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주세법이 개정되면서 와인 시장의 지형도가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온라인’이라는 돛을 단 와인 시장은 아주 매끄럽게 항해하며, 우리 삶에 와인을 가까이 끌어당기는 중이다.
하루를 힘껏 치른 후 으슥한 비스트로로 몸을 숨겨 밤을 지새운 날을 기억한다. 유칼립투스를 연상시키는 검고 깊은 맛의 레드와인에 크림소스를 인심 좋게 끼얹은 콜리플라워를 곁들이면, 그날은 당연지사 와인을 숭배했다는 보들레르가 어느 시에서 말했듯 ‘쉬지 않고 취하시오!’를 외치다 새벽을 맞기 마련이었다. 그다음 날 휴대폰 사진첩에서 발견하는 벌건 낯빛의 울고 웃는 친구들의 사진. 덜거덕거리는 테이블에 기댄 채 취향에 맞지 않는 음악을 들으며 와인잔을 기울였던 날들은, 애석하게도 모두 과거의 일이 되었다. 코로나19에 따른 사회적 거리 두기 2.5단계가 지난 8월 말 수도권 전역에 발효되면서 밤 9시면 얼큰하게 취한 손님들로 왁자지껄했던 가게들이 문을 닫아야 했다. 아쉬운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 자주 가던 비스트로의 주인들에게 ‘오늘 영업 안 하시죠?’라며 문자 메시지를 보낸 기억도 이제는 까마득하다.
시간을 좀 더 앞으로 돌려본다. 올해 4월 3일 국세청은 음식점이나 편의점 등의 주류 소매업자가 모바일 앱을 통해 온라인상에서 주류를 판매할 수 있는 스마트오더를 허용하며 나섰다. 나아가 5월 19일, 올해 7월부터 시행될 ‘주류 규제 개선 방안’을 발표하며 음식과 함께 배달하는 주류의 가격이 음식의 가격보다 낮은 경우에 한해 전화나 모바일 앱을 통한 배달을 허용했다. 쉽게 말해 대면 판매를 원칙으로 통신 판매가 제한되어온 와인을 이제는 편의점 앱을 통해 구매하거나 ‘배달의민족’과 같은 배달 앱을 통해 집으로 음식과 함께 와인을 배달받는 시대가 활짝 열린 셈이다. 동시에 레스토랑에서 맘 놓고 와인을 즐길 수 없 었던 이들이 ‘홈와인’으로 눈길을 돌릴 본격적인 신호탄을 올린 사건이기도 하다. 새로 바뀐 주세법이 시행되자 와인 업계는 기다렸다는 듯 우후죽순으로 서비스를 쏟아냈다. 가장 빠르게 움직인 것은 뛰어난 접근성을 무기로 내세운 편의점 업계다. GS25 편의점은 편의점 업계 최초로 지난 7월 스마트오더 시스템인 ‘와인25플러스’를 론칭했다. 모바일상에서 성인 인증을 거친 소비자가 앱을 통해 와인을 주문, 결제한 후 수령을 원하는 GS25 점포를 선택해 점포로 찾아가면 구매가 최종으로 완료되는 시스템이다. 이후 CU 편의점의 ‘CU와인샵’, 이마트24의 ‘와인포인트’ 등이 후발 주자로 숨 가삐 론칭하며 와인의 선택지는 좀 더 넓어졌다.
와인에 막 입문한 ‘와린이’ 시절, 불청객인 양 쭈뼛대며 와인 소매점을 기웃거린 어느 한때를 기억한다. 종업원에게 아는 체하며 몇몇 산지와 품종을 읊으면 좁혀진 선택지에 맞춰 그에 맞는 와인을 종업원이 추천해주는 수순이다. 친절한 종업원이 ‘타닌’이나 ‘미네랄’ 같은 단어를 꺼내 들며 와인 노트를 말하기 시작할 땐 ‘그렇군요’와 같은 모호한 의사를 비추다 결국 주머니 사정을 고려해 그럴싸해 ‘보이는’ 와인을 고르기 일쑤였다. 하지만 편의점 앱을 통한 와인 구매는 기존 오프라인 중심의 대면 구매와는 사정이 완전히 판이하다. 당도가 두드러진 와인은 ‘양의 탈을 쓴 단정한 늑대 같은 달콤함’으로, 기분 좋은 산도가 감도는 와인은 ‘작은 파랑새가 춤추는 스파클링’이라 소개하며 어렵지 않은, 직관적 표현으로 와인의 풍미를 설명한다. 나아가 와인의 산지를 지도로 표시하며 작황에 영향을 끼치는 기후를 설명하고, 와인과 좋은 궁합을 이루는 페어링 음식을 예시 사진과 함께 소개한다. 소비자 입장에서 복잡한 라벨을 보며 수수께끼 풀 듯 와인의 풍미를 어렴풋이 유추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더불어 공급자 입장에서는 공간 제약 때문에 다양한 와인을 구비하지 못했던 아쉬움을 달랠 수 있으며, 주문 정보를 모아 빅데이터로 활용하며 추후 할인 이벤트 등을 효과적으로 진행하는 이점이 생긴다.
편의점이 순식간에 와인 플랫폼으로 진화한 것에 대한 ‘덧셈’ 격으로 지난 7월부터 배달 앱을 통해 음식과 함께 와인을 배달하는 서비스가 시행되며 본격적인 ‘홈와인’의 시대가 열렸다. 비록 주세법상의 제한으로 ‘주류 가격이 음식 가격보다 낮은 경우’에 한해 배달 판매가 허용되지만, 영민한 와인 소매점은 다양한 패키지 구성으로 와인족을 유혹한다. 가로수길에 위치한 내추럴 와인 바 ‘위키드와이프’는 와인 딜리버리 서비스의 선두주자로 꼽힌다. 500ml 용량의 레드와인과 그린빈 치킨 샐러드, 치즈 플레이트 등으로 구성한 이곳의 대표 메뉴인 ‘넷플릭스 페어링 세트’는 이름 그대로 주말 저녁 넷플릭스를 틀어놓고 도란도란 와인을 즐기기에 제격이다. 위키드와이프 이영지 대표의 말처럼 ‘이것을 드시라’는 강요적 태도 대신 ‘이런 것들이 있는데 이건 이렇기 때문에 당신을 유혹할 수 있다’는 식의 세세하고 친근한 스토링텔링은 와인 페어링에 낯선 이들에게 훌륭한 나침반이 되어준다. 와인에 어울리는 치즈 플레이트 딜리버리 서비스로 유명한 ‘유어네이키드치즈’, 주류 수입사 씨에스알 와인에서 운영하는 오프라인 와인 스토어 ‘레드텅’, 청담동에 위치한 내추럴 와인 바 ‘청담니은’ 등도 ‘배달의민족’ 등을 통한 딜리버리 서비스를 전개하며 ‘가까워진 와인’의 시대에서 순풍을 일으키는 중이다.
새로 바뀐 주세법이 시행되기 전까지 와인은 발품을 팔아 소매점 등에서 직접 시음하고 구매하는 식인 ‘오프라인’ 중심의 시장이었다. 와인이 마치 소수만이 즐기는 스노비시한 취향의 술이란 이미지에 갇힌 것도 어쩌면 이 때문이다. 하지만 주세법 개정에 따라 온라인상에서 와인 정보를 탐색하고 손쉽게 구매할 수 있게 된 오늘날, 앞서 살폈듯 와인은 우리의 일상에 점점 가까워지는 중이다. 다른 영역에 비해 온라인화가 더뎠던 와인 업계는 급격한 지형 변화에 따라 기민하게 소비자 취향을 파악해 다채로운 서비스를 론칭하고 있다. 이로써 유통과 물류의 장이었던 기존 와인 시장이 온라인 마케팅과 브랜딩의 시대로 접어든 것 이다. 사용자의 취향을 세세하게 분석해 와인 정기 구독 서비스를 펼치는 ‘퍼플독’과 ‘포도클럽’도 이러한 흐름에서 나온 신종 사업이다. 그렇기에 다시 돌아가본다. 왁자지껄한 레스토랑에서 얼큰하게 취한 사람들과 뒤엉키며 술에 한 번, 분위기에 한 번 취하던 시절을 경유해 우리 앞에 조촐하지 않은, 아주 근사한 ‘홈와인’의 세계가 펼쳐지고 있다. 가까워진 와인의 시대를 맞이할 준비는 비로소 끝났다. 이제는 본격적으로 즐길 때다.
올해 7월부터 와인과 페어링 음식의 딜리버리 서비스가 가능해졌다. 지금 서울에서 맛볼 수 있는 가장 근사한 딜리버리 서비스를 소개한다.
1. 위키드와이프 ‘넷플릭스 페어링 세트’ 주말 저녁 넷플릭스를 틀어놓고 ‘혼술’하기에 제격인 페어링 세트. 500ml 용량의 레드와인, 그린빈 치킨 샐러드, 치즈 플레이트, 테이블로 사용할 수 있는 박스와 분홍색 페이퍼 테이블 매트, 캔들, 성냥으로 구성했다.
2. 레드텅 ‘7컬러즈 그랑 리제르바 피노 누아-세미용 와인과 치즈 플레이트’ 칠레의 대표적 와인 생산지 마이포 밸리에 자리한 와이너리에서 생산한 ‘7컬러즈, 그랑 리제르바 피노 누아-세미용’ 와인은 매끄러운 질감과 강렬한 체리, 자두 풍미가 조화를 이룬다. 와인과 좋은 궁합을 보이는 갖가지 치즈와 함께 구성했다.
3. 퍼플독 ‘피에르 제로 프레스티지 샤르도네’ 월 3만9천원의 구독료로 와인을 정기 구독 받을 수 있는 서비스 ‘퍼플독’에서 제안하는 100% 샤르도네 품종의 논알코올 와인으로 열대 과일, 바닐라, 꿀 향이 특징이다.
4. 청담니은 ‘도멘 게쉭트 리슬링 와인과 멜론 프로슈토’ 프랑스 북동부 알자스에 자리한 암머슈비허 지역에서 생산한 내추럴 와인 ‘드멘 게쉭트 리슬링’ 와인과 멜론 프로슈토를 함께 선보인다. 짭짤하면서 달콤한 프로슈토, 멜론에 기분 좋은 산도의 와인이 좋은 궁합을 이룬다.
5. 유어네이키드치즈 ‘자피아인 시드라와 라지 플레이트’ 낮은 도수와 상큼한 버블을 가진 내추럴 시드르(사과와인)인 ‘자피아인 시드라’와 치즈 10가지, 샤퀴테리, 스낵, 견과, 제철 과일을 담은 라지 플레이트로 구성했다.
3만원대 이하로 구매할 수 있는 ‘가성비’ 와인을 찾는 수요가 꾸준히 늘고 있다. 가을철 데일리 와인으로 가볍게 즐기기에 손색없는 와인이 여기 있다.
1. 제이피 슈네 스파클링 화이트 프랑스 전역에서 재배되는 화이트 포도 품종을 블렌딩했으며, 포도를 부드럽게 압착해 저온 안정화 과정을 거쳤다. 신선한 과실 풍미와 고소한 브리오슈 풍미가 어우러진다.
2. 그랜트 버지 미암바 쉬라즈 16 호주 바로사 벨리의 쉬라즈 100%로, 진득한 질감의 쉬라즈라기보다 섬세함이 돋보이는 쉬라즈에 가깝다. 유칼립투스, 허브 향이 잘 느껴지며 가을철 선선한 날씨에 마시기에 제격이다.
3. 몬테스 클래식 샤도네이 칠레 쿠리코 밸리에서 생산한 100% 샤도네이 와인으로, 바닐라와 복숭아, 바나나 향기가 풍부하게 끼친다. 혀를 톡톡 쏘는 듯이 느껴질 만큼 싱싱한 보디를 가진 것이 특징이다.
4. 더 롱 독, 루즈 귀여운 강아지 그림이 새겨진 라벨이 눈길을 끄는 ‘더 롱 독, 루즈’는 부드러운 미감과 타닌이 특징으로 누구나 간편히 즐길 수 있는 입문자용 와인이다. 스크루 캡으로 되어 있어 실내는 물론 한강과 같은 야외에서 오프너 없이 편하게 마실 수 있다.
5. 알파카 카베르네 메를로 알파카 와인은 아시아 지역에서만 전체 생산량 중 94%가 소비될 만큼 인기가 좋다. 강렬한 루비 색상을 띠며 향긋한 꽃향기와 함께 라즈베리, 자두 등과 같은 과일 향기가 두드러진다. 부드러운 산도와 타닌의 여운이 매력적이다.
6. 에스쿠도 로호 리제르바 샤르도네 ‘매일 마시는 알마비바’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와인으로, 반짝이는 황금빛을 띠며 배, 망고, 파인애플 등의 과일 향과 함께 배럴 숙성에서 탄생한 견과류의 향을 느낄 수 있다.
- 피처 에디터
- 전여울
- 포토그래퍼
- 박종원, 장현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