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 영화에서 매력적인 여자 주인공을 본 적 없다는 볼멘소리를 귀가 따갑게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빈자리는 놀랍게도 치명적인 매력의 강동원과 그와 비슷한 역할의 다른 남자 배우들이 대체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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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검사외전> 속 남자들은 영화 내내 화가 나 있다. 남을 밟고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데만 관심이 있는 그들은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양미간의 주름을 없애지 않고 있다. 사나이 픽처스에서 제작한 영화라서 그런지 그들은 하나같이 아저씨고 마초다. 그중 가장 화가 많이 나 보이는 변재욱(황정민) 역시 수사 중 구타를 일삼으며 권력과 힘을 무기로 내세우는 검사(였)다. 그가 나중에 선배 우종길(이성민)을 열 받게 했던 말도 “온갖 사내다운 척은 다 하면서 약해 빠져가지고”였다. 우종길이 술자리에서 소주에 물을 타 먹는다는 게 이유였다(그건 좀 억울했을 듯). 서로 자기가 더 남자답다고 아우성치는 이 끔찍한 사나이들 틈바구니에서 그나마 숨통이 트일 때는 한치원(강동원)이 등장하는 장면이다. 요령과 융통성이라는 키워드로 인생을 살아온 한치원은 힘과 권력에 관심이 없다. 물론 잔머리와 외모를 자랑하긴 하지만 그에게는 ‘무조건 해내야 한다’는 허세 가득한 명분 같은 게 없다. 그는 뭔들 안 해도 그만이며 유들유들하고 건들건들하며 자유롭다. 그는 변재욱에게 하트를 그려 넣은 신발로 마음을 표현하며 윙크도 날린다. 심지어 소매나 바짓단을 롤업하는 등 죄수복마저 자신만의 스타일로 연출해 입는다. 서로를 노려보느라 눈이 충혈될 것 같은 남자들이 그나마 이를 드러낼 때는 강동원과 함께 있을 때다. 기억해보라. 황정민도 강동원 앞에선 웃었고 박성웅도 강동원 앞에선 웃었다. 게다가 그들은 영화 속에서 어떤 여자에게도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영화 <의형제> 이후 충무로 브로맨스의 중심에 서 있는 강동원은 최근 몇 년간 영화 속에서 여자 상대역과 호흡을 거의 맞추지 않았다. <검은 사제들>에서는 허리가 절로 숙여지는 위협적인 카리스마의 김윤석과 출연했고, <군도: 민란의 시대>에서는 민머리를 드러내며 남성성을 강조한 하정우와, <의형제>에서는 홀아비 냄새가 진동하는 송강호와 등장했다. ‘송혜교와 함께 출연한 <두근두근 내 인생>도 있다’고 말할 사람도 많을 줄로 안다. 하지만 그 영화의 흥행은 상대적으로 미진했다. 강동원은 이상하게도 남자 배우, 그것도 비비크림을 사러 백화점에 들어가거나 바짓단을 롤업해 입을 일이 평생 없는 마초들과 호흡을 맞췄을 때 빛이 난다. 이건 절대 과장이 아니다. 위에 길게 언급했다시피 〈검사외전> 속 황정민은 거친 수사로 유명한 검사였으며,〈검은 사제들>에서 김윤석은 남의 말은 죽어도 안 듣는 고집불통 사제였다. <군도: 민란의 시대>와 <의형제>의 하정우과 송강호는 말 안 해도 다들 알 것이다. 놀라지 마라. 그가 새 영화 <마스터>에 함께 출연하는 사람은 스크린에서 언제나 최고로 폼을 잡아온 이병헌이다.

강동원이 여자보다 더 예쁘다는 그런 진부한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그가 맡은 캐릭터와 그가 상대 남자 배우와 맺는 관계의 방식에 대해 말하는 거다. <검사외전> 속 그는 철부지 사기꾼으로 감옥에 가서도 정신을 못 차린다. 그는 감옥에서 유일하게 웃고 다니는 인물로 절대 폭력을 쓰지 않는다. <검은 사제들〉 속 강동원은 사제복을 입긴 했지만 영 신앙심이 없어 보인다. 그는 규율과 규칙에 얽매이지 않으며 영화 내내 돼지를 끼고 다니는 어설픈 인물이다. <군도: 민란의 시대>에서 그는 악역이었지만 아버지에게 인정받지 못한 소년 같았고, 시종일관 우아하고 섬세한 움직임을 보여줬다. 굳이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심지어 긴 머리까지 풀어헤친다. <의형제>에서 그는 돌봐줘야 할 것 같은 측은지심을 자아내는 인물이었다. 여기까지 읽었으면 무슨 말을 하려는지 대충 눈치챘을 것이다.

여성학자들은 강동원이 한국 영화속 여성 캐릭터를 대체하는 인물이라고 입을 모아 말한다. 소모적인 경쟁에 지친 남자 관객들에게, ‘더 많은 경험과 힘으로 상황을 이끄는 형과 그를 따르며 성장하는 동생’이라는 도식을 만들어 ‘브로맨스’의 감정을 불어넣어주는 것이다. 남자는 화성에서 왔고 여자는 금성에서 왔다지만 화성과 금성 사이 어디에선가 온 강동원은 특유의 무경계성을 드러내며 한국 영화의 아름다운 남자친구가 돼가고 있다.

최근의 제작발표회나 시사회에서 강동원은 하필이면 구찌의 프릴 장식 블라우스와 생로랑 하이힐을 입고 신고 나와 사람들의 이러한 불손한 상상력을 부추겼다. 여성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서사 대신 흥행이 입증된 ‘남남’ 주인공의 이야기로 극을 이끌어가야 한다는 건 충무로의 견고한 흥행 공식이 됐다. 하지만 남자들은 남자와 남자가 대립하는 걸 불편해한다. 남자들 간의 대립을 마음 편하게 보려면 그 안에 어떤 연대가 있어야 한다. <내부자들>의 흥행이 가능했던 건 이병헌이 백윤식과 대립하지만 극의 축이 이병헌과 조승우의 연합이었기 때문이다. 케이블 채널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틀어주는, 한국 남자들이 가장 사랑하는 영화 〈신세계>에서는 조직폭력배 안에서도 눈물나는 우정이 존재함을 보여준다.

남자들 간의 브로맨스에서 특히 중요한 건 철없는 남자의 역할이다. 마초 남자와의 브로맨스를 보여주는 철없는 남자는 남자 관객으로 하여금 꽉 쥔 주먹을 풀게 하며 경계심을 느슨하게 한다. 남자 관객들은 그들의 성장 과정을 보면서 비로소 팝콘을 입에 집어넣을 수 있는 것이다. 강동원의 역할은 지금껏 영화 속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변주돼왔다. 〈은밀하게 위대하게>에서 김수현에게 전적으로 의지하고 그의 인정을 받고 싶어 하는 이현우와 <연평해전>에서 진구와 형제 사이처럼 등장하는 이현우가 그렇다. <서부전선>의 설경구와 여진구의 관계는 <의형제>에서 송강호와 강동원의 관계와 비슷하다. 할리우드에서는 여자도 제다이가 되는 마당에 우린 언제까지 여자는 소품으로만 등장하는 이런 브로맨스 영화들을 봐야 할까? 남자들 간의 우정은 지구인과 외계인 남자 간의 브로맨스로까지확장돼야 끝날 것인가? 왜 그들은 여성 관객을 털끝만큼도 신경쓰지 않는 걸까?

연세대학교 젠더연구소 손희정 연구원은 영화 산업지 <한국영화>에서 그와 같은 제작 경향이 지금 영화를 소비하는 관객층의 성향과 관계 있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이들(한국의 여성 관객)의 경우 대중문화의 가장 큰 소비자이기 때문에 여성 재현이 어떻든 간에 일단은 다 본다는 것이다. 때문에 제작자는 이들을 신경 쓸 이유가 없다. 대신 대박 혹은 천만 흥행을 노린다면 40대 이상의 남성 관객을 유인할 필요가 있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그에 맞는 서사와 여성 재현이 반복되는 것이다.” <한국영화>의 박아녜스 책임편집자는 “남자 관객들은 강동원이 혼자 등장하는 영화를 보러 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여자들은 강동원이 다른 남자 배우와 함께 등장하는 영화도 즐기고 강동원이 여자 배우와 함께 등장하는 멜로 영화도 즐길 것이다”라며 남성 관객과 여성 관객의 관람 태도 차이를 설명한다. 모든 남자 배우가 ‘군대 제대 – 갑자기 남성성 강조 형사, 검사, 군인 역 분노 및 오열 연기’로 자신을 증명하려 애쓰는 천편일률적 구도에서 강동원은 성 역할과 경계를 넘나들며 새로운 캐릭터를 구축하고 있다. 요즘 부쩍 아저씨의 발 냄새에 지쳐 있는 여성 관객들에게도 그는 숨 막히는 사나이 세계로부터 잠시 숨을 돌릴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영화를 볼 때마다 멍청하거나 나쁜 여자 캐릭터 때문에 울화통을 또 삭혀야 하는 건 아닌지 슬그머니 걱정이 밀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