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기억해야 할 이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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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계의 미래를 책임질 디자이너 6인을 만났다. 자신만의 기조로 디지털 시대를 정면으로 돌파해가는 이 디자이너들의 이름은 분명 기억해둘 만하다.

SAMUEL ROSS  차가운 장벽 너머에

어콜드월 포트레이트

영국패션협회 쇼 스페이스의 2층, 공사가 한창인 빌딩 안에 디자이너의 스튜디오가 있을까 생각한 찰나. 한쪽 귀퉁이 사무실에서 새뮤얼 로스가 갑자기 모습을 드러냈다. 쾌활한 웃음, 예민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시원시원한 몸짓. 노동자들과 공장이 많은 노스햄프턴셔 출신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과 격차를 부수는 것이 목적이라는 브랜드 ‘어 콜드 월(A-Cold-Wall)’을 스트리트 신을 주도하는 브랜드 반열에 올리기까지. 두려움이라곤 모를 것 같은 낙관적인 영국 남자가 성큼성큼 걸어왔다.

컬렉션을 본 사람들이라면 어 콜드 월(이하 ACW)이 단순한 스트리트 브랜드 이상의 철학을 가졌다는 사실을 알아챘을 것이다. 새뮤얼 로스가 요즘 어떤 생각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하는지 궁금하다. 보통 새벽 5시에 기상해 조깅, 샤워를 하고 6시 15분에 일과를 시작하고, 밤 10시쯤 취침한다. 생각보다 세심하고 규칙적인 패턴을 유지한다. 최근 ‘미래와 낙관주의’에 대해 많이 생각한다. 이상적인 미래가 내 영감의 원천이다. 이번 쇼를 계기로 확실히 ACW의 세계관이 구축된 듯 보였다. 최근 쇼에서 가장 주력한 점은? 브루탈리즘과 럭셔리 사이의 간극, 노동자와 상위 계층 간의 연결에 대해 생각했다. ACW는 두 계층 사이의 어떤 지점에 있다. 우리가 하이엔드를 지향하지만 동시에 티셔츠도 팔고, 세컨드 레이블 개념인 폴리에틸렌 옵틱(Polythene Optics)을 론칭하거나 오클리와 협업하는 것처럼. 다양한 계층과 소통하는 것이 목적이다.

패션 스쿨을 졸업하고 디자이너가 되는 전형적인 루트를 밟지 않았다. 어떤 갈망이 당신을 패션으로 이끌었나? 18세부터 티셔츠 브랜드를 구상했고, 몇몇 숍에서 팔아보기도 했다. 항상 옷과 연관된 삶을 살았던 것 같다. 가짜 나이키 트랙슈트를 사고 파는 친구들, 나일론, 저지, 영국적인 스포츠웨어에 열광하
는 서브 컬처 등이 나를 지금으로 이끌었다.

말처럼 영국은 ‘서브 컬처의 근원지’라는 상징을 가지고 있지 않나. 컬렉션을 만들 때 ‘영국적인 것’에 영향을 받나? 100% 영향을 받는다. 살면서 강렬한 이야기를 많이 봐왔다. 후드(할렘 같은)에서 다양한 스트리트 패션을 보고 자랐고, ACW의 홀스터백 또한 친구가 권총 홀더에 총 대신 다른 물건을 넣은 것을 보고 만든 것이다. 내가 체감한 것들을 아방가르드하고 예술적이게, 또 상업성을 갖도록 디자인한다.

콘크리트 덩이 같은 나이키 협업 슈즈, 브루탈리즘에서 영감 받은 수이코크 협업 샌들, 디스토피아에서 태어난 콘크리트를 뒤집어쓴 인간 퍼포먼스까지. 당신의 세상 속엔 무엇이 있나? 브루탈리즘에서 느껴지는 예술적 감성에 대해 숙고했다. 거친 재료와 구조로부터 느껴지는 예술성과 실험성, 이런 것을 재구성 하는 것이 내가 갈고닦을 기술이다. 패션계 많은 이들이 성별 구분을 없애야 한다고 말한다.

당신 쇼도 남성복 기간에 열리지만 여성 모델이 많이 등장한다. 그런 점에서 커머셜 피스를 만들 때 고려하는 점이 있다면? 유니섹스적 측면도 있지만 그 구분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다. 사실 다음 여성복이 곧 공개될 예정이고. 두 번째 여성복 컬렉션 ‘실리카(Silica)’는 좀 더 편안한 기능성에 초점을 맞췄다. 레깅스, 치마, 크롭트 톱 등으로 구성될 것이다.

당신에게 영향을 끼친 아이코닉한 인물이 있나? 영화감독 쿠엔틴 타란티노다. 또 영화 <데어 윌비 블러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시티 오브 갓> 등 처절한 인간사를 그린 작품에 감명 받는 것 같다. 최근에는 레이철 화이트리드의 작품에 많은 영감을 받았다.

당신이 생각하는 가장 런던다운 장소를 추천해달라. 힙합 클럽 비전(Vision), 템스 베리어 공원(Thames Barrier Park). 내가 사는 이스트 런던을 벗어난다면 쇼디치의 미슐랭 레스토랑 라일스(Lyle’s)와 비건 푸드 쿡 데일리(Cook Daily)를 추천한다.

요즘 많이 묻는 질문이다. 환경 오염을 주제로 삼은 바 있는데, 환경 보호를 위한 실질적 노력이 있었다면? 아직 소규모 브랜드라 환경만을 고려하긴 힘들지만, 리사이클링한 실을 사용한다거나 친환경적 공장과 협업을 맺으려 하고 있다.

마지막 질문이다. 궁극적으로 새뮤얼 로스는 무엇이 될까? 패션, 조각, 건축을 넘나들며, 현대 디자인에 영향을 주는 셰이퍼가 되고 싶다.

CECILIE BAHNSEN  현대의 데카당스

세실리아 반센 포트레이트

벨벳 벌룬, 담요 같은 폭신한 퀼팅 드레스를 입은 목가적인 소녀들의 집단. 쿠튀르에 가까운 완성도로 단숨에 시선을 사로잡은 코펜하겐의 디자이너 세실리에 반센(Cecilie Bahnsen)에게 이메일로 인터뷰를 요청했다. 파리와 런던에서 수학하고, 2017 LVMH 프라이즈 파이널리스트로 선정된 그녀에게 서면으로 받은 답에서 차분하지만 기민한 눈길로 데카당스적 미학을 탐닉하는 쿠튀리에의 감성이 전해졌다.

2019 S/S 컬렉션의 백스테이지. 볼륨감, 리본 장식이 가장 큰 특징이다.

이번 코펜하겐 패션위크는 유럽 3대 패션위크에 뒤지지 않을 만큼 흥미진진했다. 코펜하겐에서 패션 디자인을 한다는 것은 어떨지 궁금하다. 여름에 패션위크가 열리면 도시 전체가 활기로 가득 찬다. 여기 녹아드는 건 아주 편안하다. 4대 도시 패션위크보다 훨씬 부담이 적어서 디자인하기에 좋고.

2017 LVMH 프라이즈 파이널리스트로 선정됐다. 그 뒤로 무엇이 달라졌나? 자신감과 도전 정신이 생겼고, 브랜드를 알리는 데 도움이 됐다. LVMH 프라이즈 수상자로 뽑히는 건 완성도와 디자인 측면에서 인증마크를 받은 것과 다름없으니까. 지금은 전 세계 52개 스토어에 입점되어 있다.

말처럼 도버 스트리트 마켓, 셀프리지 같은 세계 주요 편집숍에서 만날 수 있다. 주요 판로들이 당신을 주목하는 이유는 뭘까? 완성도, 여성성, 에포틀리스, 이 세 가지를 꼽을 거다. 디자인을 떠나서다. 학교 유니폼, 조각, 예술 작품. 당신이 컬렉션에 대해 설명한 단어다. 보통 컬렉션은 어떻게 출발하나? 학교 유니폼은 컬렉션 전체를 관통하는 ‘운명의 빨간실’ 같은 거랄까. 런던에서 패션 공부를 할 때부터 디테일, 레이어링, 집단적 아름다움 같은 것에 매료되었다. 디자인은 좀 더 예술적 과정을 거친다. 우리는 항상 새로운 패브릭과 테크닉을 개발하고, 서 있는 모델에게 천을 갖다 대서 가장 아름다운 실루엣을 찾는다. 조각하는 것과 유사한 과정이다.

컬렉션을 관통하는 무드가 분명 있다. 무엇이 당신의 아이덴티티를 강화시킬까? 볼륨, 텍스처, 라인, 실루엣 등이 모여 천천히, 자연스럽게 내 정체성을 형성한 것 같다. 좋아하는 형태를 발전시켜서 다시 만들고 또 만든다. 마치 한 드레스에서 다른 드레스로 생명이 옮겨가는 기분이 든다.

땋은 머리와 리본 장식도 항상 등장한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순수하고, 자연스러운 뷰티가 유니폼에 잘 어울린다. 이를테면 소피아 코폴라 식의. 가장 최근 2019 S/S 컬렉션은 일본 사진가 오사무 요코나미에게 영감 받았다. 집단적 개성의 매력을 띤 소녀들. 영국 이튼 칼리지의 교복과는 아주 대조되는 것이다.

무거운 벨벳 소재를 사용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늘 등장하는 퀼팅 기법도. 전통적 기법에 혁신을 담아 디자인한다. 퀼팅은 아주 오래된 테크닉 아닌가. 영국 직물을 사용하는 리투아니아 공방에서 작업한다. 대다수가 손으로 만들어지는데, 이런 것들이 모던한 여성성을 영구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이라 믿는다.

장식이 정말 섬세하고 아름답다. 당신은 완벽주의자인가? 확실하다. 그리고 조금 너드이기도. 독자적인 패브릭을 개발하고 그것을 디자인에 적용할 때 가장 행복하다. 드레스를 캔버스 삼아 볼륨을 가지고 놀 때도. 볼륨은 클수록 좋다! 아마 ‘Less is More’란 철학에 나는 평생 못 미칠 듯하다.

쿠튀르식 터치가 가미된 당신의 의복은 분명 일상에서 소화 가능한 지점이 있다. 어떤 생각을 가지고 디자인했나? 덴마크 가구와 건축이 높은 완성도, 기능주의, 모던함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 않나. 딱 그런 패션 브랜드를 세우는 게 로망이었다. 다만 내 드레스가 손대기 어려운 예술품처럼 남는 건 싫다. 입고 사랑받을 때 가장 아름다운 것 같다.

옷은 만드는 사람의 성향을 반영한다. 당신은 어떤 사람이고, 뭘 좋아하며, 어떤 것을 볼 때 행복을 느끼나? 어렸을 때부터 드로잉과 바느질을 좋아했다. 특히 여름철 바닷가 옆의 할머니 집에서 보낸 시간이 생각난다. 꼼꼼함과 차분함, 장인 정신에 관한 것들이랄까.

당신이 그리고 있는 세실리에 반센의 미래는 어떤 것인가? 지금의 성장과 발전에 매우 흥분되고 자랑스럽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내 주변의 아름다움과 혁신을 컬렉션에 투영하는 것이 내 할 일이다.

은근하고 강렬한

도산공원에 새로 문을 연 편집숍 ‘아데쿠베’에서 만날 수 있는 4인 4색의 디자이너와 나눈 인터뷰. 각자 개성이 뚜렷한 이들 덕분에 서울에서 즐길 수 있는 패션의 스펙트럼이 넓어졌다.

AKIRA NAKA 아키라 나카

아키라 나카 (1)
앤트워프 왕립예술학교에서 순수 미술을 공부하며 자신의 동양적인 정체성을 마주한 디자이너 아키라 나카. 일본 특유의 인디고 데님, 테일러 기반의 재킷, 다양한 패브릭이 사용된 컬렉션은 아주 생기 있고 매력적이다.

한 인터뷰에서 아키라 나카를 두고 동서양이 서로 다른 관점을 제기하는 것이 흥미로웠다. 스스로는 어떻게 정의하나? 아키라 나카는 다양한 면이 있는 일본 브랜드다. 하지만 벨기에에서 기본기를 익혀 다른 일본 브랜드와는 차별된다. 그러니벨기에의 실험 정신이 가미된 일본 브랜드라 정의하겠다.

디자이너가 되기로 결심한 계기는 무엇이었나? 앤트워트 왕립예술학교에서 수학한 시간은 어땠는지 궁금하다. 여성에 관한 일본적인 심미안을 전 세계에 널리 알리고 싶었다. 앤트워프에 살면서 한동안 세계적인 디자인에 대해 고민했지만, 결국 나의 정체성이 가장 중요한 것임을 깨달았다.

일본 디자이너들은 장인 정신과 섬세한 기술력으로 명성이 높다. 명맥을 잇는 디자이너가 되어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나? 물론 디테일과 장인 정신은 중요하지만 그를 나만의 독창적인 방법으로 표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게 아닌가 생각한다.

프로덕션은 어떤가? 일본과 유럽을 오가나? 텍스타일은 전 세계의 것을 사용하지만, 프로덕션은 모두 일본에서 진행된다.

‘Wearing the Attitude’ 라는 모토가 흥미롭다. 어떤 애티튜드를 말하는가? 여성이 스스로를 어떻게 평가하고 파악하는지, 그런 태도가 옷을 입는 데 많은 영향을 끼치는 것 같다. 난 모든 여성이 각자 개성이 있는 주체로 여겼으면 한다. 옷이 삶과 태도의 방식에 강한 영향을 행사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늘어진 슬리브리스가 독특하다. 당신이 꼽는 베스트 아이템은 무엇인가? 라펠이 작은 재킷이 이번 시즌의 메시지 ‘더 모던 밸런스’를 가장 잘 전달하는 것 같다. 숨어 있는 장식이 더 움직임을 준다.

당신의 옷은 부드럽고 트렌디하게 느껴진다. 아키라 나카를 상징하는 것은 뭘까? 진짜가 되는 동시에 특별해지는 것.

아데쿠베와 서울 몇몇 편집숍에서 당신 옷을 만날 수 있다. 어떤 여성들이 당신의 옷을 입을 것 같나? 옷으로 자유와 지성을 표현할 수 있다고 여기는 여성들.

AGANOVICH 아가노비치

아가노비치
디자이너 나나 아가노비치와 브룩 테일러가 함께 전개하는 브랜드 아가노비치는 한 번의 위기를 겪으며 더욱 공고해졌다. 어딘가 불온하지만 전위적이고, 독창적인 패션 세계로 돌아온 그들은 쿠튀리에로 새로운 발길을 내디디며 순수한 미학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한다.

만나게 되어서 반갑다. 소개를 부탁한다. 브룩 테일러이고, 나의 파트너 나나 아가노비치와 함께 아가노비치를 전개하고 있다.

아데쿠베를 통해 한국 팬을 처음 만나게 됐다. 소감이 어떤가? 서울에 가본 적은 없어서 더욱 흥분된다. 영화, 음악, 팝 문화 등 다양한 방면에서 창작이 왕성한, 아주 흥미로운 마켓이라 들었다.

쿠튀르부터 LA 티셔츠 프로젝트, 향수까지 창작 영역의 범위가 넓은 것이 독특하다. 2016년 말 우린 위기를 맞았다. 그전까지 우린 꽤 성공 가도를 달렸고, 매출도 가파르게 상승했다. 그러다 투자자와 문제가 발생했고, 결국 패션위크에 서지 못하게 됐다. 우리가 얻은 교훈을 통해 모든 것을 재고했고, 킥스타터를 통해 향수 라인과 티셔츠 라인을 론칭했다. 마침내 오트 쿠튀르 컬렉션에 다시 설 수 있게 됐고, 모든 것을 보상받았다. 지금은 비즈니스를 직접 하는 것보다 공방을 지켜보는 게 훨씬 신난다.

최근 컬렉션에서 무엇을 중점적으로 다뤘나? ‘게이트웨이’라는 아이디어에 몰입했다. 신체, 내면, 우주 모든 것을 통틀어 말이다. 우리 무드보드에는 조르주 바타유의 소설 ‘눈 이야기’에 삽입된 한스 벨머의 일러스트, 조지프 메릭의 사진이 있었다.

협업한 이들 중 친숙한 이름이 눈에 띄었다. 스테판 존스, 젠틀몬스터와의 협업은 어땠나? 스테판 존스 같은 마스터는 존재 자체로 겸손하게 만든다. 그는 아주 사려 깊지만, 결과물로 모두를 압도한다. 젠틀몬스터는 틸다 스윈턴과 협업 당시 그녀가 우리 드레스를 입어 인연을 맺었다. 젠틀몬스터 선글라스 중 ‘미드나잇 선’이라는 제품이 있는데 우리 컬렉션에 아주 이상적이었고, 그를 사용하게 됐다.

패션을 하면서 당신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사람은 누구인가? 우리의 시작부터 빛이 되어준 아만다 할레치, 프랑스 의상조합 대표 디디에 그룸박, 파리 PR이자 헬무트 랭과 릭 오웬스를 성공 반열에 올린 미셸 몽타뉴.

쿠튀르 컬렉션을 하겠다고 생각한 특별한 계기가 있나? 우리의 레디투웨어 컬렉션에는 이미 쿠튀르적 무드가 있었다. 패션 산업이 커져갈수록 쿠튀르를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들었고, 패션 미학을 추구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곳이라 생각이 들었다.

패스트 패션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어떠한가? 패스트 패션을 두고 좋다, 나쁘다로 평가할 수 없다. 많은 사람들에게 합리적인 가격의 옷을 제공할 수도, 거대한 환경과 인권 문제를 초래하기도 하는 양날의 검이다. 어떤 산업이든 덩치가 커지면 게을러지고 탐욕스러워지기 마련이다.

당신 옷은 도전하기 쉬워 보이지 않는다. 어떤 사람이 입고 즐길 수 있을까? 우린 패션의 순기능을 믿는다. 패션은 부적응자에게 단점을 극복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못생겼거나, 인기가 없거나, 시골 출신이거나. 이런 콤플렉스를 모두 포용할 수 있는 것이 패션이다.

당신이 그리는 브랜드의 미래는 어떤 것인가? 그룹 디 안트보르트의 닌자의 말을 인용하자면 ‘진짜란 것은 없다. 예기치 못한 것만 있을 뿐이다.’ 창작자로서 우리 친구들에게 예기치 못한 놀라움을 선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MAME KUROGOUCHI 마메 구로고우치

마메 쿠로고우치 (4)

일본 문화복장학원, 이세이 미야케 출신의 디자이너 마이코 구로고우치가 론칭한 마메 구로고우치. 전통문화에 관심이 많은 그녀가 현대적 감수성으로 디자인한 의복은 완성도 있는 디테일, 문화에 대한 이해가 녹아 있어 감탄을 불러일으킨다.

유럽과 일본을 오가며 일하나? 대륙을 횡단하는 삶은 어떤가? 도쿄와 파리에 거점을 두고 있지만, 여행이 유럽에 국한된 것만은 아니다. 아시아 여행도 잦다. 도쿄 사무실은 아주 붐비는 시부야 중심에서 15분 정도 떨어진 한적하고 깨끗한 동네에 있는데, 여행과 일상, 소음과 고요, 이런 균형이 창작에 도움이 된다.

도쿄에서 열린 당신 컬렉션을 봤다. 디테일이 완성도 높고 아름답더라. 100개의 매뉴팩처와 협업했다고 들었다. 옷 한 벌을 만드는 데는 방적공, 위빙, 염색, 재봉 등 많은 사람들의 수고가 필요하다. 이 모든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조율하는 것은 노력과 시간이 든다. 힘들지만 내 일의 흥미로운 부분이기도 하고.

100개 공방 중 세계 어디에도 없는 기술을 보유한 곳이 있을까? 있다면 소개해달라. 매 시즌 일본 전역을 여행하며 숨어 있는 공방을 찾아낸다. 한 예로, 시그너처 PVC백 시리즈는 수영 튜브와 의료용 장비를 만드는 공방에서 손으로 작업한 것인데 아주 만족스러웠다.

당신 인스타그램을 봤더니 일본 전통문화와 의식에 관심이 많아 보인다. 최근 흥미롭게 발견한 것이 있나? 인터넷으로 많은 것을 리서치할 수 있지만, 난 직접 지역 문화를 체험하고 흡수하는 것을 선호한다. 최근엔 아주 유명한 지방의 축제에 다녀왔고, 리서치를 위해 한국에도 자주 간다. 굉장한 자수 기술과 박물관, 길거리 도자기가 인상적이었다.

2018 F/W 컬렉션은 샤를로트 페리앙(Charlotte Perriand)에게서 영감 받았다고. 우연찮게 샤를로트 페리앙이 큐레이팅한 1940년대 중반의 카탈로그 <Choice, Tradition, Creation>을 보게 됐다. 일본 정부의 초청으로 일본을 여행하던 그녀가 만난 지역 장인들에 대한 것이다. 그녀의 업무는 그들을 보호하고 장인 정신을 해외에 널리 알리는 것이었다. 그렇게 전시 <Choice, Tradition, Creation>이 기획됐고, 당시의 카탈로그는 지금 봐도 굉장히 아름답고 모던하다. 그녀의 해박함에 감탄했고, 그를 계기로 내 주변의 소소한 것의 아름다움을 찾기 시작했다.

샤를로트는 르코르뷔지에의 후광에 가려진 인물이다. 그녀를 재조명한 이유가 ‘페미니스트여서’라고 할 수 있을까? 정치적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그녀가 여행하면서 발견한 아름다운 것을 재조명하고 싶었달까. 물론 내 옷이 여성을 격려하고, 여성 권익을 높이고자 하는 것은 맞다.

이세이 미야케에서 일했다. 당신에게 영향을 준 아티스트는 누구인가? 이세이 산을 매우 존경한다. 창작에 관해 타협하지 않는 태도, 디테일과 패브릭에 대한 깊은 관심 등 많은 영향을 받았다. 또 다른 아티스트로는 서도호가 있다. 국적을 초월한 예술성과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전혀 다른 뷰로 보여주는 것은 놀랍다.

일본은 전설적인 디자이너를 많이 배출했다. 동시대 디자이너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나? 패션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문화 산업 영역에서 걸출한 인물을 많이 배출했다고 생각한다. 요즘의 디자이너는 비즈니스 모델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작고, 독립적인 회사 상태를 잘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독창적인 디자인을 하고, 세상과 경쟁할 수 있는 열쇠니까.

이제 서울에서 당신 옷을 만날 수 있다. 더블유 독자를 위해 한마디 남긴다면. 한국에 내 옷을 선보일 수 있어 매우 기쁘다. 한국은 전통과 현대 문화가 조화를 이룬 정말 아름다운 나라다. 부디 사람들이 좋아해주길!

UNRAVEL 언래블

언래블 (1)
반항기 넘치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벤 타버니티는 흑표범 같은 그의 아내 조이스와 함께 해체주의적 성향을 가진 언래블을 이끌어간다. 가장 유명한 보머 재킷을 비롯, 레이스업 장식 데님과 가죽 팬츠는 리한나, 켄들 제너, 벨라 하디드 같은 패션계 잇걸이 사랑하는 아이템. 어떤 틀로 규정할 수 없는 언래블에 대해 그가 직접 말을 꺼냈다.

남프랑스 툴루즈와 파리와 LA에서 자랐다. 디자인하는 데 어떤 식으로 영향을 끼치나? 툴루즈에서 태어났고, 17세 때 파리로 이사했다. 패션의 수도답게 많은 것들이 영감을 줬고, 25세에 옮겨간 LA에서는 캘리포니아식 쿨한 라이프스타일에 영향을 받았다. 두 도시의 조합이 강한 시너지를 발휘하는 듯하다.

당신 부모도 디자이너라고 들었다. 디자이너 패밀리 안에서 자란다는 건 어떤 것인가? 아버지의 스튜디오에서 자랐기 때문에 패션은 마치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항상 컬렉션에 대해 아버지에게 조언을 구한다. 그의 판단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90년대 파리에서 패션 스쿨을 다녔다. 당시는 헬무트 랭, 마르지엘라 같은 디자이너가 부상한 시기 아닌가. 당신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나? 정말 중요한 시기에 파리에서 공부했다. 당시의 안티 패션 사조는 지금도 영향을 끼치지 않나. 사람들은 요즘 디자이너를 그때의 이름만큼 우러러보지 않는다. 언젠가 사람들이 나를 보고, 내가 하는 디자인에 영감을 받았으면 한다. 이는 내가 디자인하는 이유기도 하다.

‘To create something new, You must first destroy.’ 이 모토를 자주 언급한다. 무언가를 창조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에게 친숙하지 않은 방식과 관점을 제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난 사람들이 매일, 20년 넘게 입을 수 있는 옷을 디자인하고 싶다. 그리고 심미적 기준에 맞게 해체주의를 추구할 것이다. 시간이 갈수록 그러한 옷이 클래식이 될 거라 생각한다.

시즌과 트렌드에서 자유롭고 싶다고. 아이디어를 얻고 발전시키는 과정이 궁금하다. 나에게 진정한 럭셔리는 자유다. 트렌드는 창작에 사형을 선고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모든 브랜드가 같은 아이디어와 같은 컬러 콘셉트를 가지고 있다면 어떻게 차별화될 수 있겠나. 나는 내 고객에게 자유를 부여하고 싶다. 당신은 언제 어디서든 원하는 걸 입을 권리가 있다.

달라붙는 핏과 강렬한 인상을 주는 당신의 컬렉션은 ‘분명 스타들이 좋아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켄들 제너, 리타 오라 등이 입었더라. 언래블을 입었을 때 분명 다르다고 느꼈을 것이다. 모든 스토어나 온라인에서 구매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더욱 그럴 것.

음악에 남다른 취향이 있을 것 같다. 혹은 당신에게 영향을 준 것이 있다면. 파리에서 NTM, DJ Cut Killer의 음악을 즐겨 들었다. 또 영화 <증오(La Haine)>를 좋아한다. 이들은 음악과 영화에 새로운 움직임을 불러온 진정한 아티스트들이다.

구글링 도중 당신 집을 봤다. 인테리어가 강렬한데, 불이 난다면 가장 먼저 구할 물건은? 오 상상도 하기 싫다.

아데쿠베에서 당신의 옷을 만날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이 당신의 옷을 입을까? 성별, 나이, 어떤 굴레에 갇히지 않은 이라면 누구든.

패션 에디터
이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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