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서울에서 만나볼 수 있는 아제딘 알라이아의 회고전 | 더블유 코리아 (W Korea)

알라이아의 영원한 세계

2018-03-27T11:26:56+00:002018.03.27|FASHION, 뉴스|

올해 초부터 파리에서 전시 중인 고 아제딘 알라이아의 회고전. 파리 패션위크가 막을 내린 지난 3월 7일, 알라이아의 오랜 친구이자 패션 큐레이터인 올리비에 사이야르(Olivier Saillard)를 만났다. 뜨거운 관심 속에 서울 전시가 예정된 가운데, 그가 말하는 전시 뒷이야기와 패션 스토리, 그리고 전설적인 쿠튀리에이자 마음 따뜻한 친구 알라이아에 대하여.

 아제딘 알라이아 회고전에서 만난 전설적인 패션 큐레이터, 올리비에 사이야르.

아제딘 알라이아 회고전에서 만난 전설적인 패션 큐레이터, 올리비에 사이야르.

〈W Korea〉파리에서 서울로 날아온 알라이아 전시 초대장을 받고 이 특별한 회고전이 무척이나 보고 싶었다. ‘나는 쿠튀리에다(Je Suis Couturier)’라는 타이틀도 매력적이었고 말이다. 우선, 그 타이틀에 담긴 이번 전시의 기획 의도를 알고 싶다.
Olivier Saillard 사실 그 제목은 카를라 소차니가 제안한 것이다. 10 꼬르소 꼬모의 오너인 그녀는 30년 전부터 알라이아의 친구로서 그의 모든 것을 함께했다. 그런 그녀가 이번 전시를 준비할 때 이 제목을 제안했다. 알라이아는 생전에 누군가가 그에게 직업을 물으면 디자이너나 아트 디렉터라고 말하기보다는 ‘쿠튀리에(Couturier)’라고 말했으니까. ‘재단을 하고, 그 재단에 맞춰 드레스를 위한 천을 자르고, 몸통이 완성된 옷에 팔을 붙이는 그런 일이 내가 정말 잘할 수 있는 일이다’라고 그는 종종 말했다.

초대장에 찍힌 알라이아의 생전 사진이 인상적이다. 이 사진을 보니 마음이 울컥하더라. 1990년에 찍은 이 사진을 이번 전시를 위해 선택한 이유가 있나?

전시 오프닝 초대장에 쓰인 알라이아의 생전 모습이 담긴 사진.

전시 오프닝 초대장에 쓰인 알라이아의 생전 모습이 담긴 사진.

아마 사람들이 흔히 보지 못한 사진일 거다. 이것도 역시 카를라가 제안한 것인데, 여기 사진 속 배경에 보이는 책들은 오래전 알라이아가 자신의 특별한 보금자리가 된 파리 마레에 위치한 이 공간을 구매하기 전부터 있었던 책들이다. 들춰보니 ‘천’에 대한 스토리가 적힌 오래된 책이더라. 알라이아는 그 후에도 이 책들을 버리지 않고 간직했다.

알라이아의 친구로서 그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을 때 슬픔이 컸을 것 같다. 이 전시를 준비할 때 큐레이터로서뿐만 아니라 친구로서의 마음이 더 각별했을 텐데.
정말 믿을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그가 죽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 너무나 힘이 들었다. 지난 11월에 세상을 뜨고 일주일 뒤, 카를라 소차니와 그녀의 동반자인 크리스 루스(주얼리 디자이너이자 화가)가 나에게 연락해 무슈 알라이아를 위한 전시를 준비하자고 제안했다. 바로 전시를 진행하지 않으면 그에 대한 추억이 다 사라질 것만 같았기에 나 역시 흔쾌히 동의했다. 지금 전시가 성황리에 치러지는 걸 보니 이게 정말 필요한 애도의 자리였음을 다시 한번 느낀다. 이 공간을 채워가면서 여러번 감정이 동요했다. 그 누구도 그가 이렇게 우리 곁을 황망히 떠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아직도 그와 몇십 년을 함께한 이 공간에 올 때면 그가 맞아주지 않는 현실이 어색하다. 그래서인지, 내게는 여기 전시된 그의 옷들을 마주하는 동안은 마치 그가 함께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부제가 ‘큐레이터 올리비에가 선택한 41벌의 의상’이다. 방대한 컬렉션 중에서도 특별히 이 의상들을 선택한 이유는?
그가 남기고 간 옷은 수만 피스에 달한다. 그래서 전시에 쓰일 옷을 선택할 때, 전시 일정을 생각해 신속하게 가려내야 했다. 나름의 기준이 있었다면 지난 2013년, 팔레 갈리에라(파리 시립 의상 박물관)에서 알라이아 전시를 이미 했기 때문에 그때 전시되지 않은 옷 위주로 골랐다. 그리고 제일 처음으로 선택한 옷이 여기 후디가 달린 순백의 롱 드레스다.

올리비에 사이야르가 이번 알라이아 전시를 위해 고른 첫 번째 룩.

올리비에 사이야르가 이번 알라이아 전시를 위해 고른 첫 번째 룩.

이 룩은 그때 공개되지 않은 옷이고, 동시에 알라이아스러운 옷이기 때문에 쉽게 선택할 수 있었다. 또한 예전에 알라이아가 내게 했던 말도 떠올렸다. “디테일을 드러내는 검은색은 내 아이디어를 구체적으로 실현시키는 반면 흰색은 조각적인 실루엣을 오롯이 드러낸다.’’ 나는 이 말을 떠올리며 전시에 ‘블랙 & 화이트’를 주로 사용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의 세계가 순간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영원성’이 보여지도록 하기 위한 장치로서 말이다. 그를 추모하는 전시를 하면서 한 아티스트의 영원성을 말하는 것이 더없이 아름답게 생각되었다. 그리고 알라이아를 모르는 사람도 이번 전시를 보며 그의 스타일에 대해서 확실히 이해하도록 돕고 싶었다.

지난해 봄, 당신을 만나 인터뷰할 때도 2013년에 선보인 알라이아 전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 당시 마네킹에 공을 들여 마치 유기체처럼 옷이 지닌 유연하고도 아름다운 형태를 극대화한다고 했다. 이번 전시에서도 마치 사람의 몸에 입혀 놓은 듯 리얼하게 실루엣을 재현한 점이 눈에 들어온다.

알라이아는 대략 25년 전부터 이런 드라마틱한 형태의 마네킹을 선호했다. 이 마네킹은 프랑스 장인이 정확한 치수를 재어가며 만든 것으로, 알라이아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 알라이아는 언제나 완벽한 치수와 완벽한 형태를 원했다. 가끔 그는 완벽을 위해서 마네킹을 위한 옷을 만들기도 했다. 여기 놓인 순백의 후디 드레스가 그 예다.

전시 데스크에서 로마의 빌라 보르게즈에서 열린 알라이아 전시 관련 책을 보았다. 그의 옷들이 역동적인 조각상들 사이에 놓인 구성이 멋졌다. 반면 알라이아 헤드쿼터에서 펼쳐진 이 전시는 거장의 불멸성과 영원성을 역설하는 듯하다.

알라이아 컬렉션 쇼장으로도 사용된 의미 있는 공간에 전시된, 그의 영원한 세계를 대변하는 41벌의 룩은 큐레이터 올리비에 사이야르가 직접 선별한 것.

알라이아 컬렉션 쇼장으로도 사용된 의미 있는 공간에 전시된, 그의 영원한 세계를 대변하는 41벌의 룩은 큐레이터 올리비에 사이야르가 직접 선별한 것.

그렇다. 우선 이 공간은 알라이아가 거주하던 곳이고, 알라이아가 자신의 새로운 컬렉션을 위한 쇼를 펼치던 장소다. 여기 2층은 지금도 사용되는 그의 아틀리에이기도 하고. 그래서 꼭 이 장소에서 전시를 하고 싶었다. 빌라 보르게즈는 조각과 드레스라는 관계를 키워드로 전시되었다. 하지만 이 장소에서 선보이는 몇몇의 드레스는 그 자체로 ‘조각’이다.

당신도 친구로서 이곳을 자주 방문했나? 그와의 특별한 추억을 듣고 싶다.
우리는 이곳에 있는 부엌에서 꽤 정기적으로 함께 식사를 했다. 팔레 갈리에라에서 그의 전시를 준비하던 2011년경 그와 아주 가까워졌다. 당시 뒤셀도르프에서 진행된 그의 전시를 함께 보러 갔을 만큼. 그는 언제나 활기가 넘치는 사람이었고, 열린 마음의 소유자였다. 식사 자리에는 종종 그의 비서와 톱모델, 유명한 배우가 함께했다. 예고도 없이 ‘오늘 저녁 리한나가 오니까 와, 같이 밥 먹자’ 하고 전화하는 사람이었다. 이곳 주방에서는 그의 강아지와 함께 언제나 여러 사람들이 함께 식사를 했다. 그 자리도 즐거웠고, 알라이아도 언제나 즐거웠다. 그리고 그는 초대받은 사람 중 가장 늦게 잠자리에 드는 사람이었다. 얼마나 건강했는지 모른다. 모든 사람들이 알라이아의 식사에 함께 할 수 있었다. 내가 동생과 함께여서 못 간다고 하면 데리고 오라고 하는 사람이었으니까.

어제 이 공간에 들렀을 때, 마당에 놓인 금빛 가슴 모양의 조각상이 눈에 띄었다.

 파리 마레의 알라이아 헤드쿼터에 놓인, 알라이아가 생전에 수집한 세자르의 작품이 전시를 찾는 이들을 반긴다.

파리 마레의 알라이아 헤드쿼터에 놓인, 알라이아가 생전에 수집한 세자르의 작품이 전시를 찾는 이들을 반긴다.

세자르의 작품이다. 알라이아의 수집품 중 하나다. 그는 예술을 사랑하는 아트 컬렉터였다.

지금까지 알라이아의 전시를 몇 번이나 큐레이팅했나?
이번이 두 번째다. 내가 그의 전시를 위해 일한 건 2013년 팔레 갈리에라가 다시 오픈할 때였다. 당시 나는 알라이아 전시를 통해 그 오프닝을 알리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때까지 그는 파리에서 회고전을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 미술관이 재오픈할 때, 가장 위대한 쿠튀리에와 시작하자는 의미를 두었다. 참고로 뒤셀도르프, 그르닝겐, 로마의 보르게즈에서 했던 알라이아 전시는 마크 윌슨이라는 다른 큐레이터에 의해 이뤄졌다.

다가오는 3월 27일, 서울의 10 꼬르소 꼬모에서 선보이는 알 라이아 회고전의 타이틀은 〈A Tribute to Azzedine Alaia〉이다. 타이틀이 달라지면서 내용도 달라지나?
파리에서 지속적으로 회고전을 하는 시기에 서울과 런던에서도 전시가 예정되어 있다. 서울 전시는 카를라 소차니가 직접 기획한 것으로, 이곳과는 좀 다른 스타일의 전시가 될 것이다. 이미 몇 해 전 10 꼬르소 꼬모 서울에서 생전의 알라이아 전시를 한 적이 있어 그때와는 또 다른 작품으로, 그의 작품 중에 테일러링이 강한 옷을 중심으로 선별했다.

5. 드라마틱한 형태감을 살린 알라이아 드레스. 서울 전시를 위해 테일러링이 강조된 일부 피스들이 공수될 예정.

드라마틱한 형태감을 살린 알라이아 드레스. 서울 전시를 위해 테일러링이 강조된 일부 피스들이 공수될 예정.

‘아트 테일러링’이라고 할 수 있는 옷들로, 알라이아 테일러링의 진수를 보여줄 것이다.

그렇다면 5월에 시작되는 런던의 전시는 어떠한가?
내가 큐레이팅한 것은 아니지만, 우선 여기 파리 전시 공간의 옷을 빌려 가기로 했다. 런던 뮤지엄에서 옷을 가져가면 이곳은 또 다른 옷들로 채워질 것이다. 마치 살아 있듯 유기적으로 변화하는 ‘움직이는 전시’가 되는 것이다.

지난 인터뷰의 마지막 질문이 당신이 꼭 하고 싶은 전시가 있는지였고, 당신 여동생의 옷장에 있는 옷들로 전시를 기획해보고 싶다고 답했다. 아직도 그 말이 생생하고 언제일지 모를 그 전시가 기다려진다.
정말 내가 그런 말을 했다고? 하하. 물론 나는 우리 개개인이 입고 있는 옷에 관심이 많다. 옷장 안에는 그 사람의 스타일뿐 아니라 인격이 있고, 그 사람을 드러내는 힌트가 가득하기 때문이다.

그 당시, 당신이 큐레이팅한 발렌시아가 전시에 대해 묻자 앞으로 기획 중인 마르지엘라 전시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리고 그때 말한 마르지엘라의 회고전이 얼마 전 팔레 갈리에라에서 오픈했다. 그런데 당신은 현재 갈리에라를 떠나지 않았나?
그렇다. 지금은 그곳을 떠났지만, 그 전시의 초석을 닦았다. 마르지엘라를 만나서 설득했고, 내 후임인 큐레이터 알렉산드르 상송이 내가 닦은 기반 위에 일을 잘 마무리해주었다. 스폰서를 구하고 관계자를 설득시킨 것도 내가 한 일이었다. 사실 갈리에라의 재오픈을 알리는 첫 전시를 알라이아로 정하고, 내가 떠나는 마침표를 마르지엘라로 하는 그림을 이미 그렸었다. A.A로 시작해 M.M으로 끝나는!

놀랍다. 당신이 그곳에서 진행한 모든 전시들이 참 좋았다. 이번 마르지엘라까지도. 갈리에라를 떠난 특별한 이유가 있나?
50살이 되어 다른 인생을 살아보고 싶었다. 그래서 ‘J.M.Weston’이라는 1백여 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프렌치 슈즈 브랜드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가게 되었다. 사실 지난 1년 동안 그들의 제안을 세 번이나 거절했다. 그러다가 이번이 내가 다른 인생을 살아볼 유일한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내가 갈리에라를 떠날 즈음, 알라이아가 세상을 떠나며 그의 회고전을 맡아서 하게 된 것이다. 내가 지금 신고 있는 이 슈즈 회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간 것은 물론 또 다른 인생을 살아보고 싶었던 거지만, 앞으로도 계속 전시를 기획할 것이다. 좀 더 자유롭게. 한 미술관의 디렉터라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채, 전시 기획 자체를 즐기고 싶다.

그렇다면 60세쯤에는 어떤 도전을 하고 싶은가?
10년 후? 내가 60세면 일을 그만두고 바닷가에서 여유롭게 누워 있어야 하지 않나? 하하하, 농담이다. 10년 후는 모르겠지만, 다가오는 7월에 마이크로 오트 쿠튀르 퍼포먼스를 선보일 계획은 있다. 당신이 파리에 있다면 기꺼이 초대하고 싶다. 어쨌든 현재 알라이아의 공간에서 전시 기획을 통해 큐레이터로 일하는 것은, 내가 정말로 필요한 곳에서 잘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자신감을 준다. 그런 일을 지속적으로 하고 싶다. 앞으로도 알라이아에 관련된 전시를 계속할 것이고 말이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도 60세에 무얼 할지 아직 잘 모르겠다. 하하.

참, 알라이아 전시를 계기로 서울을 방문한다고 들었다. 혹시 서울에 와서 하고 싶은 것이 있나?
우선 전시 준비를 잘 하고, 서울을 방문하겠다(웃음). 그리고 한국 미술을 엿볼 수 있는 미술관을 방문하고 싶다. 서울은 영감을 주기에 충분한 도시란 생각이 든다. 옛것과 최첨단의 것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는 도시는 흔치 않다. 또 지인들이 서울에는 맛있는 음식이 많고, 한국인은 다정하고 착하다고 하더라. 이러한 서울을 내 시선으로 발견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