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의 끝자락에서 돌아본 2022년의 이슈들 Vol 3 | 더블유 코리아 (W Korea)

한 해의 끝자락에서 돌아본 2022년의 이슈들 Vol 3

2022-12-16T15:46:12+00:002022.12.09|FEATURE, 컬처|

2022년이 열렸고 과연 떠들썩했다. 한 해의 끝자락에 서니 올해에 말하고픈 것들이 물음의 형식으로 남는다. 분야를 가로질러 지금 궁금한 이야기가 여기 있다.

BL물은 어떻게 양지에 싹을 틔웠을까?

‘BL 코인’이라는 말이 있다. 올 한 해 웹드라마 시장에서 남성 간의 사랑 이야기를 담은 ‘보이즈 러브(Boy’s Love)’ 장르를 다루면 무조건 ‘터진다’ 하여 생긴 신조어. 일찍이 2020년 BL 타이틀을 내건 국내 최초의 BL 웹드라마 <너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 2021년 BL의 본고장 일본 라쿠텐 TV에서 공개 당시 전체 콘텐츠 1위에 오른 <너의 별에게2> 등이 BL 양지화에 시동을 걸었다면, 마침내 올해 왓챠의 히트 상품 <시맨틱 에러>가 공개되며 한국 BL 시장의 빅뱅이 시작됐다. 당장 <시맨틱 에러>의 성공 서사는 한국 BL 시장의 폭발적 성장을 압축해 보여준다. 2월 작품 공개 후 8주 연속 왓챠 순위 1위를 기록했고, 첫 공개 후 일주일간 원작 웹소설 거래액은 576%를 돌파했으며, 드라마 인기에 힘입어 8월 극장판이 공개됐고, 주연 배우였던 재찬은 DKZ로 컴백하며 데뷔 4년 만에 음악 방송 1위를 차지, 박서함은 ‘청룡시리즈어워즈’에서 인기스타상을 수상했다. 잘 모르는 입장에선 ‘BL이 그렇게 인기가 많았어?’ 싶겠지만, 한국에서 BL 드라마의 역사는 짧되 ‘그간 BL이 리디북스를 먹여살렸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닐 정도로 BL 웹소설과 웹툰의 역사는 유구하다. 낯설진 몰라도 시장은 분명 계속 존재해왔고 다만 사회가 변하고, 소비자의 성격이 변화하며 극소수라 봤던 층이 수면 위로 고개를 들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숏폼이나 미드폼이 대다수인 BL 드라마의 경우 평균 제작비 2억~3억원으로 ‘저비용 고효율’의 상품을 만들 수 있다는 점, 이를 태울 OTT 플랫폼이 많아진 미디어 환경, 콘텐츠를 단순히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고 2차 창작물을 제작해 ‘발로 뛰는 영업’을 보여주는 BL 팬덤만의 특수한 성격, K-컬처의 덕을 봐 동남아, 일본 등 글로벌 시장에서 타율이 좋다는 점들은 BL 웹드라마의 양지화에 가속을 붙였다. 올해 공개된 BL 웹드라마만 10여 편, 여기엔 영화 투자배급사 NEW가 뛰어든 웹드라마 <블루밍>도 있다. 내년 방영 예정작이라 기사화된 작품 수만 해도 20편을 웃돈다. 한마디로 BL 웹드라마의 포화 상태. 다만 차린 건 많은데 손이 가는 반찬이 없다는 것은 지금 한국 BL 웹드라마 시장을 말해주는 현실이기도 하다. 이제는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뽀뽀하고 끝’ 식의 허술한 전개에서 벗어나, 싱그러운 청춘들의 ‘얼굴 영상 화보’ 식의 만듦새에서 벗어나 고유한 장르 문법과 작품성을 보여줘야 할 때다. 우선 피비의 원작 웹소설을 바탕으로 한 <비의도적 연애담>에 기대를 걸어본다. 배우 차서원, B1A4 공찬이 주연을 맡았다. – 전여울(<더블유> 피처 에디터)

 

루이 비통과 구찌는 왜 식당을 차렸을까?

마치 짜기라도 한 듯 올 한 해 구찌, 루이 비통은 서울에 럭셔리 다이닝 매장을 열었다. 3월 16일 오픈한 구찌의 ‘구찌 오스테리아’는 예약 개시 4분 만에 총 54석 전석이 마감됐고, 9월 17일 문을 연 루이 비통의 팝업 레스토랑 ‘알랭 파사르 at 루이 비통’ 역시 5분 만에 38일 동안 운영하는 전좌석 예약이 마감됐다. 그렇게 한동안 SNS 피드엔 ‘구찌 버거’가, 루이 비통의 모노그램을 본따 만든 쿠키가 점령했다. 지금은 한 끼에 10만원을 내더라도, 훗날 1000만원짜리 가방을 사줄 미래의 ‘큰손’ MZ세대가 레스토랑을 가득 메운 풍경에 브랜드들은 꽤나 흡족해하지 않았을까? 사실 다이닝만큼 럭셔리 브랜드가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에 침투하고 브랜드 유니버스를 구축하는 손쉬운 방법은 없다. 사치품 대신 음식에는 지갑이 장벽 없이 열리고, 음식으로 열린 지갑은 옷, 가방, 가구 등의 상품군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단순히 물건을 소비하는 것과 오감이 동원되는 음식을 먹는 행위 사이엔 엄청난 차이의 브랜드 경험치가 자리하니, 브랜드는 접시 하나에 자신들의 아이덴티티를 압축해 광고할 수도 있다. 게다가 코로나19로 전체 가계 지출은 줄었어도 모처럼 ‘오마카세’를 예약하거나 ‘카카오 선물하기’로 플렉스할 정도의 ‘스몰 럭셔리’ 문화도 자리 잡은 상황. 여기에 지난해 국내 명품 시장은 141억 달러 규모로 전 세계 7위를 기록할 정도이니, 명품 업계에 있어 한국만큼 매력적인 ‘테스트 베드’는 없었을 거다. 큰 이변이 없다면, 내년에도 럭셔리 브랜드의 음식 장사는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그나저나, 랄프 로렌이 카페를 내기 위해 서울에 목 좋은 자리를 알아보고 있다는데…. – 전여울(<더블유> 피처 에디터)

 

망 이용료를 둘러싼 쟁점은 무엇인가?

10월 막을 내린 국회 국정감사(이하 국감)에서 가장 첨예하게 대립한 이슈 중 하나는 단연 ‘망 이용료 갈등’일 것이다. 지난 10년 가까이 마땅한 합의점에 이르지 못한 탓에 누군가는 해묵은 갈등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주무 부처가 문화체육관광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 얽혀 있고, 여전히 찬반 논쟁이 팽팽한 이 문제는 해법을 내놓기가 결코 간단하지 않다. 망 이용료 갈등 문제를 설명하기 전에 망 이용료가 무엇인지부터 얘기해야 할 것 같다. 넷플릭스, 구글, 페이스북, 애플, 카카오, 네이버 같은 ‘콘텐츠제공사업자(Contents Provider, 이하 CP)’가 이용자들에게 콘텐츠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국내의 KT, LGU+, SK브로드밴드, 국외의 컴캐스트, AT&T 같은 ‘인터넷서비스제공사업자(Internet Service Provider, 이하 ISP)’가 구축한 정보통신망을 이용해야 한다. 이때 CP가 ISP에 지불하는 비용이 바로 망 이용료다. 우리가 보통 사용하는 통신사 요금제와는 개념이 다르다. 통신사 요금제는 기업마다 요금제를 정해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허락을 받아 내놓으면, 일반 이용자들이 본인에게 맞는 걸 선택해 이용하는 방식이다. 반대로 CP는 별도의 인터넷 전용 회선을 사용하고, 그 사용에 대한 비용을 지불하는 방식이다.
망 이용료를 둘러싼 CP와 ISP 간의 갈등은 특정 CP들에 트래픽이 과도하게 몰리자 ISP가 이에 대한 비용을 요구하면서 벌어졌다. 이를테면 유튜브처럼 이용자 수가 많은 회사에게 KT에서 사용비를 지급하라고 나선 것이다. 이런 충돌은 지난 10여 년 동안 수차례 있었다. 2012년 카카오톡에서 ‘보이스톡’을 서비스한다고 발표한 후에도 카카오와 ISP가 갈등을 빚었다. 보이스톡은 인터넷망을 이용하는 무료 음성통화이고, 음성통화는 ISP의 큰 수익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후 2019년 11월에는 SK브로드밴드와 넷플릭스가 망 이용료를 둘러싼 갈등을 빚었고, SK브로드밴드가 방송통신위원회에 갈등 중재를 신청한 상황에서 넷플릭스가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그 결과 SK브로드밴드는 1심에서 넷플릭스에 승소했고, 현재 항소심이 진행되고 있다. 인터넷 기술이 발전할수록 그것에 따른 트래픽 관리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고, 그때마다 망 중립성과 망 이용료가 이슈가 된 것이다. ‘망 중립성’은 CP가 사용하는 데이터양에 따라 ISP에서 망 이용료나 데이터 속도를 차별하지 못하도록 하는 정책을 말한다.
현재 국회에서 CP의 망 이용료 지급과 관련한 내용을 골자로 한 법안 7가지를 발의한 상태다. ‘일정 규모 이상 사업자의 망 이용 계약 체결을 의무화하고, 정당한 망 이용 대가를 부당하게 거부하는 행위를 금지한다’는 것이 법안들의 주요 내용이다. 망 이용료와 관련한 법안이 발의된 건 전세계적으로도 드문 일이다. 이와 관련해 지난 9월 20일 거텀 아난드 유튜브 아태지역 총괄 부사장이 유튜브 한국 블로그, 유튜브 채널을 통해 ‘현재 한국에서 발의된 법안들은 콘텐츠를 제공하는 기업, 그러한 기업과 관련 있는 크리에이터들에게 불이익을 주게 될 것이며 ‘관련 법안을 우려하는 분들은 서명을 통해 목소리를 함께 내주길 바란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이처럼 CP는 CP대로, ISP는 ISP대로 여론전을 펼치면서 양쪽의 갈등은 팽팽한 상태다. – 김성훈(<씨네21> 기자)

 

왜 이용진인가?

유튜브 <바퀴 달린 입>, <튀르키예즈 온 더 블럭>, <못배운놈들>, <용진건강원>, <금쪽 같은 내 사랑>, MBC <일타강사>, KBS <배틀트립 2>, 티빙 <환승연애 2>, 네이버NOW <비트주세요>… 올해 개그맨 이용진의 출연 목록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는 tvN <코미디 빅리그>를 포함해 지상파와 종편, 유튜브를 넘나들며 활약 중이다. 2005년 <웃찾사>로 데뷔한 이용진이 콩트 연기가 아닌 토크로 입담을 증명하기 시작한 데는 과거 <비틀즈 코드>에서의 MC 경력이나 <아는 형님>, <라디오 스타>에서 게스트로 출연했을 때의 활약이 한몫했지만, 이용진 연대기의 기폭제가 된 것은 2019년 웹예능 <괴릴라 데이트>다. ‘푸대접 길방 토크쇼’를 표방한 이 프로그램에서 이용진은 절친이자 개그 동지인 이진호와 게스트를 자유자재로 주물럭거렸다. 이진호가 좀 더 갈피 없이 말의 펀치를 날리는 쪽이었다면, 이용진은 완급 조절에 능한 스타일이었다. 콩트와 진행 사이 그 어딘가의 MC로서 돋보인 셈이다. 문장 형식을 갖춘 깔끔한 화법은 방송 토크쇼용으로도 탁월한 조건이다. 방송사를 떠나 유튜브에서 활로를 찾은 여러 개그맨들처럼 이용진도 웹예능에서 더 자유롭게 활약하지만, 그는 방송이라는 레거시 미디어와 어우러져도 마이너한 요소가 없는 인물로 입지를 다지고 있는 느낌이다. 현재 tvN 제작팀이 만든 유튜브 채널인 스튜디오 와플의 간판 프로그램은 <튀르키예즈 온 더 블럭>(터키 국명이 바뀌면서 프로그램도 이름을 바꾸고 새 시즌을 맞았다)과 이용진, 조세호, 풍자, 곽튜브, 가비가 함께하는 토론 프로그램 <바퀴 달린 입 3>이다. 두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심우경 메인 피디는 이용진을 두고 이렇게 전해왔다. ‘선을 넘지 않으면서 게스트를 무력화시키는 특유의 깐족거림과 친화력이 대표적인 장점이다. 무엇보다 그가 믿고 토크 털 수 있게 만드는 강력한 제작진이 받치고 있어 그 장점이 더욱 빛난다.’ 게스트로 출연한 하정우에게 건조한 얼굴로 “불만 있으세요?”라고 할 수 있는 용감한 남자. 멀쩡한 말과 엉뚱한 말로 ‘치고 빠지고’를 오가며 분위기를 이끌되 무엇보다 상대방의 말을 경청할 줄 아는 MC. 많은 스케줄 속에서 그 ‘똘끼’가 무뎌지지 않길 바랄 뿐이다. – 권은경(<더블유> 피처 디렉터)

 

© 김용호

고 이어령은 어떤 존재였나?

이어령에겐 여러 호칭이 있었다. 문학 평론가, 언론인, 교수, 초대 문화부장관, 각종 위원장…. 하지만 생전 이어령은 자신을 ‘창조적인 사람’, 즉 크리에이터라고 불러주면 좋겠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1934년생인 이어령이 올해 2월 병환으로 고인이 되기까지 종횡무진으로 이루어낸 일, 남긴 글과 말을 인덱스화한다면 그것들에 깃든 창조적 발견과 실행력을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이어령은 여러 인문학적 발상에 앞서 언어에서부터 고민을 출발하곤 했다. ‘갓길’이라는 순우리말을 만들고,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합친 ‘디지로그’나 ‘생명 자본’이라는 용어를 새 시대의 핵심으로 제안하며 널리 쓰이게 한 그다. 88서울올림픽 개폐막식 총괄 기획자일 때는 원고지에 쓰던 것을 잠실운동장에 펼쳤다. 햇빛 쏟아지는 초록 잔디밭에서 고요히 굴렁쇠를 굴리며 달리는 소년. 울고 있는 전쟁 고아의 이미지 대신 새로운 한국인을 보여주고 싶었던 이어령의 연출이다. 굴렁쇠 소년은 꼭, 사마란치 위원장이 1988년 올림픽 개최지로 ‘세울!’을 외친 그날 태어난 아이여야 했다. 이어령이 떠나기 얼마 전이었던 올 초, 한국예술종합학교 김대진 원장이 이어령의 집을 찾았을 때 나온 이야기는 중앙일보에 실렸다. 1990년부터 약 2년간 문화부장관을 지낸 이어령이 임기 마지막 날 국무회의에서 했다는 연설 내용이 재밌다. 문화부 산하의 예술전문학교를 세워야 한다는 안건에 국무위원들이 반대하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지금 예술학교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엘리트가 아니고, 사실은 불쌍한 아이들입니다. 여기 못 들어오면 은행원, 공무원이 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닌 거죠. 하나님이 실수해서 잘못 만든 사람들이에요. 그러니 도저히 그대로 내려보낼 수 없어서 하나님의 눈곱 하나 떼어줘서 그림 그리게 하고, 귀지 하나 후벼 넣어줘서 음악가가 되게 한 겁니다.” <지성에서 영성으로>, <축소 지향의 일본인>, <생명이 자본이다> 등의 대표 저서를 남긴 이어령은 죽음을 앞둔 순간까지 부지런히 사람들을 만나며 지혜를 나누었다. 그런 이어령의 마지막 목소리가 활자 사이로 들려오는 책이 베스트셀러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이다. 이어령은 마지막 인터뷰라는 형식으로 지혜를 남겨주려 했고, 조선비즈의 김지수 문화전문기자가 일주일에 한 번씩, 한동안 만남을 지속한 결과가 이 책이다. “죽으면 ‘돌아가셨다’고 하잖아. 탄생의 그 자리로 가는 거라네.” 지의 최전선에서 활화산처럼 내내 폭발하던 거인은 죽음의 과정마저 선물처럼 생중계하고서 탄생의 집으로 돌아갔다. – 권은경(<더블유> 피처 디렉터)

 

<스우파>엔 있었고 <스맨파>에 없었던 것은?

지난 8월 방영 시작한 Mnet <스트릿 맨 파이터>가 11월 1%대의 시청률로 비교적 조용히 막을 내렸다. 지난 한 해를 온통 춤판으로 만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닌 댄스 서바이벌 <스트릿 우먼 파이터>의 후속작에, 본방송이 시작되기 석 달 전부터 프리퀄 <비 엠비셔스>까지 방영한 걸 생각하면 다소 초라하게 느껴지는 성적표다. 이는 다소 의외의 결과였다. 흥행을 위한 예열은 충분했고, 출연 댄스 크루들의 실력은 이미 충분히 검증된 상태였다. 가장 아쉬웠던 건 프로그램 제목의 유래인 대전 격투 게임 <스트리트 파이터>에 빗대, 그의 실력과 야망에 빙의해 함께하고 싶은 캐릭터가 없었다는 점이다.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시청자의 몰입을 유도할 수 있는 출연자의 독보적인 캐릭터와 그를 기반으로 한 서사다. <스우파>가 그토록 큰 사랑을 받은 건 그동안 부수적 요소로 취급받아온 ‘춤’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는 데 성공함과 동시에 대중의 이목을 끄는 매력적인 캐릭터와 서사를 다수 발굴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봐도 똑 부러지는 ‘요즘 세대’ 실력파 리정이나 모니카와 립제이의 끈끈한 관계, 허니제이와 리헤이 사이의 골 깊은 갈등 등의 요소는 열렬한 <스우파> 추종자를 낳게 만든 대표적인 요소였다. <스맨파>에는 멋진 춤과 실력 좋은 댄서는 많았지만, 나를 투영해 싸우고 싶은 캐릭터는 없었다. 혹은 있었다고 해도 연출적으로 돋보이지 않았다.
또 하나 없었던 건 신과 출연자에 대한 리스펙트다. 방송 전 불거진 출연 남성 댄서의 꼬투리 잡기 식 ‘팝핀’ 논란이나, 제작발표회 자리에서 나온 ‘여자 댄서들의 서바이벌은 질투, 욕심이 있었다면 남자들은 의리, 자존심이 많이 보였다’는 담당 CP의 부적절한 발언은 프로그램이 시작하기도 전에 찬물을 끼얹은 대표적 사건이었다. 캐릭터도, 서사도, 리스펙트도 없는 프로그램은 계급미션부터 자체 음원을 발매하거나 ‘엠비셔스’ 크루의 파이널 무대에 임시 하차했던 김정우를 긴급 투입하는 등 마지막까지 전세 역전을 노렸지만, 이미 승패는 한참 기울어진 후였다. – 김윤하(대중음악 평론가)

 

밀레니엄 힐튼 서울의 철거는 무엇을 의미할까?

시장 경제와 개발 논리 앞에서는 한국 근현대 건축의 상징인 40년 역사의 호텔도 추억 속으로 사라진다. 2022년 12월 31일을 끝으로, 밀레니엄 힐튼 서울이 이별을 준비하고 있다. 1995년 첫 발차식 이후 30년 가까이 이어져온 호텔의 명물, 크리스마스 열차의 운영도 올해가 마지막이다. 호텔이 허물어진 자리엔 2027년까지 호텔, 오피스 등을 갖춘 복합 시설이 들어설 예정이다. “나는 시장 경제를 부인하지 않는다. 다만 20~30년 된 동시대 건물 중 건축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 건물을 선별적으로 등록해 보호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지난해 11월, 한국 모더니즘 1세대 건축가이자 호텔을 설계한 김종성은 포럼 ‘건축가 김종성과 건축적 유산’에서 말했다. 호텔이 새 주인인 이지스자산운용과 인수계약을 마친 지 한 달여밖에 지나지 않았을 무렵, 건축가는 다만 씁쓸히 말할 뿐이었다. 동시대를 걸어온 1세대 현대 건축가 김중업의 ‘삼일빌딩’은 2년 전 원형을 살리면서 정교하게 리모델링된 반면, 고도 성장 시절에 세워져 한국 근현대사를 목격해온 김종성의 기념비적 역작은 뒤안길로 사라지며 운명을 달리한다는 사실엔 씁쓸한 뒷맛만이 남을 뿐이다. 일반적인 배산(背山) 형태에서 벗어나 양팔을 벌려 남산을 포옹하는 모양새의 병풍형 외관도, 건축가 자신도 혁신이라 여겼던 18m 높이의 웅장한 아트리움도, 콘크리트 일색이었던 한국 건축에 획기적인 돌연변이와도 같았던 알루미늄 커튼월 마감도 한 달여 뒤면 서울의 풍경에서 지워지게 된다. 1977년 호텔의 최초 소유주인 대우그룹 김우중 전 회장은 당시 일리노이대학 건축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던 김종성을 찾아가 ‘세계적 수준의 호텔을 지어달라’며 설계를 맡겼다. 해외 기술력에 의존하던 당시, 밀레니엄 힐튼 서울은 일찍이 1950년대 유학길을 떠나 12년간 모더니즘 건축 대가 미스 반 데 로에를 사사하며 세계 건축을 직접 견문한 김종성이 자신의 노하우와 집념을 총동원해 만들어낸, 한국 근현대 건축의 기념비적 사례다. 밀레니엄 힐튼 서울의 철거는 어쩌면 단순히 한 건축물과의 안녕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 전여울(<더블유> 피처 에디터)

 

PHOTOㅣJOSEPH JEONG

슬픔이 끝을 맺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얼마일까?

158명. 11월 중순 현재, 10월 29일 밤 용산구 이태원동에서 발생한 참사 사망자 수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서 발표한 부상자 수는 196명이다. 비극은 그 비극과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타인의 삶에까지 손길을 뻗친다는 점에서 더욱 비극적이다. 참사를 겪은 이들과 유가족, 애도라는 자장 안에서 생계 수단이 영향을 받은 결과로 생활에 어려움이 닥친 상인, 사회의 시스템에 의문을 해소하지 못하고 이성과 감성을 총동원하는 나날을 보내는 평범한 시민 등등은 각자의 시간을 통과하고 있다. 이러한 참상이 벌어지고 말았을 때 애도의 시간은 마땅히 거쳐야 하지만, 그 방식은 누가 강요할 수 없는 개인의 것이다. 다만 상실과 애도 분야의 고전이 된 <애도>를 쓴 심리치료사 베레나 카스트나 관련 연구로 유명한 심리학자 로버트 네이마이어의 말들을 떠올린다. 애도의 종결이란 죽음을 겪었음에도 삶에 대한 기쁨을 간직하고, 죽음이 언제라도 닥쳐올 수 있지만 관계를 새롭게 가질 수 있는 감정을 갖게 되는 상태를 뜻한다는 것. 그러나 납득하는 과정을 거치지 못한 채 자꾸만 의문이 일어난다면 슬픔이 만성화되고, 회복은 더딜 수밖에 없다는 것. 남은 자의 사정이 제각각인 만큼 종결이라는 말의 의미와 무게도 서로에게 다르다. 여기 온전한 정신으로 남은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 중 하나는 그 종결을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크고 작은 노력을 하는 것 아닐까? 슬픔을 회피하기 위해서가 아닌, 문제의 해결과 재발 방지를 위해서 말이다. – 권은경(<더블유> 피처 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