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내 시달린 음습한 기운을 빨리 떨쳐버리고 싶어서일까? 봄이라는 계절은 색의 스펙트럼이 무한 확장하는 시기다. 그럼에도 유독 보는 이의 눈길을 사로잡는 색이 있으니 레드다. 물론 레드는 어느 곳에서든 당당하게 콧대를 높이는 색이긴 하지만 이번 시즌에는 그 양상이 다르다. 레드가 가을의 시작을 알릴 때 여자들의 입술 위에서 자신감을 드러냈다면 이제는 가을이 아닌 봄, 그리고 얼굴 전체를 점령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마치 누군가 레드에 마법이라도 걸어놓은 듯 ‘레드=입술’이라는 공식은 완벽히 깨졌다.

요지 야마모토 쇼에서 강렬한 레드 헤어피스를 연출한 헤어 아티스트 유진 슐레이먼은 레드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레드는 강하고 초자연적이면서 자기만의 개성이 확실한 컬러지요.” 마치 실크 스텐실을 한 듯 눈썹 앞머리부터 관자놀이와 눈꼬리까지 이어지는 그래픽적인 아이 메이크업을 보여준 막스 마라와 붉은 눈썹으로 쇼에 강렬함을 불어넣은 비비안 웨스트우드 쇼를 보는 순간 당신도 동의하게 되지 않나? 물론 기존의 레드 립이 가지고 있던 우아함을 여전히 유지하는 방법도 있다. 조르지오 아르마니 쇼가 좋은 예다. 결점 없이 깨끗이 정돈한 피부 톤에 그레이 실버와 브라운 톤이 믹스된 아이섀도를 바른 뒤 누드 립으로 마무리한 룩이 뻔해 보이지 않은 건 블랙 대신 붉은빛의 마스카라로 속눈썹을 은근히 강조한 덕분이다. 담대하거나 우아하게, 이번 시즌 그 어느 때보다 자유로워진 레드를 즐기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