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곡동에 어둠이 깔리면 모습을 드러내는 작품 | 더블유 코리아 (W Korea)

에릭 오의 신작 ‘오리진’을 만날 수 있는 기회

2022-09-20T18:38:17+00:002022.09.20|FEATURE, 피플|

서울 강서구 마곡동 일대, 어둠이 깔리면 에릭 오의 신작 <오리진>이 모습을 드러낸다. 픽사 출신의 세계적 애니메이터이자 감독, 아티스트 에릭 오가 순환하는 존재의 여정을 담은 작품 <오리진>으로 한국 관객을 맞는다.

재킷은 질 샌더 by 매치스패션, 터틀넥 톱과 팬츠는 프라다 제품.
스타일리스트 | 김나현  헤어 | 권민영  메이크업 | 이효선

8분 44초에 담은 인류사. 지난해 열린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단편 애니메이션 부문에 노미네이트된 에릭 오의 <오페라>는 이렇게 설명할 수 있다. 피라미드 구조의 건물, 총 24개 방에선 ‘졸라맨’처럼 단순한 형상으로 그려진 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인다. 피라미드의 최상위엔 군주로 보이는 이가 자리하고, 그 옆에선 역사가가 구불구불한 두루마리에 문명의 사건을 바삐 기록하고 있다. 한쪽 구석에서 장례식이 펼쳐지는가 하면, 다른 쪽에선 결혼식과 아이의 탄생이 그려진다. 그렇게 인종차별, 테러리즘, 종교, 전쟁, 교육 등 인류의 모든 사건과 시간은 명백한 대칭 구조의 피라미드 안에서 계속해 순환한다. 한국계 미국인으로 2010년 세계적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픽사’에 입사해 영화 <인사이드 아웃>, <도리를 찾아서> 등 대작에 크루로 참여한 에릭 오가 총감독을 맡아 2020년 제작한 <오페라>는 완성까지 총 4년이 걸렸다. 에릭 오가 <오페라>를 처음 구상한 때는 2017년. 그는 당시를 그 어느 해보다 ‘분열적’이었던 해로 기억한다. 한국에선 헌정사상 최초로 대통령 탄핵안이 인용되고,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였던 도널드 트럼프가 이변을 일으키며 대통령으로 당선된 해. 이듬해 프랑스에선 유류세 인상에 반대하며 일어났던 ‘노란 조끼 시위’가 대규모 반정부 시위로 확산됐고, 세계 곳곳에선 아시아계 증오 범죄를 포함한 인종차별 사건이 날로 증가했다. 정치색을 떠나, 에릭 오는 이러한 질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과연 역사는 진보하는가, 아니면 반복될 뿐인가?’ 기술과 문명은 날로 진보하지만, 도돌이표처럼 반복되는 비극과 인류사. 이렇듯 거시적 주제를 아주 구체적인 묘사를 통해 담아낸 <오페라>는 결국 아카데미의 부름을 받았다.

올해 에릭 오는 <오페라>의 프리퀄 <오리진>을 서울 마곡동에 자리한 미술관 ‘스페이스K’에서 전 세계 최초 상영한다. 오는 12월 2일까지, 마곡동 일대에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면 11m를 훌쩍 넘기는 미술관 외벽 파사드에 애니메이션과 미디어아트의 교집합을 그린 작품 <오리진>이 모습을 드러낸다. 총 5분 내외 러닝타임의 <오리진>은 영상 속 두둥실 떠오른 동그란 물체가 균열하며 시작된다. 시간이 흐르며 점차 구체에 작은 구멍이 나기 시작하고, 그곳을 통해 검은 액체가 눈물처럼 흐르다, 일순 구체가 어둠으로 뒤덮인 후 이윽고 빛을 내며 꽃의 형상으로 변화하는 흐름. 자아의 탄생, 변화와 성장, 부패와 소멸 등으로 읽을 수 있는 추상적 화면은 무한 루프로 재생되며 이야기의 시작과 끝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에릭 오는 이렇듯 순환하는 대상의 면면을 함축적으로 시각화하며 ‘존재의 여정’을 그린다. 전작 <오페라>가 구체적 묘사의 구상화라면, 신작 <오리진>은 은유로 가득한 추상화. 또 <오페라>가 사회, 노동, 자본, 구조를 상징하는 도상으로 가득한 언어적 작품이라면, <오리진>은 존재의 영적인 여정을 형상화한 비언어적 작품이다. 한편 ‘기원’이라는 뜻의 야심 찬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신작 <오리진>은 ‘아티스트 에릭 오’의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2010년부터 7년간 픽사에서 애니메이터로 종횡무진으로 활약한 그는, 퇴사 후 2017년 10부작의 TV 시리즈 <댐 키퍼: 피그 이야기>를 제작하며 총감독으로 나아갔고, 작년 VR 애니메이션 <나무> 등을 제작하며 필름, 애니메이션, VR 산업을 오가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전개하고 있다. 그리고 올해 마침내 공개하는 신작 <오리진>을 통해선 컨템퍼러리 아트 신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마곡동에 <오리진>이 두둥실 떠오른 어느 가을밤, 에릭 오를 만났다.

오는 12월 2일까지 마곡동에 위치한 스페이스K에서 상영되는 에릭 오의 신작 ‘오리진’.

<W Korea> 올해 12월 2일까지 신작 <오리진>을 스페이스K 외벽 파사드에 상영한다. 작품을 야외에서 상영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지 않나? 

에릭 오 맞다. 지난 10년간 영화제에서 작품을 소개해왔는데 이번처럼 야외에, 그것도 건물 외벽에 작품을 상영하는 건 처음이다. 그런데 아웃도어 프로젝션만의 맛이 또 있는 것 같다. 언제 한번 테스트 스크리닝차 멀리서 작품을 본 적이 있는데 확실히 어떤 희열이 있었다. 시커먼 밤하늘에 작품이 두둥실 떠 있는 듯한 느낌도 들고. 물론 심야 상영이라 소음이나 광량 문제로 주민 민원이 들어오지 않을까 눈치 봐야 하는 난관도 있었지만(웃음).

 

야외 상영작이라 작업 시 특별히 주의한 점이 있었나?

다른 것보다 작품이 시간성에 구애받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관객이 암전된 극장에서 작품을 관람하는 게 아니라 길을 걷다 우연히 마주칠 수밖에 없기 때문에 1초를 봐도, 1시간을 봐도 무방한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작품이 일반적인 기승전결식 내러티브를 따르지 않고 처음과 끝이 동일한 순환적 구조를 띤다. 게다가 무한 루프로 영상을 재생해서 정말 관객에게 스스로 원하는 시간만큼 작품을 관람하는 ‘컨트롤’의 키를 주고 싶었다.

 

작품이 상영되는 장소도 특별할 것 같다. 스페이스K가 있는 마곡동은 롯데, 코오롱 등 다양한 기업의 R&D 센터가 둥지를 튼 국내 최대의 민간 연구개발 단지다. 좀처럼 예술을 만나볼 수 없던 과학 산업 단지에 <오리진>이 상영되며 의외의 풍경을 만들어낼 것 같다.

오, 정말. 듣고 보니 그렇다. 그런데 과학과 예술은 결국 진리를 탐구하고 증명하고 질문하는 프로세스라는 점에서 동일하다고 느껴진다. 사실 아버지도 과학자시다. 카이스트 기계공학과 교수이고, 평창올림픽에서 성화 봉송 주자로 나선 인간형 로봇 ‘휴보’를 개발하셨다. 가까이서 아버지를 보며 느낀 건 그만큼 크리에이티브한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다. 과학자인 아버지, 예술가인 내가 서로 표현하는 방법은 다를지 몰라도 본질에 있어서는 같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많은 과학자가 거주하는 마곡동에서 작품을 선보일 수 있어서 개인적으로 기대된다. 어떤 피드백이 올지도 기다리고 있다.

 

‘휴보의 아버지’인 오준호 교수가 당신의 아버지인 줄은 몰랐다(웃음).

하하. 사람들이 우스갯소리로 묻곤 한다. 과학자인 아버지가 내가 그림 그린다고 했을 때 반대 안 했냐고. 그런데 아버지도 젊은 시절 당신이 좋아하는 것에 미쳐 있던 사람이라…. 그런데 보아하니 아들인 나도 그와 비슷하게 뭐 하나에 미쳐 있던 거지, 바로 그림에(웃음).

<오리진>은 지난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단편 애니메이션 부문에 노미네이트된 <오페라>의 프리퀄 연작이다. 두 작품이 서로 연결되는 지점은 무엇인가?

사실 4~5년 전 두 작품을 같이 기획했다. <오페라>를 만드는 마음과 <오리진>을 만드는 마음이 같았던 거다. 한 가지 키워드에서 파생한 작품들인데, 그게 바로 ‘존재론적 위기(Existential Crisis)’였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고 있는가. 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작품들이다. 지금으로 말할 것 같으면 희망을 잃기 쉬운 시대이지 않나. 여러 사회적 문제, 팬데믹 등으로 많은 것이 붕괴했고, 그러면서 사람들 사이 집단적 우울감이 생겨났다. 몇 년 사이 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대답을 찾기 어려운 시대가 되어버렸다. <오페라>가 인류의 역사, 사회, 정치 등 우리가 아주 구체적으로 느끼는 피지컬 리얼리티를 말한 작품이었다면, <오리진>을 통해선 문명이 시작되기 이전의 ‘영적인’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 그래서 <오리진>에선 삶과 죽음을 말하고, 그것들이 사이클을 이뤄 순환하는 구조를 띤다. 표현도 굉장히 추상적이다. 영상 속 이미지들은 아주 먼 우주를 형상화한 것 같기도, 모세혈관을 묘사한 것 같기도 하다. 어쩌면 거시세계 같기도, 미시세계 같기도 한 셈이다. <오리진>은 마치 추상 작품처럼 해석의 여지를 확 열어서 관객이 수많은 레이어를 발견할 수 있도록 한 작품이다.

 

<오리진>은 동그란 물체가 균열되며 영상이 시작된다. 이후 구체가 어둠으로 뒤덮이다 빛을 내며 꽃의 형상으로 변화하는 흐름을 가진다. 어떤 내러티브를 표현하고 싶었나?

마치 알을 깨고 무언가가 나오는 것처럼, 구체가 균열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여기선 빅뱅을, 탄생을 표현하고 싶었다. 기나긴 영겁의 흐름 속에서 삶이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어쩌면 죽어 있는 상태가 더 자연스럽고 삶이 파생되는 것은 굉장히 기이한 순간이라고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러니까 우리의 삶은 순간 갑자기 탄생했다가, 다시 죽음으로 ‘돌아가는’ 것 같다. 영상이 재생되다 어느 순간 구체에 두 개의 구멍이 생기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점점 더 많은 구멍이 구체에 나기 시작한다. 욕망이라 읽을 수 있는 구멍이 늘어가면서 구체는 썩어 문드러지고, 병들어가는 듯 보인다. 그러다 비가 솨 내리며 카타르시스의 순간이 찾아오는데, 어쩌면 이건 변태 과정인 거다. 그러다 구체는 단단하게 얼어 굳고, 비로소 꽃을 피운다. 그런데 꽃을 피우는 과정에서 묘한 분위기의 음악이 고조된다. 관객은 이때 ‘아름다운 거야, 징그러운 거야?’ 하는 알 수 없는 모호한 기분에 빠질 거다. 그러다 일순 꽃에 찬란한 색감이 돋아나면서 갑자기 분위기가 렙업되는 지점이 나타난다. 이때부턴 누가 봐도 아름다운 구간이 1분 정도 지속되는데, 사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여기서 나타난다. ‘그래도 괜찮아’라는 메시지. 네가 무슨 고통을 겪었든 우리는 아름다운 존재야, 하는.

 

그런데 영상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다시 환각 비슷한 증세로 빠진다.

맞다. 그때부터 또 이상해진다(웃음). 갑자기 뿌연 빛이 퍼져 나오면서 과잉, 폭발의 지경에 치닫는데 어쩌면 이건 육신이 사라지는 과정이다. 우리가 살면서 얻은 삶의 지혜로도, 죄악으로도 해석할 수 있는 찬란한 색감들이 모두 사라지면서 다시 화면은 흑백으로 전환하고 이야기는 처음 시작으로 돌아간다. 자아의 탄생, 변화와 성장, 부패와 소멸, 승화로 이어지는 우리란 존재의 여정을 말하고 싶었다.

 

<오리진>, <오페라>는 모두 삶과 죽음, 존재 이유 등 인류 공통의 보편적 질문을 통찰하는 작품이다. 늘 이러한 주제를 작품의 출발점으로 삼는 이유가 있나?

올해로 딱 서른여덟이 됐다. 젊다면 젊고, 그렇다고 마냥 어리지도 않은 나이다. 돌이켜보면 확실히 20대에는 주체가 개인이었다. ‘나’가 중요했고 ‘나’가 누구인지 알아야 했던 시절이다. 그래서 나로서 살기 위해 발버둥치고 나에 대해 들어가는 작업이 많았는데, 서른을 넘기면서부터 사회가 보이기 시작한 것 같다. 그때부터 확실히 표현이 사회적인 것, 집단에 대한 이야기, 관계에 대한 이야기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그게 격렬하게 폭발한 게 <오페라>란 작품이었고. 그런데 요즘 들어선 우주, 자연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 같다. 아마 이러한 변화의 시발점에 있는 작품으로 <오리진>이란 작품이 나온 듯하고, 지금 준비하고 있는 장편 애니메이션도 우주와 자연을 말하는 작업이 될 것 같다.

 

방금 말한 차기작에 대해 간략히 귀띔해줄 수 있나?

전형적인 패밀리 애니메이션 무비를 준비하고 있다. 누가 봐도 픽사, 디즈니, 미야자키 하야오풍 영화가 될 거다. 남녀노소 즐길 수 있는 캐릭터 기반의 스토리텔링. 그런데 주제는 <오페라>, <오리진>과 동일하다. 존재론적 위기를 다루는데, 아무래도 패밀리 무비다 보니 그래도 좀 훈훈하게 갈 거다(웃음). 또 기후 위기 이야기도 담길 것 같다. 파괴된 자연환경에서 인류는 어떻게 살아가느냐를 다루는데, 대단히 판타지적으로 갈 생각이다.

 

패밀리 무비 같은 전형적인 상업 작품과 <오리진> 같은 파인아트 작품을 동시에 진행 중이다. 전혀 다른 두 장르를 오가며 작업 중인데, 작업 시 균형을 잡기 쉽지 않을 것 같다.

쉽지 않지. 그런데 나는 픽사에 재직했을 당시에도 개인 작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보통 영화 산업은 가을에서 봄까지가 무척 바쁘다. 주로 여름에 작품을 개봉하니까. 그럼 봄 이후 3개월 정도는 릴랙스한 시간이 주어지는 거다. 나는 그때 틈틈이 개인 작업을 해서 1년에 한 작품씩은 꼭 만들었다. 그걸 또 픽사 동료들이 모인 자리에서 스크리닝하고. 돌이키면 난 어딜 가나 괴짜였다. 사내에서도 유명했다. 에릭은 늘 혼자 사부작사부작 뭔가를 하는 애, 그래서 언젠가는 나갈 놈 (웃음). 픽사에서 7년 동안 일하다 퇴사한다 했을 때도 동료들이 말했다. ‘너 오래 버텼다. 네가 3년 만에 관둘 줄 알았어(웃음).’ 그런데 나는 오히려 개인 작업을 하지 않으면 죽을 것만 같았다. 이걸 안 하면 죽을 것 같으니까, 살기 위해 한 거다. 그러면서 상업 작품과, 그와는 180도 다른 순수한 개인 작업 사이의 균형이 자연스럽게 맞춰졌던 것 같다.

 

세계적인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서 활약하다 독립 후 총감독으로 제작한 작품이 아카데미의 부름을 받았다. 그리고 이제 파인아트 신에도 진출하고 있다. 당신을 보며 꿈을 키우는 애니메이터가 많을 것 같은데, 그런 당신은 누구를 보며 꿈을 키웠나?

태어나 가장 처음 본 애니메이션이 디즈니의 <미녀와 야수>였다. 비디오테이프를 플레이어에 넣으면 영화 시작 전 인트로에 디즈니의 애니메이터들이 나왔다. 그걸 보면서 흥분했던 애가 그대로 어른이 된 거다. 크면서는 미야자키 하야오를 좋아했고, 애니메이션에 나올 법한 기발한 상상력을 회화로 표현하는 살바도르 달리를 동경했다. ‘그림을 그리고 싶다’ 는 마음을 안겨준 모든 이가 내 꿈을 키우게 해준 이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