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33세. 크록스에 손을 댔다.

검은색 드레스는 디올, 슈즈는 크록스 제품.

검은색 드레스는 디올, 슈즈는 크록스 제품.

편안함을 기반으로 한 어글리한 슈즈가 하이패션 디자이너들의 쿨한 상상력과 모델의 애티튜드와 만나 나도 한번 신어보고 싶은 신발로 거듭나고 있다.

2017 S/S 크리스토퍼 케인의 쇼를 보며 그 쇼가 그가 10주년을 기념하며 그동안 선보인 키 룩을 총망라해 선보였다는 사실보다, 로맨틱한 드레스 아래 신고 나온 크록스를 기억하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그가 런웨이에 크록스를 올린 건 일종의 기행이었다. 물론 케인의 크록스는 그의 필터를 통해 대리석 프린트와 스톤 장식을 달고 나온 돌연변이였지만. “크록스는 순수하면서도 어린아이의 신발 같지만, 이 투박함이 발에 닿는 감촉이 정말 마음에 들어요.” 크록스에 대해 궁금해하던 기자들에게 그가 답한 말이다. 케인의 말에서 우리는 너나 없이 끌고 다니는 아디다스 플리퍼, 레인보 컬러의 플립플롭, 버켄스탁, 슬리퍼나 일명 ‘아재 슈즈’의 아이콘 테바 슈즈가 유행하는 지금, 바로 ‘예쁜 실용성’을 추구하는 슈즈 트렌드를 포착할 수 있다.
마침 에디터도 최근 크록스를 사게 된, 이 현상의 증인이 되었고 말이다. 더 정확히 말해 그날은 크록스에 대한 나의 마음을 바꿔놓은 사건이 발생한 날이었다. 해외에서 화보 촬영을 마치고 공항으로 가기 위해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은 모델은 큼직한 검정 티셔츠와 데님 쇼츠에 크록스를 신고 나타났다. 런웨이에 올려진 크록스는 보았지만, 실제로 그것을 신은 어른을, 내 눈앞에서 본 건 컬처 쇼크에 가까웠고, 그녀의 까맣게 태닝된 긴 다리 끝에 걸린 크록스는 또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쿨한 발끝의 기억은 비행 내내 쉽게 잊히지 않았고 말이다. 그리고 돌아와서 가장 먼저 한 일은? 맞다. 평생 거들떠보지도 않을 것 같은 검정 크록스를 구입한 것이다. 어글리가 한순간에 아름다움으로 탄생하는 기적같은 변화를 마주했다. 사자마자 신고 나간 크록스는 케인의 말처럼 발바닥에 닿는 느낌이 독특했다. 부드러우면서도 딱딱했고, 놀이 기구를 탄 것 같기도 했다. 이처럼 편안함을 기반으로 한 어글리한 슈즈가 하이패션 디자이너들의 쿨한 상상력과 모델의 애티튜드와 만나 나도 한 번 신어보고 싶은 신발로 거듭나고 있다. 올여름 아무리 여성스러운 슈즈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피비 파일로의 모던한 센스가 더해진 어글리 슈즈에 끌리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도나텔라 베르사체 역시 이번 시즌 스포티한 멀티 컬러 웨지 굽 슈즈의 스포티 버전을 재해석했고, 알렉산더 왕도 투박한 스포티 샌들에 메탈 장식을 두둑하게 달아놓았다. 프라다 역시 유아적인 고무 샌들과 페디큐어를 받을 때 신는 스펀지 슬리퍼처럼 투박하고 멋없는 슈즈라 일컬어졌던 슈즈를 미학적으로 재탄생시키고 있는 현상에 동참하고 있다. 이런 현상이 한 시즌의 유행으로 지나지 않고 지속되는 이유는 현대의 여성들이 5인치 마놀로 블라닉 힐을 하루 종일 신는 게 그리 멋지지 않고, 힘만 든다는 걸 인지해서가 아닐까?
최근 양모 슈즈 브랜드 어그와 영국 디자이너 브랜드 프린의 협업 제품을 보아도, 신발 디자인에 있어 편안함의 가치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편안함을 떠나 그 어떤 것도 쿨할 수 없다는 말에 여성들이 공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무리 멋지고 값비싼 슈즈라도, 고통을 감수하지 않겠다는 선언일까? 사실 불편함을 감수하고 어정쩡하게 걷는 걸음걸이보다 어글리한 모양새는 없으니까. 어글리 기능성 슈즈 그 자체가 힙의 상징이 된 이야기를 하나 더하고 싶다. 파리의 핫한 편집숍 ‘브로큰 암’에서는 살로몬이라는 기능성 트레킹 슈즈를 파는데, 매장의 세련된 직원들이 그 슈즈를 신고 즐기면서 평범한 기능화 브랜드였던 살로몬을 단숨에 힙스터의 반열에 올렸다. 러닝이나 등산에 적합한 기능성 슈즈의 형태와 기능에 매력을 느껴 바잉하고, 쿨한 매장 직원들이 입고 즐기면서부터 사람들에게 입소문을 타기 시작한 특이한 현상. 우리가 앞서 강조했던 행복하고 편안한 발이 기본이 되고, 그것을 입고 신는 사람들의 쿨한 애티튜드가 유행을 만들고 있는 것이 바로 요즘 슈즈의 큰 특징이며, 쿨에 대한 정의라 할 수 있다. 이 글을 쓰면서 33세에 크록스를 신는 것에 대한 고민은 신는 순간 사라졌다. 크록스의 편안함은 글로 다 전할 수도 없고, 어쩌면 신을까 말까 하는 고민보다는 더 쿨하게 크록스를 소화해낼 방법을 찾는게 생산적인 일일지 모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