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파워 볼륨, 60년대 미니스커트, 뉴 스포티즘, 뉴 웨스턴, 오트 후디. 이번 시즌 디자이너들은 특정 시절의 노스탤지어를 무대 위로 소환했고, 오리지널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내놓았으며, 한 번도 본 적 없는 새로운 조합으로 트렌드를 창조했다. 뉴욕,파리에서 더블유 에디터가 영민하게 포착한 2018 F/W 트렌드는 다음과 같다.
NEW YORK 2018.2.7~14
新 커리어우먼
알렉산더 왕은 타임 스퀘어의 반짝이는 밤거리가 그대로 내려다보이는 건물에서 쇼를 열어 화제가 됐다. ‘AWG Inc.’라는 회사원 콘셉트를 내세운 왕은 쇼장을 칸막이와 의자가 가득한 ‘사무실’ 인테리어로 꾸몄다. 쇼가 시작되자 또각또각 스틸레토 힐을 신고 사무실 복도를 걷는 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왕이 상상하는 오피스 룩은 간결하고 섹시하며 사뭇 미래적이었다. 아찔한 미니스커트, 몸에 꼭 맞는 가죽 재킷, 그리고 미니스커트보다 더 아찔한 힐, 여기에 살결이 비치는 검정 스타킹까지, 커리어우먼의 애티튜드를 그 어느 때보다 당당하게 드러냈다. 디온 리와 조나단 심카이 컬렉션에서는 남성 슈트에서나 볼 법한 체크무늬와 핀 스트라이프를 변형해 여성스럽고 센슈얼한 숨결을 불어넣었고, 제이슨 우는 보다 여성스러움을 강조하는 슬릿 디테일로 새로운 워크웨어를 제안했다.
동물의 왕국
더욱 거침없고 과감한 동물 모티프의 향연이 펼쳐진 뉴욕의 런웨이! 호랑이, 표범, 얼룩말 무늬는 웨어러블한 뉴욕 특유의 런웨이에 강렬함을 불어넣기에 충분했다. 톰 포드는 그중 가장 과감하게 동물 프린트를 차용했는데, 마치 열대 우림의 정글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 강렬한 레오퍼드 드레스를 선보였다. 스타킹은 물론 가방, 신발까지 레오퍼드로 물들인 톰 포드는 주저하지 말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자신 있게 프린트를 입고, 즐기라 권하는 듯했다. 캘빈 클라인의 오버사이즈 코트를 장식한 레오퍼드는 무심하고도 투박한 멋을 표현하기에 충분했고, 캐롤리나 헤레라의 퍼 코트 위에 얹힌 동물 패턴은 더할 나위 없이 우아했다. 빅토리아 베컴은 동시대 여성의 구미에 딱 맞는 동물 프린트 룩을 제안했다. 무릎 아래까지 길게 떨어지는 레오퍼드 코트, 하늘하늘거리는 이국적인 프린트 셔츠 블라우스와 롱스커트로 동물 프린트도 더없이 모던하고 도회적일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퀼팅 열전
편안하고 따뜻하다는 두 가지 조건을 갖춘 옷이라면 F/W 시즌에 옷장에 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다! 포근한 이불을 연상시키는 퀼팅 아이템은 실용성에 중점을 둔 뉴욕 런웨이에서 빛을 발했다. 개인적으로 가장 시도해보고 싶은 아이템은 데렉 램과 프라발 구릉에 등장한 미디 길이의 퀼팅 스커트! 심플한 셔츠와도, 박시하고 두툼한 케이블 니트와도 어울리는 퀼팅 스커트는 가장 활용도 높고 스타일리시한 아이템이 될 듯하다. 퀼딩 디테일을 슈트에 접목한 티비, 벨벳 소재로 진주와 리본 장식을 더해 고급스럽게 퀼팅을 재해석한 오스카 드 라 렌타도 인상적이었다. 토리 버치, 필립 림 런웨이에 등장한 퀼팅 아우터는 가장 부담 없이 시도해볼 수 있을 듯. – 패션 에디터 백지연
PARIS 2018.2.27~3.7
아방가르드 후드
이번 시즌 쿠튀르 스포티즘의 주인공은 바로 후드! 아방가르드의 대가, 존 갈리아노가 이끄는 메종 마르지엘라 쇼에선 투명한 PVC를 비롯한 다양한 소재의 후드가 등장하며 룩에 스포티한 무드를 주입했다. 90년대 스노보더에게서 영감을 받아 과감한 아우터 레이어링을 연출한 발렌시아가의 뎀나 바잘리아는 후디를 이너로 매치했으며, 오프화이트의 버질 아블로 역시 스트리트 신의 황제답게 정교한 소재의 테일러드 룩에 스트링으로 조인 캐주얼한 후디를 매치했다. 이것이야말로 하이패션과 스트리트의 동시대적 협력을 보여주는 모범 답안이 되지 않을까.
공생을 위하여
스텔라 매카트니와 구찌에 이어 지방시의 클레어 웨이트 켈러는 에코 퍼도 충분히 근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대담한 패치워크의 인조 모피와 윤리적으로 생산된 양가죽으로 제작된 아우터는 그 존재감만으로도 압도적이었으니까. 나아가 페이크 퍼가 아니더라도 공존하는 패션을 추구하고 싶다면? 디올과 지암바티스타 발리 등이 제안한 레트로 무드의 시어링 코트야말로 명민한 해답이 되어줄 듯.
짧게 더 짧게
디올 쇼장을 가득 채운 포스터는 이미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가 60년대 무드에 깊이 빠졌음을 암시했다. 이윽고 1966년 디올 부티크에서 펼쳐진 것과 같은 광경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패치워크와 그래픽 터치로 강렬하게 무장한 짧은 스커트 차림의 모델들이 미니스커트의 귀환을 알리며 등장한 것. 미우미우 역시 레트로 무드를 설파하며, 무릎 위로 성큼 올라온 원색의 가죽 미니 드레스로 글램한 레트로 레이디를 완성했다. 한편 생로랑은 화려한 디스코 시대를 탐닉하듯 화려한 꽃무늬의 미니드레스를 제안하기도. 이번 시즌, 젊음과 자유를 향한 열망은 이처럼 뜨겁게 꿈틀되고 있다. – 패션 에디터 박연경
PARIS 2018.2.27~3.7
쇠붙이 휘날리며
수많은 쇼 중에 파코라반의 쇼가 유독 기억에 남은 이유는? 바로 ‘소리’ 때문이다. 옷이 절대적 주연인 패션쇼에서 시각이 아닌 청각으로 확실한 인상을 남긴 것이다. 줄리앙 도세나는 시퀸, 체인, 프린지 등 다양한 장식의 의상과 액세서리를 메탈릭 소재로 가득 채웠다. 모델이 걸을 때마다 스커트에서, 가방에서, 슬리퍼에서 서로 다른 모양의 쇠붙이와 플라스틱이 내는 각기 다른 소리는 마치 교향악단의 연주 같았다. 무거운 소리가 아닌 가볍고 경쾌한 소리. 실제로 파코라반의 메탈릭 패브릭은 굉장히 가벼웠다. 이런 메탈릭 트렌드에는 또 다른 젊은 디자이너 올리비에 루스테잉도 동참했다. 다만, 미래 지향적인 파코라반과는 달리 좀 더 우아하고 고전적으로, 지극히 발맹스럽게 풀어내며 차이점을 보였다.
자연주의
매 시즌 빠지지 않고 런웨이를 수놓는 플로럴 프린트. 디자이너들에게 영감을 주는 영원불멸의 대상이 ‘꽃’이지만 이번 파리에선 굉장히 직설적이고 사실적으로 표현되었다.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는데, 자연을 그대로 옷에 담아버린 경우와 혹은 실제로 꽃이 되어버리거나. 친환경적 디자인을 추구하는 스텔라 매카트니는 꽃 사진이 가득한 드레스를, 라코스테는 자연의 정취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사진으로 도배된 아우터와 모자로 걸어 다니는 공원을 선보였다. 그런가 하면 발렌티노의 피에르파올로 피촐리는 강력한 로맨티시즘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 중 하나로 꽃을 택했고, 모델이 후디를 뒤집어쓴 모습은 마치 꽃봉오리를 연상케 했다. 레이 가와쿠보 역시 여러 겹의 패브릭으로 꽃을 만들어내며 로맨틱한 감동을 이끌어냈다.
슈퍼 레이어드 룩
파리는 4대 도시 중 가장 풍성한 볼거리를 자랑하는 도시다. 긴 일정, 컬렉션 수, 화려한 무대는 늘 파리를 특별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번 시즌 무엇보다 풍성했던 것은 바로 겹겹이 쌓아 올린 옷 그 자체. 매 시즌 신선하고 독특한 스타일링으로 이슈를 만들어내는 발렌시아가는 몸을 지탱하기도 버거워 보이는 슈퍼 레이어드 룩을 선보였다. 터틀넥 위에 니트, 그 위에 코트, 또 위에 재킷 점퍼 등을 겹쳐 새로운 트렌드를 예고했다. 한편 사카이는 다양한 스타일의 옷을 자르고 붙이는 방식으로 레이어링의 즐거움을 제안했다. 패딩, 퀼팅, 재킷, 코트 등 전혀 다른 느낌의 아이템을 완벽하게 믹스하며 다시 한번 ‘금손’을 입증한 것. 그렇다면 겹겹이 룩의 끝판왕은? 384겹을 자랑하는 ‘엄마손파이’도 명함을 못 내밀, 룩 하나하나가 작품이었던 꼼데가르송! – 패션 에디터 정환욱
- 패션 에디터
- 김신
- 사진
- Indigital Media(런웨이), Jason Lloyd-Evans, GettyimagesKor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