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름 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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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색조 매력의 ‘주름’에 관하여.

톱은 산드로, 스커트는 포츠 1961 제품.

톱은 산드로, 스커트는 포츠 1961 제품.

‘주름치마’ 하면 떠오르는 기억들은 이렇다. 설렘 가득 엄마와 손잡고 가 맞춰 입어본 체크무늬 교복, 성숙한 요조숙녀처럼 보이고 싶어 대학 첫 미팅 때 입은 치마 등 대부분의 기억은 ‘여자다움’과 ‘얌전함’으로 연결된다. 책으로 치자면 고전문학 전집 시리즈 한 권은 꼭 차지할 것만 같은 주름치마는 이번 시즌에도 어김없이 런웨이 위에서 존재감을 발휘했다. 하지만 여자답고 우아하기만 한 기본 무드에 그치지 않은 것이 가장 큰 특징인데, 유독 화려한 2018 F/W 시즌의 주요 트렌드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한 새로운 전략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마크 제이콥스 컬렉션 같은 80년대 무드, 발맹의 슈퍼 글램 글리터링, 구찌의 화려한 꽃무늬, 펜디, 프라다의 그래픽 로고 패턴, 톰 포드의 앙칼진 애니멀 프린트는 물론이고 웨스턴 무드와 화려한 프린지에 이르기까지, 시선을 강탈하는 주역으로 가득한 이번 시즌에서 주름의 활약 역시 돋보였다.

먼저 베이식하면서 익숙한 주름 장식 아이템을 신선하게 입는 방식으로 패션 피플을 열광케 한 컬렉션은 바로 발렌티노다. 발렌티노 레드를 중심으로 아름답고 우아한 색채를 펼친 피에르파올로 피촐리는 주름이 나풀거리는 레드 드레스에 팬츠와 네온 핑크 블레이저를 매치해 모던한 우아함을 겸비한 동시대 여성을 그려냈다. F/W 시즌의 머스트 쇼핑 아이템으로 꼽힌 발렌시아가의 주름치마 역시 간결한 트위스트 스타일로 화제가 됐다. 뎀나 바잘리아 특유의 예측 불허 아이디어가 가미된 발렌시아가 룩은 칼날처럼 곧게 뻗어 내려간 촘촘한 나이프 플리츠(Knife Pleats)가 발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찰랑거리는 모습이 매력적이다. 주름치마는 구겨서 끼워 여민 듯한 벨트와 둔탁하다고 느껴질 만큼 크고 묵직한 산악 모티프의 체인 목걸이와 어우러졌다. 가장 여성스러운 아이템을 액세서리 믹스 매치만으로도 충분히 강렬하고 새롭게 스타일링할 수 있다는 확실한 팁을 준 셈이다. 주름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사카이의 치토세 아베는 보다 해체적이고 실험적인 주름의 새로운 해석에 몰두했다. 궁극의 하이브리드 패션으로, 비대칭 실루엣과 니트, 패딩, 울 코트를 포함한 다양한 패턴 레이어링을 통해 주름치마를 가장 구조적이고 건축적인 방식으로 활용한 것이 특징이다.

톱, 스커트, 목걸이, 벨트, 부츠는 모두 발렌시아가 제품.

톱, 스커트, 목걸이, 벨트, 부츠는 모두 발렌시아가 제품.

이번 시즌은 시스루 소재를 통해 보다 입체적으로 주름 장식을 활용한 점도 돋보인다. 바람에 따라 유유히 넘실거리는 호수의 물결 같은 랑방의 주름 시어 드레스, 화이트 셔츠를 드레스 위에 겹쳐 입어 몽환적인 소녀 무드를 만들어낸 시몬 로샤의 블랙 시스루 주름치마, 잔잔한 레이스 장식까지 함께 곁들인 가죽과 오간자 소재가 어우러진 로에베의 주름 드레스는 가장 실용적이면서도 드레시하게 주름 장식을 입는 새로운 방식을 제안한다. 주름의 변화무쌍한 자태는 이뿐만이 아니다. 디올 런웨이에서는 록스타가 연상되는 티셔츠, 벨트와 어우러진 체크무늬 주름치마가 등장하였는가 하면, 스포트막스에선 스키복과 같은 겨울 스포츠 모티프의 상의와 매치해 스포티 터치까지 더했다. 여기에 벨트로 몸의 실루엣을 강조해, 주름치마 특유의 여성성을 배가했다.

DIOR

LANVIN

SIES MARJAN

VALENTINO

VICTORIA BECKHAM

개인적으로 이번 시즌 주름 장식의 향연 중, 직선적인 주름에서 벗어나 ‘곡선’적 변형을 시도한 뉴욕의 시스 마잔과 빅토리아 베컴을 베스트로 꼽고 싶다. 불규칙한 주름이 마치 가운데로 빨려 들어가듯 회오리처럼 볼록하게 곡선 형태를 그리는 시스 마잔의 실크 드레스는 파티 드레스로는 물론이고, 미니멀한 플레어 팬츠와 매치해 슬릭한 애티튜드를 표현하기에 충분하다. 빅토리아 베컴도 주름을 가운데로 모아 묶은 듯한 장식으로 롱&린 실루엣에 우아함을 불어넣으며 주름을 바라보는 독특하고 창의적인 시선을 제안했다.

그렇다면 이번 시즌 주름 아이템을 연출하는 데 꼭 기억해야 할 단 하나를 꼽으라면 무엇일까? 그건 바로 모범생처럼 느껴지는 주름 아이템에 일종의 ‘반항심’을 불어넣기를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클래식한 특징에서 오는 지루함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맥시멀한 믹스 매치를 즐기거나 스포티, 로큰롤, 스트리트 무드의 아이템 같은 전혀 상반된 스타일과의 조합을 과감하게 시도해보길 권한다.

패션 에디터
백지연
포토그래퍼
박종하
모델
선윤미
헤어
이에녹
메이크업
오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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