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환상의 2019 S/S 오트 쿠튀르 동화.
우리가 현실의 차가운 계절을 마주할 때, 패션 월드는 최고 수준의 장인 정신과 창의성이 발현되는 쿠튀르 컬렉션으로 봄의 포문을 연다. 여성 곡예단과 서커스장으로 관객을 압도한 디올, 18세기 남프랑스의 지중해풍 정원으로 초대한 샤넬, 꽃으로 표현하는 옷의 한계를 뛰어넘은 발렌티노, 쿠튀리에의 영역에 다시 선 발맹. 진정으로 패션을 사랑하는 이들에게만 허락된, 꿈과 환상의 2019 S/S 오트 쿠튀르 동화.
DIOR
디올의 서커스장으로 초대한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는 이번 시즌 하우스의 오랜 영감의 대상이었던 서커스 세계를 담았다. 1955년 크리스찬 디올이 좋아했던 겨울 서커스장과 오트 쿠튀르를 촬영한 ‘도비마와 코끼리’라는 리처드 애버던 사진이 시초였을까. 이후 존 갈리아노에게 소환된 서커스 코드는 지금의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가 자신의 고향과 나폴리로 이어지는 발레 퍼레이드에서 발전시킨 그녀만의 독창적인 컬렉션으로 귀결했다. 불투명한 글리터 장식, 자수를 수놓은 튀튀 스커트, 발목을 좁힌 루스한 팬츠, 리본 장식 블라우스와 재킷 등 여성과 남성, 광대의 다양한 이미지가 중첩된 룩은 우아하고 서정적이었다. 오프닝부터 피날레까지 이어진 여성 곡예단, 밈브레(Mimbre)의 강인하면서도 아름다운 퍼포먼스는 쇼에 드라마를 더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VALENTINO
꽃의 이름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밝힌 피에르파올로 피촐리. 나오미 캠벨을 비롯해 나탈리아 보디아노바, 마리아카를라 보스코노, 리아 케베데, 카이아 거버, 빅토리아 세레티 등등 이번 쿠튀르 컬렉션 무대에 가장 많은 슈퍼스타가 출동했다는 것 외에도 황홀한 쇼였음을 옷으로 증명했다. 섬세한 레이스와 아일릿, 비즈로 장식한 꽃, 거대하게 부풀린 소매, 러플과 깃털 장식 등 여자의 꿈 같은 낭만을 실현하는 요소들로 채워진 드레스는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푸크시아 핑크, 다홍, 옐로 등 시각적 자극과 함께 반짝이 스팽글 장식의 현대적인 면모도 발렌티노 안에서는 클래식과 환상을 넘나드는 교향곡처럼 느껴졌다. 눈 주변을 깃털로 장식한 메이크 업은 꽃으로 환생한 여자를 보는 듯 매혹적이었음은 물론. 피날레의 슈팅에서 감격에 겨운 듯 눈물을 흘린 나오미는 관객들에게 가슴 뭉클한 순간을 선사했다.
BALMAIN
디자이너 올리비에 루스테잉의 스케줄에 남성 컬렉션과 메인 컬렉션 사이 쿠튀르가 추가됐다. 발맹 입성 후 그의 첫 쿠튀르 쇼를 준비하면서 하우스의 아카이브를 집중적으로 연구했다는 이 재기 발랄한 청년은 피에르 발맹에 대한 오마주로 출발했다. “2019년의 쿠튀르란 무엇인가?” 그와 나눈 상상 속 대화에 대한 답은 패션에 대한 꿈과 아름다움을 복기할 수 있는 계기였다는 것. 1백만 개의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 진주와 스톤, 비즈를 장식했을 뿐만 아니라, 동그란 형태를 스커트와 옷, 핸드백과 액세서리로 활용하는 듯 예상치 못한 실루엣도 시선을 끌었다. 오리가미를 이용한 주름 장식, 그라피티를 믹스한 패턴, 데님의 등장은 하우스의 장인 정신과 테일러링에 현대성을 더하려는 의도로 보였다. 수줍은 듯 눈물을 보이며 피날레에 등장한 올리비에의 쿠튀르 데뷔는 성공적!
Maison Margiela
존 갈리아노의 예측 불허 아티즈널 컬렉션은 이번 시즌 역시 현실과 이상 세계를 오가는 독특한 캐릭터들로 관객의 시선을 압도했다. 성별과 출신이 모호한 세계의 인종처럼 보이는 모델이 심장을 쿵쾅거리는 비트 사이로 빠르게 걸어 나왔다. 컬렉션의 주요 모티프는 3D 형태로 구현한 푸들. 프린지 코트와 드레스, 케이프 등에 울과 헤링본, 자카드, 펠트 소재를 입체적으로 부착하기도 하고, 실크 프린트로 단순하게 활용하기도 했다. ‘퇴폐적인 커팅(Decadent Cutting)’이라고 명명한 기법은 규칙성을 파괴한 지점에 정확히 잘려져 있었다. 코트는 스커트로, 바지는 톱이 되는 반전 스타일도 있었으며, 남자와 여자의 경계가 무의미한 젠더리스 룩이 현란한 패턴과 세부 장식으로 완성되었다. 핸드메이드 터치가 느껴지는 펠트 모자, 커다란 인형의 신발을 모형으로 만든 듯한 고무 가죽 신발은 이 모든 캐릭터에 방점을 찍었다.
Givenchy
1930년대 파리의 건축물을 대표하는 시립현대미술관에서 쇼를 연 지방시. ‘Bleached Canvas’라는 주제를 충실히 따른 클레어 웨이트 켈러는 화가 앙리 마티즈와 조르주 브라크 등 야수파 화가들의 작품을 연상시키는 색채감이 강렬한, 작품 같은 룩을 전시하듯 컬렉션을 펼쳤다. 블랙과 화이트로 모던하게 풀어간 초반부와는 반대로 코발트, 옐로, 레드, 바이올렛 등 팝한 컬러는 새하얀 캔버스 위에 물감이 흐르는 듯한 효과를 주기도 했다. 한편 섬세한 시스루 튤과 오간자, 구조적인 페플럼 형태, 유연한 케이프와 오리가미 장식 꽃잎 등 섬세한 터치를 입고 한층 깊어진 쿠튀르적 면모를 보여주었다. 특히 뒤돌아서면 백팩이 되는 빅보 장식의 반전 매력과 총천연색 프린지 실루엣은 그녀의 현대적인 감각을 짐작하게 했다.
- 패션 에디터
- 이예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