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에 대하여
만나지 않고도 만날 길이, 떨어져 있어도 얼마든지 소통할 길이 있다. 지금까지 세계 곳곳의 저명한 아티스트에게 만남을 청해온 <더블유>는 이제 그들을 온라인으로 불러들였다. 직접 대면해 화보를 촬영하고 인터뷰하던 물리적 제약과 강박에서 벗어나, 화상에서의 만남을 지면에 고스란히 살려낸 인터뷰 기획은 지면 매체가 감히 시도하지 못한 인터뷰 퍼포먼스다. <더블유>의 실험이자 색다른 기획에 LA, 파리, 암스테르담, 도쿄에 있는 다섯 명의 해외 아티스트가 응했다.
마르셀 반더스(Marcel Wanders)가 마음먹으면, 발 딛고 서 있는 땅도 화려한 성이 된다. 지구상에서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는 산업디자이너임이 분명할 그가 위기와 불안을 모르는 표정으로, 건강한 말들을 전해왔다.
“우리는 돌아올 방법을 찾을 거예요. 세계가 점점 온라인화되어도 여전히 물질적인 무엇이 필요합니다.” 생각할수록, 마르셀 반더스가 인터뷰 말미에 남긴 이 말이 그라는 사람을 잘 말해주는 것 같다. 물질에 가려진 비물질의 가치를 되살리며 살다가 세상의 아름다운 물질 앞에서 흔들릴 때면, 디자인 거장의 이 말을 두고두고 떠올릴 듯하다. 물론 그에게 물질은 ‘사람’을 위한 것이다. 그는 사람에게 집중하고, 사람에게 가 닿고 싶다고 말한다. 사람들이 미처 경험하지 못 했을 낭만과 화려함의 극치를 안겨주려고도 한다. 매년 4월에 열리는 ‘물질들의 천국’인 밀라노 디자인 위크는 디자이너들의 달력에서 새해와 비슷하다. 그 기간이면 마르셀 반더스는 디자인 브랜드 무이(Moooi)의 공동 설립자로, 루이 비통 오브제 노마드(Objets Nomades) 의 디자이너로, 그 외 유수의 기업과 협업한 결과물을 선보이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바쁘다. 그러나 올해는 디자이너들의 축제가 당연히 막을 올리지 못했다. 평소라면 가을로 접어드는 지금까지 그 봄의 축제에 관한 이야기가 여진처럼 이어졌을 것이다. 굵직한 아트&디자인 행사가 멈춘 2020년을 베테랑인 그는 어떻게 보내고 있을까? 영화 촬영 현장에도 늘 슈트를 갖춰 입고 등장한다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처럼, 그 역시 집에서 자신의 시그너처 차림으로 인사를 건네왔다.
안녕하세요, 마르셀 반더스 씨. 만나기로 한 시각 정각에 딱 맞춰 접속하셨네요!
Marcel Wanders 이렇게 만나서 반갑습니다. 활기차시네요.
네? 활기차 보인다고 말했어요. 한마디로 좋다는 말입니다(웃음).
암스테르담과 당신의 스튜디오 분위기는 요즘 어떤가요? 우리도 많은 회사들처럼 온라인으로 작업하고 있습니다. 당신과 이렇게 온라인으로 마주하듯이, 직원들과 온라인상에서 회의하죠. 대면 작업을 조금씩 진행하기는 해요. 직원들의 절반은 스튜디오에서, 절반은 재택근무를 하는 식으로요.
당신 자리 뒤편에 액자 두 개가 걸려 있네요. 자세히 좀 비춰줄 수 있어요? 그럼 렌즈를 돌려서 보여줄게요… 두 그림 다 제 스타일은 아닌데 가족을 위해 걸어놨기 때문에 중요한 의미가 있어요. 하나는 풍경화고, 다른 하나는 무라카미의 작품이에요. 그리고 구석엔 이런 장식장도 있어요. 잘 보여요?
장식장의 데코가 화려해요. 당신이 어느 인터뷰에서 ‘나는 디자이너고, 세상에 취할 게 얼마나 많은데 왜 굳이 미니멀리즘을 취해야 하나?’ 식으로 말했던 게 문득 생각나는군요. 저는 늘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보다 덜 하는 게 아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하는 데 관심이 있어요. ‘Less Is More’라는 말이 있죠. 왜 ‘덜한 것’이 ‘더한 것’이 되는지 모르겠어요. ‘마이너스’는 ‘플러스’가 아니잖아요? ‘플러스’가 ‘마이너스’도 아니고요. 네, 그건 사실이 아니에요. 설명하기가 은근히 어렵군요. 요점은 ‘마이너스=플러스’라는 등식이 옳다면 더하기와 빼기가 같다는 말인데, 그건 이상하다는 거예요.
재밌는 이야기네요. 마르셀 반더스 스튜디오는 전 세계에서 산업디자이너를 꿈꾸는 이들이 지원하는 곳이고, 함께하는 팀원 수가 50명이 넘잖아요. 한국인으로 글로벌한 작업을 활발히 펼치고 있는 인테리어 디자이너 양태오도 당신의 스튜디오에서 일을 배웠죠. 그럼 직원을 채용할 때도 당신의 디자인 성향과 비슷한 사람을 보나요? 어떤 사람 자체가 마음에 들면, 그가 해온 일을 슬쩍 봅니다. 그런데 우리 스튜디오가 하는 것과 너무 다른 성격이라고 쳐요. 그렇다면 그에게 뭘 기대할 수 있겠어요? 학교를 막 졸업한 어린 친구나 경력이 적은 사람이 우리 수준만큼의 작업을 할 수 있다고 기대하지 않아요. 그럴 수가 없죠. 하지만 1년 정도 함께 보내며 스튜디오의 미학과 철학을 오롯이 흡수했다면, 그 사람은 정말로 뭔가를 배운 겁니다. 이제는 함께 환상적인 일을 해나갈 수 있는 거죠. 시작하는 단계의 인물에게 제가 기대하는 건 그저 ‘의지’예요. 우리와 함께 일하고 배울 의지, 제가 스튜디오에 심어놓은 철학을 배울 의지 말이에요.
당신의 철학은 뭔가요? 일단 스튜디오 직원들을 위한 전용 보트가 있고, 연말이면 다 같이 콘셉추얼한 화보를 찍으며 힘든 한 해를 기념한다는 건 알아요(웃음). 디자인 스튜디오란 스타일에 관한 게 아닙니다. 직선이냐 곡선이냐, 색이 있느냐 없느냐를 두고 왈가왈부하는 곳이 아니에요. 그보다는 개인의 관심사에 집중하고 귀를 기울이는 곳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그렇게 더 낭만적이고, 더 인간적인 목소리를 내자는 게 저의 철학입니다. 그건 스튜디오를 위한 게 아니라 우리의 디자인과 함께할 사람들을 위한 것이고요. 처음에는 사람이 철학을 세우지만, 이후에는 철학이 사람을 만들죠. 그리고 사람 문제에 관해서라면 저와 14년 동안 일해온 가브리엘이 저보다 인간관계가 훨씬 좋습니다(웃음). 우리 스튜디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가브리엘 치아베(Gabriele Chiave)와 저, 이렇게 2명입니다.
최근 마르셀 반더스 스튜디오, 그리고 인테리어 브랜드 무이(Moooi)에서 새로운 작업을 연달아 발표했어요. 그중 ‘허블버블’이라고… 아, 잠깐만요! 우리 딸이 도착했네요. 가서 좀 맞이하고 올게요. (20초 후, 조이 반더스가 화면을 향해 손을 흔들며)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그 따님이군요? 지난 연말 라문(Ramun)과 협업해서 출시한 종 모양의 테이블 조명 ‘벨라’가 딸을 위해 디자인한 거라고 들었어요. 완성된 조명을 본 따님의 첫 반응은 뭐였어요? 음, 뭐였더라? 딸한테 좀 물어볼게요. 네가 보기엔 어땠니? 뭐?(웃음) 어떤 프로젝트는 완료하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려서 그 시작점은 꽤 과거가 돼버려요. 제 딸이 아주 어렸을 때 종소리를 좋아했고, 종에서 빛이 나온다는 상상을 했어요. 그때부터 떠올린 디자인이니 오래전에 출발한 아이디어죠. 침대 옆에 놔두고 쓰기 좋도록 디자인했는데, 글쎄요… 우리 딸은 그걸 조명으로 안 쓰고 무슨 바에서 종업원 부를 때 흔드는 용도처럼 쓰는 것 같은데요?
아까 하려던 이야기를 다시 이어서 해볼게요. 마침 조명 얘기였어요. 무이에서 최근 선보인 ‘허블버블(Hubble Bubble)’ 말이에요. 저는 이 디자인을 처음 보고 행성의 궤도 같다고 느꼈는데, ‘떠다니는 비눗방울’이라니 무척 동화적이네요. 누구나 상상과 마법이 교차하던 어린 시절이 있잖아요. 입으로 분 비눗방울처럼 천진난만한 순간을 잡아낸 조명이고, 방울이 유유자적 떠다니는 모습을 표현했어요. 분산된 빛을 공중에 떠 있게 하고 싶었거든요. 비눗방울을 어떻게 구현할지 고민했는데, 전구 유리에 색으로 기름기를 표현했어요. 자세히 보면 정말 비눗방울 같아요. 비주얼 면이나 스토리텔링 면에서도 마음에 들고, 기술적인 면에서도 뿌듯함이 있어요.
대개 조명을 볼 때 디자인적인 아름다움을 보는데, 조명은 기술도 중요한 문제잖아요. 세상에 오리지널 디자인을 모방한 조명은 수없이 많지만, 광원을 다루는 기술력이나 기능성은 오리지널만이 갖고 있을 거예요. 일반 전구의 원리는 간단하죠. (+)극과 (-)극을 연결하면 불이 들어와요. LED는 사정이 좀 다릅니다. 한 조명 제품을 위해 여러 개의 전구를 사용하기 용이하고, 그러면서 아주 낮은 전압만 쓰죠. 전구를 여러 개 사용할 때 좋은 점은 빛이 부드러워진다는 겁니다. 하나의 전구만 있으면 얼굴에 빛이 확 쏟아지거든요. 그런데 여러 개를 쓰면 전구마다 매번 (+)극과 (-)극을 연결하고, 그 전구를 잇는 전선에도 (+)극과 (-)극을 연결해야 해요. 전구마다 4개의 연결이 이뤄지는 셈이죠? 그런 방식에서는 전구들이 하나씩 고장 나기 시작해서 전부 고장 날 위험까지 있습니다.
저희 집 식탁 위에 있는 조명이 바로 그랬어요! 전구 16개가 달린 긴 조명등인데, 하나가 고장 나기 시작하니까 며칠 사이 몇 개가 연달아 고장 나서 왜 안 좋은 일은 전염되는 가 싶었네요. 그런 약점을 극복하려고 일렉트로 샌드위치라는 이름의 기술을 개발했어요. 전구 내부나 전구를 둘러싼 프레임의 전도체 물질을 활용해서 무선으로 전력을 공급하는 방식입니다. 조명용 전기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했거든요. 물론 ‘허블버블’ 조명에도 그 기술을 적용했어요. 전도 성분이 흐르기 때문에 내부에도 전선이 필요 없죠.
세계적 반열에 오른 사람에게는 그를 유명하게 만든 계기가 있잖아요. 당신의 계기는 1996년에 발표한 ‘매듭 의자 (Knotted Chair)’였어요. 자신의 시도가 세계적으로 통한 경험을 하면서 배운 게 있다면 뭘까요? 그 의자를 디자인 하기 한참 전부터 이어진 개인사가 있어요. 매듭 의자는 그 과정을 거친 결과인 셈이고요. 그 이후에도 여러 결과가 있었죠. 그러니까 매듭 의자는 배움이나 깨달음을 가져왔다기보다는 오히려 배움의 산물이었다는 게 맞을 겁니다. 디자인이 성공하면서 새롭게 배운 게 물론 많지만, 그 이전의 과정을 통해 얻고 배운 게 더 많았어요.
히트작이 나오기까지 어떤 과정이 있었던 거죠? 여자친구가 많이 아팠습니다. 우리는 함께 대체의학이나 온갖 종류의 철학을 공부했어요. 그때는 미숙하고 배우는 과정이었던 만큼 프로페셔널한 디자이너의 마음가짐 같은 건 없었어요. 그저 외로웠어요. 철학이며 뭐며 제가 머리로 이해하는 내용은 많은데, 디자인이라는 화두로 연결 고리를 가질 만한 사람은 없었거든요. 어느 날 여자친구한테 ‘디자인 세계관을 나누고 대화할 사람을 더는 못 찾겠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더니, 여자친구가 이렇게 말했어요. ‘네가 못 찾는다면, 누군가 널 찾아올지도 모르지.’
그거 설레는 말이네요. 그 말에 용기를 얻었습니까? 새로운 시각이었어요. 그 발상의 전환과 아이디어를 가지고 쓴 책이 <반더스 원더스(Wanders Wonders)>입니다. 제 작품의 바탕이 되는 주요한 내용 10가지를 정리한 책이죠. 디자이너로서는 좀 이른 시기에 썼지만, 그건 저에게 정말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책을 쓰는 과정을 통해 느끼고 정립한 바가 있었기에 좋은 디자인이라는 결과가 나왔으니까요. 신기한 일이기도 하고 순차적인 진행 같기도 했죠.
매년 4월 열리는 밀라노 디자인 위크가 올해 6월로 연기되었다가 결국 취소됐습니다. 다행히 저는 작년 밀라노에서 당신의 발표작을 여러 점 봤어요. 무이의 발표회장에는 공간 입구에서부터 컬러풀한 무늬의 카펫이 쭉 깔려 있었죠. 뭐랄까, 발을 디딜 때마다 호사스러운 기분이 들었어요. 어떤 카펫은 대형 회화처럼 벽에 걸려 있기도 했고요. 바닥, 벽, 천장처럼 면적이 넓은 부위가 해당 공간의 인상을 결정짓는다는 걸 그때 새삼 깨달았어요. 최근 스튜디오 이사를 앞두고 임시 공간에 서너 달 머문 적이 있습니다. 못생긴 건물이었지만, 휴가 중인 기분도 나고 나름 재밌었죠. 그런데 딱 그 정도 머무른 게 적당했어요. 더 오래 있었다면 직원들이 하나둘 퇴사했을 거예요(웃음). 그 건물의 에너지가 우리와 맞지 않았거든요. 그때 느꼈어요, 우리가 누구인지 표현하는 재료의 중요성을요. 인테리어나 환경은 개인에게는 물론 공동체나 사람들의 모임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제가 직업 때문에 예민한 점도 있겠지만, 우리가 공간을 만든 후부터는 공간이 우리를 만든다고 생각해요. 공간은 종일 그 안의 사람들을 밀어내기도 하고 정보를 주기도 하면서 어떤 ‘느낌’을 주잖아요. 만약 창의적인 일을 하는 집단이라면 그들만의 특별한 통일성을 매일 자연스럽게 상기할 만한 장소에 머물러야 할 겁니다.
작년 밀라노에 이어 올해 2월 LA 프리즈 아트 페어에서도 루이 비통의 오브제 노마드 컬렉션 신작인 ‘다이아몬드 소파와 의자’를 공개하셨습니다. 하단부에 얇은 목재가 얽히고설켜있는데, 외형을 이루는 둥근 곡선 때문인지 이상할 정도로 편안한 느낌을 자아내서 놀라웠거든요. 새 둥지가 콘셉트라는 설명을 듣고는 포근함이 정말 잘 표현됐구나 싶었어요. 가구를 디자인할 때는 주제와 아이디어를 중심으로 콘셉트를 잡고, 사람들이 우리가 디자인한 작품에서 정말 편안히 쉴 수 있을지를 여러 방식으로 고려합니다. 우리를 감싸거나 보호해주는 것들을 생각해보니 자연스럽게 은신처, 요람, 둥지가 떠올랐어요. 길고 가느다란 선을 부피감이 있는 3D로 구현하는 아이디어가 아주 마음에 들어서, 그 아이디어를 사람이 실제 앉는 작품으로 발전시킬 수 있을지 실험해봤습니다. 꽤 독특한 결과물이 나온 데다 앉기에도 아주 편안해요. 그렇게 상징적인 사물을 만들어내는 게 제가 하고 싶은 일 중 하나예요. 그 상징적인 사물로 사람들의 경험에 차이를 만드는 일 말입니다.
LA 프리즈 아트 페어는 코로나19가 팬데믹이라고 명명되기 직전에 열렸어요. 올 상반기에는 암스테르담 스히폴 국제공항 내 VIP 센터 인테리어 디자인을 완성하셨습니다 만, 이제 마음껏 여행을 다니기 힘든 세상입니다. 이런 변화가 라이프스타일을 둘러싼 디자인에 어떤 영향을 미칠 거라고 보세요? 디자이너로선 두고두고 부담이 될 것 같아요. 어쩌면 생각만큼 그렇게 힘들지 않을 수도 있지만요. 힘든 상황이 계속된다면, ‘가치’에 초점을 두고 숙고해야 할 겁니다. 그간 우리는 굳이 여행하지 않고도 누릴 수 있는 것들을 위해 여행한 적이 많잖아요. 하지만 앞으로 여행은 비로소 더 중요해지겠죠. 여행을 덜 가는 분위기 속에서 여행을 간다면 그건 어떤 면에서든 정말 중요한 여행이라는 의미니까요. 여행을 전혀 떠나지 않는 일은 쉽게 일어나지 않을 듯합니다. 인류 역사에서 여행은 언제나 중요한 활동 이었어요. 주변 풍경을 바꾸고, 발견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사람을 만나고자 하는 욕구는 지극히 인간다운 발로니까요. 새롭게 발견하고 감동받는 것. 그게 여행의 이유 중 하나죠. 안 그런가요?
루이 비통 오브제 노마드에는 매년 당신뿐 아니라 각 나라를 대표하는 산업디자이너들이 협업 형태로 참여합니다. 그건 ‘여행의 예술’이라는 테마를 재해석하는 한정판 가구 컬렉션인데, 그 미래는 어떻게 흘러갈 것 같아요? 두 가지 방향으로 나아갈 것 같습니다. 첫째, 관객을 놀라게 하는 것. 참여하는 디자이너와 아티스트들은 이제 전보다 한층 더 독특하고 특별한 걸 만들어야 해요. 여기까지 왔고, 앞으로 나아가야죠. 둘째, 그 반대로 어쩌면 덜 놀랍고, 받아 들이기에 보다 쉬운 무언가를 만들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이 두 방향 모두 가치가 있을 겁니다. 사실 지금 우리 스튜디오에서는 아주 이상한 작품을 만들고 있어요. 이상하지만, 보편적인 재료를 이용한 것이죠. 아직까지는 많은 이야 기를 털어놓을 수 없네요. 역설적이게도 희귀하고 특별하면서 활용 가치 또한 높은 작품이 될 거라고 봐요.
역시, 베테랑은 다 계획이 있군요. 이제 막 시작했습니다…
오브제 노마드 컬렉션을 발표하면서 ‘여행은 스스로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라는 말을 하신 적 있어요. 그럼 지금과 같은 시기에 우리가 스스로에게 줄 수 있는 선물은 뭘까요? 집이 아닐까요? 보다 많은 사람이 거주지 안에서 개인적 공간과 공적인 공간 모두를 상상하게 될 거예요. 여행을 많이 하지 않아도 야외로 더 나가려 하고, 따라서 잘 가꾼 집으로 돌아오는 게 더 중요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집이란 어떤 집인가요? 홈이자 하우스로서의 집, 두 측면에서 생각해보 자면요. 최근 마요르카처럼 따뜻한 섬에 살 만한 데를 찾아보고 있어요. 물론 거기서 살 경우 제가 원하는 건 암스테르담에서와는 다른 성질이겠죠. 음, 바로 답 하기엔 좀 어려운 질문이네요. 저는 일이 바빠서 그런지 제가 살 집에 바라는 게 많지 않거든요. 너무 춥거나 너무 덥지 않고, 비가 너무 많이 내리지 않는 곳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정도를 합니다. 아, 경치는 중요합니다. 경치 좋고, 친구들과 파티 열기 좋은 집을 원해요. 집은 결국 내가 누구인가, 어떻게 살고 싶은가 에 대한 문제 같습니다.
‘집’이라는 말을 어떤 맥락에서 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저는 누군가 그 단어를 생각할 때 ‘물리적인 집’과 ‘심리적인 안식처’ 중 먼저 떠오르는 어느 한쪽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릴 적에 자란 집이 나이가 들어서도 생생한 걸 보면, 집은 누군가의 역사에 관한 일이기도 하고요. 제가 가끔 노숙자들을 인터뷰합니다. 그들에게 관심이 있고 도우려고 노력할 때도 있어서, 의견을 나누는 거죠. 한번은 어느 노숙자에게 집에 관해 물어본 적이 있어요. 집이 무엇인 것 같으냐고 물었을 때 그의 답은 ‘기억을 쌓아두는 곳’이었어요. 그는 다른 노숙자들처럼 수레에 자기 살림을 싣고 돌아다녔는데, 어느 날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청소부가 수레 안의 물건을 몽땅 버렸대요. 쓰레기인 줄 알았나 봅니다. 그 살림 속에는 아내와 아이들의 사진도 있었기 때문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해요. 그의 이야기를 아마 저는 영영 진정으로 이해하진 못할 겁니다. 집은 시간과 공간을 이어주고, 내 역사를 보호해주는 역할을 한다는 걸 문득 상기했을 뿐이죠.
당신은 제품 디자인으로 시작해서 공간 디자인과 건축 디자인으로 영역을 넓혀간 경우잖아요. 하얏트, 호텔과 투자 사업을 하는 홍콩 미라마르 그룹, 뉴욕의 모건 호텔 그룹 등과 일하며 주로 호텔과 건물, 매장 디자인을 많이 했고요. 제품에서 공간으로 영역에 변화를 줄 때의 경험은 어땠나요? 공간 디자인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늘 하고 있었는데, 정말 우연히 한 번에 큰 프로젝트 세 개를 덜컥 맡게 됐어요. 여태껏 일하던 분야와 다른 분야의 큰 프로젝트를, 석 달 동안 세 개나! 첫 시작은 암스테르담 근처에 있는 아주, 매우, 정말 작은 부티크 호텔 인테리어 디자인 프로젝트였습니다. 객실 7개, 데스크와 로비뿐이었어요. 엄청 신나게 했죠. 객실 7개가 아니라 호텔 몇 채를 디자인한 것처럼 환상적인 기분이었으니까요. 그때는 시간도 많아서, 그 작은 공간에 부려볼 만한 멋진 디자인 시안을 500개 정도 그려봤습니다.
가장 좋아하는 재료는 뭔가요? 뇌! 사람의 뇌. 훌륭한 재료 는 바로 우리 머릿속에 있어요. 뇌는 성격을 지닌 유일한 재료예요. 제가 어떤 일을 했는데 저의 뇌에서 아무 반응이 없다면 저는 아무것도 안 한 겁니다. 만약 제가 당신과 관련한 일을 도모했을 때 뇌가 반응한다면, 제가 중요한 일을 한 걸지도 모르죠. 그때부터는 나무, 유리, 가죽 등 그 어떤 재료도 신경 쓰지 않을 겁니다. 저는 사람에게 집중해요. 사람에게 가 닿고 싶어요. 인간적이고, 낭만적이고, 마음으로 느끼면서, 지속 가능하게. 그런 것이 저의 언어입니다.
작은 단위의 리빙 디자인부터 공간을 연출하는 인테리어와 건축 디자인 등등에 이르기까지, 당신의 디자인 이력은 가짓수도 많고 범위도 넓습니다. 어렵겠지만, 당신의 역작 세 가지를 꼽아본다면요? 내일이면 또 다른 세 개를 꼽을 거지만, 일단 오늘 상태로는… 바카라와 협업한 거대한 샹들리에인 ‘태양왕(Le Roi Soleil)’, 루이 비통 오브제 노마드 컬렉션 중 ‘라운지 체어’, 그리고 몬드리안 도하 호텔 인테리어 디자인.
3분 기다릴 생각 했는데, 비교적 망설임 없이 꼽으시는데요? 내일 다시 물어봐주세요. 분명 달라질 거예요.
오늘 만나는 동안 당신의 에너지가 화면 너머로 전달됐어요. 당신이 생각하는 가까운 미래는 낙관적일 것 같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의 큰 부분은 아이디어, 영혼처럼 비물리적인 것이 차지하지만, 또 어떤 부분은 매우 물리적이에요. 그 물리적인 부분으로 곧 돌아오게 될 거라고 봅니다. 우리는 돌아올 방법을 찾을 거예요. 세계가 점점 온라인화되어도 여전히 물질적인 무엇이 필요합니다. 언젠가는 없어질 육체를 지니고 있는 한에는 육체라는 그 물질로 계속 존재해야 하잖아요. 그러면서 유지해야 할 물리적인 현실이 있고, 저 같은 사람은 다른 사람을 위해 만들어야 할 현실이 있어요.
이제 인터뷰를 마쳐도 될 것 같아요. 기분 좋게 대해주셔서 참 고맙습니다. 오늘 오후에는 어떤 일정이 있으세요? 우리 딸이 내일이면 스물두 살이 돼요. 경영학을 배우고 있는 데, 관련된 일을 좀 해야 한대서 같이 정장을 맞추러 갈 거예요. 그 이후에는 새로운 디자인 스타트업에 관한 미팅이 있고, 제품 검토할 것도 몇 개 있고, 음, 또… 아무튼 저는 계속 할 일이 있네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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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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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URTESY OF LOUIS VUITTON MALLETIER MARCEL WANDERS STUD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