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디자인으로 향하는 모든 길은 로마가 아닌 밀라노를 경유한다. 올해로 50주년을 맞이한 살로네 인테르나지오날레 델 모빌레 (밀라노 국제 가구 박람회) 현장은 새로운 도전을 꾀하는 기업들과 다가올 변화가 궁금한 관람객들로 행사 기간 내내 뜨거웠다. 산업계의 지형도를 바꾸어놓을 이슈부터 스타 디자이너의 인터뷰까지, 지난 4월 이탈리아에서 채집한 내용을 지면 위에 옮긴다.

1 밀라노 국제 가구 박람회의 전시장 내부 2 행사 전야제 풍경 3 디자이너 브로디 닐이 쿤달리니 사와 함께 선보인 조명 클로버 4 카림 라시드가 디자인한 조명 네아르코의 디테일 5 모니카 포르스터가 디자인한 데파도바 사의 의자 플로린다 6 푸오리 살로네에 참가한 캐논의 전시 '네오 리얼 원더' 7 타펠스튀켄 사의 조명 카펠리니. 디자이너는 대프너 로렌스

1 밀라노 국제 가구 박람회의 전시장 내부 2 행사 전야제 풍경 3 디자이너 브로디 닐이 쿤달리니 사와 함께 선보인 조명 클로버 4 카림 라시드가 디자인한 조명 네아르코의 디테일 5 모니카 포르스터가 디자인한 데파도바 사의 의자 플로린다 6 푸오리 살로네에 참가한 캐논의 전시 ‘네오 리얼 원더’ 7 타펠스튀켄 사의 조명 카펠리니. 디자이너는 대프너 로렌스

 

이탈리아 통일 150주년, 그리고 디자인의 통일

지난 4월 셋째 주, 밀라노에서는 올해도 어김없이 세계 최고의 가구 박람회 행사인 살로네 인테르나지오날레 델 모빌레(이하 살로네)가 개최되었다. 올해는 이탈리아 반도 통일 150주년과 더불어 살로네 개최 50주년을 동시에 맞이한 해이니만큼 방문객들의 기대감도 여느 해보다 높았다. 박람회장은 물론 밀라노 도시 도처가 살로네 50주년을 기념하는 ’50 Years Young’ 포스터와 이탈리아 통일을 축하하는 다양한 행사로 뒤덮였다. 2008년 미국 발 세계 경제 위기 이후, 경제 상황에 민감한 디자인 산업에 대한 우려가 깊어지며 살로네의 존립과 미래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도 있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올해 행사는 방문자가 32만1천여 명으로 공식 집계될 정도로 성공적이었다. 이는 경제 위기 발생 전 최고 기록인 34만 명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수치로, 지난 3월 일본 대지진 사태 이후 아시아 지역 방문객들의 수가 크게 위축된 상황을 고려할 때 분명 고무적인 성과다. 특히 격년으로 열리는 조명 전시 ‘에우로 루체’는 2년 전 같은 행사와 비교할 때 뚜렷한 성장을 보였다.

하지만 한편으로 가구 디자인 관계자와 전문가들은 올해의 디자인 전시 내용 전반에 대해 다소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디자인적으로 특별히 인상적인 제품과 전시가 나타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그럼에도 성황리에 끝날 수 있었던 것은 전자, 식품, 자동차, 화장품 등 다양한 업계의 브랜드들이 디자인 기업, 혹은 라이프스타일 기업을 표방하며 적극적으로 참여한 덕분이다. 가구 업체에 비해 연출력은 다소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나, 이들의 진출 자체가 디자인의 중요성이 나날이 커지고 있다는 증명인 만큼 그 행보를 주목할 만하다.

이른바 ‘디자인 열풍’은 가구 박람회장 내외에서 극명히 드러났다. 박람회장은 행사 기간 동안 전시 공간을 ‘고전관(클래식 가구)/현대관(바우하우스 스타일의 모던 가구)/디자인관(컨템퍼러리 가구)’의 세 가지 테마로 나누어 구성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디자인관은 4개의 파빌리온만을 사용했는데 올해에는 무려 두 배인 8개를 차지했다. 컨템퍼러리 가구 시장의 치열한 디자인 경쟁을 목도할 수 있는 풍경이었다. 박람회장 내에서는 가구 회사만 전시를 치를 수 있다. 하지만 밖에서 열리는 푸오리 살로네의 경우엔 아무런 제한을 두지 않는다. 전 업종의 선도 기업들이 앞다투어 참여한 올해 푸오리 살로네에는 관람객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아이디어들이 가득했다. 이탈리아 베스파 스쿠터에 상호를 입힌, 이른바 ‘니베아 택시’를 무료로 운영해 방문객들을 피로를 덜어준 니베아나 ‘Add Bubbles’라는 모토로 자사의 스파클링 워터를 전시장 곳곳에 무상으로 배치하고 그 위치를 알리는 지도를 배포한 산펠레그리노의 판촉 행사는 그 발상 자체가 기발했다. 이른바 마케팅 전략 자체를 ‘디자인’한 사례다.

과거에는 디자인이 산업의 이윤 창출을 위한 스타일링 정도로 인식됐다면(미국적 디자인) 최근에는 통합적인 삶의 혁신으로서의 디자인(이탈리아적 디자인)이 강조되는 추세다. 올해는 그 어느 때보다도 서로 다른 디자인, 디자인과 예술, 기술과 디자인의 통합 등이 적극적으로 시도됐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이탈리아의 통일 운동인 ‘리소르지멘토(Risorgimento)’를 연상하는 것은 무리일까? 하지만 이번 살로네를 방문하고 경험한 이들이 ‘리소르지멘토’의 뜻 그대로 디자인계의 새로운 ‘부흥’에 대한 기대를 품었으리란 것만은 자명해 보인다.

 

1 필립 스탁이 디자인한 플로스 사의 조명 아키문 파나마 2 도나텔라 베르사체가 디자인한 베르사체 홈의 소파 3 밀라노의 갤러리 닐루파와 디자이너 파트리치아 우르퀴올라의 프로젝트 4 플로스 사의 조명인 번데기. 디자이너는 마르셀 반더스 5 돌연변이(mutant)를 테마로 한 건축가 리처드 메이어의 설치물

1 필립 스탁이 디자인한 플로스 사의 조명 아키문 파나마 2 도나텔라 베르사체가 디자인한 베르사체 홈의 소파 3 밀라노의 갤러리 닐루파와 디자이너 파트리치아 우르퀴올라의 프로젝트 4 플로스 사의 조명인 번데기. 디자이너는 마르셀 반더스 5 돌연변이(mutant)를 테마로 한 건축가 리처드 메이어의 설치물

 

2011년 밀라노 국제 가구 박람회에서 내다본 디자인 트렌트

패션 브랜드들이 가구를 만들기 시작했고 청량한 색상들이 전시장 곳곳에서 관람객들의 눈을 붙들었다. 지금 이 순간의 디자인에 관해 살로네 현장에서 수집한 단서들.

컨템퍼러리 디자인의 우세
박람회장 내부의 고전관과 현대관의 비중이 현저히 줄고 디자인관을 위한 공간이 획기적으로 늘어난 것만 봐도 알 수 있듯 지금의 소비자들은 ‘동시대성’을 선호한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예술계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살로네 기간 중 열린 다양한 디자인 행사 중에서도 밀라노의 유명 갤러리 닐루파의 프로젝트는 특히 눈길을 끌었다. 아티스트 대신 디자이너 안드레아 브란지, 파트리치아 우르퀴올라 등과 함께 컨템퍼러리 가구를 한정판으로 제작한 것.

패션 브랜드의 도전
가구 업계에 비해 시장 규모가 큰 패션 업계에서는 막강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자사의 가구 브랜드를 설립하거나 기존 회사들과의 협업을 시도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통합적인 라이프스타일 기업으로서의 이미지 구축에 저마다 힘쓰고 있는 것. 아르마니, 보테가 베네타, 베르사체, 펜디 등 여러 패션 브랜드들이 가구 및 홈웨어 브랜드를 론칭한 데 이어 올해는 에르메스도 처음으로 가구 컬렉션을 발표했다. 아울러 디젤은 가구와 조명을 선보였고, 살바토레 페라가모는 하이엔드 가구 브랜드인 몰테니의 제품과 자사 상품을 쇼룸에 함께 전시해 눈길을 끌었다.

다양한 업계의 진출
디자인 기업을 표방하는 업체의 수가 늘고, 그 영역이 다양해진 점이 눈에 띄었다. 자동차, 화장품, 음료, 전자 등 가구 외 디자인 리더 기업들의 활약이 그 어느 때보다도 뜨거웠다. 한국 기업들의 진출도 활발해서 삼성전자, LG하우시스, 현대자동차 등이 푸오리 살로네에서 다채로운 행사를 열었다.

색채감의 강조
‘색상을 바라볼 때면 나는 빛이 되고자 하는 소재의 노력을 헤아리게 된다.’ 플라톤의 말이 떠오를 만큼 다채롭게 ‘빛나는’ 색상들이 2011년 살로네 현장을 가득 채웠다. 데파도바의 의자 시리즈인 플로린다처럼 밝고 가벼운 색의 제품이 주를 이뤘던 것. 이러한 변화는 조명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덕분에 솜사탕처럼 알록달록한 LED나 OLED 빛으로 전시장이 환해지는 광경이 종종 연출됐다.

변이하는 형태
지속적으로 통합, 확장하며 변화하는 디자인계의 속성이라도 반영한 듯, 생물의 변이를 연상케 하는 유기적이면서도 동적인 형태를 곳곳에서 관찰할 수 있었다. 아예 초현실적이거나 아니면 자연물을 연상케 하는 식으로 그 결과물 간에 극단적인 차이가 느껴지는 것 또한 흥미롭다. 인테르니의 전시에서는 건축가 자하 하디드와 리처드 메이어가 ‘돌연변이(mutant)’를 테마로 설치물을 선보인 바 있다. 브로디 닐의 클로버, 카림 라시드의 네아르코 같은 조명 기구들 역시 같은 맥락에서 살필 수 있는 예다.

수공예에 대한 향수
엮고 짜는 직물의 느낌을 강조한 가구들이 유난히 많이 선보인 한 해였다. 사람의 손길이 느껴지는 직조 방식을 적용하거나 모방한 제품들에선 레디메이드 공산품에서 맛보기 힘든 따뜻한 감성이 읽혔다. 파스타 이름을 따서 명명한 재스퍼 모리슨의 의자 탈리아텔레가 대표적인 예.

아날로그로의 회귀
사회가 고도화, 복잡화될수록 소비자들은 단순함을 선호하는 것일까? 디자인의 최첨단을 달리는 선도 기업들이 기술의 고도화에 반하는 투박한 형태의 제품을 여럿 선보였다.

패턴의 적용
그간 도외시되던 장식적 요소인 패턴 효과가 가구와 조명에서 쓰이게 됐다. 드리아드 사의 의자 프티마들렌처럼 그 자체에 복잡한 패턴을 부여한 가구 디자인, 마르셀 반더스가 디자인한 플로스 사의 번데기처럼 그림자에 패턴이 드러나도록 하는 조명들을 볼 수 있었다.
글|여미영(프리랜스 디자이너)

디자이너들이 사랑한 디자인

패션 디자이너들에게 물었다. 서재와 침실, 혹은 부엌이나 거실을 장식하고 있는 제품 가운데 유독 편애하는 걸 꼽는다면요?

1. “마크 뉴슨의 모래시계와 스튜디오 욥의 종이 샹들리에요. 포스트모더니즘이 아닌, 새로운 모더니티와 포스트 미니멀리즘이 깃들어 있는 디자인이라서 좋아합니다.” -칼 라거펠트

2. “조르주 자콥의 엠파이어 의자를 한 쌍 갖고 있죠. 숫양의 뿔처럼 등받이 끝부분이 말려 있는 제품인데 아주 끝내줘요. 현대적인 아파트든, 예스러운 공간이든 어디나 잘 어울리죠. 오브제가 될 만한 물건이라니까요?” -베라 왕

3. “조 콜롬보가 1960년대에 디자인한, 나무와 금속으로 된 작은 부엌요. 두 개의 버너와 바퀴 달린 작은 찬장이 있었어요. 제겐 이 부엌이야말로 기능적이면서도 아름다운 디자인의 대표적인 예에요.” -실비아 벤투리니 펜디

4. “파렌티지의 램프요. 전 늘 전등 디자인에 관심이 많았어요. 기술적 혁신을 가장 빨리 반영하거든요. 그 속성 자체가 미래 지향적인 제품이라고나 할까요? 1950년대나 1960년대의 전등을 꼼꼼히 살피면 분명 지금의 눈으로 봐도 충분히 현대적인 디자인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야코포 에트로(에트로 수석 디자이너)

5. “종이 클립요. 사소하지만 분명 천재적인 디자인이니까요!” -폴 스미스

6. “자기 부상 지구본. 부서지기 쉬워 보이면서도 무언가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어요.” -피에르 가르뎅

7. “런던 메이페어의 매장에 가져다둔 자크 샤르팡티에의 소파들을 가장 좋아해요. 아름다운 메탈릭 벨벳으로 천을 갈아 씌웠죠. 1970년대 후반 파리의 세련된 인테리어 스타일을 연상시켜요.” -롤랑 뮤레

8. “새로 산 아이맥요. 최첨단의 기술력으로 완성된 극단적으로 아름다운 디자인이에요. 게다가 사용하기도 무척 쉽고요.” -도나텔라 베르사체

9. “안젤로 렐리가 브랜드 아레돌루체와 함께 1951년에 디자인한 3등 램프는 군더더기 하나 없이 핵심만을 취한 디자인이라 유행을 타지 않죠. 하나의 예술품이에요.” -알베르타 페레티

10. “카를라 톨로메오의 의자를 특히 좋아합니다. 상상력이 풍부한 수공예품 같아요. 화가가 물감을 사용하는 것처럼 톨로메오는 패브릭과 프린트를 참신하게 뒤섞죠.” -안나 몰리나리

11. “가장 유명한 디자인 중 하나일 아르네 야콥슨의 에그 체어를 꼽을게요. 유행을 타지 않고, 스타일리시하며 어떤 공간에도 잘 어울리니까요.” -프리다 지아니니(구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12. “1950년대 무명 디자이너가 만든 접이식 나무 의자 같은 물건에 빠져 있어요. 그 구조가 매우 간결하면서도 기능적이고 사람의 몸을 편하게 감싸주거든요. 원시인의 가구처럼 투박한 매력이 있어요.” -브루넬로 쿠치넬리

13. “지난 역사에 대해 이야기해주는 것이라면 뭐든 존중합니다. 아르데코의 아버지인 장 미셸 프랭크의 작업처럼요. 그의 현대적이고도 간결한 미감은 무척 인상적이에요.” -조르지오 아르마니

14. “정말 좋아하는 게 둘 있어요. 빌리 볼드윈의 파슨스 테이블과 칼 스프링거의 커피 테이블요. 그 특징은 매우 다르지만 제가 볼 때 그 두 사람은 다양한 영향을 영리하게 수렴해낸 디자이너들이에요. 볼드윈은 프린트의 배합에 일가견이 있었죠. 집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휴식을 취하고 실제로 살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는 게 그의 믿음이었어요. 스프링거는 중국, 아프리카, 아르데코, 바우하우스 등 온갖 것들로부터 영감을 얻었어요. 수많은 요소들이 그의 디자인 안에서 재해석됐죠.” -토리 버치

15. “론 아라드의 물결 모양 계단이 생각나는군요. 개념적인 디자인이 적절한 기술을 만나 근사하게 구현된 것 같아요. 단순하면서도 아이코닉하고 매우 현대적입니다.” -디에고 델라 발레(토즈 회장)

16. “조 콜롬보가 1964년도 디자인인 흰색 의자요. 카르텔 제품이고 모델 번호는 4801이에요. 완벽하게 깨끗하고 선이 우아하죠. 곡선으로 나무를 깎아 만든 기술이 기가 막혀요. 전 이걸 두 개 갖고 있습니다.” -콘수엘로 카스틸리오니(마르니 디자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