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다섯 번째 시즌에 접어든 온스타일의 리얼리티 서바이벌 프로그램 <도전! 수퍼모델 코리아>. 최종 파이널리스트 3명이 그 뒤에 숨은 이야기들을 털어놓았다.
당연한 게 아니에요
우승자 황기쁨
Profile 1992년 9월 24일생 | 동덕여대 모델과 재학 중 | 175cm, 51kg
아무리 남자 모델들이 잘 단련된 육체의 신선함과 때로는 늑대 같고 때로는 강아지 같은 눈빛으로 시청자들을 매혹시켰어도, 우승의 자리는 결국 여성 도전자인 황기쁨에게 허락되었다. 프로그램 내내 침착한 태도와 조곤조곤한 말투, 자극적인 멘트 하나 없는 평범한 인터뷰로 카메라를 대했던 그는 예능이라는 포맷에서는 가장 우승에서 멀어 보이는 참가자였던 반면, 모델 선발이라는 취지로 보면 애초부터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였다. 뻔한 눈코입 대신 선과 각이 살아 있는 얼굴 골격을 주무기로 삼은 황기쁨은 초반 미션부터 역대급 결과물을 뻥뻥 터트려 심사위원과 제작진을 놀라게 했고, 다음 주가 되면 뭘 이런 정도로 호들갑이냐는 듯 보다 훌륭한 결과로 다시 한번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남녀를 한 공간에 몰아넣고 몇 달간 숙식을 함께 하도록 장치를 해놓으면서 아마도 러브라인 형성에 이번 시즌의 사활을 걸었을 제작진에게, 황기쁨처럼 잠재력을 폭탄처럼 터뜨리는 참가자는 갈등이나 러브라인을 뛰어넘는 극적 요소였을 것이다.
(레이아웃된 커버를 보여주며) 이게 기쁨 씨 생애 첫 표지예요.
황기쁨 저 이거 가져도 돼요? 걸어놔야겠다. (잠시 말을 멈춘 후) 어, 뭔가… 짱인 것 같아요. 커버 실리는 거, 정말 짱이에요. 신인 모델이 커버라니, 말도 안 되는 거잖아요.
커버 촬영하면서 긴장했어요? 첫 순서였는데, 하면서 본인이 우승할 거라는 감이 왔나요?
정말 단시간에 끝났잖아요. 헤어 메이크업 바꾸느라고 오래 걸렸지만. 헤어 메이크업 끝나고 주신 옷을 다 입고 나서면 그 콘셉트에 맞게 어떻게 포즈나 표정을 지어야겠다, 라고 생각을 해요. 또 촬영을 해가면서 감을 잡기도 하고요. 그런데 커버 촬영은 ‘이제 좀 잘해 봐야겠다’ 싶은 순간에 끝나버렸어요. 커버는 정말 큰 촬영이잖아요. 그래서 저는 한 컷을 막 몇 시간씩 찍고 그러는 줄 알았거든요. 또 하나 배웠어요. 한 컷은 찰나에 나온다는 걸. 아시안 슈퍼모델을 캐스팅한 서양 하이패션지에 견주어도 멋진 결과물이 나와서 그날 촬영을 같이한 저도 놀랐어요.
방송 끝나고 일이 많아졌나요?
네, 저 오늘 인터뷰 끝나고 촬영 가요. 라이선스 패션 잡지 촬영인데, 그 콘셉트가 2015 S/S 컬렉션이래요. 남자 모델하고 같이 찍는다는데… 아무튼 도수코를 보고 연락이 많이 오는 편이고, 회사(프로그램 종연 직후 그는 에스팀과 계약을 맺었다-에디터 주)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회사 통해서도 많이 들어오는 것 같아요. 저는 뭣보다, 쇼도 좋지만 잡지 촬영 해보고 싶었는데 연락 많이 오니까 좋아요.
우승 후 주변의 반응은 어땠어요?
마지막 촬영 끝난 다음에 방송 나갈 때까지 제가 우승이라는 거 말하면 안 되잖아요.사람들이 결과를 대놓고 물어보진 않더라고요. 그런데 부모님께는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아서 녹화 끝나자마자 부모님께 전화했어요. 우승이라고 했더니 엄마가 아주 담담하게 ‘그러니, 그랬구나, 수고했다’ 정도 말씀하시더라고요. 그 느낌이 무슨 ‘밥 먹었니? 응, 먹었구나’ 정도로 진짜 평소랑 같았거든요. 그런데 엄마가 정말 좋아하셨다고 아빠가 나중에 전해주시더라고요. 감정 표현 잘 못하는 건, 아무래도 제가 엄마 닮긴 했나 봐요.
어린 나이에 또래들이 만져보지 못하는 돈을 상금으로 받게 됐어요.
저는 1억원이라는 돈이 도대체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 안 돼요. 그걸로 뭘 할 수 있는지조차 감이 안 와요. 아무튼 잘못 써서 ‘피 보지’ 않도록 차근차근 계획을 세워서 꼭 필요한 곳에 쓰고 싶어요. 제일 먼저는 부모님 해외 여행 보내드리고 싶어요. 제가 지난겨울에 친오빠가 있는 밀라노에 다녀왔거든요. 해외 여행은 처음 가본 거였는데 정말 좋더라고요. 한 번도 해외 여행 못 가보신 부모님 생각이 났어요. 일단은 상금으로 그것만 계획하고 있어요.
모델학과 재학 중이에요. 원래 모델에 관심이 많았나 봐요?
여자로서 키가 큰 편이니까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지게 됐죠. 또 모델이라고 하면 막연히 멋있잖아요. 그래서 동경하게 된 것도 있어요. 그런데 분명하게 모델이 될 거야, 라고 굳게 마음을 먹은 건 오히려 대학 들어간 후였어요. 학교에 선배도, 동기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톱모델이 즐비하잖아요. 환경이 사람의 마음을 바뀌게 만들더라고요.
<도수코> 시즌 3에서 우승한 최소라씨가 학교 동기라고 들었어요. 친해요?
친하진 않아도 연락은 하고 지내는 사이였는데, 엄청 바빠지더라고요. 소라가 해외 활동 하느라고 휴학한 지 좀 됐는데, 실제로 만난 건 꽤 오래된 것 같아요.
<도수코> 나간다고 하니까 소라 씨한테 연락이 왔나요?
아뇨, 따로 오진 않았어요.
이번 시즌은 특히 남성 참가자가 들어오면서 ‘모델 성 대결’의 구도를 띠게 됐어요. 그 점이 부담스럽지는 않았나요?
저는 남자를 의식하진 않았어요. 걱정한 건 오히려 여자만 있는 상황이었거든요. 여대를 다니니까 잘 아는데… 여자만
모아놨을 때의 신경전 같은 것, 그게 더 신경 쓰이더라고요.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싶어서요. 그런데 ‘가이스앤걸스’라는
거예요. 이거 짱이다, 싶어서 지원하게 됐죠.
패션 매거진 에디터로 볼 때, 기쁨 씨 경우는 잘 풀리면 방송의 힘을 빌리지 않고서도 톱모델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해요. 앞으로 ‘도수코 출신’이라는 꼬리표가 붙을 텐데, 그건 괜찮아요?
돌이켜보면 저는 <도수코> 전에는 아무것도 아니었어요. 졸작 쇼나 프로필 촬영이나, 그 정도밖에 경험도 없고요. 알바로 피팅 모델 한 정도? 네, 그게 다였어요. 그래서 <도수코>로 정식 데뷔를 했다는 건 좋은 기회인 것 같아요. 철우처럼 쇼나 잡지를 어느 정도 많이 한 모델들은 위험 부담이 있을 수도 있잖아요. 저는 도전했을 당시에는 떨어져도 잃을 게 없었어요. 그리고 이걸 통해서 엄청난 기회가 생겼어요.
남자 모델들과 실제 경쟁해보니 어떻든가요?
남자 모델이랑 경쟁한다는 게, 남자는 남자고 여자는 여자잖아요. 그래서 좀 이상했어요. 남자랑 여자랑이… 비교가 되나? 아무튼 표현을 잘 못하겠는데… 방송이니까 그러려니 하고 넘겼어요.
남녀 모델을 한데 모아놓고서 제작진이 원한 건 아마 끝내주는 러브라인이었을 거예요. 잘하면 삼각, 사각 관계도 얻을 수 있고요. 그런데 아무 일이 없어서 오히려 김빠졌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어요. 진짜 그랬나요?
숙소 분위기는 정말 좋았어요. 저만 빼고 여자애들이 다 어렸어요. 그래서 주로 남자들이 일을 다 했거든요. 새벽에 촬영 끝나서 숙소 들어오면 남자애들이 요리하고, 여자들 불러서 먹이고, 같이 치우고 겨우 쓰러져 자고, 또 촬영하고, 그러다가 한 명 떨어지면 다같이 울고…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평화로웠어요. 남자들이 경쟁자이기도 하지만 잘 챙겨줬어요. 고맙죠.
초반에 프로필 촬영에서부터 극찬을 받은 것으로 기억해요. 기복 없이 좋은 성적을 내서 잘 티가 나지 않았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촬영이 있나요?
처음에 프로필 찍을 때 다들 극찬을 해주셨는데, 그게 딱 황기쁨 하면 떠오르는 강렬하고 센 이미지였어요. 좋긴 한데, 문제는 다음에 뭘 해야 할지를 잘 모르겠더라고요. 너무 센 것만 하면 바로 고갈되는데, 걱정하면서 몇 번을 버텼는데 빈지노 뮤직비디오 미션 때 딱 위기가 오더라고요. 짧게 편집되어서 어색한 부분이 많이 가려졌는데 움직이면서 촬영하는데 두려움이 컸어요.
2:1이라 불리할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결국엔 파이널에서 남자 둘을 제치고 우승을 했어요. 경쟁 상대로서 이철우 씨와 한승수 씨를 어떻게 평가하나요?
저는 민정이랑 지은이가 실력도 좋고 예쁘고, 모델로서 신체 조건도 좋아서 그 둘이 견제가 됐지 승수랑 철우는 경쟁 상대긴 하지만 별로 의식해본 적이 없어요. 둘 다 잘하잖아요. 승수나 저는 센 이미지인 반면 철우는 부드럽고 잘생긴 외모 때문에 콘셉트나 영역에 있어서 더 넓은 부분을 소화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승수는, 되도 아주 크게 될 모델이에요. 어린 것도 장점이고 나이에 비해 열정과 자신감도 뛰어나요. 멘탈도 모델 그 자체죠.
시청자 투표에서도 1등을 했더라고요. 혹시 네티즌들이 부르는 별명 알아요?
알아요. (주저하면서) 저를 ‘갓기쁨’이라 부르시더라고요. ‘갓’이 붙은 게 호감이라는 뜻이라서 기분은 좋죠. 그게 제 이름이 되어버린 것 같은 반응이 신기할 뿐이에요. 저는 그분들께 정말 해준 게 없고, 그저 제 도전을 한것뿐이잖아요. 그런데 절 응원해준다고 하니까, 신기해요.
모델로서 목표가 있나요?
아직 시작하는 단계잖아요. 지금은 도수코 끝난 지 얼마 안 되어서 방송 보고 연락 많이 오고 그러는데, 이 진짜 감사한 상황이 ‘당연하게 되지 않도록’ 해야할 것 같아요. 일단은 한국에서 열심히 잡지 많이 찍고, 부족한 워킹 연습 많이 해서 쇼도 더 해보고 싶어요.
역대 우승자 인터뷰 중 가장 소박한 포부 같아요.
저는 아직도 모델이 제 천직인지 확신이 들진 않아요. 그런데 제가 공부를 좋아한다고 해서 잘 하는 건 아니듯이 노력해서 안 되는 것도 있었거든요. 그런데 다른 것보다 모델 일은 적어도 제가 노력한 만큼은 결과가 따라주는 것 같아요. 일단 하는데까진 해보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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