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티모시 샬라메와 영화감독 드니 빌뇌브가 <더블유>를 위해 특별한 화보 촬영에 나섰다.
마치 꿈속의 한 장면과도 같은 몽환적인 분위기로 가득했던 촬영 현장, 그런데 이 초현실주의적 이미지를 위한 마지막 퍼즐로 1984년 영화 <듄>의 주인공 카일 맥라클란이 등장한 이유는 무엇일까?



햇살 가득한 LA의 어느 날 오후,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바 마르몽(Marmont)으로 뛰어 들어온 티모시 샬라메(Timothee Chalamet)가 누군가와 반가운 포옹을 나눈다. 상대는 아카데미 수상작 <듄>과 <듄: 파트2>를 연출한 영화감독 드니 빌뇌브(Denis Villeneuve)다. 두 사람은 인사를 주고받더니 즉시 한쪽 구석으로 이동해 이날 저녁에 있을 일에 대해 프랑스어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더블유>의 스페셜 화보 프로젝트 ‘디렉터스 이슈’를 위해 두 사람은 각각 플레이어와 감독의 역할을, <듄> 시리즈 두 편 모두에 참여한 촬영 감독 그레이그 프레이저(Greig Fraser)는 사진 촬영을 담당할 예정이었다. “티모시와 프랑스어로 대화할 때면 아무도 들을 수 없는 작은 비눗방울 안에 들어가는 느낌이에요.“ 대서사에 가까운 베스트셀러 소설을 압축적이면서도 매혹적인 영화 세계로 풀어낸 빌뇌브에게서 차분하면서도 단호한 태도가 느껴졌다. 퀘벡 출신인 빌뇌브는 프랑스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며, 사랑스러운 강아지처럼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빛내면서도 압도적인 열정과 재능, 카리스마를 타고난 샬라메는 어릴 때부터 프랑스어를 구사해왔다. “현장에 400명이 되는 스태프가 있다 해도 저희만의 비눗방울 안에서는 캐릭터나 인생, 그 순간에 생각나는 모든 사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어요. 언어로 이어진 특별한 관계라고 할 수 있죠.” 빌뇌브가 말했다. 빌뇌브가 구상한 이번 화보의 시나리오에는 한 가지 서프라이즈가 존재한다. 바로, 바 웨이터 역할을 맡은 샬라메가 서빙하러 다가간 손님이 자신의 영적 쌍둥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젊은 바텐더가 또 다른 자신에게 술을 건네는 이미지가 마음에 들어요.” 빌뇌브가 설명했다. ‘영혼의 도플갱어’라는 키워드를 떠올린 과정에는 각별한 의미가 담겨있다. 처음 빌뇌브는 그 신비로운 손님 역할로 1984년 버전의 <듄>을 연출한 데이비드 린치(David Lynch)가 맡을 것을 원했지만, 과거 린치는 여러 차례에 걸쳐 해당 영화가 자신의 커리어 전반에서 가장 실망스러운 경험이라고 언급했다. 그 당시 자신에게 최종 편집 권한이 없었고, 완성된 영화가 원했던 것과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린치는 빌뇌브가 직접 만나볼 기회도 갖기 전인 1월 15일에 세상을 떠났다. “린치는 진정한 거장이었어요. 이번 촬영이 그가 남긴 유산에 부치는 한 통의 러브레터가 되기를 바라요.” 빌뇌브가 말했다. 린치에게 경의를 표하고 동명의 영화를 통해 공유된 예술적 인연을 기념하기 위해, 빌뇌브는 린치가 가장 아끼던 배우이자 과거 <듄>에서 주연을 맡은 카일 맥라클란(Kyle MacLachlan)을 샬라메의 도플갱어로 캐스팅했다. 샬라메와 맥라클란은 각각의 버전에서 혼란스러운 행성의 미래 통치자, 폴 아트레이데스(Paul Atreides) 역을 연기했다. “<듄>은 본질적으로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면서도 자신이 어둠의 혈통이라는 사실을 깨달아가는 한 소년의 내밀한 이야기예요.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면서 처음으로 사랑에 빠지고, 권력, 시간, 가족, 사랑이라는 감정들과 맞서게 되죠. 결국 어떤 쪽이 이기게 될까요? 어둠일까요, 빛일까요?” 빌뇌브가 말했다.

2018년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홍보 활동을 하던 중, 티모시는 빌뇌브가 <듄>을 연출할 예정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드니와는 BAFTA(영국 아카데미 영화상) 애프터 파티에서 처음 만났어요. 그에게 저를 어필하려고 노력한 기억이 나네요. 당시 할리우드의 젊은 배우라면 누구나 <듄>에 대한 소식을 알고 있었으니까요.” 샬라메의 말에 빌뇌브가 놀란 눈으로 말했다. “전 처음부터 폴 역할로 티모시만 생각하고 있었어요. 이후 칸 영화제에서 다시 만나 4시간 동안 캐릭터에 대해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눴죠. 그때 확실하게 느꼈어요. 그가 폴을 살아 있는 인물로 만들 수 있는 모든 자질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요. 그 빛나는 에너지는 밥 딜런을 매력적으로 연기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고요.”
화보 촬영을 앞두고 샬라메는 영화 <컴플리트 언노운>에서 젊은 밥 딜런 역을 통해 보여준 섬세한 연기력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심지어 샬라메는 <듄: 파트2>를 촬영하고 있던 2022년에도 밥 딜런의 음악, 목소리, 몸짓, 옷차림 등을 연구하며 새로운 캐릭터가 되기 위해 필요한 감정을 스펀지처럼 흡수하고 있었다. “아라키스에서 기타 공부를 했어요(웃음).“ 아라키스는 <듄> 속 가상의 행성이다. “처음엔 준비할 시간이 전혀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팬데믹으로 인한 격리 조치, 배우들과 작가들의 파업으로 제작이 지연됐죠. 이 영화가 저주받은 건 아닐까 생각했을 정도예요. 그렇게 영화가 완성되기까지 자그마치 5년이란 시간이 걸렸지만, 오히려 준비 시간이 충분히 생겨 다행이었다는 생각도 들어요. 미국인으로서, 밥 딜런처럼 미국을 대표하는 인물을 연기한다는 건 사실 엄청난 부담이에요. 사람들의 기대가 크니까요. 그 기대에 제대로 부응하고 싶었어요.” 샬라메가 말했다.
샬라메는 폴 아트레이데스와 밥 딜런 사이에 공통점이 있다고 말했다. “원작 소설 <듄>을 쓴 프랭크 허버트와 딜런은 둘 다 60년대에 유년 시절을 보냈어요. 둘 다 포크 문화 속에서 자랐고, 허버트 역시 출판사 23곳에서 출판을 거절당하며 좌절을 경험했죠. 두 사람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폴은 원치 않는 길에 놓인 인물인 반면, 딜런은 쉽지 않은 길일지라도 걸어가기로 작심한 인물이라는 사실이에요. 참, 또 딜런의 삶에 거대한 모래벌레는 나오지 않죠.” 샬라메가 웃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빌뇌브를 끌어안았다. “드니랑 사막이 아닌 곳에서 만나는 건 정말 드문 일이에요. 거의 3~4년을 함께 아라키스에 있었거든요!” 그때 촬영 감독인 프레이저가 첫 번째 촬영 준비가 끝났음을 알리며 모래 없는 재회에 일시 멈춤을 선언했다. 헐렁한 진과 티셔츠를 벗고 매끄러운 화이트 재킷과 팬츠 차림으로 변신한 샬라메가 바 뒤편으로 걸어 들어갔다. 샬라메는 시퀸 장식이 달린 슬림한 드레스와 턱시도를 입은 단역 배우들 사이에 자리를 잡았고, 프레이저는 연기를 가득 채워 비밀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샬라메 뒤편에는 거울이, 앞에는 반짝이는 은빛 칵테일 셰이커들이 놓여 있어 바 전체가 빛나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빌뇌브가 ‘액션!’을 외치자 샬라메는 칵테일을 만들기 시작했고, 술을 따르는 척하거나 직접 입으로 마시는 듯한 연기를 시작했다. 프레이저는 그 순간들을 촬영장 전체가 담긴 풀샷으로, 샬라메의 얼굴을 클로즈업한 인물 샷으로 전부 포착했다.


약 10분간 바텐딩을 하던 샬라메에게서 점점 웨이터가 아닌 주연 배우의 분위기가 풍기기 시작했다. 그가 스카프를 어깨 뒤로 넘기자, 이를 전환점 삼아 다음 장면을 촬영하는 순서로 넘어갔다. 맥라클란과 조우할 시간이 다가온 것이다. 실제로 2022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샬라메와 만난 적이 있는 맥라클란이 샬라메에게 따뜻한 인사를 건넸다. “제가 기억하기로는 맥라클란이 티모시에게 먼저 다가와 자신을 소개했고, <듄>에서 보여준 연기를 칭찬해주었어요.” 빌뇌브가 말했다. 톰 포드 턱시도를 차려입은 맥라클란은 기묘할 정도로 데이비드 린치와 닮았다. 특히 머리를 위로 쓸어 올린 모습은 린치의 시그너처 헤어스타일을 연상시켰다.

촬영 준비가 진행되는 동안 빌뇌브에게 다가가 <듄>을 영화로 각색해야 한다는 생각에 겁이 나거나 부담스럽진 않았는지 물었다. 어쨌든 린치는 성공하지 못한 일이니, 엄청난 도전으로 다가오지 않았을까. “제가 잘 해낼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어요. 데이비드 린치 같은 거장이 어려움을 겪었다는 사실을 마음에 담고 있지는 않았어요. <듄>은 제게 아주 큰 의미를 가진 작품이거든요. 13세 때 처음 그 책을 읽었어요. 10대의 오만함을 여전히 간직한 채이기도 했고요.” 자기 과시와는 거리가 먼 빌뇌브가 웃으며 설명을 이어갔다. “그때의 저는 세상을 집어삼키고 싶었고, 그 에너지에 딱 맞는 책이 바로 <듄>이었어요. 거창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저를 부르는 책의 강렬하고 커다란 목소리에 두려움마저 삼켜진 것은 아닐까 싶더군요.”
메인 바 옆 작은 거울 방 안으로 들어간 샬라메는 빌뇌브의 열정을 온전히 흡수한 듯 보였다. 인사를 나눈 샬라메와 맥라클란은 나란히 서서 마치 셀피를 찍듯 거울에 비친 자신들의 모습을 카메라로 담았다. 샬라메는 유령처럼 맥라클란의 어깨 뒤로 살짝 떨어져 있다가 천천히 그의 오른쪽으로 이동하며 두 사람의 머리가 거의 닿을 정도로 거리를 좁혔다.

촬영이 끝나고 작별 인사를 할 때가 다가오자 맥라클란은 이번 촬영에 함께하게 되어 얼마나 기뻤는지 소감을 전했고, 샬라메는 그를 꼭 안았다. 두 사람이 함께한 작은 방을 나와 다음 장소로 향하는 샬라메의 표정이 완벽하게 달라졌다. 맥라클란과 있을 때 완전히 <듄>의 세계에 머물렀던 그가, 그곳을 나온 즉시 밥 딜런의 얼굴을 짓기 시작한 것이다. 바 마르몽에서 흘러나온 딜런의 음악 때문일지도 모른다. 샬라메가 바텐더 의상을 벗고, 셀린느의 블랙 턱시도로 갈아입은 뒤 붉은 조명으로 가득 찬 복도로 걸어가 벽에 기대섰다.
촬영에 앞서 프레이저는 밥 딜런의 삶을 향한 샬라메의 매혹적인 여정에 자신도 포함되었다는 사실을 들려주었다. “밥의 뮤직비디오 몇 편을 찍은 적이 있어요. 그중 하나가 ‘Must Be Santa’라는 노래였는데, 어느 날 티모시가 전화로 ‘꼭 해보고 싶은 게 있어요!’라고 하더라고요. 크리스마스를 맞아 그 노래와 제가 찍은 비디오를 자신만의 버전으로 재해석한 거예요. 배우가 딜런처럼 거대한 문화적 인물에 대해 자신만의 깃발을 꽂을 기회를 갖는 일은 정말 드물죠. 그런데 티모시는 그걸 자연스럽게 해내더라고요.”

샬라메가 붉은빛이 가득한 복도에서 천천히 춤을 추기 시작했다. 몸을 틀고, 구부렸다가 다시 돌아서는 그의 몸짓은 카메라가 있다는 사실조차 잊은 듯했다. 15분 정도 지나자 샬라메가 비디오 모니터를 확인하며 전체적인 느낌을 확인했다. “좀 바꿔볼게요.” 옷을 가리키며 샬라메가 말했다. “티모시는 패션에 정말 익숙해요. 저는 패션에 대해 잘 모르지만, 티모시만의 패션 세계에 어울리는 걸 좋아해요. 옷에 대한 자기만의 뚜렷한 의견이 있거든요. 실제로 이 바텐더 캐릭터도 계속해서 변화하고 있고요.” 빌뇌브가 말했다.
회색 프라다 슈트와 가죽 재킷을 걸친 샬라메가 다음 장면을 위해 세트 안으로 들어섰다. 이번 세트는 욕실에 마련되었지만, 빌뇌브와 프레이저는 그 공간을 마치 기차역처럼 보이도록 연출했다. 단역 배우들이 그 공간을 스치듯 오갔고, 으스스하면서도 몽환적인 분위기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샬라메가 연기하는 인물이 마치 꿈속을 살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다시 사막에 돌아온 기분이네요.” 샬라메가 농담조로 말했다. “사막에서는 자신의 심장 소리까지 들리죠.” 빌뇌브가 화답했다. “<듄>을 찍을 때 그 공간이 가진 힘까지 담아내는 것이 제 목표였어요. 사막은 비밀스러운 곳이에요. 그 안에는 생명이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죠. 매우 영적인 장소예요.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 저는 티모시가 사막에서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봤어요.” 빌뇌브의 말이다.
욕실 겸 기차역인 촬영 세트에서 샬라메가 마치 다른 객차 안을 들여다보는 듯한 모습을 표현했다. 빌뇌브는 프레이저에게 포커스를 좁혀달라고 요청한 뒤, 조용히 프랑스어로 샬라메에게 무언가를 말했다. 샬라메가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보자, 한순간에 완벽한 영화배우로 변신한 인물이 렌즈 속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고는 빌뇌브가 말했다. “바로 이거예요. 제가 바라던 장면입니다.”
- 디렉터
- Denis Villeneuve
- 포토그래퍼
- Greig Fraser
- 스타일리스트
- Matthew Henson
- 글
- Lynn Hirschbe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