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평범한 용은 없다
드래곤 길들이기
<드래곤 하트>와 <에라곤>이 그랬고, <피터와 드래곤>도 그렇고 인간과 용의 진짜 우정을 다룬 작품들이 여럿 있습니다. 그중에서 으뜸이라면 <드래곤 길들이기> 1편을 떠올리게 됩니다. 바이킹과 드래곤들이 적대 관계인 세계를 배경으로, 드래곤 사냥에 소질이 없는 바이킹 족장의 아들 ‘히컵’과 부상당한 드래곤 ‘투슬리스’의 끈끈한 우정을 그린 애니메이션입니다. 둥글둥글한 외모에 반려동물처럼 히컵을 따르다가도 투닥투닥하는 투슬리스를 보는 재미가 적지 않고, 그들이 함께 하늘을 활공하는 장면도 스펙터클하며, 인간과 드래곤이 공존하는 세계관도 충분히 흥미롭지만, 무엇보다 가슴을 뭉클하게 만드는 성장 드라마가 단연 매력적입니다. 예상하지 못한 결말에선 씁쓸함 대신 묵직한 감동이 싹트는데요. 영화 전체를 한 차원 높게 끌어올리는 엔딩입니다.
호빗
판타지 걸작 <반지의 제왕> 시리즈의 이전 이야기를 다룬 <호빗> 3부작은 신화 속 용의 전형적인 이미지를 생생하게 구현했습니다. ‘스마우그’라는 이름을 가진 용은 그야말로 초강력 드래곤이자 마주치고 싶지 않은 두려운 존재로 묘사되는데요. “나는 불이고 나는 죽음이다”라는 스마우그의 으름장이 빈 말이 아니라 정말로 그가 지나간 자리는 폐허가 됩니다. 무시무시함과 전율은 사정없이 뿜어내는 화염에만 있지 않습니다. 스마우그는 중저음의 목소리로 으르렁거리며 때로는 지적이고 때로는 부드러운 말들을 쏟아내며 교활한 면모를 드러내는데요. 아주 입체적인 캐릭터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동굴 성대’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스마우그의 목소리와 모션 캡쳐를 맡았습니다. 으르렁거리며 바닥을 설설 기어 다니고 얼굴 근육을 실룩거리는 그의 연기 모습이 담긴 제작기 영상은 정말이지 압권입니다.
슈렉
예쁜 공주와 잘생긴 왕자의 해피엔딩이라는 뻔한 동화적 클리셰를 보란듯이 깨부수어 대히트를 기록한 애니메이션 <슈렉>은 용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도 기발한 상상력을 발휘했습니다. 립스틱을 바르고, 세심하게 공들여 연출했을 길고 풍성한 속눈썹이 매력적인 용이 등장하죠. 역시나 ‘슈렉다운’ 용은 무시무시한 첫 등장과는 다른 전개를 보이는데요. 슈렉의 곁에서 쉴 새 없이 떠드는 당나귀 ‘동키’와 짝을 이뤄 러브라인을 형성합니다. 마음을 빼앗긴 상대에게 열정적으로 집착하고, 날벼락 같은 이별에 우울해하며, 재회에 기뻐하는 등 용의 눈빛과 행동에서 순애보적 감정을 보게 되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동키와 용 사이에서 태어난 ‘용나귀’는 또 어떻고요.
네버엔딩 스토리
만들지 못할 게 없어 보이는 CG 덕분에 영화에서 용은 우리의 상상 그대로, 또는 상상 이상의 모습으로 표현 가능합니다. 그러다 보니 용이라는 캐릭터는 더 이상 희소성을 갖지 않는데요. 시각적인 충격이나 경이로움이 이전보다 덜한 게 사실이죠. 그래서 1984년에 만들어진 판타지 영화 <네버엔딩 스토리>의 ‘펠콘’을 소개합니다. 영화는 환상의 나라에서 여왕의 병을 고칠 방법을 찾기 위해 모험에 나선 소년의 모험을 그렸고요. 그 험난한 여정에 주요한 도움을 주는 존재가 바로 펠콘이라는 행운의 용입니다. 강아지를 닮은 얼굴 생김새, 펄럭이는 커다란 귀, 복슬복슬한 털, 시종일관 짓는 미소. 사뭇 다른 외모는 용의 전형을 허물며 사랑스러운 존재로 각인됐는데요. 아니나 다를까, 큼직한 모형을 만들어 촬영한 탓에 어설프고 어색한 구석도 감지되지만 오히려 CG로 탄생한 용들에게 없는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습니다.
- 사진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CJ엔터테인먼트, 유니버설 픽쳐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