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MCA가 뽑은 ‘올해의 작가’는 바로…

전종현

국립현대미술관이 ‘올해의 작가상 2023’ 최종 수상자로 권병준 작가를 선정했어요.

현대 미술을 사랑하는 국내 애호가들이 못내 궁금해하던 결과가 드디어 발표됐어요. 바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선정하는 ‘올해의 작가상 2023’ 최종 수상자입니다. 숫자에 민감한 분들은 이렇게 생각할 거예요. ‘지금은 2024년인데 왜 2023년 타이틀이 붙지?’ 올해의 작가상은 원래 국립현대미술관에서 1995년부터 2010년까지 개최한 ‘올해의 작가’ 전시를 모태로 2012년 SBS문화재단이 장기 후원 협약을 하면서 업그레이드된 수상 제도인데요. 매해 최종 후보자 4명을 뽑아 신작 중심의 커미션 전시를 개최하고 전시가 끝날 때쯤 수상자를 발표하는 형식으로 진행해요. 작년 봄에 2023년도 최종 후보를 발표하고 10월 20일에 전시를 시작했으니 이번 수상자에게는 2023년 타이틀이 붙게 된답니다.

2022년에는 올해의 작가상 후보를 선정하지 않고 잠시 쉬어갔던 터라 2023년 후보는 누구일까 관심이 많이 쏠렸는데요. 작년부터 제도를 개선하면서 새롭게 변모하는 양상을 보였어요. 가장 큰 변화는 기존 신작 위주의 전시에서 작가의 과거 작업과 커미션 작업을 함께 펼쳐놓아 작품 세계를 전체적으로 탐험할 수 있는 개인전 형식으로 바뀐 거였죠. 전시 개막 후 공개 워크숍을 통해 작가 비평을 강화했고, 신작 제작 후원 비용도 4000만원에서 5000만원으로 올렸고요! 올해의 작가상 2023의 후보 작가로는 권병준, 갈라 포라스-김, 이강승, 전소정 작가가 선정됐어요.

© 국립현대미술관

조각, 설치, 사진, 영상 등 다양한 분야에서 커리어를 탄탄히 쌓아온 작가들의 작품 세계를 파악할 수 있는 개인전 네 개를 붙여 놓은 모습에 긍정적인 반응이 쇄도했는데요. 특히 갈라 포라스-김은 해외 국적을 가진 한국계 작가로서는 처음으로 뽑히면서 글로벌 K아트를 위한 첫 수혜자가 되기도 했죠. 퀴어 아트에 매진하는 이강승 작가는 얼마 전 베네치아 비엔날레 국제예술전 본전시에 우리나라 생존 작가로는 김윤신 조각가와 함께 초대되는 경사도 있었고요. 전소정 작가는 에르메스재단 미술상, 광주비엔날레 눈 예술상, 송은미술대상 대상 등 국내에서 좋다는 상을 휩쓸었던 터라 ‘혹시 이번에도…?’라는 기대감이 생겼어요. 이런 치열한 접전에서 승리한 최후의 1인은 바로 권병준 작가입니다.

전시 전경 © 국립현대미술관

권병준 작가는 사운드를 기반으로 음악, 연극, 미술을 아우르는 뉴미디어 퍼포먼스를 다루고 있습니다. 1990년대부터 ‘고구마’라는 뮤지션으로 활동하면서 밴드 활동을 비롯해, 패션쇼, 무용, 연극, 국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음악적 재능을 펼치다가 네덜란드 헤이그 왕립음악원에서 아트&사이언스를 전공한 후 실험적인 사운드 하드웨어 연구자로 활동하는 중이에요. 새로운 악기와 무대 장치를 개발하고 이를 활용해 극적 장면을 연출하는 뉴미디어 퍼포먼스에 주력하게 된 건데요. 요즘 집중하는 주제가 바로 로봇을 이용한 기계적 연극입니다. 그래서 이번 올해의 작가상 전시도 로봇들로 채웠고요. 덕분에 ‘로봇 작가’라는 별명도 생겼답니다.

권병준 작가가 올해의 작가상을 받았다는 소식에 작품이 너무도 궁금해서 국립현대미술관에 찾아가 봤습니다. 실제로 접한 전시는 상상 이상으로 압도적이었어요. 사람이라는 행위자 없이 전자적인 설정을 통해 알아서 작동하는 다양한 로봇의 퍼포먼스와 다채로운 음악 경험의 융합은 마치 신세계에 와있는 듯한 느낌을 선사했죠. 1시간 정도 전시장에 머물렀는데 정신이 혼미할 정도로 몰입할 수 있었어요. 요즘 보았던 전시 중 한 손에 꼽을 정도로 정말 좋았습니다. 

부채춤을 추는 나엘, 2021

특히 로봇의 연극적 행위는 사람과는 분명히 다르지만, 세심한 감성의 결을 소름 끼칠 정도로 잘 짚어서 오묘한 느낌을 선사했어요. 생기 없는 무생물체의 액션이 이토록 인간적인 감정을 전달하는 모습에서 요즘 거론되는 ‘AI가 감정을 느낄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떠오르더군요. 인간을 정의하는 것은 무엇일까, 인간을 정교하게 미믹하는 로봇은 과연 비인간적인 것일까, 예술가가 설계한 판에서 연기하는 로봇에게 감동한다면 로봇의 공헌도는 어느 정도일까, 등등 정말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춤추는 사다리들, 2022

전시장을 즐기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퍼포먼스하는 로봇에 접근해서 보면 돼요. 근데 여러 로봇이 자기 페이스로 움직이고 조명도 계속 바뀌면서 그림자 효과 또한 극대화되다 보니 각본 없는 연극을 실감하는 느낌입니다. 자동으로 눈이 빠르게 돌아가죠. 대체 언제 어떤 신이 나타날지 모르거든요. 사다리를 기반으로 만든 로봇의 움직임은 무척 원초적이고 산업적인 느낌을 주는 반면, 인간의 형태를 띤 로봇들은 정말 애달프고 애처로울 정도의 제스처를 통해 인간-비인간의 경계를 넘어선 소통의 가능성을 떠올리게 해요. 특히 위치추적 기능을 탑재한 휴대용 헤드폰을 통해 눈에 보이는 작품과는 또 다른 청각 경험을 선사하는 ‘오묘한 진리의 숲’은 절대 놓치지 마세요. 매일 14~17시까지 단 3시간만 청취할 수 있으니 웬만하면 이때 맞춰가시길! 전시를 더욱더 맛있게 보는 꿀팁입니다. 전시는 3월 31일까지.

© 국립현대미술관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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