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사적인 찰나의 감정을 그림에 담아내는 여성 작가 5 | 더블유 코리아 (W Korea)

찰나의 감정을 담는 여성 작가 5인

2022-06-24T17:08:47+00:002022.04.28|FEATURE, 컬처|

봄 햇살에 달궈진 아스팔트 위로 아지랑이가 아른아른 피어오른다. 자고로 봄이란 어지럽고 나른한 아지랑이와도 같은 것. 봄에 취한 채, 여인을 그린 그림들을 꺼내 본다. 여성의 욕망, 섹슈얼리티, 지극히 사적인 찰나의 감정을 그림에 담아내는 여성 작가 다섯. 

김민희 
여귀(女鬼)는 트로피컬 무드를 사랑해 

<W Korea> 2020년 아웃사이트에서 진행한 전시 <고스트 비키니>를 흥미롭게 봤다. 당시 여성 귀신인 ‘여귀( 女鬼)’를 재해석한 작업을 선보였는데, 여귀에 주목한 계기가 있었나?

김민희 큰 틀에서는 역사화된 존재로서의 ‘여성’ 전반을 조명해보고 싶었다. 특히 설화와 미디어가 만들어낸 ‘여귀’의 전형에 의문을 갖고 한에 가려진 그녀들의 억압된 욕망을 재해석해보았다. 왜, 여귀를 표현하는 상투적인 클리셰가 있지 않나. 하얀 소복에 휘날리는 긴 머리라든가 피가 철철 묻은 소복이라든가. 과거부터 내려온 오랜 편견이 여귀들에게 일종의 억압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야자수가 드리운 바닷가 등 트로피컬한 무드의 장소에 빨간 비키니를 입고 물놀이를 즐기는 여귀들을 탄생시키고자 했다.

 

당시 전시된 작품 중 초록빛 눈물을 뚝뚝 흘리며 묘하게 웃는 여성을 그린 ‘개구리요정’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어떤 맥락을 품은 작품인가?

일단 <고스트 비키니>에서는 관객이 화면 안에서 특정 서사를 감지할 수 있는 이미지보다 그런 부분을 가급적 탈각시킨 이미지를 지향했다. 여귀라는 존재에 대한 사회적 통념이나 작품 속 그들의 모습과 행위, 작품 제목 등 여러 요소들이 서로를 배반하면서 관객이 갖는 여귀의 이미지를 어떤 불확실성 쪽으로 유도했다. 수영복 차림으로 배시시 웃으며 뜻 모를 초록 눈물을 흘리는 ‘개구리요정’은 그런 의도가 집약된 그림이라고 할 수 있다.

 

언뜻 일본 ‘아니메’와 표현 방식이 유사하다는 감상이 스친다.

평소 1980~90년대 셀 애니메이션의 표현 방식에서 많은 영감을 얻는다. <고스트 비키니> 역시 애니메이션 특유의 저해상도 질감을 회화에 담아보려고 한 작품들이다. 날것의 느낌을 더 강하게 주기 위해 바니시 마감 처리도 배제했고. 셀 애니메이션의 이분법 명암 처리에서도 영향을 받아 비슷한 방식으로 화면을 채색했다. 또 빨간 비키니를 입은 여귀를 그린 ‘하이? 빠이!’ 같은 경우 구글 포토의 기능을 응용했는데, 이 또한 셀 애니메이션의 제작 방식과 통하는 바가 있다고 생각한다.

 

작년 실린더에서 개인전 <이미지 앨범>을 개최했다. 1980년대 아니메, 망가에 등장하는 여성들에게서 ‘동시대적 설정’을 포착해내는 작업이었다.

전시의 시작점은 무엇이었나? VR 기술로 만들어진 아이돌이지만 비판적 자의식을 가진 여성, 사이버펑크 세계의 정의로운 스케반(スケバン, 불량한 행동을 하는 소녀)인 여성, 스스로 광합성이 가능해 다른 개체를 먹지 않는 외계인 여성 등등. 전시에서 소환시키고자 한 여성 캐릭터들의 면면이다. 모두 미래를 담지하고 있지만, 자신이 등장하는 작품이 만들어진 1980년대라는 현실의 제약으로 인해 자신들의 특징이 가시화될 수 없었던 캐릭터들이다. 1980년대 기준으로는 미래인 세계를 사는 지금의 관객들이 그러한 공백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채워보길 바라며 전시를 준비했다.

 

끊임없이 화면 속으로 ‘여성’을 소환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내가 여성인 만큼 의식하지 않아도 항상 작업에 자연스레 반영되는 부분도 있겠고, 결국 우리가 끊임없이 말하는 ‘여성’이라는 건 하나의 불가피한 현실이라고 생각한다. 형식, 내용 면에서 줄곧 유지해왔고 앞으로도 유지하고 싶은 작업적 관심사 중 하나는, 여성이라는 관념 자체가 무엇일 수 있을지를 질문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수정
조용하고도 폭발적으로 약동하는 여인들

<W Korea> 지난해 에이라운지에서 전시 <봄 봄 파우더>를 진행했다. 봄과 여성을 연결 지은 전시였는데, 시작점은 무엇이었나?

정수정 전시에서 말하는 ‘봄’은 계절의 하나인 봄(Spring)일 수도 있고 ‘보다’란 의미의 봄(Seeing)이기도 하다. 추운 겨울이 지나고 새로운 생명이 돋아나는 시기의 설렘과 불안이 공존하는, 알 수 없는 예민한 감정에 사로잡힌 여성들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 독립된 화면 안에서 이들은 자유롭게 춤을 추기도 하고 견고하게 존재한다. 또 그림 속 여성들은 관객의 눈을 바라보고 시선을 교환한다. 강압적인 시선으로부터 벗어나 부드럽고 평등한 눈 맞춤으로 따뜻하고 온화한 기운을 전하고 싶었다.

 

그림 속 여성의 이미지는 SNS, 검색 엔진, 영화 등에서 수집했다 들었다. 그림으로 소환된 여성들 사이에는 어떠한 교집합이 있나?

이전까지는 건강하고 단련된 여성의 몸 자체에 관심을 가졌다면 <봄 봄 파우더>에선 그림 속 여성들에게 그들의 성격을 드러낼 수 있는 옷을 입혀주고 싶었다. 예를 들어 작품 ‘여중생’ 속 의상은 내가 학창 시절 입은 교복인데, 작품에 그때의 뾰족한 감정과 파괴적인 순수함을 잃고 싶지 않은 집착이 고스란히 담기게 됐다. 이 외에도 다양한 영상 매체를 통해 패션, 화장법 등을 리서치했는데, 특히 과거 신분을 드러내는 불편한 의상, 장신구를 참고했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사람들 간의 관계, 감정, 권력, 지위 등 평등과 불평등 사이에서 혼란을 겪는 여성의 얼굴과 이를 익살스럽게 넘겨버리고 싶은 회피의 얼굴 등 여러 상태의 초상을 그리고 싶었다.

 

당신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화면 너머로 약동하는 ‘운동성’, ‘생명력’이 아닐까 싶다. 화면으로 사춘기 소녀를 자주 소환한다는 것도 어쩌면 이와 맥락을 같이할 것 같다. 이러한 동적인 에너지에 주목하는 이유가 있나? 

내적, 외적으로 드러나는 생명력에 관심이 많다. 그것은 작품에서 느리게 피어오르기도 하고 폭발적으로 과격하게 분출되기도 한다. 점프하는 소녀, 춤추는 여성 등 인체의 움직임을 통해 적극적으로 운동성을 표현하기도 하고, 비어 있는 눈동자를 통해 작게 요동치는 불안한 심리를 드러내기도 한다. 그런 이유로 자신의 몸과 마음이 친하지 않고 어색했던 사춘기 시절을 자주 떠올리고 다양한 소녀를 작품에 불러오는 것 같다.

 

당신이 끊임없이 화면 속으로 ‘여성’을 소환해내는 이유는 무엇인가?

어린 시절 여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만화에서 감명을 받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씩씩하고 주도적인 여성을 그릴 때, 왠지 나 역시 용기를 얻게 되는 것 같다.

 

미키 김
기기묘묘한 만화책의 한 장면과도 같은

<W Korea> 작품에서 사용하는 색감, 선의 스타일을 보면 일본의 풍속화 ‘우키요에’가 떠오른다. 섹슈얼리티를 과감히 표현한다는 점에선 일본 에로티시즘의 대부로 알려진 작가 사에키 토시오도 스친다. 당신의 작업에 영감을 준 요소들에 대해 말해줄 수 있나?

미키 김 어렸을 때부터 일본 문화와 예술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다. 초등학생 시절부터 우타다 히카루의 음악을 듣고, 이와이 쏫지의 영화를 즐겨 봤으니까. 그림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는 일본 에도 시대 예술의 색감이나 표현 방식을 좋아하게 됐다. 다다노리 요쿠, 소라야마 하지메, 곤 사토시의 세계관이나 작품 스타일을 특히 아낀다. 만화적 색감과 요소, 현실감이 떨어지는 몽환적인 스토리라면 어김없이 좋아하는 편인 것 같다.

 

혀, 눈, 손, 발 등 여성 신체에 대한 표현이 작업에서 두드러진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어느 영화에서 한 쌍의 남녀가 차 뒷좌석에서 서로의 손을 포개고 깍지를 끼며 손가락이 엉켜지는 장면을 본 기억이 있다. 영화 속 그 어떤 장면보다 두 남녀가 느꼈을 야릇한 감정을 잘 전달하는 신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발바닥을 보는 것이 다 벗은 나체를 보는 것보다 더 많은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법이니까. 이처럼 특정 페티시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신체 부위를 주요 소재로 사용하며 그것에 감정이나 서사를 담으려 하는 편이다.

 

목판화와도 같은 그림의 질감이 돋보인다. 당신만의 언어로 ‘미키 김 그림의 질감’을 말해본다면?

18세기 일본 에도 시대 목판화의 느낌을 작업에 표현하려고 여러 작업 툴을 사용하며 실험을 이어가는 편이다. 1990년대 만화나 영화에 향수가 있는 사람이라 그 시대만의 쨍한 색감이라든지, 옛날 TV나 필름의 오래된 듯한 아날로그한 질감도 좋아한다. 내 그림의 질감은 이러한 취향의 결과물이지 않나 싶다.

 

당신이 끊임없이 화면 속으로 ‘여성’을 소환해내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때그때 내가 느낀 감정이나 기분을 그림으로 그린다. 그런 면에서 그림은 또 다른 나의 자아다. 그렇기에 그림 속 주인공이 여성인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람한
일상 밖, 현실 밖, 감각 밖의 여자들

<W Korea> 매끈한 얼음과도 같은 그림의 질감이 돋보인다. 당신의 언어로 ‘람한 그림의 질감’을 설명한다면?

람한 그림에서 질감을 표현할 때 일상에서 발견하기 어려운 물질을 떠올리곤 한다. 마치 생명이 있는 것처럼 꿈틀거릴 것만 같은 질감 말이다. 그래서 발효된 콩에서 나올 것만 같은 매우 가느다란 실이나 점액질을 그리기도 하고, 인체의 내장을 연상시키는 점막의 질감을 상상하기도 한다. 이런 질감들은 직접 보고 경험하지 않고 애니메이션, 영화, 게임을 통해 접한다. 우회적 경로를 통한 가상의 대상에게서 온 것인 경우가 많다. 이를테면 ‘게임 속 어떤 몬스터를 만지면 어떤 느낌일 것 같다’는 식으로 상상하면서.

 

2018년 사진가 렌 항을 추모하며 발매된 한 아트북에 당신의 작품 ‘Frogs’가 삽입됐다. 연꽃 위 나체의 여성이 있고, 그 너머 그녀를 관음하는 눈동자들이 있는 작품이다. 여기서 여성은 ‘욕망의 대상’이 될까, 혹은 그 정반대일까?

‘Frogs’는 렌 항의 ‘이상한 식물 II’를 오마주한 일러스트다. 인간의 신체를 인간 외의 생물과 차별 없이 다루려고 했던 렌 항의 작업관에서 착안한 것이기도 하다. 그는 누드를 누구나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 터부와 섹스, 쾌락에 대한 죄책감도 인간 세계의 윤리관 안에서만 작동할 뿐이니까. 연꽃 사이 숨겨진 눈빛들을 통해선 우리가 렌 항의 사진을 볼 때, 어쩔 수 없이 각자의 욕망을 투사한다는 점을 표현한 것이다. 개인적으로 여태 그의 사진을 에로틱하게 읽었던 적은 없다. 오히려 자연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그가 전하는 신체에 대한 사실적 감각과 그것을 피사체로 다루는 자유로운 태도에 더 공감했다면 모를까.

 

2020부산비엔날레의 출품작 ‘Case_01_01(독소)’에선 치아를 드러내고 기묘한 웃음을 지어 보이는 여성이 눈에 띈다. 여성의 왼쪽 눈은 점액질을 내뿜는 복어로 가려져 있다. 어떤 맥락의 작품인가? 

콜롬비아의 소설가 안드레스 솔라노의 부산비엔날레 출품작 ‘결국엔 우리 모두 호수에 던져진 돌이 되리라’와 쌍을 이루는 작업이다. 그림의 여성은 작품 속 희생된 여성 등장인물이다. 주인공이 아닌 단역에 가까운 역할인데, 여인은 유일하게 이야기 속에서 죽음을 담당함으로써 가장 강력한 속이야기를 내포하게 된다고 생각했다. 소설 속 여인의 사인은 복어독으로 인한 독살이었다. 복어조차도 이 작품에서는 살인 도구로 희생의 역을 맡는다. 희생된 두 제물을 짝지어 인위적으로 주연으로 승격시키려는 개인적인 시도였다고 할 수 있다.

 

언젠가 인터뷰에서 “물성적인 자극만으로도 구체적인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말을 했다. 이를 구체적으로 설명해줄 수 있나?

디지털 페인팅 작업을 이어갈수록 말초적인 감각을 구체화하는 기법에 관심이 간다. 사실 디지털 이미지는 무자극의 매체니까. 무색, 무미, 무취, 무감각의 영역. 그렇기에 내가 불러오려 하는 모든 감각 자체가 허상인데, 그 사실을 새길수록 감각들을 구체적으로 표현해야겠다는 의지가 강력해지는 것 같다.

 

당신이 끊임없이 화면 속으로 ‘여성’을 소환해내는 이유는 무엇인가?

여성을 그리는 것은 모국어로 대화하는 것과 같은 친숙함을 전해준다. 여성은 나 자신이고, 대상이고, 친구이고, 모르는 사람이다.

 

이목하
무해하게 저항하는, 나와 너의 20대

<W Korea> 당신의 대표적 연작 ‘밤과 후레쉬와 소녀들’, ‘곱게 자란 아이’에서는 공통적으로 당신과 비슷한 또래의 20대 여성이 등장한다. 두 연작의 시작점은 무엇이었나?

이목하 내 작업은 동시대 사람들이 가진 긴장과 불안을 이야기한다. 특히 ‘밤과 후레쉬와 소녀들’은 내가 가지고 있는 ‘타인에 대한 경계’에서 시작된 작업이다. 새로운 대상에게 갖는 긴장과 불안, 그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찰나의 순간 상대를 파악하고 자신의 태도를 정비하는 모습을 담고자 했다. 이 작업은 자전적 경험에서 시작되었다고 했지만, 사실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한 것 같다. 그래서 SNS에서 다수의 여성 사진을 수집해 이를 기반으로 작업을 이어갔다. ‘나’에게서 멀지 않은 보편적 인물 중, 내면의 긴장이나 불안이 불투명하게 드러나는 인상의 여성에게 연락을 취하고, 그들의 지극히 개인적인 사진을 자르고 재조합하며 작업을 구성한 연작이다.

 

특히 슬립을 입은 여성이 불안한 눈빛으로 화면 너머를 응시하는 작품 ‘내가, 내가 아닌 것처럼’은 언젠가 SNS에서 한 번쯤 봤을 법한 20대 여성의 전형을 담고 있는 듯하다. 어떤 맥락이 담긴 작품인가?

이 작품도 SNS에서 수집한 사진을 기반으로 그린 작업이었다. 당시 그림의 실제 모델이 자신의 사진을 SNS에 게재하며 ‘꿈에서 봤던 싸구려 인형처럼’이라는 코멘트를 함께 언급했는데, 이 한 문장이 어딘가 모르게 굉장히 끌렸다. 사사로운 연애사, 여성으로서의 방황, 관계 속에서 스스로 내리는 정의 등 내면적 고군분투가 오롯이 느껴져서. 다만 모델이 단순히 섹슈얼한 이미지로 소비될까 조심스러웠다. 그래서 작품 제목도 코멘트를 그대로 차용하려 했지만 지금의 ‘내가, 내가 아닌 것처럼’으로 순화한 기억이 있다.

 

평소 당신의 작업을 이야기할 때 ‘무해한 저항’이라는 말을 자주 꺼내더라. 작품에 ‘무해한 저항’을 담고자 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자신을 고찰하는 모든 시간, 그러니까 내면의 갈등을 타인에게 표출하지 않고 삼켜내어 고민하고 다듬는 혼자만의 고군분투를 ‘무해한 저항’이라고 여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새어 나오는 감정들을 포착해서 그리려고 하는 편이다. 불안에 적극적으로 대면하는 태도가 아닌, 내면에서 정적으로 애쓰는 소극적인 모습이다. 흔히 젊음은 파릇파릇하고, 뭔가를 성취하며, 생동감 넘치는 것으로 묘사되지만 내 젊음은 불안하고, 알 수 없고, 주저하며, 정적으로 늘어지는 무언가다. 젊음이 무기력한 고뇌의 시간이 되었다는 것은, 나를 비롯한 동시대의 젊음을 이야기할 수 있는 계기라고 생각한다.

 

당신이 끊임없이 화면 속으로 ‘여성’을 소환해내는 이유는 무엇인가?

‘나’이기 때문에, 온전히 이해하고 드러낼 수 있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물론 등장인물의 성별이나 나이와 같은 요소에 상관없이 여성을 비롯한 누구에게나 이해되고 가 닿을 수 있는 작품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