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밥을 먹는 동안엔 아무것도 먹을 수 없는 식당 사람들. 메뉴판엔 없는, 그들만의 진짜 밥상 ‘패밀리밀’을 훔쳐봤다.
우리는 패밀리, 패밀리, 패밀리
아스파라거스와 새우가 들어간 로제 파스타, 조개가 가득 올라간 오일 파스타가 등장하기에 정말 이렇게 차려 먹느냐고 의심의 눈초리로 물었다. “네. 정말 이렇게 먹어요. 식사가 맛있어야 직원들이 오래 일하거든요. 대신 메뉴는 언제나 세가지를 넘지 않죠.” 토미 리 셰프는 뉴욕의 레스토랑 ‘노부’에서 일할 땐 셰프가 오직 직원 식사를 위해 재료를 주문할 수 있게 해줬다며, 패밀리밀을 보면 스태프들을 향한 배려를 알 수 있기 마련이라고 강조했다. 사실 멋 부리지 않아도 충분히 풍요로운 프렌치 요리를 선보이는 비스트로 드 욘트빌 메뉴에 파스타는 없지만, 이전에 이탤리언 식당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스태프들이 일주일에 한 번 즈음 솜씨를 부리곤 한다. 촬영을 마치자마자 접시들은 곧장 VIP룸으로 입장했다. 그곳엔 스태프들이 둘러앉아 있었다. “직원들이 우리 VIP거든요”.비스트로 드 욘트빌 02-541-1550
화려하지 않아도 괜찮아
오늘의 점심 메뉴는 해산물 파에야로 결정됐다. 패밀리밀의 조건 중 하나는 남은 재료 활용하기, 그중에서도 하루 이상 보관하기 어려운 해산물을 소진하기에 파에야만큼 좋은 선택이 없었다. 쌀에 새우, 홍합, 조개, 소시지 등을 듬뿍 넣어 끓여야 하니 꽤 오래 기다려야 할 줄 알았지만, 셰프가 냄비를 불 위에 올리기 무섭게 완성됐다. “원래 제대로 하려면 노란빛을 내는 사프란 물에 밥을 지어야 하지만, 이건 그냥 간편하게 우리끼리 먹는 거니까요.” 하지만 정석을 꼬박 지키지 않아도, 그랑씨엘의 다른 메뉴들이 모두 그러하듯 모습은 소박하고 양은 푸짐하고 접시 주변이 온기로 가득했다. 그랑씨엘 02-548-0283
밥은 먹고 다니냐?
사실 범스에선 직원들만을 위해 따로 요리할 필요가 없다. 마치 엄마가 만들어준 듯한 정갈한 한식 요리가 가득해, 그 음식들을 그대로 먹으면 충분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패밀리밀의 대부분은 범스의 메뉴로 채워지는데, 그중 가장 인기가 높은 건 계란부추범벅. 새로운 요리를 먹고 싶을 땐 고기 대신 구운 햄을 넣은 상추쌈, 그리고 바로 오늘의 점심이기도 한 버섯덮밥을 해서 먹는다. 고기를 볶다가 각종 야채와 네 가지 버섯을 넣어 만든 소스를 밥에 부어 먹으면 끝인 간단한 요리지만 직접 만든 다시마 조림, 콩나물 무침, 깍두기 등의 소박한 밑반찬과 함께 먹으면 술술 넘어가고 오후 내내 배가 든든해진다. 범스 02-3447-0888
신메뉴 실험실
카인드 식당의 직원들은 벌써 사흘째 같은 메뉴로 점심을 나는 중이다. 3~4개의 주요 메뉴를 제외하곤 한 달에 한 번씩 메뉴를 교체하는 까닭에, 대부분의 점심시간은 새로운 메뉴를 만들어 스태프들이 먹어보고 회의하는 자리로 쓰이기 때문이다. 브런치 메뉴를 만들어달라는 손님들의 오랜 요구 덕분에, 요즈음은 핫케이크 개발에 한창이다. 오븐에서 구워 바삭한 식감이 돌게 하고, 흔히 쓰는 메이플과 캐러멜 시럽 말고도 한쪽엔 럼과 호두 그리고 사과를 넣어 만든 카인드 식당만의 시럽을 함께 얹었다. 곧 손님들의 테이블에도 오르게 될 것 같은 이 핫케이크의 이름은, 아마 ‘킹 오브 핫케이크’가 되지 않을까 싶단다. 중앙에 보이는 왕관 모양은 바로 그 때문이다. 카인드 신당 02-796-4544
아주 보통의 점심
고즈넉한 한옥집에 자리 잡은 프렌치 레스토랑 샤떼뉴. 최은용 셰프가 우리 재료로 선보이는 섬세하고 창의적인 요리에 대한 소문을 익히 들었던 터라, “우린 거의 한식 먹어요. 김치찌개 같은 거”라고 미리 들어놓고도 특별한 찌개가 등장하진 않을까 기대가 됐다. 하지만 그 한옥집에 들어서자마자 건네받은 건, 뭉툭한 냄비 가득 끓여져 나온 푸짐한 동태찌개. “반찬은 가락시장에서 사요. 아주 잘해요”라는 말엔 잠시 당황했다가, “한식 말고 제일 인기 많은 점심 메뉴는 뭐예요?”란 질문에 “시켜 먹는 짜장면이랑 피자요!”란 답이 돌아왔을 땐 불쑥 친근감이 들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프렌치 레스토랑의 점심도 우리의 평범한 점심과 하나도 다르지 않아서. 샤떼뉴 02-736-5385
- 에디터
- 피처 에디터 / 김슬기
- 포토그래퍼
- 김범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