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 패션은 가장 파격적이고 파워풀한 매체가 될 수 있다. 캘리포니아주 포터빌 여전사들의 전위적이고 묵직한 움직임에 지배당한 릭 오웬스의 쇼는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공격적인 스펙터클로 가득했다.
녹음이 무성한 테라스를 여유롭게 서성이는 릭 오웬스는 마치 암흑 시대의 고트족 같았다. 운동으로 단련된 근육은 검은 옷으로 감춘 채 칠흑 같은 검은 머리를 나부끼고 있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검은색으로 휘감은 그는 마치 타르에 휩싸인 듯했다. “약간의 훈련과 창조성에 조금의 노력을 더한다면, 얼마든지 원하는 대로 변신할 수 있어요. 더욱이 내가 할 수 있다면, 그 누구든 다 해낼 수 있는 것이죠.” 그는 이번 컬렉션의 극단적인 파격에 대해 지나치게 겸손하게 말을 이어간다. “물론 이런 변화가 당신의 우선순위가 아니라면, 그것도 상관없습니다. 알다시피, 패션과 스타일이 전부는 아니니까요.”
유난히 따뜻한 2013년 10월의 아침, 열린 창문 사이로 아리아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그는 2014년 여성복 봄 패션쇼에 관한 질문을 받았다. 심장을 쿵쿵 울리는 스펙터클한 쇼에는 미국의 스테핑 댄스 팀이 합류해, 객석을 들썩이게 만드는 경이로운 패션의 순간을 연출했다. “패션 역사에 길이 남을 한 조각이죠.” 런던 리버티의 패션 디렉터인 스티븐 에어스(Stephen Ayres)가 이야기한다. “쇼의 영혼과 퍼포먼스 뒤에 숨은 릭 오웬스의 정신은 결코 잊히지 않을 거예요!” 바니스 뉴욕의 패션 디렉터인 도모코 오구라(Tomoko Ogura) 역시 고개를 끄덕인다. 단순한 캣워크 퍼레이드를 뛰어넘어, 쇼는 여성의 파워와 팀워크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깊은 소속감에 대해 말하고 있다. 릭 오웬스에게 쇼의 성공을 확신했는지 묻자, 그는 “그저 이목을 끌기 위한 곡예로 오인될까봐 사실 걱정스러웠다”고 고백했다. 특히 그는 제타스(Zetas), 워싱턴 디바스(Washington Divas), 솔 스테퍼스(Soul Steppers), 모멘텀스(Momentums) 등 네 팀으로 구성된 스테핑 댄서들이 시종일관 쏘아보는 강렬한 표정으로 춤추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음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우아한 행동 중 하나는 나 자신에게 유머감각을 발휘하는 것이에요.” 자신의 매장마다 밀랍 인형을 배치하되, 전신 누드부터 얼굴만 단 위에 올려놓거나 혹은 상체만을 절단하는 등의 특이한 인테리어를 선보이는 그가 이야기했다. “찡그리거나 위협적인 표정을 짓는 그녀들을 봤을 때 유쾌하고 즐거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게 바로 내가 좋아하는 특유의 정신이죠.” 쇼의 성공을 말하면서 그는 댄서들에게 왕관을 수여했다. “내가 한 건 단지 옷을 입히는 것뿐이었어요. 다른 모든 건 그녀들이 알아서 했으니까요.” 에너지가 넘치는 강인한 퍼레이드는 팀원들이 서로 팔을 연결했을 때 클라이맥스를 이루었다. 마치 테크노를 사랑하는 거대한 애벌레가 런웨이에서 춤을 추는 듯한, 격정적인 무대였다. 게다가 그저 인상적인 피날레를 넘어서, 이 인간 사슬은 미국의 인종 폭동 때의 견고한 단결과 또 다른 변화의 방향을 암시하고 있다.
“강한 압력 속에서의 우아함이 무엇인지, 그 우아함이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죠.” 그는 말을 이었다. “물론 이를 희화화하려는 의도는 아니고, 오히려 상기시켜 잊지 않게 하고 싶었어요. 그게 무엇인지를 기리는 것에 더 가깝지요. 쇼를 본 사람들이 이 정신이 인종 문제뿐만 아니라 좀 더 확대된 의미의 소속감을 암시한다는 걸 알아주길 바라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강한 소속감을 느끼질 못해요. 어딘가에 속하길 간절히 원하지만, 실제론 그 일부라는 느낌조차 받지 못하죠. 쇼는 모든 이들이 느낄 만한 본능을 표현한 것이에요.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다들 서로에게 연결될 수 있었을 거예요.” 듣는 사람을 무장해제시키는 특유의 느릿한 어조로 그는 이번 런웨이 쇼가 그저 다양성을 보여주는 것이 아님을 밝혔다.
그의 어머니는 늘 컬렉션의 모티프이자 든든한 조력자가 되어준다. 그녀는 아들의 쇼를 지켜보기 위해, 매년 두 차례 파리 여행을 한다. “어머니는 모델 캐스팅에서 쇼의 세세한 모든 것이 이뤄지는 동안 이곳에 머물러요. 여기선 16세의 어린 모델이 투명한 드레스 차림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날카로운 잣대에 올라야 할 때가 있어요. 이럴 때 어머닌 그녀에게 쿠키를 건네주면서 좀 더 편안한 느낌을 갖게 해주죠.” 태닝된 얼굴에 미소를 띤 채 그가 이렇게 말한다. 반면 피팅하는 동안에 어머니의 힐책과 잔소리도 받아들여야 한다. “주로 ‘이건 깡마르고 키가 큰 모델들에게나 어울리는 것!’이라든지 하는 꾸짖음이에요.” 뚱뚱하거나 가슴과 힙이 크거나 굴곡진 체형을 비롯해 ‘모든 타입의 여성이 반응할 수 있는 옷을 만들라’는 것이 어머니의 조언이다. “길고 우아한 속눈썹을 지닌 기린뿐만 아니라 강인한 사자에게도 옷을 입히고 싶어요. 이는 실제론 굉장히 기술적인 방식을 요하죠. ‘38사이즈부터 시작한다면, 48사이즈는 얼마나 정확하게 만들 수 있는가?’ ‘전체적인 비율에서 왜곡되는 부분은 없는가?’ 하는 것을 세세히 신경 써야 하는가 하면 공장에 이 모든 것이 잘 전달되어 피팅이 현명하게 이뤄지고 있는지도 확인해야 하죠.”
그는 주로 슬리브리스 튜닉, 로브, 사무라이 숄더를 지닌 드레스 등으로 이루어진 이번 컬렉션이 평소보다는 덜 다채로웠다는 점을 인정한다. 하지만 후드와 드레이핑으로 드라마를 더하고 아디다스와의 협업으로 만든 그래픽 스니커즈로 스포티함을 강조했다. 그렇다면 ‘모든 체형에 맞추는 컬렉션 아이디어’와 ‘스테핑 팀 캐스팅’ 중에서 어떤 것이 먼저 이루어졌을까? 결론은 두 부분이 복합적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그는 이미 스테핑 댄서들을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메인 스튜디오의 어시스턴트인 아샤 마인스(Asha Mines)가 결속력이 강한 여학생 동아리를 방불케 하는 에너제틱한 아프리칸-아메리칸 댄서들을 섭외했다. “그녀들은 이미 리허설에 익숙한 터라, 더욱 정교한 쇼가 가능했어요. 단지 그녀들이 우리의 시간대에 맞춰서 약간의 변형만을 가했을 뿐이죠. 하지만 가장 급했던 문제는 아무래도 비행기표와 여권을 준비하는 것이었어요. 다들 파리로 날아갈 여권을 확실히 챙겨야 했으니까요.” 물론 정상적인 쇼 캐스팅에서 벗어난 파격은 이번 자신감을 발견하게 되었죠. 쇼는 차츰 축제 분위기를 띠기 시작했어요.” 그렇다면 메탈 밴드와 스테핑 댄서들, 그리고 다음 쇼에선 어떤 파격이 등장할 것인지 궁금해진다. “지나치게 튀는 쇼의 제왕이 되고 싶지도 않고, 또 하찮은 그저그런 쇼라는 소리를 듣기도 원치 않아요. 난 쇼에서 불과 바람과 안개와 포말이라는 요소를 혼합했어요. 굉장히 마술적인 요소들이에요. 비용은 저렴하지만 드라마틱한 효과를 주죠.”
그는 아방가르드와 산업주의적 스타일이 혼재된 검은색과 회색을 주조로 한 특유의 어두운 디자인이, 트렌드를 따르는 스타일보다는 대중적이지 못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너무 한쪽으로만 치우치면 자동적으로 많은 사람과 멀어진다는 걸 의식하고 있습니다. 지나치게 극단적으로 흐르지 않도록 주의하죠.” 하지만 동시에 그는 다크 스피릿의 세상과 그 영향력에 대해선 확고한 믿음을 갖고 있다. 검은색과 회색은 여전히 런웨이와 하이 스트리트에서 막강한 파워를 발휘하기 때문이다. “스태프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해요. ‘우린 어둠의 성자처럼 보일 수 있어야 하고 또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라고요.” 그가 직접 옷 만드는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런웨이용으로만 옷을 만들던 디자이너들 덕분(?)이기도 하다. “내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모든 것을 실제로 만들어내고 싶었죠. 늘 유감스러웠던 건, 런웨이 룩이 매장에선 쉽게 구입할 수 없는 웨딩케이크라는 점이었어요. 쇼에서 화려한 퍼레이드를 벌일지라도, 대개 현실에선 진과 티셔츠를 택할 뿐이었죠.”
이탤리안 건축가 루이지 모레티(Luigi Moretti)에서 유겐트슈틸(독일식 아르누보)이나 스테핑 댄스에 이르기까지, 때로는 패션을 통해 쉽게 떠올리기 어려운 문화적 레퍼런스로부터 영감을 얻을지라도, 그는 패션 산업에서 자신의 길을 발견하게 된 것이 감사하다고 말한다. “내가 경이롭고 근사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을 축복하고 싶어요. 그리고 디자인은 이를 현실로 만들어가는 과정이죠.” 그는 차분히 말을 이어갔다. “지금의 난, 아주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삶에서 가장 기본적인 토대가 되는 것 중 하나는 서로에게 귀 기울이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결혼이라는 일상을 통해선 아내와 아이들이 당신에게 귀를 기울이고… 더욱이 난 운 좋게도 이미 이런 근사한 기회를 누렸어요.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에 수많은 사람이 경청하고 있으니까요. 아마도 이보다 더 많은 걸 얻을 수는 없을 거예요.” 글 | Miles Socha
- 에디터
- 패션 에디터 / 정진아
- 포토그래퍼
- DOMINIQUE MAIT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