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 김영일의 전시는 미처 몰랐던, 그리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던 가치들과 마주하는 순간이다. 희귀해지기 전에 재발견해야 할 귀한 존재들.

한국의 초상화에는 ‘전신화(傳神畵)’라는 전통이 있다. 화폭에 인물의 외관뿐 아니라 정신까지 담는다는 뜻이다. 사진가 김영일의 전시 <귀한 사람들>은 과거의 예술 철학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려는 시도다. 그는 이번 작업에서 한복을 입은 여성 국악인만을 피사체로 삼았다. “거기서 대접받지 못한 삶을 봤습니다. 국악과 한복은 종종 서양 음악과 양복에 비해 푸대접을 받죠. 여성 역시 남성보다 평가절하되는 경우가 많았고요. 여성을 그린 조선 시대의 초상화가 세 점뿐인 걸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이번 프로젝트를 단순히 사진전이라 소개하는 건 반토막짜리 설명이다. 작가는 20여년에 걸쳐 알고 지낸 인물들과 일주일간 페이스북 친구 맺기를 통해 만난 인물들의 초상을 한데 섞었다. “21세기에는 전신화의 개념도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웹에서 나를 대신하는 이미지가 그 시작이 된다고 봤지요.” 김영일은 페이스북에서 찰나적 인연으로 떠돌던 사람들의 초상을 찍고, 아뜰리에 에르메스까지 직접 불러들인다. 모델이 된 소리꾼과 연주자는 전시 기간 동안 매주 토요일 오후 4시에 자신들의 사진이 걸려 있는 곳에서 공연을 할 예정이다. 그 현장의 기록은 다시 SNS, 유튜브, 팟캐스트 등을 통해 불특정 다수에게로 퍼져 나간다. 작가는 이 모든 작업의 총합을 통해 현대적인 전신화를 구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진은 말 그대로 진실의 모사일 뿐입니다. 그게 진실은 아니죠. 제 초상은 일종의 징검다리일 뿐입니다.” 카메라를 내려놓으면 김영일은 국악 전문 레이블인 악당이반의 대표가 된다. 사실 그 역시 한때는 국악보다 서양의 고전 음악을 더 가깝게 여겼다. 하지만 한 잡지사의 촬영 의뢰로 만난 소리꾼 채수정이 뜻밖의 계기를 만들어줬다. “제 스튜디오에 와서 소리를 시작하는데 제 인생을 통틀어 유일하다 싶은 경험을 했어요. 어떻게 감히 이런 걸 관심 밖에 두고 지냈나 싶었죠. 순간의 떨림이 아니라 저를 넘어서는 격랑을 만난 기분이었어요. 몰라서 낮게 취급했던 걸 일대일로 만났을 때 그 힘을 발견하고 그냥 오그라들었습니다. 이전에도 이후에도 사진을 박다 말고 멈춘 건 그때뿐이었어요.”

지금은 가요나 팝 음반도 찾는 사람이 많지 않은 시대다. 비주류 중에서도 특히 가느다란 물줄기로 인식되는 국악이라면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그래도 지난 2011년에는 큰 응원으로 삼을 만한 사건이 있었다. 악당이반의 <정가악회 풍류 3집>이 한국 음반으로는 최초로 그래미상 예선에 오른 것. “덕분에 지금껏 만든 것 중 제일 많이 팔린 앨범이 됐죠. 해외까지 합쳐서 총 250장 정도 나갔습니다. 그래미 발표 전까지는 딱 8장이었어요.” 물론 그 외 출시작의 평균 판매량은 250보다는 8에 더 가깝다. 지금의 현실은 상당히 가파른 산이지만 김영일은 돌아내려갈 생각이 없는 듯했다. “제가 고교산악연맹 출신이에요. 그때 정말 산행을 하드코어하게 했죠. 제 동기 중 한 명이엄홍길입니다(웃음).” 짧은 쉼표 뒤에 작가가 계속 말을 잇는다. “전 무엇이든 시작을 하면 끝을 봅니다. 거의 제 목숨하고도 바꿀 정도로요.”

김영일은 사진과 음악이라는 서로 다른 영역을 성실하게 오간다. 두 개의 세계 사이에서 그는 어떤 징검 다리를 발견한 걸까? “보는 걸 담다가 들리는 걸 담기 시작한 거죠. ‘담는다는’ 점에서는 똑같은 일입니다. 가치 있는 것들이 제대로 대접을 못 받고 힘없이 사라지기 전에 저라도 부지런히 담아둬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작가가 귀하게 담아둔 우리가 몰랐던 아름다움들은 3월 19일까지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경험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