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친구의 옷장에서 꺼내 입어라’는 패션지의 제안은 꽤 오래된 일! 이젠 남성과 여성이 서로의 영역을 탐하는 차원을 넘어 성의 경계가 무너진 중립 지대의 룩이 트렌드다.

Prada

오늘을 사는 ‘사람’들에 집중했다는 미우치아 프라다는 배기팬츠와 셔츠, 니트처럼 성별의 구분이 없는 옷들을 선보였다.

 

기하학 패턴의 미니 백은 프라다 제품. 가격 미정.

기하학 패턴의 미니 백은 프라다 제품. 가격 미정.

 

J.W. Anderson

조너선 앤더슨은 어깨를 드러내는 리본 톱, 스카프 블라우스 등 페미닌한 남성복을 키워드로 삼는다.

Loewe

이번 시즌 로에베 멘즈 룩북에는 성별의 구분이 모호한 중성적인 모델들이 유니섹스 룩을 입고 등장했다.

 

2013 F/W 시즌, 끝단을 프릴로 장식해 나풀거리는 쇼츠를 입은 남자 모델을 등장시킨 J.W. 앤더슨 멘즈의 쇼가 발표됐을 때, 그의 신선한 도발은 뇌리에 강력하게 남아 좀처럼 떠나지 않았다. 여자들이 가장 좋아한다는 잔근육을 가진 남자 모델들이 어깨를 드러낸 튜브톱의 주머니에 손을 가지런히 넣고 걷거나 미니 원피스와 러플 장식 부츠 차림으로 런웨이를 활보하는 모습은 스커트를 입고 피날레에 등장하는 마크 제이콥스나 여자보다 더 예쁜 남자 모델(최근에 성전환 수술을 한!) 안드레 페직을 볼 때와는 또 다른 충격을 안겨줬으니까. 그 이후로 J.W. 앤더슨 멘즈 쇼에는 레이스 옷과 한쪽 어깨가 드러나게 묶은 튜닉을 입은 남자 모델들이 무대를 장악했고, 성의 경계에서 벗어난 룩이 쇼의 중심을 이루기 시작했다. LVMH로부 터 ‘승인 도장’을 받으며 로에베의 수장이 된 이 젊은 디자이너는 유구한 역사를 지닌 스페인 브랜드에서도 젠더 크로싱 트렌드를 이어가고 있는데, 이번 시즌 로에베 멘즈 룩북에는 남성인지 여성인지 한눈에 정확히 구분할 수 없는 중성적인 모델들이 바닷가에 서있는 서정적인 이미지가 가득하다.

 

극도로 페미닌한 남성복이 등장하기 전부터 앤드로지니 트렌드는 사토리얼리스트와 같은 초창기 스트리트 사진가들의 앵글에 잡힌 중성적인 무드의 여인과 함께 공인된 파워 아래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프레야 베하나 사스키아 드 브로우같이 미소년 같은 모델들은 남성복을 입은 채 멘즈 컬렉션에 섰고, 트렌드를 이끄는 쇼장 밖의 여성들 은 매니시한 방식으로 차려입는 것을 미덕으로 삼았다. 매니시 트렌드는 몇 시즌째 이어진 킬힐의 열풍을 잠식시키기도 했는데 그 당시 여자들은 루부탱 대신 처치스 매장을 기웃거릴 정도! 하지만 이젠 패션계는 잠시 남자친구의 옷장을 탐하는 것을 넘어서, 성별의 개념을 초월한 중립 지대로 향하고 있다. “남성복과 여성복 사이에 선을 긋는 것을 거부하는 자유로움이 강해진 지금, 유니섹스 모드가 새로운 드레스 코드로 떠오르고 있어요.” 셀프리지 백화점의 우먼스 웨어 디렉터 주드 크레인은 이렇게 코멘트했다. “요즘 옷은 이미 시즌과 성별의 경계선이 거의 사라진 상태예요. 지방시의 여성용 스웨터는 수많은 남자들이 사갔는데, 옷의 그래픽이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이에요. 반대로 지방시의 남성용 클러치나 귀고리 같은 액세서리는 여성들에게 더 인기가 많죠.” 지드래곤의 경우에도 여성 컬렉션을 즐겨 입는 셀렙 중 하나인데, 셀린의 오버사이즈 코트나 마크 제이콥스의 밀리터리 재킷을 입은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남성용 수트를 만드는 디자이너 김서룡은 최근 급격히 늘어난 여성 고객들의 요구를 수용해 남성복 테두리로 가두었던 옴므의 꼬리표를 떼고 여성 수트 라인을 론칭했다.

 

대개 컬렉션은 남성복과 여성복이 양분되어 있지만, 이 둘을 하나의 런웨이로 융합한 컬렉션이 점점 더 각광받고 있다. 성별이 혼합된 캣워크 쇼에 오르는 젠더리스 룩은 성별의 표현이 자유로운 개방된 시대를 대변하며 이처럼 새로운 분위기를 수용할 수 있는 드레스 코드가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프라다 지방시 멘즈 컬렉션에 등장하는 룩은 오히려 여성들이 눈을 반짝일 법한 아이템이 많고, 버버리 프로섬 컬렉션 역시 남녀 모두가 사이좋게 나눠 입을 수 있을 만한 중성적인 룩으로 가득하다. 실제로 에디 슬리먼이 디올 옴므를 진두지휘하던 시절, 여성들은 이쑤시개처럼 마른 남자만이 소화 할 수 있었던 디올 옴므 컬렉션을 비밀스럽게 구매했지만, 오늘날 생로랑에서 선보이는 바이커 재킷이나 턱시도 재킷, 첼시 부츠 같은 아이템은 거의 유니섹스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인데 실제로 2NE1의 산다라 박은 생로랑 멘즈 컬렉션에서 선보인 체인 디스트로이드 진이나 베이스볼 점퍼, 체크 셔츠를 즐겨 입는다. 그런가 하면 스콧 스튜덴버그와 존 타곤이 함께 론칭한 레이블 바하 이스트(Baja East)는 남성과 여성 모두 함께 입을 수 있는 옷을 키워드로 삼았다. 성별에 구애받기보다 한 아이템을 상황에 따라 자유롭게 연출할 수 있는 가변적인 스타일을 추구하는 것! 이처럼 지금은 남녀 상관없이 옷 스스로가 의미를 지니는 시대다. 공생의 공간인 중립 지대에 속한 옷들인 셈! 비록 남녀의 신체적인 차이를 완벽히 무시할 수 없겠지만, 카멜레온처럼 서로의 영역에 자연스레 녹아드는 이 트렌드는 매혹적이다. 그간 남성복의 영역에 발을 들여놓지 않은 여성이라면 지금 당장 쇼핑 사이트에서 멘즈 웨어를 클릭해볼 것. 지금껏 누리지 못했던 신세계를 접할 수 있을 테니까!

Saint Laurent

생로랑 멘즈 컬렉션의 스키니 진과 첼시 부츠는 여성들이 입어도 무방한 사이즈로 출시된다.

 

별 패턴이 담긴 하이톱 스니커즈는 생로랑 제품. 1백만원대.

별 패턴이 담긴 하이톱 스니커즈는 생로랑 제품. 1백만원대.

 

Givenchy

지방시 멘즈 쇼에 등장한 티셔츠나 스웨트 셔츠는 여성들에게 더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그래픽 이미지가 담긴 스웨트 셔츠는 지방시 제품. 가격 미정.

그래픽 이미지가 담긴 스웨트 셔츠는 지방시 제품. 가격 미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