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의 끝자락에서 돌아본 2022년의 이슈들 Vol 2 | 더블유 코리아 (W Korea)

한 해의 끝자락에서 돌아본 2022년의 이슈들 Vol 2

2022-12-09T00:19:21+00:002022.12.08|FEATURE, 컬처|

2022년이 열렸고 과연 떠들썩했다. 한 해의 끝자락에 서니 올해에 말하고픈 것들이 물음의 형식으로 남는다. 분야를 가로질러 지금 궁금한 이야기가 여기 있다.

제1회 프리즈 서울은 무엇을 남겼나?

샴페인을 터트릴 시점일까, 아니면 마지막 탈출 기회일까? 제1회 프리즈 서울이 개최된 9월 초, 전 세계 자산 시장에선 코로나19로 가속화된 유동성 파티가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갑자기 끝나지 않을지에 대한 불안이 가중되고 있었다. 누구도 예상치 못했지만 언젠가 벌어질 수밖에 없었던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이 그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프리즈 서울 개최 결정은 이미 2021년에 이뤄졌고, 심지어 인천국제공항공사는 프리즈 서울 개최 며칠 전인 8월 30일에 (세금을 면제해주는) 미술품 수장고 개발 사업을 체결했다. 미래는 불확실하지만, 이제는 서울 근처에도 홍콩이나 스위스 제네바처럼 수백, 수천억원대의 미술품을 면세 조건으로 보관할 거대 수장고가 마련될 예정이다.

그런데 프리즈는 대체 왜 서울로 왔을까? 월드컵이나 올림픽을 유치하기라도 한 것처럼 기뻐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프리즈는 국가적 행사가 아니라 그저 엄청난 규모의 미술품 거래가 발생하는 아트페어일 뿐이다. 런던에서 시작되어 미국으로 확장한 프리즈 아트페어가 아시아에서 페어를 개최할 장소로 서울을 낙점한 건 지금으로선 서울이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국제적 아트페어를 유치할 만한 곳이기 때문이다. 아시아를 대표하는 도시들을 생각해보자. 홍콩? 상하이? 도쿄? 그 어느 곳도 지금으로선 마땅치 않다. 대부분의 도시가 시위에 휩싸여 있거나 아직 봉쇄 중이며, 국제공항도 그리 크지 않다. 게다가 K컬처에 대한 관심이 전 세계적으로 뜨거운 시점이니, 아시아로 확장하려는 국제적 아트페어의 입장에선 더 늦기 전에 서울에 문을 여는 게 가장 합리적 선택이다. 국제적인 갤러리들이 서울에 연달아 분점을 내는 것 역시 같은 맥락에서 생각해 볼 수 있겠다.

그래서, 프리즈 서울이 우리에게 남긴 것은 과연 무엇일까? 미술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에 따라 다양한 대답을 할 수 있다. 예컨대, 한국화랑협회가 2002년부터 시작한 Kiaf는 프리즈 서울이 자신과 같은 기간에 같은 장소에서 열린다는 소식에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고민이 크지 않았을까. 그런데, 이 모습에서 국내 통신사와 휴대폰 제조사들의 압력으로 출시가 미뤄지던 아이폰이 한국 시장에 처음 진출한 2009년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아이폰이라는 새로운 경쟁자의 등장은 갈라파고스 같았던 한국 통신 시장을 뒤흔들었다. 대기업들은 부랴부랴 새로운 스마트폰을 출시했고, 고객들은 앱스토어와 무선 인터넷이라는 신세계를 경험했다. 아이폰이 출시되면 통신 시장이 붕괴되기라도 할 듯 필사적으로 저항했던 국내 통신사와 경쟁 기업들 역시 결과적으로는 시장을 키운 덕에 이윤을 늘렸다. 다만 프리즈 서울이 아이폰과 같은 ‘혁신적’ 제품이고, 한국 미술 시장이 갑갑하게 닫혀 있던 이동통신 시장 같다는 말을 하려는 건 아니다. 미술은 공장에서 대량 생산되는 휴대전화가 아니니까.

프리즈 서울이 우리에게 남긴 건 무엇보다 ‘강제 국제화’의 경험인지도 모르겠다. 지금까지, 우리는 너무 많은 일을 ‘한국식’으로 처리해왔다. 이와 관련해 웃지 못할 에피소드 하나, 프리즈 서울의 공식 관람객 수는 약 7만 명이다. Kiaf 2022 역시 마찬가지. 이 숫자는 지난 5월에 열린 아트 부산 관람객 수인 10만 명에도 미치지 못한다. 왜? 프리즈 서울과 Kiaf 2022가 중복 관람까지 세는 ‘한국식 집계 방식’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식’으로 숫자를 세면 7만 명으로 집계된 페어 방문객이 23만 명으로 껑충 늘어난다. 16만. 프리즈 서울이 우리에게 남긴 건 이런 숫자의 차이만큼 존재하는 무엇일 테다. 물론, 프리즈 아트페어 주최측이 한국 미술계에 대체 어떤 기여를 할 생각인지, 혹은 애초에 그들에게 그렇게 해야 할 이유가 있는지는 또 다른 문제다. 아트페어란 결국 어떤 식으로든 거래를 발생시켜 수익을 거두는 것이 가장 중요한 행사이기 때문이다. – 박재용(독립 큐레이터)

 

손흥민은 어찌하여 뜨거운 주제였나?

월드컵이 처음으로 연말에 열린다. 그것도 선수들이 각 소속 팀에서 한창 시즌을 치르는 도중인 11월 21일부터 약 한 달간. 이번 카타르 월드컵에서 FIFA 랭킹 28위의 대한민국은 9위 포르투갈, 14위 우루과이, 61위 가나와 같은 H조인 가운데, 미국 스포츠매체 ESPN에서는 우루과이가 서운하게도 포르투갈과 한국이 16강에 오를 거라고 전망한 상태다. 안와골절 부상을 입은 손흥민이 황인범, 황희찬과 호흡을 맞춰 16강의 문을 열 수 있을까? 올해 손흥민은 한 시즌의 끝과 또 다른 시즌의 시작 지점에서 극과 극의 온도로 회자된 선수였다. 우선 손흥민이 이룬 중요한 쾌거는 프리미어리그(EPL) 득점왕 수상이다. EPL의 한 시즌은 매년 8월 시작해 이듬해 5월에 막을 내린다. 토트넘 홋스퍼 FC의 손흥민은 2021-2022 시즌 동안 35경기에 출장해 총 23점을 기록했고, 모하메드 살라라는 리버풀 선수와 공동 득점왕에 올랐다. 영국의 프리미어리그는 스페인의 프리메라리가, 이탈리아의 세리에 A, 독일의 분데스리가 등 전 세계 주요 축구 리그 중에서 여러 의미로 가장 ‘큰 판’ 이다. 한 시즌 통산 득점왕이 되었다는 건 선수 개인의 기량과 팀의 분위기, 거기에 경쟁자의 부진 같은 요소까지, 실력과 기세와 행운이 모두 따라야 가능한 일이다. 손흥민은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두 골을 넣으며 당시 득점 선두이던 살라와 동률을 이뤄냈으니 드라마까지 따른 경우다. 손흥민에 관한 갑론을박은 2022-2023 시즌이 개막한 후 한동안 그가 한 골도 넣지 못하면서 생겼다. 그가 아홉 번째 경기에 드디어 골 침묵을 벗어나고 심지어 해트트릭으로 휘몰아치자, 중계 중이던 여러 나라의 캐스터들은 각자의 언어로 환호하고 흥분했다. 잘나가는 선수가 조금 부진하면 크고 작은 창의적인 비난과 그에 맞서는 옹호가 불붙는 현상은 프로스포츠에서 자주 벌어지는 일이다. 손흥민의 경우 그에 관한 말이 끊임없이 생산되는 요인에는 토트넘 감독이 여러 차례 바뀌었다는 점, 그가 세계 최상위 구단이라고 하긴 어려운 팀의 톱 선수이기 때문에 이적 문제나 ‘월드 클래스 자질’ 여부를 두고 담론의 타깃이 되기 좋다는 점, 실력뿐 아니라 인성이나 인간적 매력으로도 어필되는 캐릭터라는 점 등등이 있겠다. 여기에 일명 ‘손뽕’이라 불리는 조회수 효과 때문에 사실 확인되지 않은 소식을 양산하는 유튜버들의 행태가 더해, 손흥민과 관계된 모든 것을 다루는 각종 콘텐츠는 오늘도 끊임없이 생성되는 중이다.  – 권은경(<더블유> 피처 디렉터)

 

MBTI 열풍이 휩쓸고 간 자리는?

“저, 윤석열 후보의 MBTI는 ENFJ입니다. 찾아보니 정의로운 사회운동가라고 하네요. 역시 타고난 대통령감인가요? 같은 MBTI에 버락 오바마 님도 있네요.” 올해 1월 별안간 대선 주자의 입에서 MBTI 네 글자가 나왔을 때 체감했다. 2022년의 한국은 MBTI 공화국이라는 것을. 많은 심리학자들이 MBTI를 정교한 포춘 쿠키와 다름없다고 고개를 저을 때, 어느덧 한국에서는 알파벳 8글자로 조합하는 16가지 성격 유형 진단표가 타인을 판단하는 가장 그럴싸한 척도로 자리 잡고 있었다. 확실히 1940년대 카를 융의 이론을 바탕으로 고안했다는 MBTI는 태초 유행했던 별자리나 혈액형보다 제법 맞아떨어지고, 사주나 점보다는 퍽 과학적으로 보였다. 처음 만나는 사람 앞에서 스몰토크의 소재로 탁월했고, 자신의 취향을 입 아프게 나열하는 대신 MBTI를 밝혀 의사소통하는 것은 제법 효율적이었으며, 팬데믹으로 고립 상태가 지속되며 실존적 불안감에 휩싸인 누군가에게는 ‘나’란 어떤 사람인지 확인하게 만들어준다는 착각마저 제공했다. 하지만 사람을 마트의 진열품처럼 유형화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은 것에 대한 결과는? ‘과몰입’의 시대, 사람들은 웃자고만 MBTI를 소비하지 않았다. MBTI를 이용해 사람들의 코를 꿰어보려는 이들은 맞춤형 보험, 관광, 투자, 중매 상품을 쏟아냈고, 기업에선 입사지원서 항목에 MBTI를 필수로 기재하도록 하며 채용 과정에서 지원자를 걸러내는 허울 좋은 장치로 활용했다. 취준생들 사이 모 기업에서 모 유형을 채용한다는 신종 족보마저 떠돈다는 얘기가 나온 마당이니, 이쯤 되면 올 한 해 전 국민이 ‘MBTI 가스라이팅’을 당한 건 아닌가 싶다. 고작 심리학을 위시한 심리 테스트에 불과하지만 어쩌면 MBTI는 사람들을 16가지 틀 안에 가두며 ‘잘 팔리는’ 유형에 자신을 개조하도록 부추기는 것은 아닐지. 소설가 심너울의 단편 <어떻게 MBTI는 과학이 되었는가>는 “주민증록증에 MBTI를 새겨도 별문제 없을” 만큼 MBTI가 농담거리를 넘어 공공의 영역에서 활용되기 시작한 202X년의 사회를 배경으로 한다. ‘연봉 높은 MBTI 순위’, ‘성격 더러운 MBTI 순위’ 등의 게시글에 클릭하고 말았던 당신이라면 한 번쯤 책장을 넘겨보기를. – 전여울(<더블유> 피처 에디터)

PHOTOㅣJOSEPH JEONG

원소주가 전통주 시장에 쏘아 올린 공은?

올해 3월 박재범의 소주 브랜드 ‘원소주’가 론칭했고 과연 떠들썩했다. 정식 론칭에 앞서 2월 첫 오프라인 판매 당시 ‘1000명 오픈런’의 진기록을 세웠고, 출시 일주일 만에 초도 물량 20만 병이 완판됐으며, 급기야 빈 술병이 중고거래 사이트에 매물로 올라왔다. 제이지가 샴페인 ‘아르망 드 브리냑’을, 포스트 말론이 와인 ‘메종 넘버 나인’ 을 소유하는 것처럼 박재범은 2018년 ‘Soju’를 부르다 이제 정말 소주 회사의 대표가 됐다. 원소주가 처음 나왔을 무렵만 해도 ‘스타성이 곧 자질’인 술이라 여기는 시선이 없지 않았다. 기껏해야 잘나가는 스타의 부업인 줄로만 알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2021년 소주를 생산하기 위해 강원도 원주에 농업법인 ‘원스피리치’를 차리고 원주산 쌀 ‘토토미’만을 원재료로 사용하며 꽤나 본격적으로 시장에 접근한 분위기였다. 그 결과 원소주는 현행법상 ‘전통주’로 분류됐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이 지점이 전통주 신의 해묵은 논란을 재점화하는 불씨가 됐다. 전통주산업법상 국가 지정 장인이나 식품 명인이 만든 술인 ‘민속주’ 혹은 농업법인이 지역 농산물을 이용해 만든 술인 ‘지역특산주’만이 전통주로 분류된다. 이에 따르면 원주의 농업법인에서 원주산 쌀을 100% 사용하는 원소주는 ‘지역특산주’로 전통주에 해당하고, 60년 전통의 서울탁주제조협회에서 만들지만 수입산 쌀을 원료로 하는 ‘장수생막걸리’를 포함한 대부분의 막걸리는 전통주에 속하지 않는다. 법률상 전통주로 인정받으면 주세 50%를 감면받고 온라인 판매가 허용되기에, 전통주 지정 여부에 따라 시장의 판도는 크게 흔들리게 된다. 팬데믹 이후 ‘홈술’이 트렌드로 자리 잡으며 술 소비가 증가했고, 특히나 시장이 작아 출혈 경쟁이 심한 전통주 신에 하루아침에 원소주라는 ‘메기’가 등장한 상황, 원소주를 둘러싼 말의 잔치가 열렸다. 2009년 ‘전통주 복원’을 목표로 전통주산업법이 제정됐지만 전통과 거리가 먼 술이 혜택이 받고 있으며, 농업법인을 만들어 전통주로 인정받는 것은 사업적 노림수나 다름없다는 화살들. 결국 정부는 전통주 규정을 손보기로 했다. ‘원소주발’ 전통주 기준 논란은 과연 전통주 신을 어디로 데려갈 것인가. 현재 전통주산업법 개정안은 정기국회에 제출 예정이며 연내 개정을 목표로 하고 있다. – 전여울(<더블유> 피처 에디터)

 

여자 아이돌은 무엇을 노래했나?

2022년은 단연코 여성 아이돌의 해였다. 아이브에서 뉴진스에 이르는, ‘도대체 누구에게 신인상을 줘야 할지 모르겠다’는 한숨이 절로 나오는 화려한 신인 그룹 라인업에서 데뷔 15주년 맞이해 오랜만의 완전체 활동에 시동을 걸며 전 세계 K팝 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한 소녀시대와 카라까지. K팝은 일 년 내내 여성 그룹에 화제성과 인기 모두를 헌사했다. 여성 아이돌이 대중성 높은 건 언제나 그래온 일 아니냐고 딴지를 거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사람이다. 일명 ‘4세대 걸 그룹’을 중심으로 불고 있는 여성 아이돌의 인기는 기존의 걸 그룹 인기와는 궤를 달리한다. 부쩍 커진 팬덤의 규모도 규모지만, 무엇보다 달라진 건 이들이 노래와 무대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였다.
2020년을 전후해 등장한 여성 아이돌 노래에서 ‘나’를 빼면 논할 게 없다는 건 이미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다. 물론 여성 아이돌이 나를 부르짖은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내가 제일 잘나간다거나 난 다르다는 외침으로 새 시대의 슬로건이 된 곡은 이전에도 얼마든지 있었다. 다만 2022년의 여성 아이돌이 소환한 ‘나’ 속에는 각자의 서사를 바탕으로 한 구체적인 메시지가 하나같이 또렷했다. ‘나’를 중심에 둔 흐름의 선봉에 선 아이브의 노래는 나를 주창하는 것을 넘어 ‘나르시시즘’이라는 단어를 노랫말에 직접 넣어버리는 과감함이 돋보였다. 나를 끔찍이도 사랑하게 된 나를 지킬 수 있는 건 오직 나뿐인 현실 속에서, ‘나는 두려움이 없다(I’m Fearless)’라는 문장을 그룹명과 데뷔곡 모두에 사용한 르세라핌의 노래는 나를 나답게 지키기 위한 결기로 가득했다. 강해지고 싶다, 세상을 손에 넣고 싶다는 메시지를 데뷔 앨범의 인트로로 택한 이들은 나의 지난 커리어를 무시하지 말라며, 나는 빌어먹을 천사나 여신이 아니라며 세상에 가운뎃손가락을 올렸다.
돌려 말하는 법을 잊은 이들은 거침이 없었다. ‘Girls’라는 제목 아래 ‘일어나라 그대여’라는 선언으로 박차고 문을 연 에스파를 거쳐 (여자)아이들이 깃발을 휘날렸다. 지난해 내내 떠들썩했던 팀의 부침을 첫 정규앨범 타이틀로 ‘나는 죽지 않는다(I Never Die)’를 내세우며 단번에 잠재운 이들은 그로부터 6개월, ’내가 아닌 모습으로 사랑받을 바에는 나의 모습으로 미움받겠다’는 거대한 담론으로 돌아왔다. 상반기 내내 외친 ‘I’m a f**king Tomboy’란 외침은 전초전에 불과했다. 나라는 존재와 사랑에 대한 근원적 질문에서 시작된 ‘있는 그대로의 나’ 에 대한 추구는 시대와 국경을 뛰어넘어 비운의 스타 마릴린 먼로를 대표 아이콘으로 소환했다. 벌거벗은 나에게 지저분한 욕망을 투시하는 이들에게 벼락처럼 떨어진 건 단 한마디, ‘변태는 너야’였다. 지금껏 대중 속에 섞인 모든 여성이 느꼈지만 직접 말하진 못했던 바로 그 말이었다. 2022년을 대표하는 여성 아이돌은 피하지 않았다, 돌아보지 않았다. 그리고 그 자체로 온전히 사랑받았다. – 김윤하(대중음악 평론가)

 

제왕적 셰프 시대가 막을 내린 그 이후는?

코로나19라는 꿈을 꾸다 잠에서 깼더니 끓는 냄비를 집어 던지는 셰프가 도태되고 소믈리에의 공로가 존중받는 세상이 되어 있었다. 3년을 지나오는 동안 외식업계는 경천동지를 겪었다. 초기 영업 제한 등 큰 대미지를 입었던 만큼 회복 반동력도 그만큼 컸던 탓이다. 한편 ‘꼰대’가 살기 힘든 것은 동서고금의 진리다. 언제나 ‘젊은 것들’이 비상하다. 쳇바퀴 같은 헤게모니다. 낡은 요리사가 뒤안길로 사라지고 젊은 요리사가 밝은 광장을 차지한다. 이 자연의 섭리가 반복되는 한편 외식 산업의 피라미드 모양도 바뀌어 산업 권력이 거대한 머리에 집중돼 있다가 두툼한 몸통으로 옮겨갔다. 거대한 식당 산업이 작게 흩어졌다.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은 젊은 요리사들이 취업할 곳이 한동안 없었다. 호텔이나 파인다이닝 등 대기업 격인 회사에 취업했을 법한 젊은 요리사들을 고용할 능력이 다들 안 됐다. 다행히도 이들은 취포자가 되는 대신 어떻게든 작은 업장을 열었다. 와인바나 온갖 오마카세로 우르르 몰렸다. 파인과 캐주얼, 데일리 사이의 새로운 시장을 형성했다. 꽤 실용적이다. 맛도 근사하고 사진도 영상도 잘 나온다. 파워풀한 젊은 소비자들의 실사구시적 욕망과 상호 호환이 딱 됐다.
어차피 일어났을 변화다. 제왕적 셰프의 패권이 젊은 세대의 공정성 앞에 약화됐다. 앞선 세대의 셰프는 <파스타>의 이선균이고 고든 램지여도 괜찮았다. 하지만 이제 그 밑에서 능멸을 견뎌가며 박봉으로 살아내는 것은 레트로조차 되지 못한다. 독립을 위해 험한 꼴 참아가며 세월을 허비하지 않고 처음부터 독립을 선택해 재미있게 하고 싶은 일로 책임을 진다. 그래서 요즘 ‘젊은 것들’에겐 박수를 보내주고 싶다. 공정과 평등을 위해 세상을 다층적으로 보려 애쓰기 때문이다. 이선균 셰프나 고든 램지 셰프쯤 되는 악당들을 소비자가 외면하며 조용히 도태시키는 세상이 되었다. 서비스의 중요성이 학습되며 요리사가 식당의 모든 공을 차지하던 인식 또한 바뀌고 있다. 지난 10월 2023년 리스트를 발표한 ‘미쉐린 가이드’ 서울편은 올해 ‘소믈리에 어워드’를 신설했다. 안성재 셰프의 음식은 분명 빼어나고, 모수의 수장으로서 운용 능력 또한 굉장하다. 다만 그것만으로 모수가 2스타에서 3스타로 스텝업을 할 수 있었을까? 아니다. 미쉐린의 첫 ‘소믈리에 어워드’ 를 받은 김진범 소믈리에와 서비스팀이 가진 탁월함 또한 중요한 한 축을 담당했기 때문이다. 허울 좋은 빌런이 폐퇴하고 공로자 하나하나가 존중받을 수 있는 세상이 시작되었다. 멋지지 아니한가. – 이해림(푸드 칼럼니스트)

 

올해 가장 돋보인 드라마는?

1. tvN <작은 아씨들>

루이자 메이 올콧의 <작은 아씨들>을 변주한 작품 중, 좋은 의미에서, 가장 제정신이 아닌 각색작이 아닐까. 공포물, 복수극, 심리극, 사회극이 한데 뒤엉킨 이 하이브리드 드라마가 블루레이로 나온다면 어떤 장르 칸에 디스크를 꽂아야 하나. 하, 어렵다. 2022년 대한민국 시대정신이 돼버린 돈이라는 소재를 마라 맛으로 메다꽂는 박력도 상당했지만, 어디로 튈지 모르는 전개는 대담했다. A를 예상하면 B가 튀어나오고, B를 음미할라치면 이야기가 갑자기 C로 커브를 꺾는 식이었다. 그렇게 시청자는 작가 정서경과의 싸움에서 자주 졌다. 박찬욱 없어도 정서경은 정서경이었달까. <작은 아씨들>은 미디어가 비틀어놓은 여성 이미지를 재정립하는 드라마로서도 기억될 것이다. ‘예쁜 애 옆에 또 예쁜 애’는 이제 좀 식상하지 않나. <작은 아씨들>엔 ‘미친 여자 옆에 더 미친 여자’가 있었고, ‘욕망하는 여자 옆에 더 욕망하는 여자’가 있었다. 이토록 입체적인 여성 캐릭터들을 떼로 만나는 재미. 그러나 나는 이 드라마가 여성 캐릭터만 잘 그렸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징어 게임>이 세계 시장에 깃발을 휘날릴 때도 심드렁하게 바라본 위하준의 매력을 <작은 아씨들>을 보고, 마침내, 눈을 떴으니. – 정시우(영화 칼럼니스트)

2. JTBC <나의 해방일지>

내가 너무 버겁고 너는 너무 같잖아서 피로한 때가 누구에게나 있다. 말도 관계도 중노동이라는 염씨네 삼남매의 푸념에 대부분 동조하고 가끔은 진저리를 쳤다. 나에게서 출발해 나에게 귀결되는, 안으로 닫힌 자아의 징글징글함을 모르지 않아서다. 좀처럼 유순하게 남에게 스미지 못하는 사람들은 타인을 어떻게 만날까. 박해영 작가는 극적 화해나 사랑의 달성을 위해 쉽게 개인을 허물지 않았다. 나를 치열하게 소명하고, 나만큼 개별적인 당신을 인정하고, 나를 버리지 않은 채로 헌신하는 관계가 <나의 해방일지>에선 가능했다. 집과 지하주차장, 회사를 자동차로 이동하는 대개의 드라마들이 버리는 동선을 취하는 이야기는 지하철 출퇴근길 ‘나 구씨’라는 문자 메시지 한 줄에 심장이 뛰게 하고, 보통은 극화되지 못할 시간을 펼쳐 밥상에 오른 고구마 줄기 반찬까지 애틋하게 다뤘다. 바람에 날아간 모자를 주우러 날 듯이 점프하고 되돌아오는 남자를 보고 희열을 느낄 줄이야. 일반적인 플롯도 따르지 않고 변변한 사건도 없이 마음을 뒤흔든 기이하고 귀한 드라마였다.

3. TVING <몸값>

이충현 감독의 단편영화를 장편으로 확장한 전우성 감독의 <몸값>은 한순간의 늘어짐 없이 초장부터 대차게 밀고 나간다는 점에서 인상적이다. 이야기가 본격 전개되기 전 다른 분위기를 띠는 1화 초반부, 그러니까 지방의 한 모텔에 각자의 이유로 모인 사람들이 지진으로 무너진 건물 더미를 빠져나가기 위해 사투를 벌이기 전, 전종서와 진선규가 방에서 처음 만나는 오프닝 시퀀스마저 눈길을 붙든다. 회당 30분, 6회짜리 이야기는 원테이크 형식으로 촬영되어 ‘180분의 실제 상황’처럼 다가온다.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속을 모르겠고 꽤 ‘싸가지’도 없어 보이지만 똑똑하게 재난 상황을 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은 주영(전종서), 어떤 고난에 처해도 입만은 끊임없이 움직이며 떠들 인물인 형수(진선규), 아버지에게 장기밀매로 구한 신장을 바치겠다는 효심 혹은 집요함으로 순수한 광기를 키워가는 극렬(장률). 한정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는 단조롭기도 쉽지만, 건물의 지하에서 점차 위로, 결국 세상으로 탈출하려는 세 사람의 밀실 게임은 처음부터 끝까지 흥미진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