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넬 2018/19 파리-뉴욕 공방 컬렉션이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덴두르 신전에서 열렸다. 황금으로 치장한 모두가 이집트인처럼 걸었던 그 황홀한 밤에 대하여.
매년 샤넬이 워크숍의 영광을 공개하고, 창의력을 극한까지 밀어붙이기 위해 발표하는 공방 컬렉션 (Metiers d’Art)의 행선지는 일찌감치 뉴욕으로 정해졌다. 로마, 뭄바이, 잘츠부르크, 두바이, 서울, 아바나, 싱가포르, 스코틀랜드의 린리스고를 거쳐 자신의 홈타운인 독일 함부르크에 정박한 칼 라거펠트는 이번 쇼를 위해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Metropolitan Museum of Art, 이하 메트)의 ‘덴두르 신전(The Temple of Dendur)’을 공방 컬렉션의 베뉴로 낙점했다. 라거펠트는 자신이 생각하는 가장 세계적인 장소를 꼽아 종종 쇼를 열어왔다. 그 랑팔레에 숲과 인공 해변을 만들어내는 그. 그에게도 ‘불가능’이라는 단어가 떠오를 때가 있을까? 프랑스 최정상급 브랜드가 미국, 그것도 뉴욕 메트에서 쇼를 열다니. 절대 평범한 쇼와 구상으로는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다. 샤넬의 비전에 더욱 무게가 실렸다. 지난해 메트갈라(Met Gala) 및 그 일환으로 열린 패션 전시 <Heavenly Bodies>로 역사상 최다 관람객 165만 명 이상을 기록한 사실이 있는, 패션과 연관성이 큰 이 장소와 최고의 쿠튀르 기술을 보유한 하우스의 역사적 만남이 그렇게 실현되었다.
기원전 10년의 웅장한 배경. 이 사연 깊고도 대단한 덴두르 신전은 유리 천장 아래 장엄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덴두르 신전은 이집트를 점령한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이시스 여신과 누비아 왕자를 위해 만든 것이다. 1965년 아스완 댐 공사로 많은 이집트 유적이 수몰 위기에 처하자, 이집트 정부는 유네스코에 지원을 요청한다. 당시 유적 보호와 댐 건설 비용을 지원한 미국에 이집트 정부는 보답의 의미로 덴두르 신전 일부와 많은 양의 유물을 기증했고, 미국은 영예롭게 그 영광을 안았다. 그리고 자리하게 된 메트. 신전이 있는 갤러리로 향하는 해자에 도착하는 게스트들에게 더 극적인 느낌을 주기 위해 높은 가벽이 설치됐는데, 이를 가리 기 위해 심어진 파피루스 덤불 덕분에 맨해튼의 랜드마크가 더욱 드라마틱하게 보였다.
라거펠트는 뉴욕과 이집트의 세련된 매시업을 생각하고 있었다. 오프닝을 장식한 것은 2019 S/S 시즌에 처음 선보인 슈퍼 사이즈 재킷을 좀 더 날렵하게 변형시킨 것이었다. 하의는 고대 이집트인들이 입었던 션디트(Shendyt) 또는 로인클로스(Loincloth)를 커팅한 스커트를 입혔는데, 단순하고 기하학적인 라인은 뉴욕의 스카이라인 같기도, 고대 상형문자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어 발목까지 오는 얇은 아이보리 시폰 드레스에 트위트 재킷 슈트나 스커트를 레이어드한 룩은 마치 클레오파트라와 그녀의 무리들이 입을 법한 칼라시리스 (Kalasiris) 같았다. 샤넬을 대표하는 트위트는 가브리엘 샤넬이 사랑한 금색으로 얼룩졌다. 카이로의 남쪽, 나일강 유역에 있던 고대 이집트의 수도 멤피스가 과연 이런 풍경이었을까. 말장난을 좋아하는 라거펠트는 몇 몇 프린트에 1980년대 디자인 그룹 멤피스를 리드한 아티스트 에토레 소트타스(Ettore Sottass)가 그린 낙서 작품의 스타일을 차용하기도 했다.
공상과학 만화 플래시 고든(Flash Gordon)을 연상시키는 칼라 모양은 충분히 극적이었지만, 그 세부는 더 자극적이었다. 튤, 시퀸, 메탈릭한 리본을 섞어서 짠 트위트, 하나하나 손으로 엮었을 아주 작은 구슬들, 정교한 뜨개질, 금사로 된 피라미드 삼각형, 금으로 된 잎 장식 등 샤넬이 인수한 위대한 공방들의 기교와 역량에 눈이 어지러울 지경이었다(자수 공방 르사주, 깃털과 꽃 장식 공방 르마리에, 구두 공방 마사로, 여성 모자 공방 메종 미셸, 커스텀 주얼리와 단추 공방 데뤼 등 총 아홉 곳이 있다).
가죽 소매에 도장을 찍거나, 비늘 모양을 주얼리에 몰드 형태로 살린 대안이 효과를 발휘했다. 샤넬은 쇼 전 날 악어와 파충류, 가오리 가죽을 더는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 선언했다. 모든 주얼리는 고대 이집트의 유물이나 다름없었다. 디자인 차용은 물론, 호화로운 금과 상아색 주얼리에 산호와 파란색 풍뎅이 모양의 장식이 추가됐고, 이브닝 백 모양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단추, 귀고리, 펜던트, 벨트 등 곳곳에 쓰인 풍뎅이는 이번 쇼의 중요한 모티프로 고대 이집트의 태양의 신 ‘라’, 과거와 현재, 미래를 통합한 태양의 순환을 상징한다. 라거펠트의 시적인 표현에 따르면 ‘결코 잠들지 않는 도시의 반짝이는 그림자 속에서 꿈을 꾸는 시간’이라 고.
이집트 문명에 매료된 라거펠트는 투탕카멘에 주목했다. 18세에 요절한 비운의 왕 투탕카멘의 무덤은 테베 서쪽 ‘왕가의 계곡’에서 발견됐는데, 함께 발굴된 죽은 파라오의 보물은 지금까지도 패션 디자이너들에게 거부하기 힘든 마력을 발산한다. 모든 모델은 투탕카멘의 보물 중 가장 유명한 황금 마스크 식의 눈화장을 했고, 퍼렐 윌리엄스는 소년 왕의 페르소나가 되어 캣워킹을 선보였다. 뱅글스의 1986년 히트송 ‘Walk Like An Egyptian’의 ‘Egytian’이 일렉트로닉하게 반복되는 리프가 나오자 알파벳 시티인 뉴욕 거리와 지하철의 수많은 그라피티, 그리고 이번 쇼의 초대장과 그라피티 프린트를 디자인한 프랑스 아티스트 시릴 콩고(Cyril Kongo)가 떠올랐다. 라거펠트는 “뉴욕은 여러 문화가 하나로 융합되어 시너지를 만들어내는 곳이지요. 정말 흥미로워요”라며 뉴욕 거리에 대한 찬사를 늘어놓았 다. 쇼의 끝에, 여느 때처럼 대자인 허드슨 크로닉 (Hudson Kroenig)과 샤넬 패션 스튜디오 디렉터인 버지니 비아르(Virginie Viard)가 라거펠트의 피날레 인사를 도왔다. 강렬한 상상력, 문화적 폭식으로 거대 브 랜드의 비전을 구축해온 샤넬의 파라오. 우리는 감히 라거펠트의 부재를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그의 곁에 있던 파피루스가 흔들렸다. 뉴욕에 나일강을 흐르게 한, 또 하나의 패션 모멘트가 완성된 순간이었다.
강렬한 상상력, 문화적 폭식으로 거대 브랜드의 비전을 구축해온 샤넬의 파라오.
우리는 감히 라거펠트의 부재를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 패션 에디터
- 이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