톱질하는 90세 노장, 예술 인생 60년 만에 베네치아로!

전종현

요즘 떡상 중인 현역 노장, 김윤신이 베네치아 비엔날레도 접수했습니다

오는 4월 20일, 세계 최고의 미술 행사인 베네치아 비엔날레 국제미술전(이하 베네치아 비엔날레)이 열립니다. 올해 예술감독을 맡은 브라질의 아드리아누 페드로자는 1895년 비엔날레 태동 이래 최초의 중남미 출신이에요. 평소 유럽에서 이방인 취급을 받았던 경험을 떠올리며 올해 주제로 ‘모든 곳에 이방인’를 제시했는데요. 외국인, 이민자. 실향민, 망명자, 난민 등 전통적인 이방인 예술가에게 주목하면서 그 의미를 확장해 퀴어 예술가, 독학 예술가, 민속 및 토착 예술가까지 조명할 계획이래요. 이와 관련해 지난 1월 31일 비엔날레 조직위원회는 드디어 본 전시 초청 명단을 발표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김윤신, 이강승, 故 이쾌대, 故 장우성, 총 네 명이 초대받았습니다. 이중 우리가 주목할 작가는 김윤신입니다. ‘핵인싸’에서 이방인의 삶을 선택한 인물이거든요. 1935년 북한 원산에서 태어난 그는 초등학교 4학년 때 광복을 맞이했어요. 중국에서 독립운동하던 오빠와 함께 철원을 거쳐 서울로 함께 내려왔는데 6·25 전쟁이 터지고 맙니다. 부산으로 피난을 갔다가 휴전 후 홍익대학교에서 조소를 전공하고 여성으로서는 이례적으로 홀로 유학길을 떠나 파리 에콜 데 보자르에서 공부해요. 귀국 후에는 한국여류조각가회를 발족하고 상명대학교 교수로 재임하며 미술계의 핵인싸로 활동합니다.

김윤신 작가.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리만머핀

그는 수많은 재료 중 나무를 특히 사랑했는데요. 한국에서 원목을 구하는 게 너무 힘들어서 재건축의 부산물인 나무 기둥과 서까래를 얻어 쓸 정도였어요. 1984년 조카가 사는 아르헨티나로 여행을 떠난 그는 마음속으로 외칩니다. ‘대박!’ 목질이 단단한 아름지기 나무가 지천으로 널린 거예요. 현지에서 1년간 작품 30점을 제작해 부에노스아이레스 현대미술관에서 전시를 열었어요. 그러자 3년 치 전시 의뢰가 몰려왔죠. 3년 만에 한국에 돌아온 그는 인생 일대의 결정을 내립니다.

“아예 아르헨티나로 이주하자!”

국내에서 탄탄했던 커리어를 버리고 낯선 땅에서 자발적으로 이방인이 되는 용기를 낸 것이죠.

40년간 아르헨티나에서 작업에 몰두하며 1000여 점에 달하는 작품을 만들고, 현지에서 명성을 쌓아 자기 이름을 딴 미술관을 개관했지만, 그는 한국에서 거의 잊힌 존재가 되었습니다. 함께 활동하던 동료들이 미술계의 중추로 활약하며 성공 가도를 달린 것과는 다르게요. 그러던 작년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에서 개인전이 열렸습니다. 구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마지막 한국행으로 생각하고 응했는데요. <김윤신: 더하고 나누며, 하나>라는 낯선 이름의 전시회는 미술계에 큰 충격을 줬습니다. 한국 1세대 여성 조각가가 매일 전기톱으로 나무를 자르는 현역으로 활동한다는 사실에 쇼크 한 번, 이런 존재를 지금껏 모르고 있었다는 현실에 쇼크 한 번 더. 필자의 미술계 지인이 “반성을 해도 해도 모자라다. 어떻게 지금에야 알았는지 자격지심이 든다.”라고 토로할 정도였어요.

2023년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에서 열린 <김윤신: 더하고 나누며, 하나> 전시 전경. 이미지 제공: SeMA
김윤신, ‘합이합일 분이분일 2022-2’, 2022, Zelkova wood, 140 × 68 × 50 cm. Courtesy of Kukje Gallery and Lehmann Maupin
김윤신, ‘합이합일 분이분일 2022-4’, 2022, Acrylic on Zelkova wood, 120 × 65 × 50 cm. Courtesy of Kukje Gallery and Lehmann Maupin

그리고 김윤신이란 존재는 지금 엄청난 속도로 ‘떡상’하고 있습니다. 지난 1월 17일 그는 작가 활동 60여 년 만에 처음으로 상업 갤러리와 전속 계약을 맺었습니다. 한 곳이 아니라 두 곳이 동시에 붙었어요. 글로벌 화랑인 리만머핀과 한국의 국제갤러리입니다. 한국은 국제갤러리, 해외는 리만머핀이 밀착해서 책임진다네요. 당장 2월 열리는 국제 아트 페어 ‘프리즈 LA’에 작품이 출격하고, 3월에는 국제갤러리 서울 지점과 리만머핀 뉴욕 지점에서 전시가 열립니다. 이제 4월에는 베네치아 비엔날레 본전시에 가는 거죠. 이 모든 게 한 달 사이에 일어났습니다.

김윤신, ‘지금 이 순간 2020-15’, 2020, Acrylic on canvas, 120 × 180 cm. Courtesy of Kukje Gallery and Lehmann Maupin
김윤신, ‘내 영혼의 노래 2009-179’, 2009, Oil on canvas, 120 × 120 cm. Courtesy of Kukje Gallery and Lehmann Maupin

실시간으로 재정립되는 그의 위상을 바라보면서 문득 작가 한 명이 떠올랐어요. 페미니즘, 자기 고백적 예술가로 유명한 루이스 부르주아입니다. 1911년 태생인 부르주아는 70살이 넘은 1982년에야 명성이 터지기 시작했어요. 뉴욕 현대미술관에서의 회고전 덕분인데요. 이후 1993년 베네치아 비엔날레 미국관의 단독 작가로 참여하고, 1999년에는 본 전시에 초대받아 황금사자상을 받았어요. 2010년 별세할 때까지 독보적인 명성을 이어갔죠. ‘예술가의 제일 큰 덕목은 장수’라는 농담이 있는데요. 이젠 남의 일이 아니네요. 구순을 바라보며 현역으로 세계 미술계에 뛰어드는 김윤신 작가를 보세요! 과연 도도한 역사의 흐름이 그를 밀어줄까요. 확실한 건 이제 흥미롭게 응원할 대상이 생겼다는 점이겠죠. 진심, 화이팅입니다.

사진
국제갤러리, 리만머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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