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호의 첫 사진 에세이, <포토 랭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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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라는 매체를 둘러싼 근원적인 즐거움을 일깨워주는 책이 나왔다.

하나의 이미지는 한 때 무언가를 누군가가 어떻게 본 적이 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탁월한 사진가라면 사진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어디까지 담을 수 있을까? 6월 15일 (주)몽스북에서 출간한 <포토 랭귀지(Photo Language)>는 그 물음에 대한 근사한 답이다. 이 책은 긴 세월 사진가로 종횡무진한 김용호의 첫 사진 에세이다. 김용호는 한국의 대표적인 광고 사진가이자 패션 사진가이면서 상업 광고 사진으로 갤러리 전시를 하는, 커머셜과 아트의 개념을 한 차원으로 포개 놓은 인물이다. 그는 사진을 찍으면서 광고 디자이너 겸 아트 디렉터의 역할을 하고(커머셜 작업을 하는 국내 사진가 중에서 이 다중 캐릭터를 소화할 줄 아는 이는 의외로 많지 않다), 한편으로는 작가로서 꾸준히 개인 작업을 추진한다. 백남준, 박서보, 김남조, 정명훈, 황병기 등 명인 28명의 초상을 담은 ‘한국문화예술명인’ 프로젝트를 비롯해 물 속에 몸을 반쯤 담그고 물 밖 세상을 올려다보는 시선으로 연잎을 촬영한 ‘피안’, 품격과 새로움을 갖춘 에로티시즘을 표현한 ‘몸 mom’ 등의 작품까지, 흥미로운 개인 작업들은 김용호를 확실히 ‘커머셜’의 범주로만 논할 수 없게 만든다. 20세기 모더니스트를 향한 애정과 현대 사회의 평범한 중년 남성들에 대한 존중을 담아 ‘모던 보이’라는 아트 토이를 제작하기도 한 김용호다. 그 자신도 워낙 다양한 장르의 작업을 하다 보니 무엇이 ‘나’인지 스스로 설명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김용호는 하나의 장르로 정의할 수 없는 다양성이 바로 자신이라고 생각하면서, 그 ‘다양성’에 대한 정리를 하고자 첫 작품집인 <포토 랭귀지>를 완성했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어째서 김용호가 포착한 결과물에는 여운이 감도는 걸까? 이 책에서 풍부한 사진들과 더불어 적절한 비율로 흐르는 글을 읽으면, 그 여운은 김용호식 스토리텔링에서 비롯됐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스토리텔링은 그가 작업의 완성도를 높이는 과정에서 찾은 표현법이다. 근사한 사진 한 컷이 품은 메시지가, 혹은 사진과 사진이 모여 만들어내는 이야기가 주제와 장르에 따라 어떻게 완성되는지, <포토 랭귀지>는 다정하게 말해준다. ‘나는 사진가로서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왜 여기에 있는가?’ 톨스토이처럼 자신에게 끊임없이 물으며 산다는 예술가. 김용호가 <포토 랭귀지>에서 프레임 너머의 사진을 이야기했듯이, <더블유> 8월호에서는 김용호 인터뷰를 통해 <포토 랭귀지> 너머의 더 많은 이야기를 소개할 예정이다.

다음은 <포토 랭귀지>에 등장하는 몇 대목이다.

“새로운 신용카드 출시를 앞두고 현대카드가 광고 이미지 작업을 의뢰했다. 현대카드는 유료 신용카드를 출시한다고 했다. 연회비 개념이 아니다. 플레이트에 디자인과 패션 요소를 더해 소비자가 카드 자체를 구입하도록 만들 계획이었다. (중략) 이 작업은 콘티나 시안 없이 준비한 소품을 이리저리 배치해 가며 즉흥적으로 진행했다. 누군가 당시의 나를 봤다면 ‘사진 참 쉽게 찍는다’고 말할 정도로 쉴 새 없이 셔터를 눌렀다. 하지만 ‘우아한 인생’ 시리즈는 철저하게 계산하고 치밀하게 연출한 ‘메이킹 포토’다. 메이킹 포토임에도 실제 파티 현장에서 촬영한 듯 자연스러운 느낌을 주는 것이 ‘우아한 인생’ 시리즈의 차별화된 지점이다.  – ‘우아한 인생’ 중

이어령 선생님의 마지막 직전을 촬영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한민국 문화예술에 지대한 공을 세운 선생님의 마지막 시간들과, 그의 인간적인 면모와 마주하고 싶었다. (중략) 한 인물을 탐구하고자 초상을 촬영하면 보통 그 사람이 살아온 흔적을 설명하기 위해 어떤 물건이나 행동이 함께 따라오기 마련이다. 그림을 그리고 있는 화가, 막걸리를 마시거나 담배를 입에 문 시인과 소설가의 사진… 그러한 방식도 좋지만, 나는 있는 그대로의 얼굴이 이미 그 자신의 모든 것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선생님을 둘러싼 주변에 검정 배경을 치고 모두 차단시켰다. – ‘목전심후, 모던 보이와 함께한 오후들’ 중

<한국문화예술명인>전을 마친 뒤 매거진 <더블유 코리아>로부터 세계 속에서 대한민국의 위상을 빛낸 인물들을 사진으로 담아달라는 요청이 왔다. (중략) 가장 기억에 남는 인터뷰이는 발레리노 김용걸이다.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파리 오페라발레단에 입단한 그와 만나기로 한 약속 장소는 트로카데로 광장 맞은편, 에펠탑이 잘 보이는 곳이었다. 발레 동작을 취해 달라고 요청하자 그는 “발레리노는 무대 위에서 춤을 추지, 이렇게 많은 관광객들 사이에서 동작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것은 현대 무용의 영역이라고 덧붙이면서. 나는 “세상은 변화하고, 형식은 파괴되고 있다. 그러니 시도해 보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했다. – ‘비욘드 더 월 beyond the wall’ 중

‘피안’은 2011년 전시를 통해 처음 공개했다. 거대한 연잎 아래서 각자의 피안을 만나기를 바랐다. 현각 스님은 작가의 시선으로 작품을 만나고 싶다면서 전시장 바닥에 눕다시피 몸을 낮추고 같은 자세로 한참 동안 있었다. 그 후로 작품 앞에 요가 매트를 가져다 뒀다. ‘피안’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은 관람객들도 요가 매트 위에 누워 감상하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작품 앞에 머무는 시간도 늘어났다. – ‘피안’ 중

<객석>의 표지 모델은 대부분 음악가나 무용가다. 공통적으로 말이 없다. 작품을 설명할 때를 제외하고는 대화가 많이 오가지 않는 편이다. 전문 모델이 아니기 때문에 약간의 연출이 필요한데, 나의 주문 역시 추상적이다. 주로 “연주할 때의 느낌이나 공연할 때의 느낌을 표현해 달라”고 요청한다. 피아니스트 조성진에게는 피아노가 없지만 허공에 피아노가 있다고 상상하면서 좋아하는 곡을 연주해 달라고 했고, 발레리노 김용걸과 현대무용가 김설진에게는 극 중의 두 사람의 관계성을 연상하면서 춤을 춰달라고 했다. – ‘예술가를 위한 객석’ 중

피처 에디터
권은경
포토그래퍼
박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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