마쳤다는 것이 특징이다.

1. 날렵하게 커팅된 짙은 자주색 크리스털이 돋보이는 구찌의 목걸이. 2. 버건디색과 금색으로 화려함을 강조한 샤넬의 뱅글. 3. 발등 부분을 그물처럼 커팅한 지미 추의 아찔한 부티.

1. 날렵하게 커팅된 짙은 자주색 크리스털이 돋보이는 구찌의 목걸이. 2. 버건디색과 금색으로 화려함을 강조한 샤넬의 뱅글. 3. 발등 부분을 그물처럼 커팅한 지미 추의 아찔한 부티.

DEEP FOREST

봄이면 밝은 색이, 가을이면 어두운 색이 런웨이를 지배하는 것은 좀처럼 멸하기 어려운 패션의 섭리다. 달달한 파스텔이 좀 특별하다 싶게 많이 등장하긴 했어도 30~50여 룩에 이르는 전체 컬렉션 중에서는 극히 일부일 뿐, 대부분의 디자이너는 어두운 음조로 가을과 겨울을 채색했다. 그런데 짙은 색 사용에 있어서도 이번에는 눈에 띄는 변화가 포착되었다. 검정과 회색, 갈색과 캐멀색으로 이어지는 전형적인 색상표에서 벗어난 것. 빨강, 초록, 파랑 등의 원색이 일부 포인트로 활약한 작년과는 달리, 이번 시즌에는 원색의 채도와 명도를 확 낮추어 묵직하고 깊은 존재감을 부여한 색감이 많이 등장했다. 특히 짙은 버건디와 자주색, 프러시안 블루와 짙은 남색, 암녹색 등이 거의 전 컬렉션에서 공통적으로 등장하며 심상치 않은 인기를 예감케 했다. 비교적 화사한 프러시안 블루는 비오네의 송치 코트와 알베르타 페레티에서 선보인 벨벳 드레스 시리즈에서 발견할 수 있고, 짙은 남색은 지안 프랑코 페레의 긴 베스트와 드리스 반 노튼의 맥시 스커트를 비롯해, 살바토레 페라가모의 실크 미니 드레스, 마르니의 퍼 장식 코트에 이르기까지 전방위로 사용되며 이번 시즌 가장 주목해야 할 색으로 떠올랐다. 짙은 버건디는 버버리 프로섬의 러버 트렌치코트와 크리스토퍼 케인, 사카이의 벨벳 드레스, 구찌의 케이프 코트를 더욱 클래식하게 만들었고, 캘빈 클라인랑방에서는 암녹색의 아우터를 내놓았다. 이 깊고 그윽한 색조 덕에 이번 겨울은 검정을 고집하지 않아도 지적이면서도 모던한 룩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에디터
패션 디렉터 / 최유경
포토그래퍼
엄삼철, 김미량, KIM WESTON ARNOLD, jason Lloyd-Evans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