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자신만의 리듬으로 배우의 길을 걸어온 배우 손호준이 오랜만에 쉼표를 찍었다. 그와 나눈 한낮의 느긋한 스몰 토크.
<W Korea> 패션 화보 촬영을 어색해할 줄 알았는데 능숙하게 끝마쳤다.
손호준 다른 패션 화보 사진을 찾아보며 감을 잡으려고했다. 촬영은 하면 할수록 익숙해진다.
예능 <삼시세끼 고창편>에서 분홍색 코디 북 파일을 펼치며 데일리 룩을 주섬주섬 챙기던 모습은 어디로 갔나?
평소에는 트레이닝복처럼 편한 옷만 즐겨 입는다. 청바지도 오늘 입은 것처럼 (바지를 손가락으로 찰싹 튕기며) 스판 소재가 들어간 것이 좋다. 편한 게 최고다.
소처럼 열심히 일하는, 공백기 없는 배우로 알려졌지만 오랜만에 짧은 휴식기를 보내고 있다. 새롭게 흥미를 붙인 무언가가 있나?
최근에 골프를 배우기 시작했다. 스크린 골프도 치고 필드에도 종종 나간다. 대부분의 스포츠는 승부가 명확하게 갈리지만 골프는 오직 나 자신과의 대결이다. 남 탓할 수 없는 운동이랄까. 그래서 이 운동이 매력적이다. 순간의 오차로 결과가 완전히 뒤바뀌는데, 그래서 정신을 다잡고 집중력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된다. 나이 들수록 역동적인 운동보다 정신력을 요하는 움직임이 더 좋아진다. 승부에 집착하지 않는 내 성향과 잘 맞기도 하고.
인스타그램을 봤더니 최근 배우 유연석 씨와 ‘퍼네이션(Fun+Donation)’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두 사람이 작은 커피 트레일러에서 직접 커피도 만들고 판매하는 모습이 훈훈하더라.
둘이 술을 마시다가 즉흥적으로 나온 이야기가 실현됐다. 사실 아주 오래전부터 하고 싶은 일이 있었다. 내 생일에 포장마차를 열어서 들어오는 손님들에게 공짜로 술과 음식을 대접하는 것이다. 매장 안에 모금함 하나를 놔두고 기부금을 모아서 도움이 필요한 곳에 전달하고 싶었다. 연석이가 그 이야기를 듣더니 이런저런 조언을 해주다 결국 같이 해보자고 하더라. 연말까지 기부금을 계속 모아서 총액과 동일한 금액을 서로 반반씩 부담해서 어딘가에 기부할 예정이다.
돌아오는 6월 27일이 생일인데 특별한 계획이 있나?
지금껏 살아오면서 생일 파티라는 걸 제대로 해본 적 없는 것 같다. 작년에 연석이가 생일을 기억하고 챙겨줘서 <삼시세끼> 김대주 작가님과 바로랑 함께 술을 마신 기억이 난다. 성격상 내 생일에 나서기도 그렇고, 친구들이 챙겨줘도 부끄럽고 낯간지럽다. 반대로 내가 누군가의 생일을 챙겨주는 건 또 잘한다 (웃음).
외롭다는 생각을 자주 하는 편인가?
예전에는 외로움을 정말 많이 느꼈는데, 그 시기가 길어지다 보니까 어느 순간 외로움에 적응이 됐더라. 사람은 역시 환경에 적응하는 동물이다. 요즘은 혼자 조용하게 보내는 시간도 나름 괜찮다.
술을 즐기는 편인가?
원래 좋아했지만 요즘은 자제하는 편이다. 주량도 소주 2병에서 1병 정도로 좀 줄었다. (술버릇이 있나?) 귀가본능(웃음)! 가끔 술자리에서 소리 없이 사라져서 친구들이 서운해한다. 취하면 취할수록 안 취한 척하는 버릇이 있다. 말도 더 느려지고 좀 더 또박또박 말하려고 한다. 술은 아버지에게 처음 배웠는데, 제대로 잘 배운 것 같다.
본인이 출연한 영화 <쓰리 썸머 나잇>(2015)을 보면 친구 세 명이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시다 즉흥적으로 해운대로 여행을 떠난다. 실제로 그런 경험이 있나?
어린 시절엔 자주 그랬다. 누가 ‘주말에 바다 보러 갈까?’ 툭 던지면 아무런 준비 없이 일단 떠나고 봤다. 아무 계획 없이 광주에서 기차 타고 해운대를 자주 갔다. 요즘엔 여행 한번 떠나려면 계획도 구체적으로 세우고 펜션도 예약하고 챙겨야 할 것이 많다.
손호준만의 광주 여행 추천 코스가 있나?
나고 자란 고향이지만 나도 내려갈 때마다 새로운 도시다. 못 보던 건물이 들어서고 새로운 도로가 뚫려 있다. 서울에 올라와서 ‘맛집’이란 단어를 처음 알았다. 광주에 가면 어느 식당에 들어가도 다 맛있는데 (웃음). 그래서 친구들과 밥을 먹을 때는 메뉴만 정했다. 살면서 ‘맛집 가자’ 이런 말을 해본 적 없다. 지금 하나 떠오른 건 상추튀김을 추천하고 싶다. 튀김을 상추에 싸 먹는 메뉴인데 아마 서울에서는 맛보기 힘들 거다.
고교 시절 광주에 있는 극단 ‘진달레 피네’에서 활동했더라.
거기서 연기하는 ‘재미’가 무엇인지 처음 알았다. 월요일마다 열리던 조회 시간 단상 위에서 처음 상을 받은 것도 연극 덕분이었다. 당시 <발칙한 녀석들>이라는 작품에서 1인 8역을 맡았는데 그걸로 대학 연극제에서 우수연기상을 받았다. 주변 사람들에게 칭찬과 격려도 받고 인정받으니까 뿌듯했다. 그런 기억이 오래 남는 것 같다.
영화 <바람>(2009)은 수면 위로 본인의 이름을 올리는 첫 단추가 되어준 작품이다. 요즘은 보기 드문 B급 감성 영화인데, 그때로 타임슬립해본다면?
실존 인물과 비슷한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하루 5〜6끼를 먹으며 몸무게를 12kg 가까이 찌웠다. 영화에 출연한 신인 배우들과 함께 100군데 넘게 개봉관을 돌면서 무대 인사를 다녔는데, 어떤 날엔 관객보다 배우가 많은 적도 있었다. 멀찌감치 떨어져 앉은 관객들을 앞으로 불러모아 오손도손 영화 이야기도 나누고 그랬다.
<바람>의 껄렁한 고등학생 영주로 시작해 <응답하라 1994> 오렌지족 대학생 ‘해태’를 거쳐 드라마 <고백부부>의 제약회사 영업 사원 최반도까지, 그동안 연기한 주요 캐릭터를 나열해 보니 실제 본인의 나이대로, 시간의 흐름대로 찬찬히 걷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최반도는 밖에서는 힘들게 일하고 집에서는 그걸 드러내지 못하는 한 집안의 가장이다. 결혼도 하고 아이도 있는 주변에 친한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 드라마와 흡사한 부분이 정말 많더라. 나 역시 촬영 전 대본을 읽으면서 눈물을 흘렸다. 자라면서 봐온 아버지의 모습도 종종 겹쳐 보였다. 아직 겪어보지 못한 세계이지만 매 장면 이해 가지 않은 구석은 단 하나도 없었다. 이 드라마를 계기로 이적 씨의 뮤직비디오에도 출연했는데, ‘나침반’이란 곡의 화자가 최반도와 비슷하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업으로서 배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저예산 영화에 출연해서 받은 출연료가 당시 50만원 남짓이었다. 생계를 위해 연기했다면 ‘응사’를 만나기 전 진작에 그만뒀을 수도 있다. 조금의 과장을 보태서 100번의 오디션을 봐서 1〜2개의 배역을 따내도 너무 기뻤다. 조그마한 역할이라도 작품이 방송 전파를 타고 스크린에 걸리면 정말 뿌듯했다. 좋아서 하는 일, 거기서 얻을 수 있는 행복감이 더 중요했다.
도전해보고 싶은데 잘 들어오지 않는 역할이 있나?
방송에서 보이는 모습도 그렇고, 많은 사람이 손호준에 대해 갖고 있는 이미지는 ‘착하다’는 것이다. 선량하고 누군가를 도와주고 옆에서 감싸주는 따뜻한 사람. 그래서 드는 생각은 내가 나쁜놈 역할을 맡으면 보는 사람들이 더 배신감을 느끼지 않을까? 극의 반전이 크게 다가올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 영화 <베테랑>의 조태오 같은 악역이 기억에 남는데 그런 시나리오는 아직까지 만나지 못한 것 같다.
2018년 손호준이 악역으로 돌아올 확률은?
어떻게 될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악역은 희망 사항일 뿐이다.
더 많은 화보 컷은 더블유 6월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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