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같이 공부하고 일하다 사랑해서 결혼했는데도, 사위와 며느리라는 역할 안에서 남녀는 너무나 다르다. 한국에서 며느리, 뭘까?
나는 맏며느리의 딸이다. 이 사실은 내가 8남매 중 장남의 둘째 딸이라는 것보다 내 인생에 훨씬 많은 영향을 끼쳤다.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부터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함께 산 조부모님이 돌아가신 지 20년이 지났으니 어머니는 누군가의 며느리가 아니게 된 지 오래지만, 그 후로도 매년 명절이 돌아올 때마다 맏며느리의 딸인 나 역시 벗어날 수 없었다. 명절 전날 귀성길 고속도로처럼 쇼핑 카트로 꽉 메워진 마트에 가서 장을 보고, 집에 돌아와 고기며 야채를 다듬고, 커다란 채반 가득 전을 부치고, 명절날 아침 일찍 일어나 후다닥 씻은 다음 차례상을 차리고, 음복이 끝나기 무섭게 다시 아침상을 차리고, 식사를 마친 최씨 집안 남자들이 거실에 차려진 떡과 과일을 먹으며 TV 채널을 돌리는 동안 싱크대를 가득 메운 그릇들을 닦고 또 닦은 다음 점심을 준비해야 하는 지긋지긋한 과정으로부터 말이다.
물론 한국에서 며느리의 삶을 이야기할 때, 명절 노동은 결정적 포인트인 한편 빙산의 일각이기도 하다. 나는 한국 여성 민우회에서 펴낸 <온갖 무례와 오지랖을 뒤로하고 페미니스트로 살아가기>라는 책의 제목을 무척 좋아하는데, 요즘은 ‘온갖 무례와 오지랖을’이라는 대목을 읽을 때마다 결혼과 동시에 ‘며느리’라는 (원치 않은) 신분으로 격하된 수많은 여성을 떠올리곤 한다. 여성은 결혼 후, 때로는 결혼 전부터 남자 쪽 집안의 재생산을 담당하는 공공재이자 윤활유이며 활력소로 기능하기를 요구받는다. 그동안 살아온 삶, 무슨 능력을 갖췄고 어떤 경력을 쌓았으며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 사람인지 깡그리 지워진 채 ‘며느리’로만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가난하고 형제 많은 집안 장남과 결혼한 여성이 ‘현명하게’ 가족의 화합을 이끌어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온다는 90년대 주말 드라마도, 철없던 부잣집 딸이 삼대가 함께 사는 서민 가정의 며느리가 되고서야 진정한 가족간의 정을 깨닫는 식의 요즘 주말 드라마도 이런 판타지에 꾸준히 기여한다.
세상에서 가장 모호하면서도 방대한 개념인 ‘며느리 도리’는 또 어떤가. 너무 낯설어서 입에도 붙지 않는 ‘사위 도리’와 달리, 며느리 도리 영역에는 시부모에게 1주일에 한 번 이상 안부 전화 걸기, 시부모 생일은 물론 남편도 모르는 일가 친척 대소사 챙기기, 강제로 초대된 시가 단톡방에서 열심히 리액션하기를 비롯해 무수한 감정노동과 김장, 벌초, 제사, 간병 등 다양하고 대가없는 육체노동이 포함된다. 아이를 낳고 나면 시부모와 손자 사이의 다리 역할을 맡아 아이 사진을 꾸준히 업데이트하며 근황을 전하는 것도 ‘아범’이 아닌 며느리의 몫이다. “가사, 육아, 부부, 시가가 연속되어 있는 게 결혼 이후의 삶인데, 그 안에는 결혼 전에 있던 ‘나’라는 존재만 쏙 빠져 있어요”라는 한 또래 여성의 말을 나는 종종 떠올린다. 서울에서 회사 다니는 며느리에게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시조부 제사 준비하러 휴가 내고 내려오라는 시부모, 그것을 방관하고 동조하는 남편에 대한 얘기 역시 지겹도록 많이 보고 들었다. ‘아들의 일’은 제사에 우선할 수 있지만 며느리에게는 너의 일이나 계획, 의견이 중요한 게 아니니 와서 우리 집안의 질서에 복종하라는 신호를 보내는 권력 확인의 절차에 대해서 말이다.
가부장제의 질서에 순응하지 않는 며느리는 ‘도리’를 모르는 위험인물로 간주된다. <어차피 내 마음입니다>의 작가 ‘서늘한여름밤’은 올해 1월, 결혼 후 첫 명절에 시가에 가지 않은 이유에 대한 만화를 블로그에 올리며 남편의 부모를 ‘25년간 모르고 살던 어떤 중년 부부’라고 표현했다(사실이다). 그리고 그는 아들 부부의 이러한 결정을 부드럽게 받아들인 시부모에 대해 “고맙지는 않았다”고 적었다(꼭 고마워해야 할 이유는 없다). 대신 그는 시부모가 자신을 존중한다는 것을 받아들이며, “그렇게 우리는 서로 관계 맺을 수 있는 최소한의 단계를 넘어갔다. 고맙지는 않지만 나쁘지는 않은 그런 시작”이라고 말했다. 이 게시물에는 1천 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다. 그의 생각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이도 적지 않았지만 악의가 담긴 비아냥, 욕설, 훈계, 억측도 난무했다.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분노하게 했을까? 2016년 한국 사회를 강타한 소설,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에서 김지영 씨가 명절 연휴 시부모를 향해 “그 집만 가족인가요? 저희도 가족이에요. 그 댁 따님이 집에 오면, 저희 딸은 저희 집으로 보내 주셔야죠”라고 호소할 수 있었던 것은 친정어머니의 목소리에 기대서, 즉 ‘제정신이 아닐’ 때였다. 그리고 2017년 한국 여성의 바이블이 되고 있는 인스타그램 웹툰 <며느라기(@min4rin)>는 민사린이라는 여성의 인생 중 지극히 일부, 그러나 그전과는 확연히 다른 ‘며느리’로서의 삶에 현미경을 들이댄다. 좋은 마음으로 시모의 생일상을 정성껏 차리지만 정작 자신은 충분히 존중받지 못하고, 가족 모임과 제사가 거듭될수록 민사린이 느끼는 모멸감과 피로감은 너무나 통렬하게 묘사되어 웃고 있어도 눈물, 아니 욕이 나온다. 유독 길었던 올 추석 연휴의 약 2주 전부터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의 여성 사이에서 높아지던 긴장감은 민사린을 비롯한 무 씨 집안 며느리들이 새벽부터 뼈 빠지게 음식을 준비한 뒤 조그만 상에서 간신히 식사를 하며 “요즘은 여성 상위 시대”라는 말을 들은 <며느라기>의 댓글 창에서 3천 개가 넘는 코멘트가 되어 불꽃처럼 펑펑 터졌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맏며느리의 딸’이라는 굴레에서 탈출할 수 있게 된 것은 다른 집안의 며느리가 되면서였다. 그러나 ‘며느리 도리’ 같은 걸 내 사전에서 지우기로 한 뒤, 처음 시부모님 댁을 방문했을 때 잠시 고민했다. 이 낯선 어른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가야 할까. 나는 그냥, 제일 친한 친구 집에 왔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주시는 밥을 맛있게 먹고 남편과 함께 설거지를 한다. 안 하던 걸 하지 않고, 못하는 데 무리하지 않는다. 물론 며느리인 내가 편하게 지낼 수 있는 것은 시부모님이 아들의 손님인 나를, 며느리이기 전에 한 인격체로서의 나를 존중하며 그만큼 어렵게 대하시기 때문임을 알고 있다. 그런데 중요한 건, 그 시간을 통해 내가 두 분을 전보다 더 좋아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 글
- 최지은 ( 〈괜찮지 않습니다〉 저자)
- 에디터
- 황선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