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에 칼바람이 들어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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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라는 옛 성현의 말이 오늘날 디자이너들에게 무한한 영감을 주었나 보다.올 가을/겨울, 카디건이 머플러가 되고 여우 목도리를 응용해 가슴팍을 장식하는 변화무쌍한 연출법이 당신의 영감을 고조시키고 있으니까. 특히 찬바람에 목 언저리가 시린 이들이라면 이제 해묵은 패션의 정석은 접고, ‘응용의 미학’에 심취해야 할 때다.

처음으로‘더블유人’에 대한 인상을 아로새긴 것은 한 선배의 트레이드마크격인 카디건이었다. 주목할 만한 건 카디건을 조신하게 몸에 걸치는 것이 아니라 목에 둘둘 말아두르고 다닌다는 점이다. 사시사철 그녀와 함께 하는 카디건은 목 언저리에서 흐드러지듯 유려한 실루엣을 드러내는 머플러로 제격이었다. 아니, 태생적으로 한결 편안해 보였다고 할까. 이 신선한 충격은 마치 초등학교 시절옷잘입는 상급생 언니가 마린스트라이프의 보트넥 티셔츠를 입고 그 위에 병아리색 스웨터를 등에 업은 채, 양 소매를 어깨위에 척 얹어놓은 모양새를 보았을 때 느꼈던 일종의 경외감과 비슷했다. 또한 주말의 명화 속 여주인공이 재킷이나 카디건을 어깨에 걸친 자태를 보았을 때(이건 오늘날 피비 필로를 통해 다시금 부활된 최신 트렌드가 아닌가) 느꼈던 새뜻한 기분도 안겨주었다.사실 조금만 다른 시선으로 보면 계절과 궤도를 함께하는 옷장 속의 오래된 연인도 늘 새로워 보이게 마련. 패션이야말로‘응용의 센스’가 빛을 발하는 분야 아닌가. 특히 올가을/겨울 이를 간파한 디자이너들이 저마다 목을 감싸고 나섰다. 우선 디스퀘어드2의딘과 댄은 파파라치에 의해 종종 공개되는 할리우드 스타들의 일상적인 모습을 보는 듯한 룩을 위해 스타벅스 잔을 든 채 경쾌한 몸짓으로 걸어 나오는 모델의 목을 두툼한 니트 스웨터로 감쌌다. 자연스러움을 의도하기 위해 사실 그들의 어시스턴트는 양팔의 길이를 어슷하게 맞추느라 소란을 떨었으리라. 어쨌든 그들이 의도한 스트리트 시 크룩의 콘셉트를 훌륭히 전달할 수 있었던 8할의 힘은‘대충 걸치고 나온 듯한’머플러의 탈을 쓴 스웨터였음은 틀림이 없다. 나아가 손재주가 없는 사람이라면 짧은 니트 머플러를 막세수를 마친 뒤 목에 걸친 수건처럼 연출해도 좋다는 무언의 메시지를 보낸다. 한편 크리스토퍼 베일리는 두툼한 넥 워머 예찬론을 펼쳤다. 이번 가을/겨울 버버리프로섬컬렉션에서 새롭게 선보인 스누드(snood)는 밍크, 캐시미어, 울 등 다양한 소재로 구성되어 풍성한 볼륨감을 연출하는 일종의 탱크톱 형태의 즉석 머플러. 이는 버버리의 전통적인 캐시미어 체크 머플러를 모던하게 재해석한 것으로, 보온성과 스타일링을 한꺼번에 해결해주는 착한 아이템이다. 그저 목에 걸치기만 해도 자연스럽게 주름진 형태가 완성되며, 소재에 따라 부드러운 여성미와 캐주얼한 개성을 두루 표현해준다.

만약 올가을 우아한 여인으로 어필하고 싶다면 로에베의 컬렉션을 참고할 것. 우선 당신의 키를 훌쩍 넘는 길이의 숄을 목에 감은 뒤 무릎까지 내려뜨리고 허리에 벨트를 매 고정시키면 긴 실루엣을 극대화하면서 감성적인 룩을 연출할 수 있다. 좀 더 고급스러운 느낌을 주려면 미우 미우가 선보인 퍼가 트리밍된 스톨라(stola)를 활용하면 어떨까. 고대 로마 시대의 튜닉과 같은 여성 복식을 뜻하는 스톨라에서 비롯된 어깨에 걸치는 긴숄인 스톨(stole)을 미우 미우에서는 가슴 앞을 장식하는 풍성한 여우털로 만들어 호사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또한 머플러를 컬러 포인트 액세서리로 활용해온 당신이라면서로 다른 색상의 머플러를 함께 연출할 수 있다. 이때 색상의 매치가 관건인데, 마크by마크제이콥스나DKNY 컬렉션처럼 의상 중에서 두 가지 색상을 뽑아 통일성 있게 연출하는 것이 좋다. 이때 하나는 회색이나 남색처럼 톤 다운된 색상을, 다른 하나는 명도가 높은 노란색과 붉은색 계열을 선택하는 것이 조화로우면서 힘 있는 룩을 완성해준다.한편 마크 제이콥스는 그만의 기지를 발휘해 카디건의 네크라인에 슬릿을 넣어 여기에 실크 스카프를 끼워야 제대로‘합체’가 된 룩을 선보였다. 즉, 스카프나 머플러라는 가을/겨울 시즌에 없어서는 안 될 액세서리에 헌사하는 상의를 고안해낸 것. 이처럼 목 언저리에서 당신의 얼굴을 받쳐주어 순식간에 낯빛을 화사하게 만드는 이들(머플러, 스카프, 카디건 그 무엇이건 간에)이 있기에 가을/겨울 룩을 스타일링하는 즐거움이 배가되는법.‘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말은 지금부터 시작된다. 디자이너들의 스타일링 법을 숙지한 당신이 해야 할 일은 더블유의 패션 에디터들도 깜짝 놀랄 흥미로운 머플러연출법을 독자엽서에 적어 보내는 일이다. 멋진 아이디어에는 찰리가 초콜릿 공장에서도 맛보지 못한 달콤한 패션의 참맛, 바로 진정으로 패션을 즐기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무한한 기쁨과 자존감을 선물로 드릴 테니!

에디터
박연경
포토그래퍼
Photo / KIM WESTON ARNO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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