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오브 스트릿 우먼 파이터’ 리더 5인과 나눈 이야기

권은경, 전여울, 이현정, 정혜미, 신지연

잘 추는 여성 옆에 또 잘 추는 여성이 모여 팀으로 실력을 겨룬다고 상상하면, 그 상상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스우파>라 불리던 거대한 서바이벌 쇼는 지구 한 바퀴를 돌며 여성들을 호출해 Mnet <월드 오브 스트릿 우먼 파이터>로 판을 키웠다. 앞선 두 시즌으로 이 쇼의 드라마틱함을 체험한 춤꾼들이 호기롭게 화답한 건 물론이다. 호주의 AG SQUAD, 한국의 BUMSUP, 미국의 MOTIV, 일본의 OSAKA Ojo Gang과 RHTokyo까지, 쇼에 참가한 크루 중 다섯 크루의 리더들이 여기 <더블유> 카메라 앞에서 춤을 췄다. 상상은 현실이 되었고, 그들의 이야기는 각자의 춤만큼이나 탁월했다.

위부터 | 허니제이가 입은 셔츠는 디젤, 쇼츠는 페라가모 제품. 카에아가 입은 점프슈트는 막스마라 제품. 말리가 입은 톱은 마린 세르 제품. 리에하타가 입은 재킷은 꼼데가르송 제품. 이부키가 입은 재킷은 뷔미에트 제품.

말리 Marlee

힙합이 태어난 나라, 미국에서 온 ‘모티브’에는 중심축이 견고한 인간인 말리가 있다. 말리를 힙합 댄서이자 크루의 리더라고만 명명하기에는 어쩐지 부족하다. 그녀는 자신이 기억하는 가장 어린 시절부터 이미 춤을 추고 있었고, 그 춤은 미장센으로, 이야기와 장면을 구성하는 작가적인 기질로, 또 그림으로 뻗어 나가거나 서로 연결되었다. 춤이라는 씨앗이 말리의 예술성을 꽃피우고 있다. 이 춤추는 예술가는 <월드 오브 스트릿 우먼 파이터>라는 시험대를 통해 자신의 가능성에 더욱 확신을 갖게 된 인상이다.

다채로운 패턴을 레이어링한 드레스와 데님 팬츠는 아크네, 레드 뮬은 페라가모 제품.

<W Korea> 지난 시즌 방송들을 좀 챙겨 봤나?
말리 지난번에 커스틴이 참가한 것을 보고서 <스우파>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섭외 연락을 받은 후엔 내가 과연 뭘 하게 될지 알고 싶어서 시즌 2를 정주행했다. 시즌 1은 하이라이트 영상으로 봤고. 너무 흥미진진해서 놀랄 정도였다. 그간 접한 댄스 프로그램 중 가장 리얼리티 쇼 성격이 강했고, 그저 단순한 방송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참가를 결심하고서 기필코 승리하리라는 마음이었나?
그렇다. 우리 팀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나는 어떤 미션이 주어지든 다 해낼 수 있는 멤버들을 모았다. <스우파>에서는 안무 잘한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배틀도 해야 한다. 그건 또 다른 기술이 필요한, 완전히 다른 영역이다. 거기에 퍼포먼스 요소나 뮤직비디오 작업 등 다양한 역량이 요구된다.

방송 촬영 여건이나 현장 시스템에서 문화 차이를 느낀 부분도 있을 듯하다.
일하는 시간이 미국과 너무 달라서 컬처 쇼크를 받았다. 참가자뿐 아니라 제작진 모두가 잠을 못 자면서 이 일에 시간을 바친다는 걸 알고 놀랐다.

체력적인 면과 정신적인 면 중 어느 쪽이 더 어렵다고 느끼나?
내 경우는 정신적인 부분이다. 두려움과 약점을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가장 큰 싸움이다. <스우파> 시리즈는 바로 그런 감정을 건드리는 데 아주 특화된 것 같다. 아니면 그러려고 노력하거나. 우리는 끊임없이 다른 참가자들과 비교된다. 게다가 직접 다른 참가자의 순위를 매기거나 평가해야 하고, 매번 새로운 미션에 던져진다. 그 미션들은 우리가 평소 잘 접하지 못한 영역을 건드리는 성격이고. 그래서 이 쇼는 우리의 약점을 정확히 짚어주는 동시에 우리의 강점이 뭔지도 알려준다. 그런 상황의 연속에서 흔들리지 않고 중심을 잡는 일이 제일 어렵다.

모티브 멤버들을 간단히 소개해준다면?
먼저 벨라(Bella)는 가장 오래 함께한 멤버 중 하나이고, 올란도에서는 팀의 캡틴 역할을 하고 있다. 판타이예(Fantaye)는 2018년 다른 댄스 크루에서 만나 알게 된 친구다. 정말 뛰어난 프리 스타일러이자 힙합 댄서다. 케이디(Kaidi)는 정말 다재다능하다. 키가 크고 매력적인 퍼포머이다. 니샤(Nyssa)는 엄청난 재능의 소유자로 즉석에서 안무를 빠르게 습득한다. 애비(Abby), 어린 나이에 우리 크루에 합류했는데 이제는 열여덟살이 되었지. 그녀의 성장 과정을 지켜봐왔다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우리에겐 로지스틱스(Logistx)가 있다. 세계적인 B걸이자 파리 올림픽 때 미국 대표로 출전한 인물. 이번 기회로 로지스틱스가 그저 B걸인 것만이 아니라 뛰어난 안무가라는 점을 세상에 보여줄 수 있어서 기쁘다.

작지만 강한 로지스틱스는 이번 참가를 위해 영입한 에이스라고 들었다.
우리가 출연할 수도 있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먼저 든 생각이 ‘어떻게 하면 이 팀을 가장 강하게 만들 수 있을까’였다. 로지스틱스와는 플로리다에 있는 내 댄스 스튜디오에서 몇 번 같이 수업을 한 적이 있고, 배틀을 해본 적도 있는 사이다. 우리 팀에 영입하기 딱 좋았지. 우리의 비밀 병기가 되어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다른 크루와 차별되는 모티브의 강점은 뭘까?
프리 스타일과 배틀에 있다. 또 그루브감이나 힙합 기본기를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는지도 우리의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참가자들의 실력이 위협적이라고 느낀 적도 있나?
어느 누구도 위협적으로 느껴지진 않았다. 오히려 흥미로웠다. 내가 그동안 인터넷을 통해서만 봐온, 그리고 팬이었던 이들과 직접 쇼에 출연하면서 작업도 같이할 수 있으니까.

당신은 스스로 어떤 리더라고 생각하나?
공감하는 리더, 그리고 의도가 명확한 리더라고 생각한다. 나는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때면 ‘무언가를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어떻게 하면 이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그럴 때마다 내가 학생이었을 때 어떤 리더를 원했는지 떠올리면서 그런 리더가 되고자 한다.

이번 시즌에서 당신과 가장 다른 매력을 지닌 참가자가 있다면 누구일까?
아마도 허니제이? 다른 이들과는 그래도 어느 정도 소통이 가능했는데, 허니제이와는 주로 관찰을 통해 교감했다고 할 수 있다. 짧은 문장이나 사소한 순간을 통해 공통점을 찾기도 하면서, 그걸로 연결고리를 만든 셈이다. 각 리더마다 춤에 접근하는 방식이 다 다르지만, 솔직히 나는 그 안에서도 우리의 공통점을 찾을 수 있었다. 내가 사람과 연결되는 방식 자체가 그들 안에서 나 자신을 보려고 하는 것, 동시에 우리가 어떻게 다른지도 정확히 인식하려는 데 있다. 각 미션을 거치면서 우리가 서로 얼마나 다른지를 느꼈고, 어떤 때는 그렇게까지 다르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됐다. 그래서 어떻게 생각하면 누가 나와 가장 다른지 잘 모르겠다.

모티브는 메가크루 미션으로 다인종의 미국 사회에 대한 메타포가 녹아 있는, 한 편의 예술 작품을 선보였다. 그렇게 수많은 인원을 데리고 복잡한 작업을 할 때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하는 편인가?
때로는 그냥 모두가 한 방에 모여 다 함께 시작한다. 그리고 10명이든 30명이든, 일단 모두에게 안무를 시켜본다. 댄서들이 짧게 줄을 서면 되는 파트를 구상할 때도 나는 일부러 아주 큰 라인을 만들어본다. 전체적인 그림을 크게 만들어놓은 상태로 시작해서 그걸 점점 줄이거나 인원을 추가해 더 키워가는 식으로 한다. 보통 나는 그 앞에 서서 ‘이 그림 어때? 이번엔 이렇게 또 해보자’ 하며 여러 시행착오를 거친다.

메가크루 영상을 디렉팅한 것뿐 아니라 직접 편집하기도 했나?
그렇다. 영상 편집 때는 프리미어 프로를 이용한다.

편집하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렸을까?
2~3일쯤 걸린 것 같다. 아이폰으로 미리 편집해둔 버전이 있었기 때문에 그 정도 시일 만에 끝낼 수 있었다. 편집해놓은 걸 기반으로 촬영했거든. 그래서 최종 영상을 편집할 때는 완벽한 테이크만 골라 맞춰 넣는 식이었다.

댄스, 배틀, 안무 창작, 디렉팅과 편집 등을 어떻게 혼자서 꼼꼼하게 다 해낼 수 있는가? 각각의 매력이 당신에게 다르게 다가오나?
각각 다른 방식으로 나를 채워준다. 나는 라이브로 하는 공연보다 촬영용 안무 만드는 일을 더 좋아한다. 내가 영화 팬이어서 그런지, 영상으로 안무를 구성하는 작업이 흥미롭고 즐겁다. 물론 댄서나 안무가 중에서도 카메라 동선이나 컷 편집까지 모두 고려하면서 구상하는 이들이 있다. 예를 들면 음악의 특정 포인트에 맞춰 컷을 자르는 식으로. 하지만 그렇게 여러 가지를 해낼 수 있는 이들은 소수다.

당신이 과거에 만든 ‘Blackbird’라는 영상이 당신 인스타그램에도 소개되어 있는데, 그 작품과 이번 메가크루 영상만 봐도 영화적인 뉘앙스가 느껴진다.
내가 영화에 애정이 깊다. 최애 영화는 <이터널 선샤인>이다. 열세 살인가 열네 살에 처음 봤는데, 영화가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걸 그 작품으로 처음 느꼈다.

그럼 춤은 어떻게 처음 접했나? 춤과 사랑에 빠진 계기가 궁금하다.
부모님이 말씀하시길, 내가 아주 어릴 적에 리듬감이 좋았다고 한다. 아기 때부터 음악 소리가 들리면 춤을 췄다고. 그래서 엄마가 나를 유아 댄스 수업에 등록시켰다. 그 이후로 춤을 멈춘 적이 없다. 아이들은 수업 시간이 지속되면 아무래도 흐트러지고 장난을 치는데, 나는 선생님을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집중했다고 들었다(웃음). 내 기억 속에 있는 가장 어린 시절부터 나는 이미 춤을 추고 있었다.

춤과 음악은 뗄 수 없는데. 어릴 적부터 음악 중에서도 힙합에 대한 애정이 컸나?
그렇다. 자라면서 가장 많이 들은 음악이 힙합과 네오 소울이다.

애정하는 힙합 아티스트를 꼽자면?
음··· 톱3를 꼽자면 모스 데프, 어 트라이브 콜드 퀘스트, 그리고 요즘에는 켄드릭 라마. 올드 스쿨과 뉴 스쿨 다 챙겨 들어야지.

당신이 디렉팅하는 댄스 영상에 사유적인 메시지가 녹아 있고, 그 결과가 충분히 예술적이라는 점에서 켄드릭 라마와 통하는 면이 있다고 느낀다.
켄드릭 라마의 작업은 내게 정말 큰 영감을 준다. 힙합에 대한 그의 접근 방식은 확실히, 문화의 본질에 충실하면서도 날것 그대로의 방식으로 전달하는 식이다. 동시에 그걸 순수 예술로 승화시키는 능력이 있다.

웹사이트를 보면 그림 실력도 상당하던데.
그림은 취미처럼 늘 내 옆에 있었다. 그러다 팬데믹 시기에 집 안에만 있으면서 뭔가에 몰입해야 했기 때문에 더 깊이 빠져들었다. 최근에 첫 이별을 겪기도 했고. 감정을 다스리기 위해 계속 바쁘게 지내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그림 실력도 꽤 늘었다. 나는 무거운 감정을 풀어내는 수단으로 그림을 그린다. 내가 만든 시각 작업에 어두운 분위기가 있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반면 춤은 내 밝은 에너지를 표현하는 수단이다.

예술적 재주가 많은데, 혹시 집안에 그런 DNA가 있나?
부모님 두 분 다 예술가다. 내 예술적인 감각은 물려받은 게 맞는 것 같다. 아빠는 화가이자 그라피티 아티스트, 그래픽 디자이너이고, MC로서 랩도 하신다. 엄마는 싱어이면서 케이크 디자이너이기도 하고. 그리고 부모님 두 분 다 춤추는 걸 좋아하신다. 확실히 그루브가 있으셔.

좋은 댄서가 되는 데 가장 필요한 건 뭘까?
정말 오랜 시간 꾸준히 노력할 수 있어야 한다.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고, 발전에 있어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 춤 실력은 하루아침에 느는 게 아니라 시간이 쌓여야 비로소 늘어난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자기 자신을 다양한 환경에 맞춰 유연하게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 즉 유연성이다. 그게 있어야 어떤 상황에서도 빛나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

춤에 영 재능이 없는 사람도 댄서답게 만든 경험이 있는가?
그렇다. 내 스튜디오에서 수업을 들은 몇몇 분들, 혹은 아주 어릴 때 내 팀에 들어온 친구 중에서도 처음엔 ‘몸치’였던 이들이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멋지게 성장했지. 그런데 재밌는 게, 누군가 타고났는지 아닌지는 어느 정도 느껴진다는 점이다. 물론 가끔 ‘이 사람은 춤꾼이 되기 어렵겠군’이라고 생각한 이가 기대 이상으로 성장하는 걸 보면서 놀랄 때도 있다. 나는 연습은 마법 같다고 말하곤 한다. 계속 반복하다 보면 결국엔 목표를 이룰 수 있다고.

자신의 몸을 자유롭게 컨트롤할 수 있다는 점에서, 댄서들이 느낄 해방감이 부럽기도 하다. 춤을 춘다는 건 어쩌면 우리 안에 있는 심리적이고 정신적인 억압과도 연결된 게 아닐까 한다.
그렇다. 춤에는 해방감이 확실히 있다. 내가 듣고 있는 음악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몸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 그건 너무 값진 경험이다.

내 몸의 컨디션과 춤추는 공간의 여러 환경 등 모든 것이 완벽하게 맞물렸을 때, 그래서 우주의 기운이 내 춤에 모여든 것처럼 환상적으로 몰입되는 순간의 상태가 어떤지 표현해줄 수 있나?
내가 음악과 완전히 연결되었을 때 느낄 수 있다. ‘다음 동작은 뭐 하지?’ 같은 생각이 전혀 들지 않고, 그냥 들리는 대로 이끌려서 몸이 자연스럽게 반응하고 흘러간다. 흐름이 끊김 없이 이어지고, 모든 움직임이 하나로 연결되는 상태랄까.

당신은 댄서나 안무가를 넘어 더 큰 꿈을 향해 가고 있는 느낌이다. 궁극적인 목표는 뭔가?
계속 연출가로 활동하고 싶다. 단편영화 연출도 하고 싶고, 언젠가는 영화 안무 감독도 해보고 싶다. 넓게 말하자면 나는 그냥 창작하는 일 자체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다. 무대 공연을 디렉팅하면서 많은 이들의 크리에이티브한 방향성을 함께 고민하는 일도 즐긴다. 한마디로 예술과 관련된 모든 분야에서 활동하는 게 좋다. 그래서 가장 큰 목표는 내게 영감을 주는 이들과 협업하면서 새로운 방식으로, 점점 더 큰 규모로 작업을 이어가는 것이다.

꼭 협업해보고 싶은 아티스트가 있나?
특정인과 협업해보고 싶다고 콕 집어 말하긴 어렵지만, 그래도 켄드릭 라마와는 해보고 싶다. 내게 깊은 울림을 주는 아티스트는 대부분 여러 분야에 걸쳐 활동하는 이들이다. 예를 들면 퍼렐,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 차일디시 감비노 같은 이들. 그렇게 다양한 분야를 넘나드는 아티스트들 말이다.

<월드 오브 스트릿 우먼 파이터>가 당신에게 남긴 것은?
댄서들이 흔히 경험하지 못하는 플랫폼을 얻게 해준 것 같다. 또 내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해주었고. 이렇게까지 많은 이들이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니, 이전보다 내 목소리가 훨씬 더 크게 들리는 듯한 느낌이랄까. 메가크루 미션으로 우리가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했다는 걸 느꼈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다.

화보 촬영을 하면서 확실히 느꼈는데, 당신은 헤어스타일이나 꾸미는 정도에 따라 이미지가 다양하게 변화하는 사람 같다. 평소에는 어떤 패션 스타일을 선호하나?
패션에 관심이 많다. 재밌는 건, 공연이나 춤 관련 일을 할 때와 평소 친구들과 놀거나 카페에 갈 때 입는 스타일이 완전히 다르다는 거다. 평소에는 세련되고 핏이 잘 맞는 느낌에, 더 얼터너티브한 스타일을 즐겨 입는다. 내가 생각해도 그 두 경우 이미지가 확실히 다르게 보일 것 같다.

방송을 보면 매회 헤어스타일이 확 바뀌던데.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려는 의도였을까?
하하. 뭐 의도적이라고 하긴 어렵고, 그냥 그렇게 바꾸는 걸 좋아한다. 어쩌면 의도적인 걸 수도 있겠네.

만약 특정 브랜드의 모델이 될 수 있다면, 어떤 브랜드가 좋은가?
늘 바라는 건데, 스투시와 작업해보고 싶다. 아주 힙합 느낌이 있는 브랜드지. 이거 인터뷰 원고에 꼭 넣어줘!

에디터 | 권은경

리에하타 Riehata

2014년 일본 도쿄에서 결성한 ‘알에이치도쿄’는 힙합을 뼈대로 하되 ‘저게 춤 동작이라고?’ 싶은 움직임을 유쾌하게 밀어붙이며 주목받은 크루다. 규칙을 의심하고, 틀을 비트는 태도. 이 자유로움으로 완성한 이들만의 코레오그래피엔 지드래곤도, 씨엘도 손을 내밀었다. 바로 이들을 이끄는 수장, 리더 리에하타는 그 이름이 곧 장르가 된 댄서다. 그녀가 만든 건 스타일이 아니라, 하나의 문법에 가깝다.

해체적인 디자인의 재킷은 꼼데가르송, 브라톱은 캘빈 클라인, 레이어드 디테일이 특징인 데님 팬츠는 준야 와타나베 맨, 슈즈는 레페토 제품.

개인적으로 알에이치도쿄의 메가크루 미션 영상이 가장 좋았다. ‘메가크루 미션답지 않아서’가 그 이유다. 물론 좋은 의미로.
리에하타 나도 그걸 의도했다. 지난 시즌에선 메가크루 미션을 심사하는 저지의 입장이었다. 반면 이번 시즌에는 챌린저로 참가한 이상, 이전에도 이후에도 볼 수 없는 새로움을 제시하고 싶었다. 결국 ‘좋게 보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우리밖에 할 수 없는 걸 보여주는 거니까. 또 우리 크루의 춤은 항상 놀이에서 시작한다. 그 유희적 감각을 꼭 담고 싶었다. 단순히 우리 영상을 보고 ‘웃기다’ 혹은 ‘도쿄 가보고 싶은데?’라는 생각이 들어도 좋다. 그 즐거운 바이브를 느끼게 하는 게 목표였다.

메가크루 미션을 기획한 배경은 무엇이었나?
도쿄, 일본, 내 나라의 아이덴티티를 보여주는 미션이었기 때문에 일단 음악부터 일본 아티스트에게 부탁하고 싶었다. 처음부터 ‘곡을 어떻게 할까’가 가장 큰 고민이었다. 그러다 전 세계적으로 밈이 된 노래 ‘Mamushi’ 속 “お金 稼ぐ(돈을 벌어)”가 떠올랐다. 일본어 가사가 세계적으로 통했다는 사실이 인상 깊어 곡의 피처링 아티스트인 치바 유우키에게 부탁했다. ‘Real Hot Tokyo’라는 테마로 가사를 써달라고 했고, 그때 나온 단어가 ‘앗파레(あっぱれ)’였다. ‘잘했다’, ‘멋지다’ 같은 뜻이다.

특히 전하고 싶었던 일본의 정서는 뭐였나?
일본은 정말 성실하고, 겸손하고, 사람 간의 규칙을 중요하게 여기는 나라다. 스스로를 억누르면서까지 조화를 중시하는 문화도 있고. 근데 그런 일본인들이 때로는 올림픽에서, 때로는 댄서로서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보면 ‘앗파레’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그런 게 진짜 일본의 매력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두 가지, 즉 조용하지만 성실한 일본인의 모습, 또 춤을 통해 세계로 나아가는 일본인의 모습을 함께 표현하고 싶었다. 내가 자라온 헤이세이 시대부터 지금의 레이와 시대까지 일본이 변해온 모습도 담고 싶었고. 그래서 전반부엔 복고적이고 노스탤지어가 있는 일본의 분위기를, 후반부엔 지금의 반짝이고 다채로운 도쿄의 색깔을 담았다.

“쟤네 딱 도쿄 같다.” 처음 알에이치도쿄가 여러 크루들 앞에 등장한 순간 모티브의 리더 말리가 한 말이다. 일본 스트리트 패션으로 중무장한 당신들의 모습에딱 들어맞는 반응이었다.
우리 크루의 패션만큼은 자부심이 있다(웃음). 미션이 없는 날에도 다 같이 옷을 맞춰 입었다. 그것도 매일매일 다른 옷으로. 이런 모습이 다른 크루에게도 영향을 준 것 같다. 그래서 촬영이 진행될수록 일종의 ‘스타일링 경쟁’ 같은 게 펼쳐지기도 했다. 춤을 출 때도 세련되게 입는 건 나의 오랜 습관 같은 거다. 십대 시절 모두가 티셔츠에 스웨트팬츠를 입고 레슨을 받을 때, 나 홀로 스키니진을 입고 치렁치렁한 목걸이를 찼다. 제자들 사이에서도 선생인 나를 따라 화려하게 옷을 입는 문화 같은 게 생겼다. 우리 스튜디오에 와보면 알 거다. 다들 모자 하나도 그냥 안 쓴다. 그 아래 스카프나 반다나를 꼭 추가한다. 재미있고 귀엽다, 내 키즈들.

알에이치도쿄 멤버들을 간단히 소개해준다면?
우선 레이나(Reina)는 가끔 보며 놀랄 때가 많다. ‘내 친동생인가?’ 싶을 정도로 나와 닮았다. 배틀에서든 프리스타일에서든 레이나의 실력은 늘 빛난다. 그런데 반전 매력이 있다. 엄청 털털하고, 엄청 덤벙댄다(웃음). 평소 깊게 고민하는 성격도 아닌 데다, 귀여운 먹보라 뭘 먹든 ‘맛있어!’라고 말하는 스타일이다. 크루 중 가장 믿음이 가는 댄서이자, 엉뚱해서 가장 귀여운 멤버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 크루엔 유독 ‘갸루’가 많은데, 그중에서도 니나(Nina)와 리코(Rico)가 단연 빠질 수 없다. 이들의 ‘갸루 마인드’는 나에겐 도통 없는 에센스다. 나의 경우 배틀러 정신이 좀 부족한데, 이들이 옆에서 불타오르는 걸 보면서 정신을 차린 적이 많다. ‘그래, 그래, 나도 질 수 없지, 열심히 해야지’ 하면서.

당신의 크루만이 가진 매력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아무래도 지금까지 진짜 ‘가족’ 같은 팀으로 함께해왔다는 점이다. 19~20세쯤부터 본격적으로 나만의 스타일대로 춤을 췄는데, 그때만 해도 이 스타일이 세계적으로 유명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시절 멤버들은 내 스타일을 일찍이 알아봐준 이들이다. 내 춤에는 독특하고 유쾌한 움직임이 많아, 사실 이를 제대로 소화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진 않다. 요즘 유행을 따라 흉내 내는 사람들은 많지만, 우리는 그 핵심을 함께 만들어온 크루라 이번 경연에서도 우리만의 색이 강하게 느껴질 거다.

당신은 스스로 어떤 리더라고 생각하나?
각 멤버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해주는 사랑을 가진 리더? 나에게 ‘자유’는 곧 ‘사랑’이다. 아무래도 리더에겐 책임이 따르기 때문에, 자기 생각을 강요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나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성격, 신념, 가치관을 존중하고 싶다. 각자 자기 방식대로 자유롭게 해보도록 두되, 그러다 너무 엉켜버릴 것 같을 땐 나서서 ‘괜찮아, 내가 다 받아줄게’라며 감싸주는 스타일이다.

당신의 인생에 있어 리더는 누구였나?
엄마. 엄마는 한마디로 ‘스트롱 우먼’이다. 조용히 지켜보다 늘 중요한 순간에 나타나 조언하는 스타일이다. 나나 엄마 모두 싱글맘이다. 엄마는 일본말도 모르는 채로 필리핀에서 일본으로 건너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자식들을 키웠다. 아마 지금 내가 하는 고생보다 그 시절 엄마가 겪은 고생이 훨씬 클 거라 생각한다. 사랑, 넓은 마음, 따뜻한 정신. 모두 엄마에게서 배운 것 같다.

이번 참가를 앞두고 당신의 두 아들과 나눈 대화도 있나?
첫째 킹은 13세, 둘째 프린스는 11세다. 둘 다 나의 베스트 프렌즈다. 평소 무슨 일이 있든 아들들과 상담한다. 출연과 관련해서도 둘과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눴을 정도다. 큰아들은 ‘이기고 지는 것만 생각하지 말고 순간순간에 집중하라’는 조언을 해줬고, 막내는 ‘경연이 꼭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 우리가 있으니 힘들 땐 같이 유튜브도 보면서 스트레스 풀자’란 말을 하더라. 둘이 완전히 다르지만 너무 중요한 조언을 해줬다. 그 말을 휴대폰 메모장에 적어두고 늘 본다. 나와 멀리 떨어져 있어 많이 외로울 텐데도 이렇게 말한다. ‘엄마가 좋아하는 게 춤이잖아. 엄마는 춤출 때 가장 멋지고, 그게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엄마의 모습이야.’

여러 K팝 뮤지션과 작업했는데, 가장 인상적이었던 사람은 누구였나?
지드래곤. 두 번 연속 나에게 안무를 맡겼다. 내 감각을 인정해줬다는 뜻이기도 해서 더욱 기억에 남는다. 특히 7년 만에 컴백을 알린 ‘Power’로 함께 협업할 수 있었는데, 그 의미 있는 작업에 수많은 댄서 중 나를 떠올려준 것 자체가 너무 놀랍고 기뻤다. 그리고 보통 안무가는 크레딧에만 오르는 경우가 많은데, 지드래곤의 경우 직접 뮤직비디오에 출연해달라고 했다. 잠깐 얼굴만 비추는 정도인 줄 알았는데, 막상 가보니 그와 나란히 서서 출연하는 장면이었다. 댄서가 그런 위치에 서는 건 정말 드문 일이다. 그때 ‘아, 이 사람은 정말 댄서를 존중하는구나’라고 느꼈다. 진짜 멋진 아티스트다.

이미 세계의 댄스 신에서 큰 활약을 보여줬다. 그런 당신이 이번 <스우파> 시즌에 출연해 또 다시 증명하고자 했던 게 있나?
춤이란 결국 추는 사람의 인간성이 드러나는 것 같다. 춤을 단순히 놀이로 보던 시절을 지나, 지금은 그 깊은 세계를 인정받고 예술이라 부르는 시대가 오지 않았나. 춤은 곧 예술이라는 것, 곧 개성이라는 것, 추는 사람의 인생과 땀, 피, 눈물이 응축된 결정체라는 것을 전 세계에 알리고 싶다. <스우파> 출연으로 이 사실을 더 전달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지금 세계의 댄스 신에서 아티스트로서 느끼는 가장 큰 고민은 무엇인가요?
사실 고민이라기보다, 요즘 한국이 정말 대단하다고 느낀다. 댄스 프로그램이 일반 가정에서도 TV로 방영될 만큼 인기가 있고, 연예인 못지 않게 댄서를 팔로우하는 팬들도 많다. 그런 점에서 한국은 진짜 세계적으로 앞서 있는 나라라고 생각한다. 그에 비하면 아직 일본이나 미국, 유럽은 댄서라는 직업의 위상이나 위치가 그렇게 높지 않은 듯하다. 그래서 더더욱 한국처럼, 댄서의 가치가 전 세계적으로 좀 더 올라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춤에 얽힌 가장 오래된 기억은 뭔가?
아홉 살에 인생 영화 <시스터 액트 2>를 만났다. 로린 힐이 연기한 주인공 ‘리타’는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끝내 무대에 올라 노래하고 춤추며 모두를 끌어안는다. 영화 후반부에 학생들이 교복을 벗고 각자가 좋아하는 옷을 입고 나와 가장 자기다운 스타일로 노래하고 춤추는 장면이 있다. 그 장면이 충격적으로 좋아 수십 번이나 돌려봤다. ‘내 이야기 아니야?’ 싶을 정도로 ‘리타’ 캐릭터에 나 자신을 많이 투영했다. 가와사키 시골마을에서 태어난 나에게 연예인이 되는 건 꿈같은 일이었는데, 이 영화 덕에 춤으로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는 마음을 처음 품게 된 듯하다.

에디터 | 전여울

왼쪽부터 | 카에아가 입은 점프슈트는 막스마라, 태슬 장식 스커트는 렉토, 힐은 에트로 제품. 허니제이가 입은 데님 셔츠는 디젤, 쇼츠는 페라가모, 부츠는 찰스앤키스 제품. 말리가 입은 슬리브리스 점프슈트는 마린 세르, 팬츠는 코스, 힐은 디젤 제품.
왼쪽부터 | 이부키가 입은 재킷은 뷔미에트 제품. 리에하타가 입은 더블브레스트 재킷은 꼼데가르송 제품.

허니제이 Honey J

2021년 <스우파> 첫 시즌에서 우승하며 이미 정상에 올랐던 리더, 허니제이가 다시 도전자로 무대에 섰다. 익숙한 무대이되 완전히 달라진 판. 그 안에서 허니제이는 첫 시즌 리더들의 리더로 다시 중심에 서야 했다. 방송 초반 그녀가 이끄는 ‘범접’은 종종 미끄러지는 일은 있어도, 시간이 흐르며 왜 이들이 범접으로 불려야 마땅한지를 보여줬다. 특히 조회수 1,500만 회를 가볍게 넘긴 메가크루 미션 영상은 이들이 꽂은 가장 깊숙한 훅. 그리고 이 정교한 한 방의 중심에는 단연 허니제이의 설계가 있었다.

바이커 재킷과 마이크로 가죽 스커트는 맥퀸, 브라톱은 막스마라 제품.

2021년 <스우파> 첫 시즌에 출연한 적이 있다. 그 경험이 이번 시즌에서 얼마나 도움이 됐다고 생각하나?
허니제이 글쎄, 매를 먼저 맞아본 입장에서 얼마나 힘들지 예상은 가능했다 정도?(웃음) 결코 쉬울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고민이 크면 컸지. <스우파> 첫 시즌이 방송될 당시엔 스트리트 댄스에 대한 대중의 이해가 지금보다 훨씬 낮았다. 아마 그래서 우리의 춤이 더 임팩트 있게 다가갔을거다. 그런데 벌써 4년이 흘렀고, 그사이 스트리트 댄스는 많은 이들에게 익숙해졌다. 그 익숙함 위에 생긴 기대치, 그리고 범접이라는 이름으로 나서는 부담이 이번 시즌엔 훨씬 컸다. 이전보다 두 배, 세배의 기량을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이 계속 따라붙었으니까.

그 부담 때문이었을까? 방송 초반까지 범접은 여러 크루에게 ‘약체’로 지목됐다.
이번 시즌엔 에너지 넘치는 크루가 유독 많이 모였다. 에너지란, 춤에서 제일 첫째로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는 요소다. 에너지가 강하면 춤이 더 크게, 더 즉각적으로 와닿는 게 사실이다. 우리 크루의 연령대나 피지컬을 고려했을 때, 그 점에서 부족했던 건 맞다. 문제는, 에너지는 춤을 구성하는 여러 요소 중 하나일뿐인데 방송 초반 우리 모두가 그 기준 하나에 흔들리고 말았다는 거다. 우리만의 장점이 에너지에 있는 게 아닌데도 말이다. 한번 줏대를 잃으니 어느새 타인의 기준에 맞춰 우리 자신을 설명하려 들게 되더라.

이번 시즌은 국가 대항전으로 치러졌다. 한국이 스트리트 댄스의 종주국은 아니지만 K팝 종주국임은 확실하다. 그렇기에 ‘월드 오브 K팝’ 미션을 준비하는 태도가 남달랐을 듯한데.
오히려 큰 고민이 없던 미션이다. 가비와 리정, 이미 K팝 안무를 만들어온 친구가 둘이나 있었으니까. 그 친구들에게 한 말이 있다. ‘의심하지 말고 너희 방식대로 해. 그게 곧 K팝이니까.’ 물론 미션 영상이 공개되고 구성이 단조롭다는 등의 대중 평가가 있었다. 그런데 개인적으론 K팝 안무는 누구나 따라 할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는 춤이기에 세계적으로 통했다 싶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영상은 ‘K팝스러운 건 뭔가?’를 성실하게 좇은 결과였다는 자부심은 있다. 물론 다른 크루가 재해석한 K팝 안무를 보는 것도 너무 흥미로웠다. 특히 에이지 스쿼드! 그들의 춤엔 에너지는 두말할 것 없고, 공감이 있고, 강렬한 이미지로 기억되는 아이코닉한 장면들이 있었다.

이번 시즌에서 당신과 가장 다른 매력을 지닌 리더 참가자가 있다면 누구일까?
솔직히 모두가 너무 달라서 한 명만 꼽을 수는 없다. 오히려 나와 정반대이기 때문에 더 많이 보고, 많이 느낄 수 있었다. 이부키에게선 강인함을, 말리에겐 지혜로움을 배웠다. 카에아는 정말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사람이었고, 리에하타는 자기 확신과 자부심이 대단한 댄서였다. 각자 다르기에 가능한 자극과 배움, 그게 이번 시즌이 내게 남긴 가장 큰 선물인 것 같다.

이번에 ‘리더들의 리더’를 맡게 됐는데, 고충은 없었나?
물론 있었다. 아마 평소 내가 하던 방식대로 했으면 스트레스 받아 벌써 쓰러졌을지도 모른다(웃음). 보통은 내가 많이 끌고 가는 스타일이었다. 홀리뱅만 해도 지금은 멤버들과 거의 가족 같은 사이가 됐지만, 예전에는 선생과 제자 같은 관계였다. 그래서 내가 다 이끌어가는 식이었다. 그런데 나도 많이 변하고 있다. 마침 홀리뱅 멤버들도 다 30대가 됐다. 그러면서 이제는 내 의견만 내세우기보다, 친구들의 생각도 많이 듣고, 이 친구들도 편하게 자기 의견을 얘기하는 그런 동료가 되어가는 중이었다. 그런 와중에 범접 리더를 맡으면서 또 다른 스타일의 리더십을 고민하게 됐다. 리더에도 여러 방식이 있지 않나. 멤버들의 얘기를 많이 듣되, 중요한 순간에는 내가 결정을 해야 하기도 하고. 그 중간 지점을 찾으려고 나름 밸런스를 맞추는 데 많이 신경 썼다.

리더인 당신이 가장 많이 의지한 크루 멤버가 있다면?
우선, 리정(Leejung)이 없었다면 이번 시즌 내내 자존감이 많이 흔들렸을 것 같다. 퍼포먼스적으론 립제이(Lip J), 리헤이(Ri.hey)에게 기댄 부분이 많았고. 인간 대 인간으로서 가장 깊이 의지한 건 아이키(Aiki)였다. 둘 다 엄마라는 공통점도 있지만, 어떤 이야기든 터놓고 말할 수 있는 사이였으니까. 그런데 사실, 누구 하나만 콕 집어 말하는 게 큰 의미는 없는 것 같다. 이 멤버들과 함께하면 힘들어도 좋다. 재미있다. 그냥 가족 같다.

춤에 얽힌 가장 오래된 기억은 뭔가?
초등학생 시절 큰집에 놀러 갔다 친척 언니들에게 H.O.T.의 ‘캔디’ 안무를 배운 적이 있다. 제대로 공식을 따라 춤을 춘 게 그때가 처음이었다. 얼마 후 학급 장기자랑 시간에 많은 친구들 앞에서 ‘캔디’를 춘 게 나의 모든 시작이었던 것 같다.

오늘의 당신이 있기까지 가장 많은 영향을 준 댄서가 있다면?
어릴 때 영향을 받은 댄서는 많다. 근데 그건 어릴 때 얘기고, 지금의 딱히 없다. 한때는 롤 모델을 찾아보려고 했는데, 오히려 내 줏대가 없어질 것 같더라. 나도 모르게 그 사람처럼 살려고 애쓸 수 있으니까. 그러면 그건 내 인생이 아니라 그 사람 인생을 따라가는 게 된다. 그래서 내 모든 경험을 바탕으로 나만의 인생을 만들어가고 있는 중이다. 어떻게든 살게 되더라, 어떻게든 가게 되고. 굳이 한 사람에게서 영향을 받는다기보다, 모두에게서 조금씩 영향을 받는 것 같다. 그리고 이 모든 걸 나만의 방식으로 해석해서 지금의 내가 된 것 같다.

댄서로서 가진 가장 큰 꿈은 뭔가?
할머니가 돼서도 단독 공연을 여는 댄서가 되는 것. 그 나이에만 표현되는 나의 춤, 나의 느낌이 있겠지? 그게 기대된다. 그리고 그때까지 내 춤을 보고 싶어 하는 관객이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다.

첫 시즌에서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었음에도 이번 시즌에 도전자로 참가했다. 이 ‘두 번째 라운드’를 통해 당신이 보여주고 싶었던 건 뭔가?
글쎄, 나는 증명의 끝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걸 멈추는 순간, 댄서로서의 나도 거기서 멈추는 거다. 계속해서 무대에 서고, 커리어를 이어가는 것, 그것만큼 댄서로서 살아 있다는 증거가 또 있을까?

<월드 오브 스트릿 우먼 파이터>가 당신에게 남긴 것은 뭔가?
국보급 메가크루 미션. 이것 하나는 분명히 남은 것 같다. 말 그대로 영혼을 갈아 넣었고, 미션을 준비하는 시간 동안 내 삶은 일시 정지였다. 정말 모든 걸 쏟아부었기 때문에, 솔직히 다시 하라고 하면 못할 것 같다. 100여 명이 하나의 꼭짓점으로 만나는 순간을 만들기 위해, 내가 평소에 추구해온 ‘무질서 속의 질서’를 끝까지 밀어붙였다. 여기에 몽환적이고 그로테스크한 무드까지, 댄서로서 내 세계가 고스란히 녹아든 결정체라 더 값지다.

에디터 | 전여울

카에아 Kaea

호주를 대표해 이 쇼에 참가한 ‘에이지 스쿼드’에는 여성 댄서들의 공연을 예술의 경지로 이끈 ‘로얄 패밀리’ 출신들이 포진해 있다. 리더인 카에아는 ‘운이 좋았다’ 같은 표현을 자주 썼다. 자신이 댄서로서 성장해온 환경이나 실력으로 쟁취한 기회에 대해 행운이라 말하고, 감사할 줄 아는 것. 인간적인 따스함이 느껴지는 그 성정은 무대 위에서 그녀가 발휘하는 파괴력과 대비되어 더 인상적이다.

점프슈트는 막스마라, 프린지 디테일 뮬은 페라가모, 모자는 Q 밀리너리 제품.

지난 시즌에 참가해 활약한 ‘잼 리퍼블릭’의 리더, 커스틴과 친한 친구라고 들었다.
카에아 뉴질랜드의 같은 댄스 스튜디오에서 자란 사이다. 재작년에 커스틴을 비롯한 크루 리더들이 <더블유> 화보 촬영한 걸 보면서 정말 멋지다고 생각했는데, 올해 내가 이 화보의 일원이 되어서 지금 너무 설렌다.

커스틴한테서 <스우파>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많이 듣지 않았나? 욕이 나올 정도로 힘들다든가…
하하. 커스틴이 부정적인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나도 커스틴도 책임감이 아주 중요한 스튜디오 출신이기 때문에 고된 환경에 익숙하다. 한국인은 정말 열심히 일한다. 그게 좋은 점이다. 우리도 그 수준을 따라잡기 위해 정신 차리고 열심히 하도록 만들어준다. 나, 커스틴, 그리고 한국인은 기본적으로 일에 대해 비슷한 기반을 가진 것 같다.

처음 출연 제안을 받았을 때는 전혀 망설임이 없었나?
망설임 없이 바로 하겠다고 했다. 나에게 아이가 셋 있다. 아이들과 오랜 시간 떨어져 지내야 한다는 점은 걱정됐지만, 그 걱정은 ‘할게요’라고 대답한 이후 해결해갔다.

아이들은 엄마가 멋진 댄서라는 걸 인지하고 있나?
딸은 안다. 정말 똑똑하고, 그 아이도 춤추는 걸 엄청나게 좋아하거든. 네 살짜리 이란성 쌍둥이 중에 여자아이가 블러섬, 남자아이가 레이너스다. 딸은 내가 춤추는 모습을 아주 좋아하는 건 물론 에이지 스쿼드가 춤추는 걸 보는 것도 즐기는데 아들은 그런 데 별로 관심이 없다(웃음). 막내 빌리는 두 살이다.

세 아이를 키우면서 쉴 새 없이 몸을 쓰는 게 중요한 일을 하며 사는데. 일과 가정, 어떻게 균형을 맞추나?
정말 힘들다. 감정적으로도 굉장히 힘들 때가 많다. 일 때문에 집을 비울 일도 잦고, 집에 돌아와도 일과 양육을 병행해야 하니까. 다행히 엄마가 도와주고 계신다. 이렇게 집을 비울 때면 엄마가 돌봐주신다.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니 나는 여러모로 행운아다.

출산 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복귀했나?
막내를 낳은 지 한 달 만에 패리스 고블과 함께한 나이키 광고로 복귀했다. 업계에서 오랜 시간 떨어져 있다가 돌아온다는 게 결코 쉽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해냈다. 범접의 모니카에게도 리스펙트를 보낸다. 그녀는 이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동안 출산하고 바로 복귀했다. 대단하지 않나? 모니카의 미션 무대를 보면서 속으로 그녀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었다. 여성들은 정말 대단하다, 특히 엄마는.

당신에게 춤의 시작이라고 할 만한 기억은 뭔가?
뉴질랜드의 작은 동네에서 자랐는데, 거기엔 댄스 스튜디오가 하나밖에 없었다. 수업 내용이 너무 궁금해서 루시베이비와 같이 스튜디오로 올라가 그냥 들어봤다. 우리 멤버이기도 한 내 동생 말이다. 그러다 패리스 고블이 동네에 워크숍을 하러 왔다. 그때부터 모든 게 시작됐다. 춤에 관해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그녀에게 배웠다.

언제부터 자신이 춤에 특별한 재능이 있다고 느꼈나?
글쎄, 나는 학교 공부에서는 별 재미를 찾지 못했다. 그저 유일하게 하고 싶고 재미를 느끼는 게 춤이었다. 패리스 고블이 우리 엄마에게 ‘카에아가 엄청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해줬을 때부터 이 길을 계속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내가 공부보다 춤을 추고 싶다고 했을 때 엄마는 ‘그래, 학교 그만둬. 내가 너를 도와줄게. 그게 너의 꿈이라면 우리 함께 이뤄보자’라고 하셨다. 엄마는 당신도 꿈을 이루지 못하셨기 때문에 우리 자매를 전폭적으로 지원해줬고, 내 커리어에 맞춰 삶 전체를 조정하셨다. 가족 전체가 평생을 이 길을 위해 걸었다고 말할 수 있다.

로얄 패밀리 출신이 많은 에이지 스쿼드는 현 로얄 패밀리가 여섯 크루 중 제일 먼저 탈락하기 전까지 그들과 내내 비교되었다. 선배와 후배가 나란히 비교될 수밖에 상황이라면, 아무래도 선배의 부담이 더 크지 않을까?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나는 출산 후 4년 정도는 전문적으로 춤을 추지 않고 쉬었다. 그사이 로얄 패밀리의 리더인 티샤는 미국에서 활동하며 레이디 가가의 무대에도 서고, 패리스 고블과 계속 작업했다. 그렇게 매일 훈련했을 거다. 4년의 공백이 나를 조금은 녹슬게 만든 게 사실이다. 하지만 결국 우리가 이겼다고 생각한다.

당신은 로얄 패밀리가 오사카 오죠 갱과 탈락 배틀을 치를 때는 또 로얄 패밀리를 응원하는 모습을 비쳤다. 어쩔 수 없는 자연스러운 마음 같다고 느꼈다.
맞다. 로얄 패밀리가 탈락 배틀 무대에 섰을 때 우리 에이지 스쿼드 멤버들 모두 감정이 복받쳐서 힘들었다. 경쟁하는 사이였지만, 그들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기에 많이 아낀다. 나는 그 친구들이 어릴 때부터 봐온 입장이다. <스우파>에는 싸우러 나왔을 뿐이다. 앞으로도 티샤의 큰 팬으로 남을 것이다.

범접의 립제이가 방송 중 한 말처럼, 에이지 스쿼드와 로얄 패밀리의 스타일에는 정말 비슷한 면이 있는 듯하다. 그건 패리스 고블의 색깔이 그만큼 강해서인가, 아니면 같은 댄스 스튜디오 출신들에게 종종 보이는 현상인가?
우리가 같은 스튜디오에서 성장해 비슷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 동일한 기반으로 춤을 배웠다. 어떻게 해야 창의적이고 효과적인 춤을 만드는지 말이다. 일에 대한 태도 역시 마찬가지다. 나는 운이 좋았다. 카이라, 루시베이비, 커스틴과 10년 가까운 시간 동안 매일매일 패리스 고블에게 직접 지도받았으니. 고블이 이제는 미국에 살기 때문에 뉴질랜드에 있는 로얄 패밀리 멤버들은 과거 우리만큼의 지도를 받지는 못할 거다.

에이지 스쿼드만의 특별한 점은 뭐라고 생각하나?
우리의 가장 큰 강점은 ‘다재다능함’이다. 우리는 거의 모든 스타일을 소화할 수 있다. 모두가 좋아할 만한 안무를 하루 만에 완성할 수 있는 팀이고. 또 날것 그대로의 에너지와 신선함, 풍부한 경험치를 가졌다. 경력과 내공이 에이지 스쿼드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에이지 스쿼드 멤버들을 간단히 소개해준다면?
루시베이비(Ruthybaby)는 댄서로서도 안무가로서도 뛰어나, 내가 진행하는 모든 프로젝트에 큰 도움을 준다. 리한나의 ‘Savage X Fenty’ 쇼에 전부 참여한 건 물론 트로이보이 등 여러 아티스트와 작업했다. 카이라(Kyra) 역시 훌륭한 안무가다. 나, 커스틴, 루시베이비와 함께 로얄 패밀리에서 성장한 사이다. 우리 집에서 살다시피 했으니 정말 같이 자란 셈이다. 칼리스(Kaleece)도 로얄 패밀리 출신이다. 퍼포먼스 능력이 뛰어나고, 우리 팀에 파워풀한 에너지를 더해준다. 알리샤(Alysha)는 현재 가장 널리 알려진 호주 댄서라고 생각한다. LA에 거주하면서 여러 뮤지션의 백업 댄서로 활동하고 있다. 알리샤에게 약간 톰보이 느낌이 있다면, 바네사(Vanessa)는 팀에 섹시함을 한 스푼 추가해준다. 역시 호주에서 아주 잘 알려진 댄서로, 광고 같은 상업적 프로젝트 경험도 많다. 다니카(Danica)는 힐 댄스뿐 아니라 발레 기본 동작을 다 잘하는데, 그런 기술적인 강점을 팀에 녹여낸다. 범접의 가비와 치른 배틀 봤나? 다니카가 정말 죽여줬다. 알리야(Aaliyah)는 아마 사람들이 우리 팀에서 가장 좋아하는 멤버일 거다. 어릴 때부터 익힌 아프로 퓨전이 특기로, 우리 팀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강력한 존재다. 배틀 경험도 있고.

<스우파>라는 서바이벌 쇼에 참여하면서 자신에 대해 새롭게 깨닫게 된 점이 있나?
내가 어릴 때만큼의 강도로 춤을 추진 않는다는 것(웃음). 내 전성기는 열여덟, 열아홉 때다. 그 시절 나는 정말 강했다. 하지만 압박 속에서도 해낼 수 있다는 것 역시 깨달았다. 참여를 앞두고 걱정이 많았는데, 막상 불편하고 긴장된 상황에 놓이니까 더 단단해지는 것 같다. <스우파> 덕분에 회복탄력성 같은 걸 배운다.

배틀 경험은 거의 없는 거로 아는데, 배틀을 해보니 어떤가?
<스우파> 초반, 로얄 패밀리의 티샤와 일대일 배틀을 치른 순간이 내 인생 첫 배틀이다. 처음이라 좀 무서웠다. 심사하는 저지마다 취향이 다르기 때문에 같은 동작을 두고 누군가는 좋아하고, 또 누군가는 별로라고 생각할 거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저지는 마이크 송이다. 그는 늘 댄서를 응원하고 긍정적인 말을 들려준다.

기억에 남는 순간이나 피드백이 있다면?
한국이 정말 멋지다고 느낀 게, 모든 나라 팀을 응원해준다는 점이다. 한국인은 범접만 응원할 줄 알았지. ‘Meet & Move’라는 야외 행사를 하며 한국 팬들을 처음 만났는데, 팬들이 가장 크게 환호한 세 팀이 바로 범접, 오사카 오죠 갱, 그리고 우리 에이지 스쿼드였다!

그동안 K팝과는 어느 정도 인연이 있었나?
나는 과거 패리스 고블이 K팝 안무 시안을 만들 때마다 안무를 테스트하는 댄서였다. 그런 작업을 수년간 하면서 K팝 안무를 어떻게 구성하는지 많이 배웠다. 행운이었지. 최근 루시베이비와 함께 처음으로 직접 K팝 안무를 맡게 되었다는 점도 행운이다. 에스파의 새로운 음악을 위해 안무 작업을 했다.

당신은 스스로 어떤 리더라고 생각하는가?
충분한 경험을 바탕으로, 팀을 우승으로 이끌 수 있는 리더. 멤버 구성도 잘했고. 그래서 내가 꽤 괜찮은 리더라고 생각한다(웃음). 나는 뉴질랜드에서 태어나 지금 호주에 살고 있다. 만약 뉴질랜드를 대표할 로얄 패밀리로서 참가해달라는 제안을 받았더라도 기쁘게 수락했을 거다. 에이지 스쿼드는 내가 호주에서 직접 만든 팀이다. 에이지 스쿼드로서 이렇게 흘러온 것과 내가 이 팀의 리더라는 사실이 자랑스럽다.

댄서로서 꼭 이루고 싶은 꿈은 뭔가?
열두 살 때부터 품은 꿈이 있다. 바로 비욘세의 백업 댄서 되기! 아직까지 비욘세와 춤을 춰본 적이 없다. 단 한 번이라도 좋으니, 그녀와 춤출 수 있기를 바란다. 그녀를 위해 춤추고 싶다.

당신의 강렬한 레드 헤어스타일에 사연이 있는 것 같더라. ‘빨강머리 카에아’가 되기까지, 어떤 계기가 있었나?
첫 탈락 배틀의 저지 중 하나로도 출연한 애슐리 에버렛이 비욘세의 오리지널 댄서 중 하나다. 내가 처음으로 가본 콘서트가 오래전 뉴질랜드에서 열린 비욘세 콘서트였다. 애슐리가 볼륨감 있고 곱슬곱슬한 빨강 헤어 상태로 무대에 올랐는데, 정말 눈에 띄게 카리스마 있고 아름다웠다. ‘나도 저런 헤어스타일을 시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 나에게 어떤 영감을 준 거다. 그 이후 약 10년 동안 이 빨강 헤어를 유지하고 있다.

<월드 오브 스트릿 우먼 파이터>가 당신에게 남긴 것은?
여러 기회의 문을 열어주었다는 것. 에스파도 그 중 하나다. 이 프로그램이 아니었다면 그런 기회를 얻을 수 있었을까? 또 한국에서 멋진 사람을 많이 만났다. MAMA 같은 일정 때문에 왔을 때는 늘 짧은 기간만 머물렀지만, 며칠 전에는 홍대에 가기도 했다. 우리를 알아본 사람들이 응원의 말을 해주셔서 정말 멋지다고 생각했다. 한국인들은 예의 바르고 친절하다. 출연진 모두와도 평생 친구가 될 것 같은 기분이다.

에디터 | 권은경

카에아가 입은 점프슈트는 막스마라, 힐은 페라가모 제품. 말리가 입은 레이어링 드레스, 팬츠는 아크네 스튜디오, 힐은 페라가모 제품. 허니제이가 입은 가죽 재킷, 미니스커트, 펌프스는 맥퀸 제품. 이부키가 입은 셔링 톱, 코르셋, 쇼츠는 규리킴 제품. 리에하타가 입은 오버사이즈 재킷은 꼼데가르송, 팬츠는 준야 와타나베 맨, 로퍼는 레페토 제품.

이부키 Ibuki

세계 댄스 신에서 ‘이부키’와 ‘왁킹 퀸’은 동의어로 취급된다. 지금처럼 박자를 정밀하게 타거나 사운드를 정확히 잡아내는, 고도의 스킬이 필요한 방향으로 왁킹이 발전한 배경에는 단연 이부키가 있었다. 이미 댄서로서 자기 증명이 끝난 이부키는 이번 <스우파> 시즌을 위해 ‘오사카 마인드’로 무장한 실력자들을 한자리에 모으기로 했다. ‘얼마나 대단한 실력을 갖췄는가’, 이는 오사카 스트리트 댄스 신에서 유일의 기준으로 통한다. 그 기준이 만든 크루, 오사카 오죠 갱은 무대로 대답한다.

러플 장식 톱, 코르셋, 리본 디테일 쇼츠는 규리킴 제품.

오사카 오죠 갱이라는 크루 이름에는 정반대의 의미가 담겼다. 아가씨(오죠)와 갱, 둘 중 당신은 어디에 더 가까운 사람인가?
이부키 딱 보면 모르나? 누가 봐도 나는 ‘오죠’, 누가 봐도 쿄카는 ‘갱’이다(웃음).

동명의 댄스 스튜디오를 기반으로 뭉친 일본의 알에이치도쿄와 달리, 오사카 오죠 갱은 이번 방송을 위해 새로 의기투합한 크루다. 어떤 기준으로 멤버를 구성했나?
만약 내 스타일대로 밀어붙였다면 제자들로 크루를 구성했을 거다. 그런데 경연을 위해선 정말 강한 멤버를 모아야 했다. 이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게 쿄카다. 10년지기 친구이기도 하지만, 오사카 댄스 신에서 쿄카를 대체할 존재는 없다. 그래서 쿄카와 함께하는 건 당연한 선택이었다. 그 뒤로 크루 결성을 위해 정말 30명 넘게 전화를 돌린 것 같다. 일종의 면접 같은 과정이었는데, 단순히 일정이 맞는다고 멤버로 발탁하진 않았다. ‘오죠 갱 정신’이 보이는 사람이어야 합격 목걸이를 줄 수 있었다(웃음).

크루 멤버들을 간단히 소개해준다면?
우선 쿄카(Kyoka)는 이번 시즌 참가자 중 실력으로 단연 톱 3 안에 든다고 생각한다. 오사카 댄스 신에선 실력이 전부다. 예쁘냐, 트렌디하냐 같은 기준은 중요하지 않다. 얼마나 대단한 실력을 갖췄고, 여태 뭘 해왔는지가 가장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쿄카는 오사카를 대표하는 최고의 댄서다. 하나(Hana)는 쿄카보다도 먼저 합류가 결정된 멤버였다. 정해진 안무를 100%, 200% 소화하는 댄서이자, 트와이스 모모의 언니이기도 하다. 사실 우리처럼 무명인 팀에게 하나만큼 실질적 힘이 되어준 멤버는 없을 거다. 쥰나(Junna)와 우와(Uwa)는 아직 어리지만 잠재력이 정말 크다. 그런 댄서들이 더 빛날 수 있는 자리가 필요하다고 늘 생각하던 찰나에 둘과 연락이 닿았다. 실제로 얘기해보니 성격도 너무 좋고 귀여운 친구들이었다.

오사카 오죠 갱만이 가진 매력은 무엇일까?
우리는 각자 성격이 너무 다 달라서, 함께 있으면 그 자체로 이미 재미있다. 그리고 아마 이번 시즌 참가 크루들 중에서 가장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 팀이 아닐까 싶다. ‘나 싫어해? 그럼 싫어해.’ 딱 이 마인드다. 우리가 하고 싶은 것, 말하고 싶은 것, 스타일을 다른 사람 눈치를 보며 바꾸는 일은 없다. 그건 오사카 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이번 시즌에서 당신과 가장 다른 매력을 지닌 리더 참가자가 있다면 누구일까?
리에하타. 모든 게 나와 정반대다(웃음). 나는 언제나 ‘공격! 돌진!’ 모드인데, 리에하타는 어떤 상황에서도 평화와 사랑을 말하는 사람이다. 그런 점이 정말 멋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그녀만의 독보적 스타일과 안무 제작 능력에 의문을 가질 사람이 있을까? 사실 이런 존재감을 증명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댄스 배틀에서는 우승 횟수로 실력과 존재를 증명할 수 있지만, 안무가는 그런 걸 수치화해서 보여줄 수 없다. 그런데 리에하타는 그걸 해낸 사람이다. 넘을 수 없는 벽 같은 존재인 셈이다. 나도 그녀를 보면서 ‘아, 나는 아직 저 경지에 닿지 못했구나’ 하고 많이 배웠다.

댄서들 사이 이부키는 자기 증명이 끝난 세계적 댄서로 통한다. 그런 당신이 <스우파> 참가를 통해 증명하고자 했던 건 뭔가?
솔직히 말해 지금은 누구든 배틀에 나가 우승자가 될 수 있다. 요즘은 워낙 대회가 많으니까. 하지만 누군가 ‘왁킹 하면 누가 떠오르나요?’라고 물으면, 분명 내 이름이 나올 거라고 생각한다. 전 세계의 워크숍이나 대회를 통해 다양한 댄서를 만났는데, 그중 절반 이상이 ‘당신 때문에 왁킹을 시작했어요’라고 말해줬다. 그게 내 인생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일 중 하나다. 물론 처음엔 우승만 꿈꾸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트로피가 100개인지 200개인지, 그 숫자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됐다. 그보다는 이제 ‘이 사람처럼 되고 싶다’는 말을 듣고 싶다. 누군가의 롤모델이 되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

지금 세계 댄스 신에서 아티스트로서 갖는 고민은 어떤 건가?
댄서도 슈퍼스타가 될 수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다. 올림픽 스타, 아이돌, 배우들처럼. 그들 모두 엄청난 노력을 통해 하늘의 별처럼 빛나고 있지 않나. 나는 댄서들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리 역시 그 못지않게 많은 노력을 쏟고 있다. 그 노력이 언젠가 더 많은 사람들의 눈에 띄고, 자연스럽게 인정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 이 프로그램이 그런 변화를 조금이라도 앞당겨준다면 더 바랄 게 없고.

7세의 어린 나이에 춤을 추기 시작했다 들었다.
엄마가 굉장히 어린 나이에 나를 낳았다. 엄마의 꿈은 댄서였는데, 내가 생기면서 그 꿈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딸인 내가 대신 자신의 꿈을 이뤘으면 하는 마음에, 자연스럽게 어린 나이에 댄스 스쿨에 다니게 됐다. 근데 처음엔 하기 싫었다. 엄마한테 ‘나 춤 안 좋아해’라고 말했을 정도였다. 그러다 열 살쯤 처음 댄스 배틀에 나가게 됐는데, 이상하게 너무 지기 싫은 거다. 그렇게 연습하다 보니 배틀에서 우승을 기록하기도 했고, 그때 처음으로 ‘노력하면 이뤄지는구나’를 배웠다. 엄마 역시 늘 ‘춤을 배울 거면 그냥 즐겁게만 하지 말고, 공부하듯이 진지하게 해라. 아니면 그냥 공부해라’고 말씀하셨다.

처음부터 왁킹을 췄나?
처음엔 프리스타일 배틀에 나갔다. 일본 특유의 분위기인데, 모든 장르를 배워야 한다는 문화가 있다. 그러다 중학생 때 미국에 갔는데, 거기서 왁킹을 처음 눈앞에서 봤다. 그 순간 ‘이거다’ 싶었다. 절대 이 춤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왁킹의 매력은 내 캐릭터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춤이라는 점이다. 여러 댄스 스타일이 있지만, 왁킹이야말로 자기 성격이나 매력을 춤으로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장르라고 생각한다. 이번 시즌에서도 립제이와 내가 보여준 아이콘 배틀이 그 예다. 내 춤은 극히 ‘불’에 가깝고, 립제이는 상냥하고 우아한 ‘물’ 같은 왁킹을 춘다. 왁킹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낼 수 있는 춤이다.

이부키의 왁킹은 어떻게 다른가?
어릴 때 프리스타일을 포함해서 여러 장르의 춤을 배운 덕에, 오리지널 왁킹 스타일에 다양한 변주를 더하는 편이다. 지금처럼 비트를 정확하게 따르고, 음악의 소리를 세밀하게 잡아내는 스타일로 왁킹이 진화한 배경에는 단연 내가 있다고 생각한다. 또 원래 왁킹은 감정을 드러내는 춤이다. 자신의 감정이나 곡의 색깔을 표현하는 데에 집중하는, 굉장히 에모셔널한 장르였다. 그런데 나는 그걸 배틀이나 경연에서 싸울 수 있는 춤으로 만들었다. 그런 식의 왁킹, 그게 내 스타일이다.

이부키가 궁극적으로 꿈꾸는 목표는 뭔가?
‘이부키 빌딩’을 짓는 거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만 채운 공간. 내가 좋아하는 네일 아트, 패션, 그리고 당연히 댄스 스튜디오까지 그 모든 게 한 건물 안에 들어와 있는 형태를 상상한다. 댄스 스튜디오는 그냥 취미로 다니는 곳이 아니라 기본부터 철저히 배우고, 진짜로 연습하고, 배틀도 준비하는 사람이 모이는 공간이어야 한다. 그리고 가장 위층에는, 당연히 사장실이 있을 거고(웃음). 그 빌딩 안에서만큼은 모두가 활기를 얻었으면 한다. 위치는 당연히 오사카역 근처, 가장 높은 건물에 입주할 거다.

<월드 오브 스트릿 우먼 파이터>가 당신에게 남긴 것은 뭔가?
크루의 소중함을 알게 됐다. 지금까지 배틀도, 방송도 해왔지만 늘 ‘이부키’로서 혼자 도전해왔다. 그래서 이번에 ‘과연 내가 크루를 잘 컨트롤할 수 있을까? 크루의 사랑이란 걸 알 수 있을까?’가 나에게 있어 가장 큰 과제였던 것 같다. 솔직히 이전까진 잘 몰랐다. 그런데 지금은 멤버들 얼굴만 봐도 확실히 느낀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벽을 함께 넘었는지, 그걸 생각하면 진짜 마음이 밝아진다. 오히려 내가 배운 거다. <스우파>가 우리에게 많은 어려움과 도전을 던졌고, 우리는 그걸 다시 마주해서 또 도전했다. 그렇게 서로 주고받는 것, 그게 캐치볼 같다고 해야 하나. 그게 너무 새롭다. 춤춘 지 이제 20년이 됐는데, 아직도 매일 배우고 있다. 요즘은 정말 초보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다.

에디터 | 전여울

왼쪽부터 | 카에아가 입은 점프슈트는 막스마라, 프린지 스커트는 렉토, 힐은 에트로 제품. 이부키가 입은 버클 디테일 재킷은 뷔미에트, 러플 장식 스커트는 꼼데가르송, 힐은 크리스찬 루부탱 제품. 리에하타가 입은 재킷, 팬츠는 꼼데가르송, 힐은 페라가모 제품. 말리가 입은 시스루 톱은 마린 세르, 팬츠는 코스, 힐은 디젤 제품. 허니제이가 입은 셔츠는 디젤, 쇼츠는 페라가모, 힐은 찰스앤키스 제품.
헤어
광효, 홍현승
메이크업
오가영, 안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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