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호 커버를 장식한 펜싱 사브르 단체팀(김정환, 구본길, 김준호, 오상욱) 화보 풀 스토리 | 더블유 코리아 (W Korea)

#W올림픽 히어로즈_펜싱 사브르 [김정환, 구본길, 김준호, 오상욱]

2021-09-20T19:02:06+00:002021.09.21|FASHION, FEATURE, 피플, 화보|

The Story Never Ends 도쿄 올림픽의 막은 2021년 여름 내렸지만, 그 열기는 아직 채 식지 않았다. 모두를 넘어서 마침내 꼭대기에 오른 선수부터 당당한 ‘영 파워’를 보여준 선수, 아무도 주목하지 않을 때 자신이란 원석이 존재함을 증명해 보인 선수까지. <더블유>가 그라운드 밖에서 이들과 함께 특별한 레이스를 펼쳤다. 

#W올림픽 히어로즈_펜싱 사브르 
KIM JUNG HWAN ∙ GU BON GIL ∙ KIM JUN HO ∙ OH SANG UK 

유럽의 전유물이던 펜싱의 패권을 보란 듯 거머쥔 한국 펜싱 사브르 단체팀. 말을 타고 적을 찌르는 기병의 도검 ‘세이버’에서 유래한 종목답게 이들의 승리는 맹렬하고도 날카로웠다. 

왼쪽부터 | 김준호 선수가 착용한 핑크 사파이어와 라운드 브릴리언트 다이아몬드를 세팅한 18K 옐로 골드와 플래티넘 소재의 티파니 슐럼버제 아이벡스 클립 브로치, 18K 옐로 골드의 Tiffany T 트루 8mm 링은 Tiffany & Co. 제품. 테일러드 재킷과 톱, 팬츠, 슈즈는 모두 Givenchy 제품. 오상욱 선수가 착용한 라운드 브릴리언트 다이아몬드를 세팅한 플래티넘 소재의 티파니 드래곤플라이 브로치는 Tiffany & Co. 제품. 지오메트릭 패턴의 니트 풀오버와 팬츠, 슈즈는 모두 Valentino 제품. 구본길 선수가 착용한 라운드 브릴리언트 다이아몬드를 세팅한 18K 로즈 골드 소재의 티파니 페탈 키 브로치, 18K 로즈 골드 소재의 Tiffany T 트루 8mm 링, Tiffany T1 와이드 링은 모두 Tiffany & Co. 제품. 케이프 재킷과 톱, 팬츠, 슈즈는 모두 Valentino 제품. 김정환 선수가 착용한 라운드 브릴리언트 다이아몬드를 세팅한 플래티넘 소재의 티파니 플뢰르 드 리스 키 브로치, 18K 화이트 골드 소재의 Tiffany T 투 내로우 링은 Tiffany & Co. 제품. 점프슈트와 벨트, 슈즈는 모두 Bottega Veneta 제품.

2012년 8월 3일. 런던 올림픽 대회 8일째. 펜싱 남자 사브르 단체팀이 금메달을 손에 넣자 경기를 중계하던 해설 위원이자 1986 서울 아시안게임 펜싱 금메달리스트 고낙춘이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말했다. “우린 100년을 해도 올림픽에서는 안 된다고 했는데.” 그건 믿기지 않은 행복을 안게 된 사람의 목소리이자 지난 설움을 꾹꾹 눌러 담은 한마디였다. 고낙춘의 말처럼 펜싱은 오랜 시간 종주국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럽 국가의 전유물과 같은 종목으로 통했다. 과거 펜싱 변방으로 불리던 한국에게는 ‘유럽 텃세 때문에 국제무대에서 안 된다’는 꼬리표가 늘 따라다닐 정도였다. 하지만 런던 올림픽 이후 불과 10년이 지나지 않은 이 시점에서의 이야기는 다르다. 김정환, 구본길, 김준호, 오상욱이 뭉친 일명 ‘어벤저스’ 단체팀이 다시 한번 2020 도쿄 올림픽에서 금빛 물결을 일으켰다. 더는 ‘종주국의 자존심’ 따위의 말은 유효하지 않음을 입증하며.

오상욱 선수가 착용한 핑크 사파이어와 라운드 브릴리언트 다이아몬드를 세팅한 18K 옐로 골드와 플래티넘 소재의 티파니 슐럼버제 아이벡스 클립 브로치, 18K 옐로 골드의 Tiffany T 트루 8mm 링과 Tiffany T1 와이드 힌지드 뱅글은 모두 Tiffany & Co. 제품. 크림색의 풀오버는 Tod’s 제품.

김준호 선수가 착용한 라운드 브릴리언트 다이아몬드를 세팅한 플래티넘 소재의 티파니 플뢰르 드 리스 키 브로치, 18K 화이트 골드 소재의 Tiffany T 스퀘어 브레이슬릿과 Tiffany T 투 내로우 링은 모두 Tiffany & Co. 제품. 캐시미어 소재의 후디는 Loro Piana 제품.

왼쪽부터 | 오상욱 선수가 착용한 라운드 브릴리언트 다이아몬드를 세팅한 18K 로즈 골드 소재의 티파니 페탈 키 펜던트와 Tiffany T1 와이드 하프 다이아몬드 힌지드 뱅글, 18K 로즈 골드 소재의 Tiffany T 투 링과 Tiffany T1 와이드 힌지드 뱅글, Tiffany T1 와이드 링은 모두 Tiffany & Co. 제품. 화이트 트렌치 재킷과 팬츠는 Bottega Veneta 제품.
김준호 선수가 착용한 18K 로즈 골드 소재의 Tiffany T 스퀘어 브레이슬릿, Tiffany T 트루 7mm 뱅글, Tiffany T 트루 8mm 링은 모두 Tiffany & Co. 제품. 셔츠와 팬츠, 벨트는 모두 Bottega Veneta 제품.

올림픽 대장정이 막을 내리고 8월의 어느 날, <더블유>의 커버 화보 촬영장에 초대된 김정환, 구본길, 김준호, 오상욱은 어쩌면 올림픽 당시보다 더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도쿄에서 서울로 돌아오자마자 이들이 출연한 예능 프로그램만 10여 편. 특히 8월 14일과 21일 이틀에 걸쳐 방송된 JTBC <아는 형님>은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차지했다. 전주 3%대에 그친 프로그램 시청률의 2배에 가까운 기록을 세우며. <더블유>와의 인터뷰를 위해 대기실에서 마주한 단체팀의 주장 김정환은 이제야 숨을 돌린다는 기색이었다. 면도할 시간도 없었다며 턱에 자란 수염을 민망하게 매만지면서 그가 말했다. “올림픽이 폐막할 때 마치 전쟁을 끝낸 기분이었는데, 한국에 돌아와서는 기쁜 전쟁을 치르고 있는 듯한 기분이에요. 지금이 그간 고생한 것에 대한 보상으로 느껴져요.”

‘의심하지 마.’ 이 한마디는 올해 올림픽 기간 동안 가장 화제가 된 유행어 중 하나일 것이다. 7월 29일 이탈리아와 맞붙은 결승전 9바우트, 세계 랭킹 3위 루카 쿠라톨리를 상대로 연속 5실점 후 첫 득점에 성공한 오상욱에게 구본길이 외친 한마디다. “그냥 느껴졌어요. 상욱이가 자기 자신을 의심하고 있다는 것이요.” 구본길에 이어 오상욱이 말했다. “사실 피스트 위에 서면 아무 소리도 안 들려요. 경기에만 집중하니까요. 그런데 본길이 형이 제게 무언가 말하고 있구나 하는 것이 느껴졌어요. ‘바로 그거야’라는 뉘앙스였죠. 형의 외침을 듣고 나니까 제 안에서 믿음이 생기더라고요.” 이제는 서로의 눈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안다는 이들은 올해로 함께 팀이 되어 호흡을 맞춘 지 7년째다. 노련함과 화려한 동작으로 ‘교과서 같은 선수’라 평가받는 김정환, 기술만큼 심리전이 중요한 펜싱에서 영리한 플레이로 상대의 허를 찌르는 ‘브레인’ 구본길, 남다른민첩성으로 ‘카운터 어택’의 정석이라 통하는 김준호, 192cm의 장신을 이용한 파워풀한 경기력으로 ‘몬스터’라는 별명으로 불리는오상욱까지. 4인 4색의 펜싱 스타일을 겸비한 이들은 2017, 2018, 2019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단체전 우승을 연달아 거머쥐었다. 지금의 단체팀은 각각의 기량이 뛰어난 선수들이 ‘좋은 팀워크’로 뭉치면 어떤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교본 같다. “저희는 4형제처럼 소통이 잘돼요. 두 형들(김정환, 구본길)과 두 동생들(김준호, 오상욱)의 나이 차가 상당한데, 저는 과거 딱딱한 선후배문화를 깨고 싶었어요. 제가 막내이던 시절, 훗날 선배가 된다면 그지위를 누리지 말고 선수 사이의 ‘나이 계급’을 없애고자 했죠. 문화를 바꿔야지 마음먹으니 또 이렇게 행운의 팀을 만나게 된 것 같아요.” 김정환의 말이다. 슬기롭게 두 세대의 조화를 이룬 이들의 팀워크는 2019년 세계선수권대회 이후 지도자가 계속해서 교체되는 상황에서도 빛을 발했다. “지도자가 달라졌다고 해서 저희 4명이 달라지는 건 없었어요. 지도자 공백이 길어질 땐 저희끼리 훈련하며 악으로 깡으로 버텼어요. 서로를 믿고 더욱 똘똘 뭉칠 뿐이었죠.” 김준호가 말했다.

왼쪽부터 | 김정환 선수가 착용한 18K 옐로 골드 소재의 Tiffany 하드웨어 링크 펜던트, Tiffany 하드웨어 링크 브레이슬릿, Tiffany T 트루 8mm 링은 모두 Tiffany & Co. 제품. 셔츠와 팬츠, 벨트, 슈즈는 모두 Dries Van Noten by Boontheshop Men 제품. 구본길 선수가 착용한 라운드 브릴리언트 다이아몬드를 세팅한 플래티넘 소재의 티파니 버터플라이 브로치, 18K 화이트 골드 소재의 Tiffany T 스퀘어 브레이슬릿, Tiffany T 투 내로우 링은 모두 Tiffany & Co. 제품. 줄무늬 셔츠와 테일러드 재킷, 팬츠, 슈즈는 모두 Dries Van Noten by Boontheshop Men 제품.

김정환 선수가 착용한 라운드 브릴리언트 다이아몬드를 세팅한 플래티넘 소재의 티파니 드래곤플라이 브로치, 18K 화이트 골드 소재의 Tiffany T 스퀘어 링, 셀프와인딩 기계식 무브먼트를 장착한 티파니 1837 메이커스 워치는 모두 Tiffany & Co. 제품. 니트 톱은 Ermenegildo Zegna 제품.

구본길 선수가 착용한 라운드 브릴리언트 다이아몬드를 세팅한 18K 로즈 골드 소재의 티파니 페탈 키 브로치와 Tiffany T1 와이드 하프 다이아몬드 힌지드 뱅글, 18K 로즈 골드 소재의 Tiffany T1 와이드 링은 모두 Tiffany & Co. 제품. 검정 셔츠는 Wooyoungmi 제품.

유럽의 전유물이던 펜싱의 패권을 불과 10여 년 만에 한국이 잡는상황. 이를 주목한 것은 어쩌면 국내보다 해외였다. 호주의 온라인펜싱 커뮤니티 ‘시드니 세이버’는 ‘우리가 한국 사브르를 사랑하는이유’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한국 펜싱의 저력을 이렇게 말한다. ‘과거 펜싱 경기에서 이기기 위해선 다음과 같은 암묵적 룰이 있었다. 첫째, 유럽인이 될 것. 둘째, 유럽으로 가서 훈련할 것. 셋째, 유럽인 코치를 기용할 것. 하지만 한국 펜싱이 등장한 이후 사정이 달라졌다. 한국은 펜싱을 해방시켰다.’ 1990년대까지 서구의 독무대였던 펜싱은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남자 플뢰레에서 김영호가 사상 처음으로 금메달을 따내며 조금씩 승리의 틈새가 보이기 시작했다. 2003년 SK그룹이 대한펜싱협회 회장사를 맡으며 많은 선수들이 국제 대회에 출전하기 시작했고, 유럽인 코치를 등용해 대표팀을 코칭하는 해외와 달리 한국은 국내 지도자들로만 구성해독자적 펜싱 스타일을 다져갔다. “이 모든 게 한 번에 이뤄진 건 절대 아니에요. 2012 런던 올림픽 당시만 해도 저희를 보고 ‘호랑이굴에 들어간다’고 말할 정도였어요. 2000년대 중반 해외에 밥솥, 쌀, 김치를 싸 들고 돌아다니면서 전지 훈련을 했어요. 외국 선수들에게 기술을 배운다기보다 서로 친해지려 했어요. 눈도장을 찍고 벽을 허물기 위함이었죠. 펜싱은 심판의 영향을 많이 받는 종목인데 낯선 동양인에겐 점수를 잘 주지 않는 일도 비일비재했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전국에 펜싱 학교도 많이 생겼고 지도자가 해외로 역수출되는 상황이죠.” 구본길에 이어 김정환이 말했다. “선배들의 몫도 컸다고 봐요. 원우영, 오은석 선수가 바로 은퇴하지 않고 후배들이 올라올 때까지 계속 버텨준 거죠. 외국의 경우 올림픽이 끝나면 ‘바이바이’거든요. 그럼 다시 후배들이 올라올 때까지 4년이 걸려요. 우리는 4년 걸릴 것을 2년 만에 해낸 거예요. 신구 조화가 잘되고 경기력이 좋을 수밖에 없죠.”

어쩌면 한국 펜싱 역사는 편법 없이 악으로 버텨온 길이지 않았을까? 김정환은 한국 선수들 사이 ‘무대에 올라가면 아무도 못 말린다’는 독함이 있다고 말한다. “흔히들 근성이라고 하죠. 한국 선수들은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라도 호두를 씹어 깰 사람들이에요(웃음). 개개인의 승부욕이 너무 세서 라이벌로 만났을 때 가장 힘든 상대이기도 해요. 단체전으로 뭉쳤을 땐 더없이 믿음직스럽지만요. 가끔 우리 선수들이 너무 빡빡하게, 숨 막히게 사는 건 아닐까 싶을 때도 있어요.” 구본길도 이어 말한다. “외국 선수들은 운동선수 말고 다른 직업을 겸직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한국은 그렇지 않거든요. 늘 ‘이것 아니면 안 된다’는 심정으로 경기를 뛰어요. 겸직까지 하는 친구들에게 지면 너무 자존심 상하잖아요.”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정신력은 빠른 발놀림을 이용한 한국 특유의 경기력이 뒷받침됐을 때 그 잠재력이 더욱 화르르 살아난다. “한국 펜싱은 ‘발 펜싱’이라고 할 수 있어요. 과거 유럽 선수들은 발 대신 세밀한 손 기술을 사용했는데, 요즘엔 저희의 영향인지 덩달아 발도 빨라지는 추세죠.” 오상욱의 말이다. 여기에 “한국은 사계절이 뚜렷하잖아요. 그래서인지 머리 돌아가는 속도가 그 어느 나라보다 빨라요(웃음)” 라는 김준호의 유머까지 더해지면, 한국 펜싱을 둘러싼 여러 조각이 자연스레 맞춰지기 시작한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 김정환 선수가 착용한 라운드 브릴리언트 다이아몬드를 세팅한 플래티넘 소재의 티파니 플뢰르 드 리스 키 브로치, 18K 화이트 골드 소재의 Tiffany T 스퀘어 브레이슬릿과 Tiffany T 투 내로우 링, Tiffany T 트루 와이드 링은 모두 Tiffany & Co. 제품. 점프슈트는 Bottega Veneta 제품. 구본길 선수가 착용한 라운드 브릴리언트 다이아몬드를 세팅한 18K 로즈 골드 소재의 티파니 페탈 키 브로치, 18K 로즈 골드 소재의 Tiffany T 트루 8mm 링, Tiffany T1 와이드 힌지드 뱅글, Tiffany T1 와이드 링은 모두 Tiffany & Co. 제품. 검정 셔츠와 팬츠는 Songzio 제품. 오상욱 선수가 착용한 라운드 브릴리언트 다이아몬드를 세팅한 플래티넘 소재의 티파니 드래곤플라이 브로치와 티파니 버터플라이 브로치, 18K 화이트 골드의 Tiffany T 스퀘어 링, 27mm 스테인리스 스틸 케이스에 화이트 다이얼, 셀프와인딩 기계식 무브먼트를 장착한 티파니 1837 메이커스 워치는 모두 Tiffany & Co. 제품. 지오메트릭 패턴의 니트 풀오버와 팬츠는 Valentino 제품. 김준호 선수가 착용한 핑크 사파이어와 라운드 브릴리언트 다이아몬드를 세팅한 18K 옐로 골드와 플래티넘 소재의 티파니 슐럼버제 아이벡스 클립 브로치, 18K 옐로 골드의 Tiffany T 트루 8mm 링과 Tiffany T1 와이드 힌지드 뱅글, 18K 로즈 골드의 Tiffany T1 와이드 하프 다이아몬드 힌지드 뱅글과 Tiffany T1 내로우 힌지드 뱅글은 모두 Tiffany & Co. 제품. 테일러드 재킷과 톱, 팬츠는 모두 Givenchy 제품.

모든 경기가 그렇듯, 아쉬움이 남지 않는 경기란 없다. 눈부신 승리를 거뒀던 단체전 이전, 개인전에서 고배를 마셔야만 했던 선수들에겐 특히 그 아쉬움이 클 터. 사브르 개인전 8강, 조지아의 바자제선수를 상대로 아쉽게 패한 오상욱은 당시를 이렇게 기억한다. “원래 지면 화가 나야 하는데 인정하게 되더라고요. 오심 판정 논란도있었지만 저는 상대가 저보다 잘했고, 그래서 경기에서 진 거라 생각해요. ‘그래, 네가 나보다 준비를 많이 했구나’ 생각했죠.” 구본길도 아쉽게 패한 32강에 대해 말했다. “무엇보다 경기 감각력을 시험해볼 곳이 개인전 무대인데 첫 라운드에서 떨어져서 당황스러울수밖에 없었죠. 그러고 나니 단체전 메달이 너무 멀리 보이더라고요.” 하지만 개인전에서 이들이 삼켜야 했던 아쉬움은 팀의 주장이자 노장 김정환이 동메달로 씻겨줬다. “저한테는 스포트라이트 복이 없어요. 언제나 올림픽에 나갈 때 2인자, 혹은 3인자로 불렸죠. 사람들은 그게 섭섭하지 않으냐고 묻는데 저에게는 복이나 마찬가지였어요. 스포트라이트는 자칫 독이 든 사과니까요. 마음속에 이런 생각을 품었죠. ‘솥뚜껑은 열어봐야 하는 법.’ 두고 보자는 오기가 생겼어요. 그리고 동메달을 딴 순간 생각했어요. 마치 동화 <금도끼 은도끼> 이야기처럼 내가 묵묵히 선수의 길을 걸어오니 하늘에서 도끼를 하나 선물해준 것 같다고요.” 김정환이 말했다.

세계선수권 3연패 이후의 올림픽 출전. 어쩌면 올림픽 무대라는 마지막 단추를 끼워야 하는 순간. 선수들은 마치 어깨에 무거운 추를 짊어진 기분이었을 거다. “대회 전 국내 언론에서 ‘사브르 단체에서 반드시 금메달이 나올 것이다’라는 기사가 쏟아졌어요. 저희도 자신은 있었지만 ‘과연’ 하는 마음도 있었죠. 왜냐하면 3연패 이후 금메달로 유종의 미를 거두는 건 너무 드라마잖아요..” 하지만 구본길이 말한 ‘드라마’는 현실로 이뤄졌고, 모든 경기가 마침표를 찍는순간 전 국가대표 원우영 해설위원은 말했다. “오늘은 대한민국 역사에 남을 날이에요. 펜싱 강국 대한민국이 다시 한번 확인되는 날이에요.” 그 말과 함께 한국 펜싱 사브르 단체팀의 기나긴 올림픽대장정은 막을 내렸다. 그렇게 경기를 치른 치열했던 시간은 지나갔다. 잠시 기쁨을 누릴 법도 하지만, 선수들을 못다 한 숙제를 시작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번 올림픽에서 치른 경기 안에 단체전의모든 경우의 수가 들어 있다고 생각해요. 오답 노트를 쓰는 심정으로 경기를 계속해서 복기하고 있어요.” 오상욱에 이어 김정환이 말했다. “이제 노장이라 불리는 나이지만 당장 8월 열리는 국가대표선발전 시합에 참가해서 제 기량을 엄격하게 테스트해보려고요. 내년엔 항저우 아시안게임도 기다리고 있어요. 항저우에서 좋은 결과를 낸다면 까짓것 2024 파리 올림픽도 노려보는 거죠. 와이프는파리 갈 짐을 벌써 다 싸놨대요(웃음).” 이들의 각오는 머릿속에서이런 기분 좋은 상상을 하게 만든다. 여태까지의 한국 펜싱은 어쩌면 보다 화려한 본편을 위해 준비된 예고편이 아니었을까? 그리고어쩌면 3년 뒤, 파리 무대에서 이들 넷이 함께하는 본편이 펼쳐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