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구와 디자인을 위시해 예술적 흥이 한껏 오르는 밀라노 디자인 위크 | 더블유 코리아 (W Korea)

밀라노에 예술적 소동이 일어날 때 Vol.1

2019-06-13T15:46:51+00:002019.06.15|FEATURE, 컬처|

밀라노 디자인 위크 이야기 Vol.1

발길 가는 곳마다 무언가 일이 벌어진다. 가구와 디자인을 위시해 예술적 흥이 한껏 오르는 밀라노 디자인 위크 이야기다. 도시 전역이 디자인 축제로 물드는 그곳을 <더블유>가 종으로 횡으로 누볐다.

흔히 ‘밀라노 가구 박람회’라고 부르는 이 행사를 둘러싼 몇 가지 명칭이 있다. 매년 4월, 밀라노에서 전 세계 유수의 가구 브랜드가 컬렉션과 신작을 공개하는 박람회의 정식 이름은 ‘살로네 델 모빌레(Salone Del Mobile)’다. 로 피에라(Rho Fiera)라는 거대한 전시장에서 열린다. 올해로 58회를 맞은 이 장내 전시 외에 시내 곳곳에서 열리는 갖은 장외 전시를 일컫는 이름은 ‘푸오리 살로네(Fuori Sanlone)’다. 람브라테, 브레라, 토르토나 등 디자인 지구로 형성된 곳을 비롯해 미술관이나 작은 갤러리, 쇼룸과 사무실 등등에서 크고 작은 볼거리가 펼쳐진다. 살로네 델 모빌레와 푸오리 살로네가 개최되는 밀라노 디자인 위크 기간이면 유서 깊은 저택이나 기차역, 혹은 ‘임대문의’라고 써 붙여놓은 빈 건물 어디서든 무언가 일이 벌어진다. 패션쇼는 주로 업계 관계자와 하이 패션 브랜드의 사정이지만, 디자인은 명망 있는 전문가부터 작은 리빙숍을 운영하는 사람까지, 순수 예술가부터 미대 학생까지 끌어안을 수 있는 테마이기 때문이다. 해가 갈수록 밀라노 전역에서 디자인 축제를 즐기는 분위기가 눈에 띄게 무르익고 있다. 그 공기를 한껏 느끼기 좋은 쪽은 거대하지만 도시 외곽에 자리 잡은 실내 전시장이 아닌, 도시 전반의 푸오리 살로네다. 49일부터 14일까지 열린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서 이 도시를 종으로 횡으로 누볐다. 푸오리 살로네 공식 사이트에 소개된 디자인 위크 동안의 이벤트 수는 1350개였다. 신발끈 동여매고 온종일 뛰어다녀도 모든 것을 다 보고 느끼긴 힘들다는 뜻이다. 대신, 푸오리 살로네에서 만난 흥미롭고 인상적이며 의미 있는 전시만을 꼽았다. 이 전시들에 관여한 이름은 훗날 당신의 밀라노행이나 예술적 탐험에 안정적인 나침반 역할을 할 것이다.

 

되살아난 폐허

what : VARIOUS EXHIBITIONS

who : ALCOVA

푸오리 살로네의 주요 이벤트가 몰린 지역에서 동떨어져 있었지만, 내년에도 필히 찾고 싶게 만든 이름은 알코바다. 알코바는 문화 전반을 아우르며 다양한 시도를 꾀하는 실험적 집단이자 디자인 플랫폼이다. 이들이 추진하는 모든 일의 방점은 ‘베뉴’에 있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공간이나 기억에서 잊힌 장소를 전시와 공연 등으로 활성화한다는 게 목표이기 때문이다. 밀라노 중앙역에서 가까운 조반니 코바 & Co.의 옛 빵 공장은 알코바 사무실이 자리 잡은 곳이기도 한데, 밀라노 산업 역사의 핵심 현장 중 하나라고 한다. 습관처럼 한국에서 이와 유사한 케이스를 떠올리자면, 1963년 부산 수영구 망미동에 들어선 옛 고려제강이 부산비엔날레를 비롯해 여러 전시 행사를 개최하는 복합문화공간 F1963으로 다시 태어난 것쯤 될까?

오랜 세월 묵은 시멘트벽과 군데군데 돌보지 않은 식물. 폐허라고 하기엔 잘 보존된 유사 폐허 상태의 이곳에서 30여 개 디자인 집단이 전시를 하고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이런 장소에 다분히 미래적 소재의 가구가 전시된 모습도 이색적이었지만, 넓은 공간의 구석에 무심하게 툭 자리한 의자와 테이블, 테이핑 작업 하나만으로 풍경을 새로 쓰는 작업 등 ‘별 장치 없는 디스플레이’를 선보인 코너에 눈길이 갔다. ‘공간에 컬러를 붙여 변화를 주자’라는 모토를 지닌 디자인 스튜디오 하루(HARU stuckon design;)는 기둥과 기둥 사이나 벽을 가로지르는 애시드 컬러 포장 테이프로 회색 공장의 풍경을 순식간에 바꿔놓았다. 밀라노의 수많은 곳에서 저녁이면 디제잉과 칵테일이 있는 파티가 열릴 때, 몬트리올의 램버트&필스(Lambert & Fils)와 밀라노의 DWA 디자인 스튜디오는 파티라는 동일한 형식에 다른 맥락을 담았다. 알코바에 6일 동안 콘셉트 레스토랑을 오픈했으니, 이름하여 ‘카페 포퓰라레(Caffè Populaire)’. ‘디자인은 대화 없이 존재할 수 없다’고 믿는 이들이 음식과 사람과 디자인이 역동적으로 만나는 자리를 위해 일시적으로 마련한 레스토랑이다. 사전에 저녁 식사를 예약한 사람들과 둘러앉아 큰 접시에 담긴 음식을 나눠 먹는 동안, DWA 스튜디오에서 만든 U자형 테이블과 의자, 옛 빵 공장 한켠을 따뜻한 빛으로 채우는 램버트&필스의 조명 컬렉션이 함께했다.

 

이것이 바로 디모레

what : <PROGETTO TESSUTI>

who : DIMORE

“기억을 해석하고, 꿈을 만든다.” 디자이너 듀오가 이끄는 디모레 스튜디오는 스스로를 이렇게 소개한다. 16년 전 밀라노에 스튜디오를 차린 후 이들은 개성 있는 집과 호텔과 레스토랑을 디자인하고, 소품과 가구를 제작하며 전시도 여는 등 순식간에 영역을 넓혔다. 스튜디오가 성장하면서 가구를 포함한 주거 프로젝트와 텍스타일 등을 담당하는 디모레 밀라노, 듀오가 셀렉하거나 만든 오브제를 전시하는 디모레 갤러리 등으로 영역을 세분화했지만, 어쨌든 이번 밀라노 디자인 위크 때 ‘디모레’라는 이름을 단 전시는 세 종류였다. 그중 가장 즐겁게 감상한 <프로게토 테수티>는 패브릭 컬렉션 전시다. 왜 한국에서는 과감하고 다양한 패턴의 패브릭을 시도하는 일이 두려운 걸까? 집 인테리어에 있어서 결국 블랙 앤 화이트나 뉴트럴 계열만 고집하던 수많은 나날을 지나, 밀라노에서 마주친 전시는 2차원의 패브릭이 3차원의 풍부한 효과를 내는 마술 현장이었다.

디모레의 패브릭은 과거와 현재의 밀라노 여러 지역에서 찍은 사진이 인쇄되거나 기하학적 무늬와 색을 강조한 스타일. 패브릭에 인쇄된 사진이 걸려 있는 초입을 지나면 문 없이 통로로 거듭 연결되는 방이 펼쳐진다. 하나의 방은 하나의 패턴에 대한 작은 전시관이다. 그곳들에는 패브릭에 인쇄된 사진 액자와 최종 완성품인 패브릭, 패브릭의 패턴에서 튀어나온 듯한 사물, 그리고 패브릭을 야외에 디스플레이해놓고 찍은 사진 등이 병치되어 ‘패브릭 전시, 이렇게 하세요’의 좋은 예를 보는 것 같았다. 시야에 패브릭 이미지가 중첩될 때마다 전시장에 흐르던 전위적인 전자음악 사운드도 증폭했다. 같은 전시장의 다른 층에서는 디모레의 가구 컬렉션 데뷔 전시가 있었고, 또 다른 장소인 DIMORE STUDIO X DIOR 프리젠테이션에서는 디모레가 디올을 위해 디자인한 캡슐 컬렉션 14점이 공개됐다. 새틴과 크롬으로 초현실적인 사무실 연출을 제안하고, 디올과 협업하면서 주인공인 소품 외 배경은 착시 효과를 일으키는 분필 그림으로 처리하는 기지. 부티크 호텔 체인 왕국의 대표도, 럭셔리 패션 하우스와 갤러리 오너도 모두 디모레를 찾는 이유다.

 

물질은 창조의 어머니

what : <LES ARCANISTES>

who : STUDIO PEPE

‘물질(Matter)’의 라틴어 어원은 ‘Mater’, 이 단어의 뜻은 영어로 Mother라고 한다. 그러니까 ‘물질이야말로 모든 것을 낳는 원형’이라고 스튜디오 페페는 생각했다. ‘아르카니스트’는 연금술사와 비슷한 비술사를 뜻하는데, 그럼 전시 제목은 무슨 의미일까? 유리나 금속 등 여러 물질을 다루던 옛 존재인 비술사는 난해하고도 비밀스러운 공식을 가지고 무언가를 창조했다. 어떻게 보면 화학자의 원형인 셈이다. 스튜디오 페페는 다층적인 연구와 조사를 즐기는 디자인 에이전시다. 이곳의 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현대의 비술사처럼 물질과 그 원형, 상징의 힘 사이 연관성을 탐구하는 전시를 선보였다. 이를 테면 세상의 근원적 물질인 물에 진동을 가해 물의 파장과 능력을 관객이 체험하게 하고, 상징성 있는 물체들을 이용해 점괘를 도출하는 공간을 마련하는 식이다. 개념과 추상이 얽혀 다소 어렵게 느껴지는 이 전시는 여러 디자인 미디어의 주목을 받았다. 스튜디오 페페가 내년 디자인 위크에서 또 어떤 독특한 형태의 전시 프로젝트를 선보일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