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도의 첫걸음, 24SS 헬무트 랭 컬렉션.

명수진

헬무트 랭 2024 S/S 컬렉션

90년대 패션의 ‘컬트’였던 헬무트 랭처럼 수많은 이들이 추앙하는 브랜드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2005년부터 많은 이들이 헬무트 랭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바통을 이어 받았지만 대중에게 각인된 이름이 거의 없는 이유다. 헬무트 랭을 소유한 일본 그룹 패스트 리테일링(Fast Retailing)은 올해 초, 베트남 출신 디자이너인 피터 도(Peter Do)를 헬무트 랭의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했다. ‘조용한 럭셔리’의 대명사 같은 헬무트 랭과 어린 시절부터 헬무트 랭의 팬이었음을 공공연하게 밝혀온 루키 디자이너의 만남은 이번 뉴욕 패션 위크의 가장 뜨거운 관전 포인트였다. 결과는 어땠을까?

헬무트 랭 컬렉션은 뉴욕 패션 위크의 첫날인 9월 8일 금요일, 로어 이스트 사이드(Lower East Side)에서 열렸다. 피터 도는 ‘본 투 고(Born to Go)’를 테마로 헬무트 랭의 시그니처 아이템 – 화이트 셔츠, 데님 팬츠, 중성적인 재킷, 크롬비 코트, 보디 컨셔스 드레스 등 – 을 런웨이 위로 올렸다. 심플한 블랙, 화이트에 핑크, 옐로 컬러 포인트로 시선을 끌었고, 안전벨트를 한 것처럼 사선 방향으로 가로지르는 라인 디테일은 90년대 본디지 테마를 떠오르게 했다. 피터 도는 헬무트 랭이 음악과 예술 등 문화의 다양한 요소를 패션에 도입했던 것처럼 협업을 시도했다. 베트남 시인인 오션 브엉(Ocean Vuong)이 미국에서 퀴어이자 동양인으로 살아가는 경험을 쓴 시적인 문구를 새겨 넣었고, 제니 홀저(Jenny Holzer)와 협업하여 90년대 뉴욕의 옐로 캡이 실어 나른 헬무트 랭 광고에서 영감을 받은 실크 스크린을 프린트로 사용했다.

이처럼 피터 도와 헬무트 랭의 첫 만남은 ‘오마주’라는 사실상 가장 무난한 방식으로 매듭지어졌다. 기대가 컸기에 호불호는 갈릴 수 있지만, 몇몇 시그니처 아이템을 활용한 담백한 라인업은 사실 가장 ‘헬무트 랭 답다’고도 할 수 있다. 피터 도는 ‘누구나 헬무트 랭 매장에 가서 멋진 슈트나 오래 잘 입을 수 있는 데님 팬츠를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으로 사서 입을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싶었다’며, 베이식한 헬무트 랭의 블레이저, 셔츠, 데님 팬츠 등이 ‘접근 가능한 럭셔리’가 되기를 원한다고 부연 설명했다.

프리랜스 에디터
명수진
영상
Courtesy of Helmut L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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