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맛에 날카로운 통찰이 돋보이는 신간 세 권을 새해의 시작으로 권한다.
인터뷰라는 행위는 때로 지리멸렬해서 하는 자와 당하는 자 모두 수렁에 빠지거나, 반대로 그 순간을 박제하고 싶을 만큼 반짝이는 발견으로 채워진다. 온라인 매체인 <조선비즈> 문화부장 김지수는 인간이라 는 행성을 탐구하는 인터뷰의 달인이다. 그녀가 ‘김지수의 인터스텔라’라는 타이틀로 연재한 인터뷰를 모아 책을 냈다. 책에 실린 인터뷰이들의 특징은 성취와 업적에 압도당하지 않고, 일한다는 본연의 즐거움을 오래 누릴 줄 아는 이 시대의 ‘어른들’ 이라는 점. 단단한 존재의 벽돌로 자기를 쌓은 어른의 입에서 나온 말은 그냥 한 마 디라도 가슴에 쿡 박힌다. 이를테면 재능이 숙명인 자의 삶이 가늠되는,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의 이런 말. “어떻게 나한테 행복하냐고 물어볼 수 있어요?” <자기 인생의 철학자들>(어떤책)은 어른 16명이 전 하는 일과 삶의 정수다. 남이 내 비위 안 맞춰주니 내가 먼저 내 비위 맞추고 살아야 한다고 일명 ‘건달론’을 펼치는 90대 현역 디자이너 노라 노, 50년간 수많은 의뢰인의 삶을 분석하면서 ‘운이란 하늘의 귀여움을 받는 것’이라는 운의 이치를 파악한 일본인 변호사 니시나카 쓰토무, ‘60 세는 돼야 창의적인 생각이 쏟아져 나온다, 하지만 60세에 어떻게 살지는 40대 에 정해야 한다’는 김형석 연세대 철학과 명예교수 등등. 내공과 내공이 만나 일으키는 화학 작용을 책에서 확인할 수 있다.
<요즘 브랜드>(HB Press)의 저자는 매거진 <B> 에디터 박찬용이다. 그는 지금 시점에, 혹은 지금까지 가장 할 말이 있는 브랜드들의 핵심을 분석해 ‘쓸모 있는 소비 사전’을 완성했다. ‘당신은 그 브랜드를 왜 좋아하나?’라는 물음의 다른 표현은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일 것이다. 신앙에 가까운 자신감을 품은 다이슨, 기술보다 감각과 매뉴얼로 승부하는 무인양품, ‘시장의 원조’라는 부동의 역사를 지닌 라이카 등 한 브랜드의 가치와 전략을 알아갈 때 마다 내 취향을 확인하며 교양과 지성도 쌓을 수 있다.
<더블유>와 한 인터뷰에서도 걷기 예찬을 펼친 배우 하정우는 급기야 <걷는 사람, 하정우>(문학동네)를 냈다. ‘걷기’라는 주제로 이렇게 페이지가 술술 넘어가는 데다 스펙트럼까지 넓은 글을 누 가 쓸 수 있을까? 과로로 쉼이 필요할 때 마냥 늘어져 있는 건 휴식이 아니라 악순환의 시작이라는 일갈을 비롯해 그가 걷는 동안 벌어지는 일과 생각의 고백 사이사이, 배우 생활에 관한 진솔함이 배어 있다. 티베트어로 ‘ 인간’은 ‘걸으면서 방황하는 존재’라는 뜻이라고.
- 피처 에디터
- 권은경
- 포토그래퍼
- 박종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