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릴라적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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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베어브릭이 아시아 거리 곳곳에 등장했다. 짧은 순간이나마 일상의 공간을 미술관으로 만드는, 조각가 임지빈의 ‘에브리웨어’ 프로젝트다.

TOKYO

TOKYO

TAIPEI

HONG KONG

베어브릭 형상의 에어 벌룬 조각이 길가 설치물 틈에, 빌딩의 열린 창문에, 주차된 차들 사이에 끼어 있는 채로 길 가던 이의 시선을 확 붙잡는다. 베어브릭을 이용해 현대인의 욕망과 소비사회를 표현해온 조각가 임지빈의 작품이다. 아니, 작전이라고 하는 게 맞겠다. “아무래도 제 주변엔 미술계와 가까운 사람이 많아요. 다들 전시를 자주 보기 때문에 갤러리가 일상과 가까운 공간이라고만 생각했죠. 그런데 모든 사람이 그런 건 아니더라고요. 한정된 공간에 작품을 전시하고 사람들을 끌어들이기보다 일상 가까이에 작품이 등장하는 방식을 떠올렸어요. ” 그렇게 프로젝트명 ‘Everywhere-Museum of Moments’가 출발했다. 올해 들어 타이페이, 홍콩, 도쿄를 차례대로 찾은 그는 각 도시에서 2주간 머물며 그때그때 무작위로, 사람들이 오가는 거리를 반나절 동안 ‘순간 미술관’으로 탈바꿈시켰다. 거대 베어브릭은 이전에도 가끔 서울과 전국 곳곳을 유랑하며 설치되곤 했다. 그러나 이제 해외로 나간 베어브릭은 전시를 위해 약속된 공간과 시각에만 다소곳이 자리하지 않는다. 갤러리를 찾을 의도가 없었던 사람도 우연히 마주친 이 작품에 눈길을 주고, 도시의 익숙한 풍경 속에 불현듯 끼어든 이미지는 짧은 시간이나마 불특정 다수에게 즐거운 미술 이벤트를 안겨준다. 적어도 그 순간만은, 좁은 틈에 불편한 상태로 끼어 있는 베어브릭이 사회의 틀에 자신을 끼워 맞추는 현대인을 상징한다는 ‘작품 해석’에서 자유로워도 좋을 것이다. 늦여름 도쿄에서 게릴라 작전을 벌인 임지빈은 가을이 저물 무렵 다시 베어브릭이 깜짝 등장할 아시아의 한 도시를 물색 중이다. 혼자 거리를 걷다 작전 수행하기 좋은 목을 찾아 재빨리 치고 빠지는 작가의 모습이 훤하다.

에디터
권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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