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의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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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널 위에서 선과 면을 만들며 혼란스럽게 요동치는 이것의 정체는 바로 종이다. 김춘환 작가는 온갖 정보와 유행이 실린 종이를 오늘도 찢고 파괴한다.

김춘환

김춘환

잡지사에서 그 무엇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것은 종이다. 이곳에선 중요도를 알 수 없는 인쇄물이 여기저기 뒹굴고, 켜켜이 쌓인 과월호와 온갖 책이 위태롭게 성벽을 이룬다. 뒤적일 일도 없지만 보존해야 안심이 되는 것들이나 때맞춰 처리하지 못한 것들이 모이면 간혹 거대한 종이 무덤 같기도 하다. 가장 신속한 정보를 가지고 새로운 결과를 생산해내는 특수성, 그러나 그만큼 폐기해도 좋은 정보 역시 빠르게 축적된다는 아이러니. 이러한 성질을 지닌 곳이 누군가에겐 예술을 위한 보고다. 프랑스 파리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김춘환은 종이 인쇄물과 잡지를 모아 작품을 만든다. 주변에 처치 곤란한 책과 폐지 덩어리를 떠안은 사람이 있으면, 김춘환이 나선다. 한번은 유럽의 벼룩시장에서 희귀한 옛날 영화 잡지가 창간호부터 수십 권 쌓여 있는 걸 발견하곤 작업실로 곱게 모셔가 북북 찢었다. 20여 년 전, 유학을 위해 파리에 자리 잡았을 때부터 시작된 작업 스타일이다. 매일매일 우편함을 채우거나 길바닥에서 휘날리는 전단지, 어서 신상품을 사라고 권유하는 이미지의 과잉 속에서 그는 일상이 잠식되어간다고 느꼈다. 처리하지 않으면 순식간에 증식하는 종이들은 뜯기고 구겨져 그의 패널 위로 갔다. 김춘환의 작업은 넘쳐나는 정보의 생산, 소비, 그리고 축적이라는 메커니즘이 가져온 혼돈에 대한 작가로서의 반응이다.
그런데 우리가 정보의 바다 속에 허우적거린게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이제 우리는 그 바다에서 가끔 파도 타기를 하며 즐길 줄도 안다. 온갖 정보와 함께 가는 시대에서 중요한 것은 나에게 의미 있고 필요한 진짜만을 가려내는 안목일 것이다. 매달 e메일 청구서를 받고 e북으로 책을 봐도 종이는 늘 주변에 존재한다. 김춘환에게 광고 인쇄 물과 잡지는 우리 일상의 단면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오브제다. 그것들을 구기고 파괴해 변형하고, 이 파편들을 빽빽하게 집적하면서 새로운 결과물을 완성한다. 멀리서 그의 작품을 바라보면 어릴 적 조각칼로 판화를 파냈던 이미지나 스케치북을 크레파스 칠로 뒤덮고서 다시 긁어내던 이미지가 연상된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종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두터운 표면과 복잡다단한 패턴에 놀라고 만다. 매 순간 취하지 않으면 큰일 날 것 같았던 정보와 광고가 시간의 구분도 없이 섞여 거기에 박제되어 있다. 2003년 가을/겨울 시즌엔 뭐가 유행했더라? ‘A La Mode’ ‘Undercurrent’ 등 의 작품 시리즈는 그때그때의 트렌드를 무용화시키는 미술적 선언의 하나다. 유행과 광고를 작가만의 언어로 다시 편집한 셈이다. 이러한 작품 앞에서 떠오르는 문구는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물밀듯이 뭔가를 쏟아내는 소비사회의 속성을 그저 조롱할 셈이 었다면, 종이를 수집해 이런 방식으로 콜라주하는 고단한 예술 노동도 하지 않았을 테다. 뜯겨지고 구겨진 시대의 유행이 형식미를 입고 전혀 다른 모습으로 갤러리에 나타났다. 6월 중순부터 한 달간 청담동 조은숙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가진 김춘환은 최근 새로 산 셔츠와 10여 년 전에 산 바지를 한 벌처럼 ‘믹스 매치’한 차림이었다. 그의 작품에 과거와 현재의 유행이 녹아들어 있듯이.

김춘환의 작품은 멀리서 봤을 때, 다가가 봤을 때, 그리고 옆에서 봤을 때 느낌이 사뭇 다르다. 직접 짠 패널 위에 콜라주 한 종이는 풀칠과 본드칠 처리로 인해 돌처럼 딱딱한 상태. 같은 종이라도 구기거나 접는 방식에 따라 작품의 외양과 질감이 다양해진다.

김춘환의 작품은 멀리서 봤을 때, 다가가 봤을 때, 그리고 옆에서 봤을 때 느낌이 사뭇 다르다. 직접 짠 패널 위에 콜라주 한 종이는 풀칠과 본드칠 처리로 인해 돌처럼 딱딱한 상태. 같은 종이라도 구기거나 접는 방식에 따라 작품의 외양과 질감이 다양해진다.

김춘환의 작품은 멀리서 봤을 때, 다가가 봤을 때, 그리고 옆에서 봤을 때 느낌이 사뭇 다르다. 직접 짠 패널 위에 콜라주 한 종이는 풀칠과 본드칠 처리로 인해 돌처럼 딱딱한 상태. 같은 종이라도 구기거나 접는 방식에 따라 작품의 외양과 질감이 다양해진다.

김춘환의 작품은 멀리서 봤을 때, 다가가 봤을 때, 그리고 옆에서 봤을 때 느낌이 사뭇 다르다. 직접 짠 패널 위에 콜라주 한 종이는 풀칠과 본드칠 처리로 인해 돌처럼 딱딱한 상태. 같은 종이라도 구기거나 접는 방식에 따라 작품의 외양과 질감이 다양해진다.

작품에서 종이들이 이루는 형태를 보면 무질서 속에 나름 질서가 있어 보인다. 의도한 것인가, 우연으로 드러난 것인가?
대부분 우연으로 얻은 결과다. 패널 위에 드로잉 밑작업 없이 붙여가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어떻게 마무리될지 예상할 수 없다. 내가 의도한 부분이 있더라도 종이가 구겨진 각도에 따라 의외의 형태가 생기고, 최종 결과물 역시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빛깔이나 이미지가 다르게 보이기도 한다. 종이들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내가 양보하고, 종이가 양보해서 타협점이 만들어졌을 때 작품이 완성된다.

종이란 재료로서 어떤가? 얇은 종이도 구기면 두께가 생기면서 원하는 대로 컨트롤하기 쉽지 않을 텐데.
종이 앞뒷면에 도배하듯이 풀칠을 한 다음 구기거나 접는다. 젖은 상태의 종이는 의외로 저항감이 적어서 낱장만 다룰 때는 그렇게 컨트롤이 어렵지 않다. 어떤 종이든 딱 잡았을 때의 느 낌이 있다. 만졌을 때의 그 느낌대로 좀 더 구기느냐 덜 구기느냐를 택한다.

붙이기 기법인 콜라주를 택한 이유는 뭔가?
회화를 전공해서인지 종이로 회화 느낌을 추구하게 됐다. 붙이는 작업은 현실의 파편을 끌어들여 현실과 새로운 관계를 정립 하도록 도와준다. 미술 작품 중 기존 이미지를 차용하기 위해 평면에 종이를 붙이는 식의 작업은 이미지가 잘 드러나지만, 내 경우 종이를 구겨 붙이기 때문에 이미지가 숨어 있거나 변형돼 보인다. 구겨진 종이에서 입체감이 생기므로 내 작품은 마냥 평면이 아니라 회화와 조각의 중간인 부조라고 할 수 있다.

회화를 전공했는데 오랫동안 물감을 사용하지 않는 작업을 하고 있다.
나에겐 종이가 물감이고, 종이를 붙이면서 만들어지는 선이 붓 질이다. 작업실에 색상별, 두께별로 구분해놓은 종이 박스가 가득한데, 그게 일종의 팔레트인 셈이다. 빨강이 주조색인 작품을 만들기 위해선 빨강 계통의 종이만을 모아야 하기 때문에 한 작품을 위해 15백 권 분량의 책을 뒤지기도 했다. 전체 작업 과정 중 적절한 종이를 고르는데 절반의 시간을 보낸다.

작품 세계에서 종이라는 재료와 소비문화의 생산물이라는 그 의미가 모두 중요하다. 패널 위에서 일그러져 있는 종이들을 다시 펼칠 수 있다면, 한 작품이 곧 시기별 유행을 담은 아카이브 일 수도 있겠다. 유행에 대해 어떤 시각을 가지고 있나?
20년 전 처음 파리로 넘어갔을 때 무크지와 각종 잡지, 슈퍼마켓의 전단지가 많았다. 하나의 유행은 시기가 지나면 단절되기 때문에 광고들이 ‘이 신상품은 지금 빨리 취해야 한다’는 흐름을 만들곤 한다. 그러나 광고가 쏟아지던 당시 나에게 어울리지 않았던 유행이 세월이 흘러서야 잘 맞을 수도 있다. 선택하고 말고는 개인의 문제일 뿐, 유행을 무조건 따라다닐 필요는 없다는 뜻에서 시기의 구별 없이 취한 것들을 한데 섞어 작업한다.

김춘환의 작품은 멀리서 봤을 때, 다가가 봤을 때, 그리고 옆에서 봤을 때 느낌이 사뭇 다르다. 직접 짠 패널 위에 콜라주 한 종이는 풀칠과 본드칠 처리로 인해 돌처럼 딱딱한 상태. 같은 종이라도 구기거나 접는 방식에 따라 작품의 외양과 질감이 다양해진다.

김춘환의 작품은 멀리서 봤을 때, 다가가 봤을 때, 그리고 옆에서 봤을 때 느낌이 사뭇 다르다. 직접 짠 패널 위에 콜라주 한 종이는 풀칠과 본드칠 처리로 인해 돌처럼 딱딱한 상태. 같은 종이라도 구기거나 접는 방식에 따라 작품의 외양과 질감이 다양해진다.

김춘환의 작품은 멀리서 봤을 때, 다가가 봤을 때, 그리고 옆에서 봤을 때 느낌이 사뭇 다르다. 직접 짠 패널 위에 콜라주 한 종이는 풀칠과 본드칠 처리로 인해 돌처럼 딱딱한 상태. 같은 종이라도 구기거나 접는 방식에 따라 작품의 외양과 질감이 다양해진다.

김춘환의 작품은 멀리서 봤을 때, 다가가 봤을 때, 그리고 옆에서 봤을 때 느낌이 사뭇 다르다. 직접 짠 패널 위에 콜라주 한 종이는 풀칠과 본드칠 처리로 인해 돌처럼 딱딱한 상태. 같은 종이라도 구기거나 접는 방식에 따라 작품의 외양과 질감이 다양해진다.

잡지나 광고 전단지를 구기고 이미지를 파괴하면서 통쾌함을 느끼기도 하는가?
작업 과정이 거의 폭력에 가깝긴 하다.(웃음) 하지만 통쾌함보다는 오히려 애정이 생긴다. 더 이상 예전 만큼 잡지나 인쇄물을 구하는 게 쉽지 않으니까. 만질 수 있는 것들이 줄어드는 대신 손가락으로 화면을 확대하고 스와이프 하는 일이 늘어난다. 어릴 때부터 찰흙을 빚거나 손으로 뭘 만지작거리며 직접적으로 부딪치는 것을 좋아했다. 작품 하나를 완성하려면 꼬박 한두 달 동안 종이를 뜯고 만지고 붙여야 하는데 즐겁지 않으면 못할 일이다.

작업 스타일에 영향을 끼친 과거의 경험이나 기억이 있는가?
어릴 때 아버지가 제재소를 운영했다. 기계톱이 원목을 켜면 나무가 여러 갈래로 갈라졌다. 자연 상태의 원목이 가공되어 새로운 형태로 제재소를 나가는 장면이 파괴가 아닌, 새 삶의 시작처럼 보였다. 작품 활동 초기에는 종이들을 두툼하게 붙여놓은 다음 마지막에 그 단면을 커팅했다. 종이가 잘리면서 미세하게 뭉개지는 질감이 생겼고, 새로 드러난 단면에서 종이의 다양한 모습이나 숨어 있던 색감이 보이기도 했다.

20여 년에 걸쳐 일관된 맥락의 작품 주제를 유지하는 동안 잡지, 신문, 광고로 대표되는 미디어 시장엔 큰 변화가 있었다. 아날로그적 소재로 작품 활동을 하는 만큼, 세월이 흐르면서 의도치 않게 작품의 또 다른 의미가 생성될수도 있지 않을까?
과거 SF 영화에서 묘사한 미래의 모습이 계속 현실화되고 있다. 삼성이 애플과 디자인 특허 소송 중일 때, 1968년 작인 스탠리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이미 태블릿 PC 가 등장했다는 점을 증거로 들지 않았나? 미래 사회에도 여전히 남아 있는 것들이 있을 텐데 그게 뭔지는 물론 지금 알 수 없다. 그러나 일상과 가까운, 친밀도가 있는 것들은 없어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종이가 됐든, 콘크리트가 됐든. 터치해서 사용하는 기기가 늘어나도 펜으로 종이에 낙서하는 사람의 행동이 사라지진 않을 것이다.

작품을 그저 대면했을 땐 작품의 의도보다 형태미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마지막으로 당신의 작품이 전하는 메시지를 이야기해 준다면?
언젠가 뉴욕에서 전시회를 했을 때 전시 제목이 ‘종이는 구겨졌지만, 일상은 구겨지지 않았다’였다. 어차피 모든 정보와 이미지가 우리를 둘러싼 생활에 대한 이야기다. 나는 광고와 정보를 생산하는 사람을 부정하는게 아니라 받아들이는 사람이 알아서 받아들이면 된다는 말을 하고 싶다. 나에게 진정 맞는 것을 취사 선택하려면 일단 알아야 하고, 피하고 싶다면 역시 알아야 피할 수 있다. 알지만, 내가 당기지 않는 유행과 정보 등은 굳이 선택하지 않는 자세를 가졌으면 한다. 무시하자는 것과는 다르다. 알고 싶지도 않고 피하고만 싶다면, 머리 깎고 산으로 들어가 살아야 하지 않을까?

김춘환의 작품은 멀리서 봤을 때, 다가가 봤을 때, 그리고 옆에서 봤을 때 느낌이 사뭇 다르다. 직접 짠 패널 위에 콜라주 한 종이는 풀칠과 본드칠 처리로 인해 돌처럼 딱딱한 상태. 같은 종이라도 구기거나 접는 방식에 따라 작품의 외양과 질감이 다양해진다.

김춘환의 작품은 멀리서 봤을 때, 다가가 봤을 때, 그리고 옆에서 봤을 때 느낌이 사뭇 다르다. 직접 짠 패널 위에 콜라주 한 종이는 풀칠과 본드칠 처리로 인해 돌처럼 딱딱한 상태. 같은 종이라도 구기거나 접는 방식에 따라 작품의 외양과 질감이 다양해진다.

에디터
권은경
포토그래퍼
조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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