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UCCI 26SS 컬렉션
리들리 스콧(Ridley Scott) 감독이 제작한 영화 하우스 오브 구찌(House of Gucci)는 2000년대 초반부터 구상했으나 구찌 가문 후손들의 반대에 부딪쳐 2021년이 되어서야 겨우 개봉할 수 있었다. 그만큼 구찌 가문의 역사는 화려한 성공 이면에 잔혹하고 복잡한 갈등으로 얼룩져 있다. 위기에 처한 구찌의 구원투수로 투입된 새로운 아티스틱 디렉터 뎀나는 이 이야기를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구찌는 밀라노 패션위크 첫날, 30분 분량의 단편 영화 *더 타이거(The Tiger)*를 공개했다. 밀라노의 상징적 건물인 팔라초 메자노테(Palazzo Mezzanotte)는 영화 시사회를 위한 특별한 공간으로 꾸며졌다. 웅장한 석회암 조각 사이로 구리빛 구찌 로고가 존재감을 드러냈다. 영화에 출연한 배우와 인플루언서들이 하나둘 도착할 때마다 스포트라이트가 번쩍였고, 이들은 마치 ‘절대 웃지 말라’는 특명을 받은 듯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 사방이 어두워지고, 팔라초 메자노테 안에서 시사회가 시작됐다.
영화는 아카데미 수상에 빛나는 감독 스파이크 존즈(Spike Jonze)와 할리나 레인(Halina Reijn)이 연출했다. ‘라 파밀리아(La Famiglia)’라는 테마가 암시하듯, 가상의 구찌 가족이 겪는 불안과 혼돈을 담았다. 가상의 구찌 인터내셔널 회장이자 ‘캘리포니아의 의장’ 바바라 구찌(데미 무어 분)는 회사의 명성을 지키고 귀빈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며 완벽한 엄마 역할을 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그녀는 자신의 생일 파티에 손님들을 초대하지만, 저녁 식사 도중 가족들이 실수로 환각제에 노출되면서 상황은 걷잡을 수 없는 혼란으로 치닫고, 완벽했던 가족은 와르르 무너지는 모습을 보인다.
뎀나는 새로운 구찌를 보여주기 위해 공식 인스타그램의 기존 게시물을 모두 지우고, 고풍스러운 액자에 담긴 37개의 룩북을 사전 공개했다. 각각의 룩에는 캐릭터에 따른 흥미로운 이름이 붙었다. 이를테면, 60년대풍 스칼렛 컬러 미드코트를 입고 플로라 패턴 스카프를 머리에 두른 이는 ‘화난 여자(L’Incazzata)’, 호랑이 무늬 페이크 퍼 코트에 스틸레토 힐을 신은 이는 ‘폭탄(La Bomba)’, 화이트 셔츠를 배꼽까지 풀어헤치고 GG 로고 벨트와 선글라스를 착용한 이는 ‘나르시시스트(Narcisista)’라고 명명됐다. 몇몇 캐릭터는 영화와 연결되어 세계관을 확장했다. 예컨대 룩북 속 ‘고상한 체하는 속물(la snob)’은 럭셔리 브랜드에 열광하지만 속물적인 면모를 지닌 이탈리아 사회의 특정 계층을 풍자한 캐릭터로, 영화에서는 줄리앤 니콜슨(Julianne Nicholson)과 헤더 로리스(Heather Lawless)가 연기한 기괴한 쌍둥이로 구현됐다. 영화 샤이닝의 쌍둥이를 연상케 하는 이들은 파티에 혼란을 더하는 감초 역할을 했다.
모든 시선이 집중된 만큼 삐끗하면 순식간에 가십거리로 전락할 수도 있었던 뎀나의 구찌 데뷔전. 그러나 그는 감추고 싶었던 구찌 가문의 명암을 대놓고 드러내는 반전을 통해 모두의 허를 찔렀다. GG 로고, 모노그램, 웹 스트라이프, 플로라 같은 구찌의 오랜 상징이자 매출의 핵심 요소들은 그의 손에서 완전히 쿨한 분위기를 획득했다. 뎀나는 발렌시아가에 이어 구찌에서 와서도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입을테면 입어봐!’
- 사진, 영상
- Courtesy of Gucc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