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회를 맞은 삼성 패션 디자인펀드(SFDF)의 두 수상자, ‘카이’의 계한희와 ‘나인티나인퍼센트이즈’의 박종우가 쏟아낸 길고도 짧은 이야기.

멸종 위기의 벌을 다룬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힌트를 얻어 벌과 벌집을 모티프로 한 카이의 2015 S/S 컬렉션을 입은 모델 황세온과 디자이너 계한희.

멸종 위기의 벌을 다룬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힌트를 얻어 벌과 벌집을 모티프로 한 카이의 2015 S/S 컬렉션을 입은 모델 황세온과 디자이너 계한희.

 

 

축하한다. 이번 수상이 어떤 의미를 갖나?

계한희 2011년부터 매번 지원했는데, 드디어 해내서 기쁘다.

박종우 일본에서 활동해온 터라 한국 시장에 나의 이름과 브랜드를 알릴 수 있게 되어 특히 의미 깊다. 여태까지 에이전시에 PR과 세일즈는 맡기고 그 외 모든 것을 혼자 해왔는데, 이젠 본격적인 팀을 꾸려 다음 도약을 준비하고 싶다.

 

자신의 브랜드를 한 문장으로 말한다면?

계한희 나의 성향, 그 시즌에 내가 꽂힌 당시의 이야기가 투영된 브랜드. 크리스토퍼 케인처럼 한 가지 이미지에 국한되고 싶지 않다.

박종우 대중이 관심 없는 1퍼센트의 문화가 누군가에겐 99%의 의미를 갖는다는 걸 보여주는 브랜드. 내게 1퍼센트는 펑크다.

 

디자이너 본인의 캐릭터가 강렬하다. 본인이 디자인한 옷을 자주 입나?

계한희 일주일의 반 정도. 작업할 땐 편한 옷 위주로 입는다. 대신 메이크업에는 늘 큰 비중을 둔다.

박종우 메이크업은 나 역시. 이젠 아이라인을 그리는 데 20초도 안 걸린다. 그리고 내가 만든 옷은 거의 매일 입는다. 브랜드의 시작점 자체가 내가 입고 싶은 옷을 만드는 것이었으니까.

 

두 사람 모두 런던과 연관이 깊다.

계한희 공부를 런던에서 했으니 많은 이들이 그렇게 말하지만 내게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건 어느 도시건 ‘진짜 사람들의 삶’이다. 날것의 생생함이 좋다. 어릴 때부터 뉴스와 다큐멘터리를 즐겨 봤다. 같은 맥락으로 사람들이 뮤즈를 많이 묻지만 내가 가장 재미있어 하는 건 옷이 커머셜 피스로 나온 뒤, 일반 사람이 이를 소화하는 방식이다.

박종우 한국에서 에스모드를 그만두고 스타일리스트 어시스턴트도 해보고, 가죽 공장에서도 일했다. 그 뒤 유럽 여행을 하던 중 펑크의 본고장인 런던이 재미있어 꽤 오래 머물렀다. 세인트 마틴 입학 허가도 받았다. 그런데 ‘아닌 것 같다’고 결론 내렸다. 펑크 룩을 차려입은 이들이 생산성 없이 노숙자처럼 지내는 현실 속 모습을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그런 건 펑크 뮤지션 코스프레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펑크 같은 소수 문화에 음악으로나, 패션으로 한국보다 열려 있되 전문성과 상업성을 키우기 좋은 일본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어릴 적부터 밴드 공연 기획을 해서 서울의 라이브 클럽들에 미국, 영국, 일본 등 다양한 국가의 밴드를 초청해 공연을 열곤 했다. 그때부터 인연이 닿은 일본 친구들이 일본행을 결정하게 한 지원군이 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두 사람 모두 유명인 친구가 많다고 알려졌다.

박종우 맞다. 든든한 패밀리다. 스타일리스트 양승호, 사진가 구영준, 일본인 스타일리스트 마사히로 나카지마 등 나와 내 친구들은 우리가 멋있다고 믿는 것을 무조건 밀어붙이는 특징이 있다. 미적 기준도 비슷하다. 그러나 우리의 기준에 갇히는 우물 안 개구리가 되고 싶진 않다. 예전엔 펑크 패션 브랜드를 만들고 친구들과 라이브 클럽 앞에서 전단지를 나눠주며 ‘밴드 음악 모르는 사람한텐 팔지도 않을 테다’라는 모난 생각을 하기도 했다. 어려서 그랬지. 지금은 더 소통할 수 있는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

계한희 난 주변 사람의 영향을 크게 받고, 그래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걸 좋아한다. 연관 검색어로 뜨는 뮤지션 친구들, 박민하를 비롯한 순수 예술 작가 친구들, 또 패션 에디터 친구들까지 다들 내가 직접 경험할 수 없는 수많은 것을 내게 전해준다. 각자의 유명도를 떠나 모두 소중한 존재다. 그들과는 종종 컬렉션 준비의 브레인스토밍 단계부터 함께한다. “난 이런 느낌 하고 싶은데, 너네 아이디어는?” “다음 시즌엔 어떤 걸 더 보고 싶어?” 등 많은 질문을 던진다.

 

시그너처 펑크 무드에 지난해 봄 다녀온 하와이의 경쾌함을 접목시킨 나인티나인퍼센트이즈의 2015 S/S 컬렉션을 입은 모델 박형섭과 디자이너 박종우.

시그너처 펑크 무드에 지난해 봄 다녀온 하와이의 경쾌함을 접목시킨 나인티나인퍼센트이즈의 2015 S/S 컬렉션을 입은 모델 박형섭과 디자이너 박종우.

 

 

옷의 완성도, 대중성, 브랜드의 규모 모두 커졌다. 때론 레이디 가가가 입은 ‘미트 슈트’처럼 파격적인 디자인을 다시 하고 싶진 않나?

계한희 초반에 과감한 쇼피스를 많이 선보인 건 일단 시작점엔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지금은 조금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지만, 그게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대신 2015년엔 특별한 기획을 준비하고 있다. 새롭게 만든 아티스틱한 쇼피스를 대림미술관이 운영하는 소규모 미술관 구슬모아당구장에서 전시를 통해 소개할 예정이다. 일본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그것도 데뷰한 지 2년 된 디자이너인데 꼼데가르송 협업 프로젝트에 참여했으며, 첫 쇼인 2014 S/S에 이어 세 시즌 연속 쇼 디렉터 신지 토리고, 유명 헤어 아티스트 가츠야 카모가 참여했다.

박종우 할 거면 잘하자 싶은 마음에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패션쇼 연출팀인 신지 토리고의 드럼칸에 무작정 연락을 취했다. 이 팀이 꼼데가르송, 준야 와타나베, 언더 커버 쇼를 총괄하는 팀이다.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자료가 마음에 들었는지 덜컥 연락이 왔다. 가츠야 카모도 그렇다. 그의 패션 화보 작업에 반해 일본 비달사순 안내 데스크에 메시지를 남겼다. 그가 작업한 화보 중 나의 옷이 등장한 페이지들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자료에 함께 넣었다. 그 후, 긍정적인 답변이 돌아왔다. 나는 모든 것을 일단 망설임 없이 시도한다.

 

각각 꼽는 대표 아이템은?

계한희 넉넉한 핏의 스웨트 셔츠. 스트리트 웨어를 즐기는 이들이 많이 찾다 보니 스웨트 셔츠 수요가 특히 높다.

박종우 바이커 재킷. 첫 컬렉션을 만들 때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게 뭐지?’를 고민했고, 그 답이 가죽과 징 장식이었다.

 

징과 핀 장식을 수작업으로 한다고 했는데, 이는 커머셜 피스에도 동일한가?

박종우 그렇다. 공장에 맡길 수 없어 일일이 직접 박는다.

계한희 나의 경우도 2014 S/S 시즌의 반창고 장식을 커머셜 피스까지 작업실에서 직접 붙였다. 이런 세심한 디테일은 그럴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런 수작업이 더해지면 단가가 올라 갈 수밖에 없는데, 비싸다는 이야기가 많을 땐 속이 상한다. 안타깝기도 하고. ‘젊은 디자이너 옷이니 싸야 된다’는 인식은 아쉽다.

 

홈쇼핑에 캡슐 컬렉션 ‘카이웍스’를 론칭한 건 그런 점을 극복하고자 한 방편인가?

계한희 맞다. 카이의 매출은 80퍼센트 이상이 수출이다. 국내 유통은 우리나라 모든 디자이너들의 큰 고민이다. 많은 이들이 세컨드 라인을 답이라고 생각하는데 나의 경우 메인 컬렉션 외에 지속적인 관리와 진행이 필요한 세컨드 라인에 신경을 분산시키고 싶진 않았다. 그 와중에 CJ 홈쇼핑 측에서 연락이 왔고 적은 수의 아이템으로 구성된 캡슐 컬렉션이라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몇 번 더 진행할 예정이지만 장기 프로젝트가 되진 않을 것이다.

 

두 브랜드 모두 편집숍 위주로 운영되고 있다.

박종우 한국 판매처는 10 꼬르소 꼬모와 무이, 두 군데다. 단독 매장에 관해선 생각이 없고, 판매하는 편집숍 역시 크게 늘릴 생각이 없다. 선별된 특정 숍에서 많은 아이템을 판매하는 브랜드로 키우고 싶다.

계한희 해외 판매 비중이 높은 편이라 단독 매장을 내도 외국이 될 것 같다. 요즘 중국과 홍콩에서 반응이 특히 좋다. 과감한 취향을 가진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계획은?

박종우 사흘 뒤 도쿄로 돌아간다. 좋은 상에 부끄럽지 않은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

계한희 큰 계기가 생긴 만큼 1년 뒤엔 지금의 카이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게 발전한 브랜드로 만들고 싶다. 일단, 지금은 2015 F/W 준비에 몰두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