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다카시의 대규모 개인전 in 교토

전여울

일본 출신의 세계적 아티스트 무라카미 다카시가 교토시 교세라 미술관에서 대규모 개인전 <무라카미 다카시 모노노케 교토>를 9월 1일까지 개최한다

일본 출신의 세계적 아티스트 무라카미 다카시가 교토시 교세라 미술관에서 대규모 개인전 <무라카미 다카시 모노노케 교토>를 9월 1일까지 개최한다. 지난해 부산에서 ‘좀비’, 샌프란시스코에서 ‘몬스터’에 주목했던 그가 이번엔 일본 민속신앙에서 사람을 병들게 하거나 죽음에 이르게 한다는 귀신인 ‘모노노케’에 주목했다. 총 17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이는 야심 찬 규모의 개인전, 오프닝이 한창이던 현장에서 무라카미 다카시를 만났다.

2015~2016년 모리미술관 <오백나한도전> 이후 8년 만에 일본에서 대규모 개인전을 갖는다. 교토에서 진행하는 첫 전시라고도 들었다. 소감이 어떤가?
우선 교토의 장소성이 흥미롭다. 오랜 세월 고도(古都)로 통해온 만큼 온고지신의 정신을 배우기에 가장 완벽한 장소라는 생각이 든다. 이번 전시가 열리는 교세라 미술관 바로 근처엔 헤이안 신궁이 자리한다. 1895년 교토 천도 1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교토에서 대형 박람회가 열렸는데, 이때 주요 행사장으로 쓰기 위해 지어진 신사다. 당시 서양에 대한 개국 의지를 담아 신사 입구에 거대한 ‘도리이(기둥 문)’를 짓기도 했다. 예나 지금이나 헤이안 신궁은 유명 관광지로 통한다. 지난 20년 동안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왔는데, 그 대답 중 하나가 ‘예술은 일종의 관광자원’이라는 것이었다. 내가 모네의 ‘수련’ 연작을 보기 위해 몇 번이고 오랑주리 미술관을 방문했듯, 예술에는 사람을 그 장소로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이전까지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예술을 해왔으나, 지금 내가 하고자 하는 예술은 관광자원으로서의 예술이다. 이번 전시를 계기로 관객도 그 뜻에 공감해주면 좋을 것 같다.

일본 고전이나 민간신앙에서 자주 등장하는 ‘모노노케’를 차용해 전시명을 지었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 강조하려는 것은 무엇인가?
전시에 앞서 큐레이터인 다카하시 신야에게 교토의 역사에 얽힌 이야기를 들었다. 교토는 오랜 시간 천황이 머문 곳이자 쇼군이 천황에 맞서 자신들의 권위를 세우기도 하는 등 숱한 권력 다툼과 대소동이 펼쳐진 곳이다. 또 교토에 입성하는 것을 상락(上洛)이라 부른 데서 알 수 있듯 오랜 세월 일본의 중심지였다. 이와 관련해 자세히 들었음에도 내 안에서 완벽히 소화해내기는 쉽지 않았던 것 같다. 영화로 치면 다카하시 씨는 각본가, 나는 감독이나 배우 정도에 해당할 거다. 그래서 내 나름의 방식으로 교토 역사 속 내밀히 감춰진 복잡하고 어두운 면을 모노노케를 경유해 표현하고자 했다. 교토가 가진 어두운 면을 나타내고자 했는데, 완성하고 보니 내 캐릭터가 워낙 강해 너무 밝아져버린 것은 아닌가 싶지만(웃음).

컬렉터블 트레이딩 카드.
후지산 형상이 눈에 띄는 작품 ‘Four Seasons FUJIYAMA’ (2023-2024).

에도시대 화가의 작품을 참조한 작품을 여럿 선보인다. 특히 이들 작품에 주목한 이유는 무엇이었나?
오랫동안 미술 사학자 쓰지 노부오가 집필한 <기상의 계보>란 책에서 영향을 받아왔다. 미술사적 유파에 얽매이지 않고 노부오 자신만의 시각으로 에도시대 화가를 소개한 책이다. 별난 생각이라는 뜻의 ‘기상(奇想)’이란 단어에서 알 수 있듯, 일본 예술의 전반을 차지하고 있는 장식적 회화 중에서도 기괴하고 환상적인, 독보적 개성과 특징이 뿜어져 눈에 띌 수밖에 없는 작가를 열전 형식으로 다룬 책이다. 이와사 마타베, 소가 쇼하쿠, 하쿠인 에가쿠는 모두 <기상의 계보>에 소개된 작가들인데 이처럼 ‘숨길 수 없는 특징’을 가진 이들이 나의 예술 세계에 유난히 자주 문을 두드린 것 같다. 시간이 흐르며 <기상의 계보>가 말하고자 했던 무언가가 점점 내 안에서 커지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의 작품을 재해석한 작품을 이번 전시에 소개하고자 했다.

이번 전시에서 관객이 특히 주목해 관람했으면 하는 작품이 있나?
우선 미술관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13m 길이의 대형 회화 신작 ‘Rakuch -Rakugai-zu By bu: Iwasa Matabei RIP’(2023-2024)를 꼭 권하고 싶다. 이와사 마타베의 걸작 ‘낙중낙외도 병풍’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인데, 작업을 거듭하면서 만화 <아키라>를 그린 오토모 가츠히로가 이와사 마타베와 같은 화풍이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어서 무척 감동스러웠다. 또 NFT 프로젝트로 선보인 바 있는 트레이딩 카드를 회화로 옮겨 꾸린 5전시실도 주목했으면 한다. 현시점에서 카이카이 키키 공방이 낼 수 있는 최고 기술을 집약한 작품들이라 봐도 무방하다.

이와사 마타베의 작품을 재해석한 ‘Rakuchu-Rakugai-zu Byobu: Iwasa Matabei RIP’(2023-2024).

1994년 당신의 작업 세계에 첫 등장한 캐릭터 ‘Dob’도 이번 전시장에서 만나볼 수 있다. 그간 ‘Dob’는 시대를 거치며 여러 맥락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해왔다. 2024년형 ‘Dob’는 어떠한 진화를 거쳐 탄생했는지 궁금하다.
이번 ‘Dob’ 신작에는 숫자가 잔뜩 적혀 있다. 4년 전 갤러리로부터 의뢰받은 작품인데, 처음에는 ‘Dob’에 후지산과 일본의 신 등을 그려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그런데 점점 리퀘스트가 바뀌었고 나 또한 긴 시간 작업을 미루고 있던 와중에, 이번 전시에서는 어떻게 해서든 꼭 그림을 걸어달라고 갤러리에서 요청해왔다. 급히 작업에 돌입했고 아직은 공개하기에 이른 밑그림 단계의 작품을 내놓게 돼서 1과 자신의 수 이외에 나눌 수 없는 숫자인 ‘소수’를 실크스크린 기법으로 ‘Dob’ 위에 표현해봤다. 생각보다 마음에 들게 완성된 것 같기도 하다. 지금 당신이 통과하고 있는 ‘챕터’는 무엇이라 생각하나? 일본에는 먹고 마시는 것을 끊고 살아 있는 채로 미라가 되는 ‘즉신불’이라는 인신 공양 방법이 있다. 나는 지금 그 과정에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비록 점점 살은 찌고 있지만(웃음).

맨 콘텐츠 디렉터
최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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