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는 각자의 새로운 나이에 더듬더듬 적응해가는 시기다. 서른부터 쉰 하나에 이르는 네 명의 필자가 지금 막 받아 든 낯선 숫자에 대해 적었다.

30살에 기대를 품다

 

중학생 땐가 삼촌 자동차에 탔다가 느릿하고 음울한 노래 한 곡을 들었다. 당시 록에 심취한 중 2병 여중생이었던 나는 ‘이 노랜 뭐야? 다른 걸로 돌려’라고 했다. 갓 서른이 넘은 막내 삼촌은 이게 바로 ‘서른 즈음에’라며 서른이 되면 이 노래를 들으며 통곡을 하게 될 거라고 예언하셨다. 20대를 한 달 남기고 ‘서른 즈음에’를 다시 들어보았다.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비어가는 내 가슴속엔 더 아무것도 찾을 수 없네

 

삼촌 말은 사실이었다. 나는 침대 매트리스에 엎드려 스마트폰으로 ‘서른 즈음에’를 들으며 꺼이꺼이 울었다.

 

서른을 맞이하는 소감을 써달라고 청탁을 받았을 때 좀 당황스러웠다. 20살부터 10년의 이야기를 어찌 이 짧은 지면에 다 옮길 수 있으랴. 내년 봄에 결혼하는 나는 최근 한 달의 이야기만으로도 이 잡지 한 권을 다 채울 수 있을 지경이다. 하지만 20대가 어떤 시기였느냐고 굳이 말을 골라보자면 ‘내가 누군지 알고 나를 발견하는 시기’였다고 표현하고 싶다.

 

10대에는 아무나와 친구가 된다. 학기 첫날에 처음으로 말을 걸었다는 이유로, 또는 옆 자리에 앉거나 같은 아파트에 살며 등하굣길을 같이한다는 이유만으로 베프가 되었다. 그리고 그들과 무리를 지어 우르르 몰려다녔다. 그러다가 대학에 오고 나는 갑자기 허허벌판에 던져진 기분이었다. 아무나의 아무런 친구였고 엄마가 골라주는 아무거나를 입었고 밥도 학교에서 나오는 급식을 아무렇게나 먹었던 나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게 어울리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20대를 돌아보면 인터넷 쇼핑으로 실패한 옷만큼이나 많은 실수가 10년의 시간 속에 널려 있다. 별별 놈들과 연애했고, 개 같은 인간도 소 같은 인간도 말 같은 인간도 닭 같은 인간도 만났으며, 직업도 네 번이나 바뀌었다. 할 수 있다면 과거로 돌아가 쇼핑에 실패한 옷가지들처럼 그것을 다 쓰레기 봉지에 처넣어버리고 싶다.

 

나이가 들면서 좋은 건 내 취향과 스타일을 안다는 것이다. 옷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한 바 퀴 서치한 뒤 ‘저건 내 체형에 어울리는 내 스타일이야!’ 하고 집어 심지어 깔별로 사버리기도 하고, 몇 마디 나눠보면 나랑 죽이 잘 맞는 사람인지 아닌지 감이 오며, 서울 어느 동네에 외근을 나가도 이 근처에는 어떤 맛집이 있는지 기억해내어 망설임 없이 거기로 간다.

 

대학에 합격하고 하숙집을 구하기 위해 엄마와 기차 타고 서울 가던 날, 엄마가 ‘넌 이제 참 좋겠다’ 하시기에 ‘엄마도 다시 20살로 돌아가고 싶어?’라고 물었더니 ‘아니, 난 지금 이 나이가 더 좋다’라고 하셔서 나보고 좋겠다더니 왜 엄마는 다시 돌아가기 싫을까 의아한 적이 있다. 이제는 그 이유를 알겠다. 나는 물론 지금도 내가 청춘의 한복판에 있다고 생각하지만, 아무것도 가진 것 없고 아무것도 아는 것 없던 20살보다 20대에 걸쳐 차곡차곡 내 것을 만든 29살이 훨씬 좋다. 아마 그럼 서른은 더 좋겠지.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과 규칙이 있다. 20대는 그것을 알아가는 시간이었고 대체로 헤맸지만 돌이켜보면 한순간도 무의미하지 않았다. 20대가 장내기능이었다면 30대는 도로주행이 아닐까? 20대에 익힌 것으로 도로 위를 달리는 건 어떤 기분일까? 그래서 나는 서른이 되는 것이 기대된다. ‘나에게 맞는 감각’으로 인생이라는 도로 위를 제대로 달릴 수 있을 것 같아서다. 그리고 갓 서른이 되는 순간 나에게 다가온 ‘결혼’이라는 이벤트도 나를 더욱 설레게 한다. 나는 부모님을 사랑하지만 가치관이 달라 평생을 작게 크게 싸우며 살았다. 그때마다 ‘하늘이 내린 가족은 어쩔 수 없지만 내가 선택해서 만들 수 있는 가족과는 기필코 행복해지리라’고 수천 번 다짐했다. 지금의 난 내 선택으로 새로운 가족을 만드는 중이며 이건 정말 멋진 일이다. 그러니 어떻게 서른을 기대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20대에 쌓은 것이 단단하게 자리 잡아 그 위에 또 무언가를 걱정 없이 올릴 수 있는 30대를 기대한다. 20대의 나는 너무 날이 서 있었고 누군가를 몹시 좋아하거나 지나치게 미워했다. 서른이 되면 어깨에 뭉친 근육을 풀고 좀 더 천천히 악셀을 밟을 수 있지 않을까 29살의 내가 30살의 나에게 기대한다.

글 | 김영주(SNS 닉네임 ‘신림동 캐리’, 마케터)

35살의 무게를 깨닫다

 

실제 나이보다 어려 보인다는 말을 종종 듣는 편이다. 20대 후반 즈음부터 그런 말을 부쩍 자주 들었다. 내가 나이를 밝히 면 사람들은 놀라워했다. 어려 보이려고 특별히 노력하지도 않았던 것 같은데 어려 보인다는 말을 아주 자주 들었다. 그때마다 아니라며 손사래를 쳤지만 그 상황이 자주 반복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정말 내가 어려 보인다는 사실을 나도 잘 알게 되어버렸다. 물론 내가 잘 알게 되어버렸다고 해서 어려 보인다는 상대방의 말에 그러게요, 하고 맞장구를 칠 수는 없다. 그래서 언제나 예외 없이 (그리고 영혼도 없이) 아니라며 손사래만 쳤다.

 

그러다 서른이 되었다. 서른을 앞둔 사람에게 세상은 유난히 짓궂다. ‘서른, 잔치는 끝났다’라는 시집과 ‘서른 즈음에’라는 노래로 한 번이라도 공격당해보지 않은 서른 살은 아마 없을 것이다. 진부하지만 확실히 사람을 의기소침하게 만드는 시집 공격과 노래 공격을 나 역시 거쳤다(내 기억으로는 그 시집을 한 세 권쯤 선물 받았다). 그러나 30대로서 사는 삶이 내게는 별로 힘들지 않았다. 아니 여러 가지로 오히려 더 나았다. 게다가 비록 한 살 차이지만 20대와 30대라는 어감이 주는 큰 간극 때문에 나이를 밝혔을 때 사람들의 놀라는 정도가 예전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 극적으로 바뀌었다. 나는 재미있었다.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 20대의 얼굴을 하고 사람들과 시시덕거리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30대라고 밝히는 일이. 나 보다 누나잖아! 나보다 언니였어! 하면서 놀라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는 일이. 아직도 사람 들은 내 나이를 밝히면 깜짝 놀란다. 어려 보인다는 말도 여전히 한다. 그러나 옛날과는 느낌이 다르다. 언젠가부터 어려 보인다는 반응이 미묘하게 인사치레처럼 들리기 시작했다. 원래 ‘아니에요 아니에요’ 손사래를 치는게 나의 담당이었는데 언젠가부터 상대방의 몫이 되었다. ‘아니에요 아니에요 진짜 어려 보이세요, 진짠데, 정말인데.’ 손사래의 각도를 보면 분명 마음에 없는 소리는 아닌 것 같은데 자꾸 삐딱하게 들려오는 것이 나도 신기했다.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고약스럽게 예민해져서 매사 의심하게 된 것일까 생각해보기도 했다.

 

그러다가 깨달았다. 초점이 어느 순간부터 바뀌어버렸음을. 사람들은 이제 내 외모의 앳된 정도 때문에 놀라는 게 아니었다. 놀라움은 내 나이의 실질적인 많음에서 오는 것이었다. 발음 되는 내 나이의 수치가 너무 높았기 때문에 더는 내가 얼마 나 어려 보이는 외모인지가 예전만큼은 중요하지 않게 되어버린 것이다. 이제는 사람들이 눈에 보이는 대로 나를 대하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어려 보이는 지는 관계없이 그저 지금 내 나이에 맞게 대우해주고 있었다. 그러니 나는 자꾸 못 미더웠을 수밖에. 아마 올해도 어려 보인다는 말을 몇 번은 들을 것이다. 나는 내 나이를 소리내어 말하며 매번 따끔따끔해야 할 것이다. 나는 이제 서른다섯 살이 되었다.

글 | 요조(뮤지션)

42살을 위해 캐리어를 사다

 

먼저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다른 사람들에게 속옷이 나에겐 작업복이다. 쫙 달라붙은 손바닥만 한 사이즈의 속옷 같은 것만 입고 일을 한다. 이런 부끄러운 모습으론 응당 재택근무로 자기 방에서 혼자 일해야 할 터인데 그게 아니다. 같이 일하는 파트너가 있는데 나랑 비슷하거나 더 야한 옷을 입고 있을 때가 많다. 나와 그 파트너는 바닥에 뒹굴면서 서로의 팔과 다리가 엉킨 채 힘들어하며 숨을 헉헉 몰아쉰다. 이 일이 끝나는 모습은 더욱 흉칙하다. 상대방이 다른 사람의 위에 올라탄 채로 으윽 신음소리를 내면 ‘업무’가 끝난다. 이렇게 일하는 모습을 현장에서 사람들을 모아 보여줄 때도 있고 심지어 녹화해서 팔 때도 있다. 이쯤 되면 불법 포르노 제작자가 아닐까 생각할 수도 있는데 오해 마시라. 난 불법적인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내 직업을 이야기 하다 보니 길어진 것뿐이다.

 

난 프로레슬러다. 링에서 작업복을 입고 상대 선수를 집어던지고 기진맥진해진 상대 위에 올라타 스리 카운트를 따내다 승리의 월계관과 약간 더 두툼해진 파이트 머니 봉투를 손에 쥐는 것을 링 위의 목표로 삼고 있는 사람이다. 나에게 숫자는 목숨이며 존재 증명이다. 프로레슬러는 레프리(Referee, 심판)가 숫자 1부터 3까지 셀 동안 상대의 양 어깨를 바닥에 붙인 채 유지를 하면 승리할 수 있다. 또 다섯을 셀 동안 반칙을 할 수 있다. 내 차 트렁크에 있는 철제 의자, 체인, 가시철망을 두른 ‘경기용 흉기들’은 모두 그 5초라는 짧은 순간을 위해서 만들어진 것들이다. 또 몇 전 몇 승 몇 패처럼 어떤 프로레슬러의 가치를 증명하는 것 또한 전적이란 숫자다. 자신의 가치를 증명한 이들은 돈과 명예를 거머쥔 채 전용 대기실에서 차를 마시며 출전 콜을 기다린다. 그렇지 못한 이들은 냉방이 들어오지 않는 차가운 라커룸에서 신문지를 깔고 경기복으로 갈아입어야 한다. 이 세계에서 허리에 챔피언 벨트를 감아 봤거나 아니면 메인 이벤트는 구경도 못해본 채 오프닝 매치로만 선수 생활 대부분을 보냈던 이들 모두가 두려워하는 숫자가 있다.

 

바로 ‘나이’다. 육체를 도구로 사용하는 우리들에게 나이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노화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아주 완만한 내리막길을 내려오는 것과 같다. 처음엔 별로 대수롭지 않았는데 고개를 돌려보니 다시 올라가기엔 아득할 정도로 바닥으로 내려오고 만 것이다. 2001년 내가 갓 데뷔한 신인일 때 선배들이 비행기 탈 때나 쓰는 바퀴 달린 캐리어에 왜 짐을 싣고 다니는지 몰랐다. 처음엔 해외 출전 경험을 일부러 자랑하려고 그러는 줄로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무겁기 때문이다. 링 안에서 100킬로그램이 넘는 레슬러를 허수아비 돌리듯이 내던지던 선배들의 육체는 링 밖에선 부상과 노화에 시달려 십 몇 킬로그램의 짐을 들고 다니기엔 힘이 부쳤던 탓이다. 그래서 도르륵 도르륵 소리를 내며 캐리어를 끌고 다닌 것이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도 얼마 전 집 근처 마트에서 캐리어를 샀다. 그동안 출전했던 해외 단체들의 스티커로 위장을 하긴 했지만 본질을 속일 순 없다. 데뷔 14년 차의 프로 레슬러는 2015년에 42살이 된다. 아울러 내가 캐리어를 끌고 경기장으로 가는 첫 번째 해다. 그 이전의 나와 2015년의 나는 다를 수밖에 없지만 또 같을 수밖에 없다. 혹시나 프로레 슬링에 관심이 있는 독자가 있다면 한번 보러 오시라. 캐리어를 끌고 라커룸으로 향했던 남자가 링 위에서 어떤 파이트를 펼치는지를.

글 | 김남훈(프로레슬러, UFC / WWE 해설위원)

51살에 눈을 믿지 못하게 되다

 

자고 일어났더니 머리가 하얗게 센 듯하고, 허리도 삐끗한 데다가 다리도 뻣뻣해진 것 같았다. 앞으로 살 날보다 살아온 날이 더 많았다. 끔찍했다. 나는 노인은 공경하지만 나이는 혐오한다. 도대체 사십이란 나이에 무얼 할 수 있겠는가. 괴테가 이탈리아 여행기를 남길 때도, 서정주가 사화집을 묶을 때도 사십이 아니었을 것이다. 사십은 김동리가 문인협회장을 하거나, 전두환이 별을 달거나(진짜 사십 즈음에 그는 별을 달았다) 하는, 한심한 노땅의 초입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자, 여기까지 쓴 글은 과거형이며 내가 사십이 되었을 때의 소감이다. 그런데 나는 오십이다. 오십이 되니 사십은 그야말로 장난이다. 예순 드신 형님들(제길, 형님이래. 예순보고 할아버지 아니고 형님이란다)께는 송구하나, 여튼 오십은 소름이 끼친다. 머리가 센 듯한 게 아니라 진짜로 세고, 허리에는 이미 디스크가 두어 번쯤 찾아와서 서울 시내 누가 잘 고치는지, 사이비는 누구인지(일단 언론에 광고하는 집은 거의 분명하다) 다 알고 있으며, 다리는 근육이 저절로 빠져서 참새다리처 럼 바뀐다. 그래서 ‘여보! 내 쫄바지가 왜 이렇게 헐렁해졌지?’ 하면서 아내의 세탁 솜씨를 의심하게 된다. 무엇보다 진짜로 표시 나는 건 눈이다. 사십에 노안이 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런데 오십이 되어서도 멀쩡한 눈을 가지고 있다면, 오히려 안과에 가봐야 한다. 나는 예전에 요리사라는 직업을 고를 때, 정년이 없다는 것을 염두에 두었다. 내 팔자가 적당히 은퇴해서 놀 수 있는 것이 아닌 바에는, 정년이라도 길어서 뼈가 부서지고 진액이 다 빠지도록 일해서 먹고 살 수 있다면 다행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이 나이가 되고 보니, 그 판단이 그리 정확하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시중을 돌아보라. 왜 머리 허옇고 나이 예순일흔 된 요리사가 없는지 말이다. 정년도 없는데 그들은 다 어디 간 걸까. 우선 눈이 어두워서 요리하기 어렵 다. 매번 하는 일은 그런가 보다 하지만 세밀한 작업에는 문제가 있다. 설탕통과 소금통을 구별하려면 멀리서 입자만 봐도 척하니 알 수 있는 건 사십줄까지다. 오십이 되면 안경을 벗고, 눈을 늙은 신기료 장수처럼 설탕통에 처박아야 아하, 알게 된다. 처음에는 짜증이 났지만 이제는 요령도 생겼다. 구부정하게 그 빌어먹을 설탕통인지 소금통을 들여다보지 않고 이렇게 한다. “얘, 내게 소금 좀 주렴?” 결국 행동으로 하지 않고 입만 산다. 노인이 왜 말이 많은지 알게 되었다. 그래서 결국 다리도 닭다리처럼 볼륨이 없어지고 참새처럼 가늘어지는가 보다. 교정을 보려고 앞쪽에 쓴 글로 거슬러 올랐다가 ‘멸리서’라고 쓴 것을 겨우 알아보고 고쳤다. 그렇다. 문서프로그램의 포인트를 10급으로 해놓으면 나는 잘 알아보지 못하는 나이가 되었다. 담당 에디터가 원고량을 설명하면서 ‘A4 한 페이지가 조금 못 될 양’이 라고 했는데, 내가 쓰는 급수로는 한 장이 훨씬 넘어버린다.

 

눈이 슬슬 시원찮아지는 건, 그래도 우리가 예민한 눈의 시각 반응을 자각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서 노안이 오는 걸 금세 알아차린다. 그런데 몸 구석구석의 다른 녀석들은 뭐가 어떻게 되어가는지 모른다. 암세포도 어디선가 자라기 시작할지도 모른다. 암의 최대 적은 구운 고기도 술도 담배도 아니고 노화이기 때문이다. 다른 질병으로 돌아가신 노인을 세세히 부검하면 상당수가 이미 암이 있다고 한다. 그렇다. 우리는 앞으로 죽을 날이 아주 구체적으로 가까워진 것이다. 우리가 그저 흘려보낸 열 몇 해거나 스물 몇 해 정도의 시간이면 우리는 세상과 하직한다. 더러 팔십 몇 살까지 살기도 하겠지만, 처마신 술과 담배와 수많은 번뇌와 고통과 저지른 죄와(아마 죗값을 치를 것이다) 유전에 따르면 그때까지 살 가능성이 없다. 더 구나 그 나이에 내가 정신 똑바로 박힌 상태로 지내리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않으므로 오히려 일찍 가는 것이 낫겠다.

 

그런데 새해에는 쉰 하나다. 얼마 전까지는 어쩌다 연예인과 간통을 일으켜도 신문에 ‘박찬일(주거부정, 49세)’라고 나왔을 텐데 새해부터는 얄짤없이 ‘50세’로 박힐 거다. 머리는 한 움큼 빠졌으며 허리는 구부정한, 중늙은이가 생겨날 것이다. 그래도 주어진 삶이라고 살아갈 것이다. 쉰 줄 넘어선 여러분들에게 연민을 바친다. 어쩌겠나. 살아야지.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글 | 박찬일(요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