셔터를 누르는 1~2초 동안 카메라 앞에서 자신을 감추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찰나를 찍는 사진은 종종 거짓말이 되기도 한다. 사진가 천경우는 더블유의 에디터들에게 9분이라는 시간과 진실을 요구했다. 불협화음이나 실수가 완벽함보다 더 중요한 삶의 요소라고 여기는 그의 믿음에 따라 피사체들은 동료의 옷을 꾸역꾸역 각자의 몸에 둘렀다. 타인의 존재를 새삼 인식하는 가운데 결국 돌아보게 된 건 스스로의 진짜 모습이었다.
Interview with CHUN KYUNG WOO
<W Korea> 더블유와의 프로젝트에 대해 직접 설명을 들려줬으면 한다. 9명의 에디터가 모델로 카메라 앞에 서는 것을 제안하면서 ‘에디팅’이라 는 개념이 이번 작업에서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이야기했다. 어떤 뜻이었나?
천경우 타인의 모습을 선택하고 연출해 특정 부분을 부각시키거나 숨겨서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는 일을 하는 사람들의 상징성에 흥미를 가지고 있었고, 이번 프로젝트가 그 작업을 실현하는 자연스러운 계기가 될 거라고 봤다. 사회에서 정해진 역할을 바꾸어보는 일, 혹은 비일상적인 조건을 보통 사람에게 제시하고 그 결과를 관찰하는 일에 관심을 갖고 있다. 매거진 에디터들에게 모델이라기 보다는 참여자로서의 역할을 제안하고 싶었다.
이 작업은 크게 두 개의 과정으로 완성되었다. 먼저 하나의 그룹 안에서 일상을 공유하며 일하는 9명의 에디터들에게 자신의 옷을 제외한 다른 8명 동료들의 옷-각자를 가장 아름답게 해주는 옷을 가져와 달라고 부탁했다-을 활용해 즉흥적으로 스스로를 아름답게 꾸미도록 제안했다. 두 번째로, 타인의 옷을 입은 참여자들은 카메라 앞에서 시간을 보내며 서서히 자신의 모습을 사진으로 완성해간다. 에디터는 사진이 실제의 모습과 얼마나 다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사진 찍히는 일을 편안해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이들에게 거울 앞에 서서 즉흥적으로 자신의 몸과 타인의 일부분인 옷이 어울리도록 구성하게끔 했다. 이 낯선 행위는 에디터들이 마감 시간에 쫓기면서 온갖 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깨끗하고 완벽한 페이지를 구성하려 시도하는 일과도 유사하다고 봤다. 각자가 스스로의 취향과 창의력을 동원해서 여덟 벌의 옷을 모두 입을 때 작가는 개입하지 않는다. 이 불편한 조건과의 타협을 통해 타인, 그리고 자신과의 새로운 대화를 경험할 수도 있다. 나는 완벽하게 구성된 질서의 거부, 맞지 않는 옷과 같은 불협화음이나 계획되지 않은 실수 등이 매우 중요한 삶의 요소라고 생각한다.
인물 간의 교감과 소통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작가다. 일례로 ‘Versus’는 익명의 시민들이 서로 기댄 채 15분을 보내는 퍼포먼스 작업이었다.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한 공간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는 집단의 구성원들이 자신이 아닌 다른 동료들의 옷을 입은 채 카메라 앞에 선다. 서로를 잘 아는 사람들 사이의 교감은 전혀 모르는 사람들 사이의 교감과는 어떤 점에서 다르고 또 흥미로운 주제라고 생각하나?
이번 작업은 참가자들이 하나의 공동체 안에서 유사한 일을 하는 지인들이라는 동질적 조건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이들이 서로의 외모와 스타일을 알고 있다고 믿는 것을 전제로 삼는다. 사진 속에는 한 사람씩 등장하지만 그 사람이 지탱하고 있는 옷과 시간의 무게는 실제로는 동료 8명에 대한 기억과 관계의 총체라고 믿는다. 익명의 참가자들이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사람들과 몸을 기대거나 연결된 상태로 일정 시간을 같이 보내는 행위는 사회적 역할과 일상이 허락하지 않는 일을 경험할 자유를 제공한다. 이 안에는 낯선 타인에 대한 부담, 의지(依支) 또는 배려심이 공존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자신이 미처 알지 못한 감각을 발견하게 해주고, 자신과 대화할 기회를 주기도 한다.
9분, 혹은 15분, 이런 식으로 촬영이나 퍼포먼스의 지속 시간을 미리 정해두는 이유가 있나? 이 숫자는 작품의 관찰자들에게는 그다지 큰 의미가 없다. 가급적이면 참가자들이 작가가 일방적으로 정해놓은 시간의 조건을 따르는 대신 스스로 연관성을 느끼며 의식적이고 주도적으로 작업을 함께 수행해줬으면 했다. 이를 위한 의미 부여의 조건이므로 시간 제한은 기술적 범위 내에서 비교적 자유로이 정해진다. 이번 작업에 참여한 에디터들이 지금 공통적으로 집중하고 동일시하는 숫자가 9이기 때문에 이를 참가자의 숫자이자 한 장의 사진의 시간(分)으로 택하게 됐다.
카메라 앞에 인물을 세우거나 앉히고 오래 시간을 보내며 장노출로 담아낸 초상들로 널리 알려졌다. 그 결과물은 이목구비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흔들린 상일 때가 많다. 이런 작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 학창 시절, 사진이 명확해야 한다거나 결정적 순간을 포착해야 한다는 개념, 그리고 인물을 대상으로 할 때 생기는 ‘찍히고 찍히는’ 이분법적 역할 분담에 의구심과 회의를 지속적으로 느껴왔다. 나는 사진의 시각적 결과보다는 그 사진을 완성해가는 과정에 더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 과정에는 시간의 양(Quantity)이 아닌 질(Quality)에 대한 탐구가 지속될 수밖에 없었다. 인물을 대상으로 할 때 시간을 의도적으로 늘리는 방법은 무언가를 특별히 드러내거나 감추려는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 행위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나름의 실험을 했다. 흐릿한 사진은 목적이라기보다는 하나의 귀결이기도 하다. 긴 시간을 거치며 이루어진 명확하지 않은 한 장의 사진은 빠르게 인지되지 않거나 누군가는 지나쳐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보는 사람과 고유한 교감을 천천히 이뤄갈 수 있는 이미지라고 믿어왔다.
일반적으로 모델을 선정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준이 있나?
작업 내용에 따라서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모델’이라는 수동적인 의식을 가지지 않을 것을 전제 조건으로 삼는다. 나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사진 작업에서 이 일방적인 역할을 좋아하지 않는다. 흔히들 사진은 순간을 붙드는 도구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천경우는 한계가 뚜렷한 사진이라는 매체에 시간을 담으려고 하는 듯 보인다. 사진으로 시간을 표현하는 것은 영상으로 시간을 표현하는 것과 어떻게 다를까? 당신에게 사진은 어떤 의미의 매체인지 묻고 싶다. 우선 이 질문에 답하려면 시간이 무엇인지 아는 게 전제되어야 하는데 나는 시간이 무엇인지 아직 잘 모른다. 한 사람에게 주어진 시간이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시간을 측정하는 시스템 정도를 조금 알고 있을 뿐이다. 또한 사진은 순간을 붙드는 도구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보다는 순간의 부재를 각인시키는 도구에 더 가깝다고 본다. 사진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동영상에 비해 사진은 시간의 순서를 바꿀 수 없는 단 하나의 총체적이고 신비한 이미지의 덩어리일 것이라는 짐작만 가지고 있다. 정지된 듯 보이지만, 내게 사진은 보는 사람에 따라서 꿈틀거리는 유기체 같은 것이다.
- 에디터
- 뷰티 디렉터 / 송시은, 피처 에디터 / 정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