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말 포함, 캠페인 리뷰.
1. 나는 전설이다
생로랑의 놀라운 섭외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는 남성 캠페인 비주얼이 공개됐다. 확신에 찬 눈빛과 입꼬리, 자유분방하면서 정돈된 머리칼, 개성적인 제스처로 보는 이를 압도하는 이들은 사실 세계적인 영화 거장들이다. 스페인을 대표하는 페드로 알모도바르부터 독립영화계의 대부 짐 자무시와 아벨 페라라, 캐나다 출신 데이비드 크로넨버그는 안토니 바카렐로가 새롭게 선보이는 남성 컬렉션을 입고 그들의 작품 세계만큼 개성적인 카리스마를 발산한다.
2. 도시의 얼굴들
하늘 높이 치솟은 고층 건물, 바삐 움직이는 교차로의 사람들과 길거리의 불빛이 매력적인, 지극히 일상적인 도시 풍경 또한 캠페인의 배경이 될 수 있다. 캠페인 속 강인한 리더의 모습을 한 베르사체의 여전사 에밀리 라타이코프스키와 시민의 안위를 책임지는 지미추의 히로인 켄들 제너, 마이클 코어스의 현대적인 젯셋족, 따뜻한 빛 속을 유영하듯 걷는 도시의 산책자 보테가 베네타와 샤넬에 이르기까지 도시의 다채로운 얼굴과 표정이 담겨 있다.
3. 단순명료의 힘
사진을 사람에 비유하자면 개인적으로 말수가 적은 사진을 선호한다. 말에 실리는 힘, 그 무게를 알고 행동하는 진중함이 멋있어 보여서다. 좋은 사진은 특별한 요소 없이도 우리의 시선을 온전히, 그
리고 오래 붙잡는다. 포토그래퍼 스티븐 마이젤의 토템, 타이론 레본의 마크 제이콥스, 혜지 신의 지방시, 에디 슬리먼의 셀린느, 데이비드 조르가제의 프로엔자 스쿨러 캠페인처럼.
4. 인해전술
매 시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광고 캠페인의 스타일이 있다면 바로 단체 사진이다. 일명 ‘떼샷’은 매우 쉽고 정확한 방식이다. 하지만 오해하지 마시라. 각기 다른 피사체가 내뿜는 엄청난 에너지와 한 시즌의 주요한 키 룩들이 한데 펼쳐져 대단한 광경을 연출하니 말이다. 펜디와 페라가모, 모스키노, 그리고 비비안 웨스트우드가 이를 증명한다.
5. 떠나는 거야바다와 사막, 아름다운 자연에서 컬렉션의 테마를 탐구한 디자이너들의 행적을 따라가봤다. “우리의 삶은 자연에서 출발한다. 그렇기에 가끔은 일상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랄프 로렌은 낙관주의와 풍성한 삶이 그려지는 캘리포니아의 뉴포트비치로 향했다. 한편, 사막에 얽힌 신비로운 신화 이야기에 영감 받았다고 밝힌 알투자라는 캠페인 촬영을 위해 가상의 사막 세계를 구현했다. 모하비 사
막의 건조한 평원으로 모델 지지 하디드, 탈리하 압디엘과 여정을 떠난 끌로에는 포토그래퍼 조 게트너의 렌즈를 통해 대자연의 신비 앞에 선 인간 태초의 아름다움을 포착했다.
6. 눕 방
여기, 취침 모드에 돌입한 세 브랜드가 있다. 옷의 구김은 상관없다는 듯 새틴 팬츠를 입고 푹신한 소파에 몸을 기댄 베르사체, 침대를 스튜디오로 소환한 로에베와 이자벨 마랑 등 풍기는 분위기는 각각 다르지만, 여유로움으로 무장한 애티튜드만큼은 동일하다. 편하게 눕는 것이야말로 지상 최고의 럭셔리다.
7. 동해물과 백두산이
1월 말부터 2월 중순까지 하나둘 공개된 2023년 봄/여름 광고캠페인을 기다리며 더 많은 한국인 모델과 글로벌 앰배서더가 나오기를 간절히 소망했다. 그 결과는? 버버리의 전지현, 미우미우의 임윤아, 프라다의 NCT 127 정재현, 보스의 이민호까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국뽕’에 취할 만한 특급 라인업이 완성됐다.
8. 오직 너
사랑에는 형태가 없다. 하지만 작업자 간의 사랑은 다르다. 결과물이 이미지로 구현되기에 직관적이고 때때로 더 큰 감동을 전달하기도 한다. 1970년대부터 작업을 이어온 조르지오 아르마니와 포토그래퍼 파울로 로베르시의 캠페인이 반가운 이유다. 긴 노출로 구현한 부드러운 그림자, 시간이 멈춘 듯한 회화적 표현은 그들의 돈독한 우애를 응원하게 만든다. 포토그래퍼 브리짓 니데르마이르와약 7년째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디올 역시 그 맥락을 함께한다.
- 패션 에디터
- 김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