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스티앙 베이커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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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람들에게 스위스 출신의 싱어송라이터 바스티앙 베이커는 다소 생소한 이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이미 유럽에서는 음악성을 인정받은 아티스트다.

아까 보니까 한국말을 좀 배웠나 보다.
바스티앙 베이커 내가 하도 이것저것 물어보니까 사람들이 가르쳐줬다. 그래서 몇 마디는 할 줄 안다. ‘물 주세요, 맥주 주세요’ 이런 것.

지난 5월에 이어 다시 한국을 찾았다.

그렇다. 지난번 방문은 정말 환상적이었다. 48시간 동안 엄청난 스케줄을 소화해야 했음에도 재미있게 지내다 간 것 같다. 잠실에서 열리는 러쉬 브랜드 콘서트에 참여해야 했는데 한국에서는 모든 게 처음이다 보니 예측 가능한 상황이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오히려 그게 또 재미있더라. 관중의 반응도 무척 뜨거웠다. 혹시 그 자리에 있었나?

안타깝게도 가지 못했다.

진짜 굉장했다. 특히 그때가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후 처음 열린 음악 행사 중 하나였기에 조금 더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나 역시 굉장히 충격을 받은 사고였기 때문에 공연을 하면서 조금은 조심스러운 부분도 없지 않았다. 한편으로 사람들이 다시 웃음을 찾고 삶을 즐기고 싶어 한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날 공연이 사람들에게 힘이 될 수 있길 바랐는데 다행히 반응이 좋은 편이었다. 이번에는 오메가의 브랜드 홍보대사로 온 건데 예전보다 여유 있는 스케줄로 와서 기쁘다. 지난번에는 시간이 없어서 관광을 할 시간도 없었다.

이번에는 서울을 둘러볼 기회가 있었나?

도착한 첫날 경복궁과 조계사에 갔다. 남산타워에서 보는 석양이 일품이라고 들어서 꼭 가보고 싶었는데 드디어 다녀왔다. 정말 듣던 대로 아름답더라. 일주일 정도 더 머물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다. 며칠 일정으로 서울을 구석구석 돌아보는 건 좀 무리인 것 같다.

여유를 가지고 둘러본 서울은 어떤 느낌이었나?

난 아시아 특유의 분위기가 좋다. 이곳 사람들은 정말 열심히 사는 것 같다. 한국에 와서 일로 만난 사람들은 늘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가 도움을 필요로 하는 부분을 정확히 알고 끝까지 책임져줘서 고마웠다. 그리고 자신들이 하는 일을 즐기는 것 같다. 물론 아닐 수도 있지만 최소한 겉으로는 그렇게 보였다. 그런 사람들을 보니 덩달아 나까지 기분이 좋아지더라.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새로운 사람을 많이 만날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일 것 같다.

지난번에 한국에 오래 있지 못했지만 다양한 사람을 만나려 노력했다. 함께 콘서트에 참여했던 한국 아티스트 들도 정말 하나같이 멋졌다. 당시 인연을 맺은 사람들 중 몇 명과는 아직도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아직 한국에서는 당신의 앨범이 발매되지 않아 바스티앙 베이커라는 이름을 낯설게 느끼는 사람이 많다.

맞는 말이다. 슬픈 사실이기도 하고(웃음). 그래도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나를 알고 좋아해주는 한국 팬들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가끔은 한국말로 댓글을 달기도 하더라.

앨범이 나오면 더 뜨거운 반응을 기대해도 되겠다.

빨리 앨범이 발매되길 바란다. 아직 내 노래를 못 들어본 사람들에게 나를 조금 설명을 해주고 싶다. 일단 나는 두 개의 앨범을 냈고, 그 두 앨범 다 직접 프로듀싱한 싱어송라이터다. 이 부분에서는 조금 자부심이 있기도 하다. 내가 추구하는 음악은 어쿠스틱 기타를 중심으로 한 다양한 스타일의 조합이다. 굳이 장르로 표현하면 록 느낌 이 강한 팝에 가깝다. 중간 중간 블루스나 컨트리, 힙합 느낌을 더하기도 했고. 이것저것이 섞여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앨범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는 무엇인가?

각각의 노래를 차별화하려고 노력한다. 10개의 트랙이 다 비슷하게 들리는 앨범은 만들고 싶지 않다. 곡마다 개성이 드러나도록 애쓴다. 그래야 듣는 사람도 재미가 있을 테니까.

아직 당신의 음악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에게 한 곡 추천한다면?
두 번째 앨범인 의 ‘79 Clinton Street’이 인기가 많다고 하더라. 밝은 록 느낌이 잘 통한 것 같다. ‘Dirty Thirty’도 반응이 좋다고 들었다. 콘서트 관계자들도 되도록 빠른 곡을 연주했으면 좋겠다는 요청을 많이 한다. 무대 위에서 불렀을 때도 그 두 곡의 호응이 제일 좋다. 그 두 곡을 추천하고 싶다.

<79 Clinton Street 바로 듣기>

<Dirty Thirty 바로 듣기>

당신의 음악이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매력은 무엇일까?

한국 음반 시장에 대해서 아는 바가 별로 없어 내 노래가 인기가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하나는 확실하다. 한국에서도 다양한 음악 장르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고 있다는 것. 한 장르의 음악만 좋아하기보다 더 재미있는 음악을 듣고 싶어 하는 마음이커지고 있는 것 같다. 다양성에 대한 욕구가 높아지고 있다고나 할까? 내 음악은 직접 공연장에 와서 즐겨야 더 좋아할 수 있는 음악이다. 현장이야말로 팬과 나 사이에 진한 유대감이 형성될 수 있는 공간이니까.

조만간 한국에서의 공연을 기대해볼 수 있을까?

일단 올해 안에 한국에서 첫 번째 앨범을 발매할 예정이다. 그러고 나서 내년 봄쯤 공연을 하게 될 것 같다. 내년에는 아시아에서 조금 더 활발히 활동할 예정인데 한국이 바로 우리가 집중 공략할 나라 중 하나다(웃음). 문제는 시간이다. 아시아에 와서 활동을 하려면 모든 것이 원활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계획을 잘 세워야 한다. 아! 한국 아티스트와 컬래버레이션 작업을 조금은 비밀리에 진행 중이다. 그것도 내년쯤에 공개할 예정이다.

어떤 곡이 나올지 기대된다. 다른 아티스트들과 협업을 자주 하나?

음악을 하면 할수록 자연스럽게 다른 아티스트들과 함께 작업할 기회가 많아진다. 스위스에서 활동하는 아티스트들과는 거의 다 해봤다. 스위스 출신의 아티스트 말고도 다양한 국적의 아티스트들과도 협업을 했다. 가장 최근에 함께한 아티스트는 알렉스 헵번(Alex Hepburn)이다. 아직 시작 단계지만 꽤 괜찮은 결과물이 나오길 기대하고 있다. 협업은 생각보다 어렵다. 함께 작업을 하기로 약속해도 모두가 워낙 바쁘기 때문에 그 약속을 끝까지 지키는 게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신선한 음악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굉장히 매력적이다.

스위스 출신이라는 점도 흥미롭다. 아직도 스위스에 살고 있나?

스위스에서 태어나 쭉 그곳에서 살아왔다. 다른 사람은 어떨지 몰라도 나는 늘 그 점에 감사하며 산다. 스위스보다 더 아름다운 나라는 지구상에 없기 때문이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웃음) 아직 스위스에 가보지 못했다면 꼭 한 번 가보시라.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한다. 스위스에서 음악을 하는 사람으로서 가질 수밖에 없는 자부심도 빼놓을 수 없다. 인구가 고작 7백만 명인 나라에서 국제적으로 가장 유명한 음악 축제가 열린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나는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이 열리는 곳에서 약 2분 거리에 살았다. 음악에 눈뜨게 된 것도 그 페스티벌 덕분이다.

세계적인 음악 축제가 벌어지는 곳이라는 사실 말고도 스위스는 당신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스위스는 행복과 여유가 넘쳐나는 나라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러한 점이 내 안에 숨어 있는 도전 정신을 일깨워주기도 했다. 물론 평범한 사람들처럼 행복하고 여유롭게 사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하지만 난 아니었다. 자꾸만 더 새로운 것을 갈망하게 되더라. 그래서 시작한 것이 작곡이다.

음악을 하기 전에는 하키 선수로 활약했다고 들었다.

좋은 시절이었다(웃음). 13년간 동안 하키를 했다. 아버지도 하키 선수 출신이다. 물론 가족 때문에 하키를 한 것은 아니다. 정말 내가 좋아해서 했다. 그런데 스무 살이 되니까 생각이 조금 달라지더라. 물론 하키 선수 생활을 통해 얻은 것도 많았다. 강한 정신력을 갖게 된 것도 다 하키 덕분이다. 하지만 음악을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다. 결국 둘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순간이 왔고, 결국 나는 음악을 선택했다. 음악을 포기하면서까지 하키를 계속하고 싶지는 않았다. 지금도 가끔 TV를 켜면 선수 생활을 함께했던 친구들이 경기하는 모습이 나오는데 그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뿌듯하다. 단, 내가 원한 인생은 그게 아니었던 것뿐이다. 지금 곡을 쓰고 노래를 부르는 생활에 충분히 만족한다.

곡은 어떤 과정으로 쓰는 편인가?

나만의 규칙이 있다. 바로 ‘빨리 쓸 것’이다. 음악에 있어서 멜로디나 가사는 운명적으로 이루어진다고 믿는 편이다. 예를 들어, 첫번째 앨범 에 수록된 노래들은 각각 쓰는 데 2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그땐 학교 다니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그냥 집에 가서 언제든지 곡을 쓸 수 있었다. 두 번째 앨범은 조금 더 오래 걸렸다. 어딘가에서 영감을 받고 곡을 쓰기로 마음먹어도 시간이 없으니까 2~3주 지나고 여유가 생겨야 제대로 된 가사를 쓸 수 있었다. 달라진 생활 패턴에 적응하는 게 역시 힘들더라.

즉흥적으로 완성하는 것을 좋아하나 보다.

맞다. 즉흥적으로 완성된 곡에 더 끌리는 편이다. 단, 곡 하나하나에 특별한 의미는 있어야 한다. 첫 번째 앨범은 거의 나 자신에 관한 내용이었다. 내가 마치 대단한 ‘아티스트’인 것처럼 자부심에 차 있던 시절이었으니까(웃음). 곡 하나를 써도 마치 이 세상에 오로지 나만 이런 곡을 쓸 수 있다고 착각했을 정도다.

전형적인 10대 소년이었나?

그 말이 정확하다. 전형적인 사춘기 시절을 겪었다. 하지만 그때는 전혀 몰랐다. 그래도 그런 가사에 공감해주는 청소년 팬이 많아서 고마웠다. 자신들이 느끼고 있는 감정을 노래로 잘 표현해줘서 고맙다는 팬레터도 받았다. 그제야 ‘나 혼자만 그런 게 아니구나’라고 깨달았다. 두 번째 앨범에는 나 자신이나 주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보다 더 다양한 주제로 곡을 쓰려고 노력했다. 요즘에 쓰고 있는 곡들은 또 예전에 써온 곡들과 매우 다르다. 확실한 건 가사는 쓰면 쓸수록 는다는 사실이다.

요즘에는 어떤 것에 대해 쓰고 있나?

진짜 여러 가지에 대해 쓰고 있다. 가장 최근에 쓰고 있는 곡은 ‘시간’에 관한 거다. 나 자신에게 묻고 있는 내용이기도 하다. 또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해 많이 쓰려고 한다.

작사를 할 때는 어디서 영감을 받는 편인가?

나는 영감에도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이런 거다, 무언가에 강한 영감을 받았는데 바로 비행기를 타고 어딘가로 떠나야 한다면, 영감은 그걸로 끝이다. 더 이상 그때 받은 영감을 바탕으로 완전한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감을 받아 무언가를 창조하려면 시간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여유를 가지고 무언가를 완성할 수 있는 시간. 그래서 나는 연휴 기간에 곡을 많이 쓰는 편이다. 서너 달 아무것도 쓰지 않아도, 갑자기 영감을 받으면 한 번에 몇 개의 곡을 완성시킬 수 있다. 내가 생각해도 참 신기하다.

가장 좋아하는 아티스트는 누구인가?

정말 많다. 처음에는 부모님이 좋아하는 음악을 듣기 시작해서 이글스을 좋아했다. 나중에는 내 취향에 맞는 음악을 찾아 들었다. 제이슨 므라즈줄리아 스톤의 음악을 즐겨듣는 편이다. 로버트 프랜시스는 유명하지는 않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아티스트다. LA 출신의 싱어송라이터인데 정말 훌륭한 아티스트라고 생각한다.

내일이면 또 출국해야 한다고 들었다. 남은 시간 동안 특별한 계획이 있나?

저녁에 오메가 행사에 참석해 공연을 펼칠 예정이다. 오메가와는 인연이 깊다. 일단 오메가도 나처럼 스위스 출신이다. 2년 전에 바젤 월드에도 함께 참여했고,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 행사에서도 함께 일할 기회가 있었다. 나도 그들이 만드는 시계를 좋아하고, 그들도 언제나 내 음악을 존중해주기에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팀워크가 워낙 좋기 때문에 무얼 하든 잘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다.

시계를 좋아하는 편인가?

물론이다. 현실적으로 봤을 때, 남자들이 눈치 보지 않고 착용할 수 있는 유일한 액세서리 아닌가? 나만 해도 지금 시계를 제외하고는 어떤 액세서리도 하고 있지 않다. 시계는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에 굳이 다른 장식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시계는 나한테 특별한 의미가 있는 물건이기도 하다. 할머니는 나에게 크리스마스 때마다 작은 시계를 선물로 주시곤 했다. 그런 추억도 내가 시계를 사랑하는 데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큰 부분이다.

평소에는 어떤 스타일을 추구하는 편인가?

지금 내 모습이 평소의 내 모습이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서 옷을 갈아입을 때 잘못된 선택을 해버리면, 그날 하루를 통째로 망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좋아하는 아이템은 빈티지 부츠다. 그리고 편한 청바지와 셔츠, 가죽 재킷 정도가 전부다. 화려하게 보이는 건 싫다. 난 레이디 가가가 아니니까(웃음). 난 그저 내 음악으로 승부를 보고싶다. 그게 전부다.

에디터
피처 에디터 / 이채린
포토그래퍼
엄삼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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