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엔 책을 읽겠어요.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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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유 패션 에디터들이 올 가을 구미당기는 ‘패션의 양식’을 골랐다. 패션의 어제와 오늘을 돌아보게 하는 묵직한 지식총서부터 패션에 대한 열정으로 점철될 자서전까지…각자 고른 결정적인 한 컷과 좋은 건 나눠야 한다는 마음으로 적어 내려간 리뷰를 공개한다.

우아한 패션 클래식의 정석

“난 확신해, 이것들은 언제나 내게 영감을 불러일으키곤 하지.” – 존 갈리아노

1700년대부터 현재까지의 유러피언 드레스 역사를 담은 <패셔닝 패션>은 한 마디로 클래식으로 돌아간 지금의 트렌드를 증명하는 자료집이다. 드레스의 트렌드를 시대별로 나눈 타임라인과 텍스타일, 테일러링, 트리밍, 액세서리의 챕터로 분류하여 담은 생생한 기록은 컬렉션에서 만나는 옷의 탄생 배경과 그 근원이 바로 이것, 역사에서 시작되었음을 깨닫게 했다. 실루엣을 만드는 중요한 요소인 뷔스티에의 시대별 변화,드레스 속에 숨은 페티코트의 뼈대 모양과 시대별 특징 등 서양 복식사의 기본기를 탄탄히 쌓을 수 있는 자료들이 이해하기 쉽게 정돈되어 있었으니까. 특히 손으로 직접 만들었다는 화려한 자수와 비딩 장식, 균형감이 돋보이는 페티코트들을 보고 있으니 새삼 손으로 만드는 가장 친근하고 극적인 예술이 바로 ‘옷’ 이라는 것, 그리고 이를 우리가 영위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감동과 경건함이 느껴진다. 이 책의 서문을 장식한 존 갈리아노는 여기 담긴 과거의 유산이 자신에게 얼마나 무한한 영감을 주었는지를 고백했다. 마치 자신의 디자인 노트를 공개하는 것처럼 말이다. 나 역시 책을 덮으면서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1700년 드레스를 입진 않지만 지금 내가 입는 옷들이 이 책 속에 등장한 드레스들 바탕으로 탄생했다는 사실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KHS

스타일을 남겨준 남자에게 부쳐

“주목을 받고 싶다면, 속임수에도 능해야 한다. 스타일은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 1971년, 스캔들 컬렉션 발표 후 인터뷰에서, 이브 생 로랑

‘이브’ 는 빨강, ‘생’ 은 노랑, ‘로랑’ 은 파랑. ‘이브 생 로랑’ 이라는 이름을 되뇌면 색이 씹힌다. 생전에 검정을 가장 좋아했고,그 다음으로는 빨강과 파랑, 노랑을 좋아했다는 세기의 위대한 쿠튀리에가 남긴 작품 세계를 회고하기 위한 책, <이브 생 로랑>은 검정 표지에 빨강, 파랑, 노랑으로 로고를 새긴 지극히 ‘무슈 생 로랑’ 다운 아트워크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지난 3월부터 8월까지 파리 보자르 박물관과 프티 팔레에서 이브 생 로랑의 유작을 모은 <이브 생 로랑 회고전>이 열렸다. 그 전시의 모든 내용에 피에르 베르제와 큐레이터 플로렌스 뮬러의 해설, 무슈 생 로랑의 생전 인터뷰를 발췌해 만든 이 책은 생업에 치여 전시를 직접 보지 못한 아쉬움을 단번에 불식시킬 만큼 구성과 내용물이 훌륭하다. 사전을 낑낑대면서 찾는 수고를 하더라도 이 책을 정독해야 하는 이유는(글이 꽤 많아 영어의 압박이 상당하다) 르 스모킹, 몬드리안 드레스, 사파리 점퍼, 아프리칸 앙상블 등 이브 생 로랑이 남긴 위대한 유산만큼이나 깊고 그윽한 이브 생 로랑의 철학이 제대로 정리된 , 다음과 같은 텍스트 때문이다. “내가 과거에 만든 것은 미래에도 존재할 것이고 내가 죽은 다음에도 길이 살아 남을 것이다. 나는 스타일을 만들었기 때문이다.”(그가 1962년에 만든 피 재킷이 다시 유행하던 1991년의 인터뷰에서)현존하는 대부분의 스타일은 이브 생 로랑의 유산이라고 해도큰 과장은 아닐 게다. 옷 짓는 남자가 던진 한 마디의 깊은 철학이 패션의 언저리에서 표류하고 있는 에디터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이 책을 읽으면, 당신도 조금 더 단단해질지 모른다. -CYK

코코 샤넬이라는 한 여자의 생

“내 이름을 걸고 다음엔 무엇을 보여줄 거지?” – 코코 샤넬이 칼 라거펠트에게 건네는 가상의 대화 중

난 코코 샤넬이 만든 전설적인 트위드 수트와 마린 스트라이프 룩, 진주 목걸이, No.5 향수, 2.55백에 대해선 알았지만 그녀의 슬픔에 대해선 알지 못했다. 그리고 숱한 자서전이나 영화를 통해 그녀의 외로움과 사랑을 알게 되었을 때도 그 복합적인 성격에 공감하긴 어려웠다. 하지만 최근 에디터 출신의 저자 저스틴 피카디에가 펴낸<코코 샤넬 : 더 레전드 & 더 라이프>를 통해 비로소 난 코코 샤넬의 마음 속 심연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유명한 이름 아래 흩뿌려진 수많은 로맨스와 거짓말 등을 솔직하고 담담한 시선으로 바라본 이 책에서 코코 샤넬은 오늘날 우리가 입는 방식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패션의 모던한 혁명가이자 삶의 개척자이기 이전에 한 명의 여인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내면에 자리한 외로움과 갈망이 결국 창작의 근원으로 피어났다. 고아원에서 외롭게 자란 시절을 만회하려는 듯 그녀는 당대의 오피니언 리더들과 교류했고, 이를 통해 많은 패션의 영감을 얻었다. 무엇보다 저자가 모은 방대한 아카이브에는 그녀의 절친한 친구인 장 콕토를 비롯해 세실 비통, 칼 라거펠트 등이 그린 일러스트와 사진 2백50여 장이 담겨있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편안한 팬츠 룩을 입은 채 그녀를 둘러싼 사람들 속에서 오뉴월의 햇살 같은 익살스럽고 싱그러운 미소를 짓는 모습. 이러한 사진들은 그녀가 패션의 전설이기 이전에 한 명의 여인이었다는사실을 다시금 되새겨준다. 특별히 이 책을 위해 일러스트를 그린 칼 라거펠트의 상상 속에서 그녀는 현재의 샤넬을 이끌고 있는 라거펠트에게 다음 계획이 무엇인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묻는다. 그렇다. 칼 라거펠트에게 그녀는 지칠 줄 모르는 창조적 에너지를 가진 선임자인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을 덮은 내게 그녀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자신의 창조적 열정을 패션에 쏟아낸 근사한 여인, 바로 그 모습이다. -PYK

에디터
박연경
포토그래퍼
엄삼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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