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미인’이라는 수식어는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일생을 따라 다녔다.

‘세기의 미인’이라는 수식어는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일생을 따라 다녔다. 황신혜의 ‘컴퓨터 미인’만큼이나 식상한 별명이었지만, 그렇게들 불렀다. 그녀가 살았던 세기에 미인은 많았다. 20세기는 그레이스 켈리가 반짝인 시대였고 오드리 헵번이 빛나던 시대였으며, 마릴린 먼로가 불타오른 시대였다. 그리고 테일러는 그 여자들 중 가장 오래 살았다. 늙어가고 주름지고 살찌고, 점차 미지근하게 식어가는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8번 결혼했는데 그중 두 번은 한 남자, 리처드 버튼과 했다. 두 사람이 첫 결혼을 했을 때는 각자 배우자가 있던 상태에서 만나서였다. 1997년에는 뇌수술, 2009년에는 심장수술을 견뎠으며 말년에 에이즈 퇴치 재단을 만들었다. 살이 많이 찌기도 했고, 애써 감량도 했다. 깊은 우정을 나눈 친구 마이클 잭슨을 먼저 떠나보냈고, 뒤따라 LA 공원묘지에 묻혔다.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에서 리즈 테일러를 인용한 인상적인 에피소드가 있다. 누구보다 아이를 원하는 샬럿은 유산하고 상심해 있다가 TV에서 우연히 테일러의 일생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게 된다. 숱하게 이혼하고 여러 가지 병에 걸렸던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용기를 내야 합니다. 용기가 없다면 있는 척이라도 해야 합니다.” 눈물을 흘리던 샬럿은 조용히 리모컨을 놓고 일어선다. 예쁘게 차려입고, 친구 아들의 돌잔치를 축하하러 가서 환하게 웃는다. 그리고 유산한 아이 대신 강아지를 입양한다. 개에게 붙여준 이름은, 짐작할 수 있겠지만 엘리자베스 테일러였다.

테일러는 <자이언트>나 <젊은이의 양지> 같은 영화 속에서 남자들의 욕망의 대상이었지만, 동시에 스스로 욕망하는 여자였다. 필모그래피 최고작이라고는 할 수 없을 <클레오파트라>로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기억하는 이유가 그것일 테다. 꼭 테일러처럼 야심 많은 여자였으니까. 테일러를 20세기에 가장 우아하거나 아름다웠던 여배우였다고 말하는 데는 논란이 따를지 모른다. 패션이 사랑한 스타일리시한 스타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그녀가 가장 할리우드적인 존재였다는 것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지난 3월 23일 79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테일러는 사랑하기를 그치지 않았고 싸우기를 멈추지 않았다. 삶의 빛과 그림자, 성공과 실패, 영광과 치욕에 온 몸으로 맞서는 용기를 우리에게 보여줬다. 용기를 낸 것이든, 있는 척한 것이든 그 인생은 멋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