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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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에스트로 정명훈이 전국의 다섯 개 도시를 돌며 관객과 만나고 있다. 이번 여정의 동행으로 그는 웅장한 오케스트라 대신 피아노 한 대만을 선택했다. 40여 년 만에 거장이 자신의 음악적 출발점을 되짚고 있는 셈이다.

정명훈이 피아니스트에서 지휘자로 음악 인생의 방향을 튼 건 지난 1970년대 후반이었다. 거의 40여 년 만에 마에스트로가 포디움에서 내려와 홀로 피아노 앞에 앉았다. 10월 초에 이미 두 번의 공연을 마친 그는, 12월부터 내년 1월에 걸쳐 세 차례 더 독주자로서 관객을 만날 예정이다. 계기가 된 건 ECM에서 지난해 발매된 피아노 솔로 앨범 <정명훈, 피아노>였다. 프로듀서인 둘째 아들이 처음 레코딩을 제안했을 때는 망설임이 컸다고 한다. “하지만 제 손주와 그 또래 아이들에게 선물한다는 생각으로 수락하게 됐습니다. 글이 부족하니까 대신 음악으로 편지를 쓴 거지요.” 정명훈이 문득 자신의 뵈젠도르퍼 피아노로 드뷔시의 ‘달빛(Claire de Lune)’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손녀의 이름이 루아인데 포르투갈어로 달(lua)을 뜻한다고 했다.

앨범을 발표하고 전국 투어까지 하게 됐지만 정명훈은 이 게 결코 연주자로의 복귀는 아니라고 못을 박았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음악가로서의 출발점에 대한 애틋한 감정은 충분히 읽을 수 있었다. 거장은 더 힘든 쪽도, 그리고 더 좋아하는 쪽도 지휘보다는 연주라고 털어놓았다. “지휘를 택한 이유는 간단해요. 세상에는 말러의 교향곡처럼 피아노만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훌륭한 작품이 너무 많으니까요. 사실 전 지휘 자체를 그리 즐기는 편은 아닙니다.” 물론 그는 솔로 연주자의 삶이 얼마나 고달프고 치열한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래도 100여 명의 단원을 책임지는 역할을 오래 맡다 보니 혼자 마음껏 연주할 수 있는 자유에 종종 매력을 느낀다고 했다.

원래는 예순이 되면 모든 책임을 내려놓을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미 벌여놓은 일들이 쉽게 정리되진 않았다. “대신 공교롭게도 피아노를 다시 치게 됐죠. 다만 이제는 정말 가벼운 마음이고 그래서 즐거워요.” 그는 평생 단 한 번도 스스로가 좋은 연주를 했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고 했다. “이번 공연도 보나마나일 거예요. 큰 기대는 마세요.” 농담처럼 던져진 말 뒤로 잠시 후 몇 마디가 더 이어진다. “한 노트 실수하면 기분이 엉망이 되던 시절은 지났어요. 이제는 말로 표현 못하는 감정을 음악으로 전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12월 27일에 예술의전당을 찾으면 그 고요한 감정에 귀를 기울일 수 있을 것이다.

에디터
피처 에디터 / 정준화
포토그래퍼
엄삼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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