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인아트인가 아닌가, 미술관이나 갤러리의 화이트 큐브 안인가 바깥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지금 젊은 세대에게 반향을 일으키는 콘텐츠를 기획하거나 새로운 형식과 내용의 전시를 보여주는 사람들이 궁금하다면 이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것.

일상과 예술 사이
대림미술관 | 시니어 큐레이터 이여운
인스타그램은 일상을 어떻게 바꿔놓았 나? 인테리어가 예쁘장한 카페부터 방송에 나오는 셰프의 식당까지, 어딘가에 다녀온 흔적으로 자기 정체성을 드러내는, 이른바 ‘인증’ 문화를 낳았다. 대림미술관은 SNS 마케팅을 적극 활용하고, 전시 작품 앞에서도 이런 인증샷을 찍어 올리도록 장려하면서 흥행과 비난을 동시에 얻은 곳이다. 원래 있던 통의동의 대림미술관과 새로 연 한남동 D 뮤지엄에는 주말이면 수천 명의 관람객이 다녀간다. 서울 힙스터들의 동선에서는 곧잘 대림에서 있었던 린다 매카트니나 라이언 맥긴리 전시의 토트백을 마주치게 되며, 셀렙들은 자신의 테이스트를 드러내기 위한 코드로 이곳을 언급하곤 한다. 패션, 디자인, 사진, 출판 등 대중에게 인기 있는 아이템을 다루는 전시 기획의 방향도 적극적인 이벤트, 행사, 교육 프로그램이나 마케팅만큼 힘이 세다. 인기가 더 큰 인기를 낳을 때 추종하는 사람만큼이나 멀리하는 사람도 생기게 마련이지만 어느 쪽에건, 이 미술관의 브랜드화는 아주 뚜렷하다. 지금 대림미술관에 간다는 건, 혹은 가지 않는다는 건 전시 자체 외에 미술관의 캐릭터를 의식한 어떤 행위가 되었으므로.
최근 <Color Your Life– 색, 다른 공간 이야기>라는 타이틀의 전시를 기획한 대림미술관의 이여운 시니어 큐레이터는 이런 포지셔닝에 대해 ‘일상을 예술로 바꾼다’는 미술관의 모토와 연결지어 설명한다. 색이라는 콘셉트는 지난해 개관한 D 뮤지엄의 첫 전시 <9 Lights In 9 Rooms>를 관통하는 ‘빛’이라는 주제에 이어 자연스럽게 도출한 개념이다. “일상 속에서 사용하는 많은 물건에서 다양한 색을 발견하는 데서 출발해서, 디자이너들은 그 색을 어떤 식으로 크리에이티브하게 사용하는지 제품부터 완성된 공간까지를 보여주려고 했어요.” 신소재를 사용하는 3 층의 젊은 디자이너 섹션이 그가 특히 이번 전시에서 힘을 주었으며, 애착을 갖는 부분이다. 가죽, 천, 메탈, 유리 등 서로 다른 재료에 사용된 색이 주는 질감 차이, 그 아름다움을 찾아봤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다.
디자인, 영문학, 미술사 등 다양한 전공자로 구성된 대림미술관 큐레이팅 팀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씩 각자 하고싶은 전시를 발표하고, 그 기획안을 검토, 결합하고 발전시켜 나간다. 이여운 큐레이터가 특히 관심을 갖는 분야는 건축. 젊은 관람객이 많은 미술관에서 일하면서 다양한 채널을 통해 트렌드를 캐치업하고, 소통의 방식을 고민하는 일은 그가 느끼는 즐거운 부담이기도 하다. 관객들의 피드백을 살피면서. 시각적으로 흥미를 끌면서도 내용도 의미 있게 구성하려는 균형감각 역시 늘 의식하는 부분이다.
“전시장에서 사진이 예쁘게 나오는 포인트는 확실히 있어요. 하지만 전시실에 카메라 셔터 소리가 가득 할 때면 안타깝기도 해요. 전시를 밀접하게 들여다 보는 일보다 인증샷 촬영이 더 중요한 목표처럼 보일 때는 말이죠. 카메라 렌즈를 통해서가 아니라, 본인의 눈으로 감상했으면 좋겠어요.” 일상 속에 예술이 존재한다면 그건 눈에 띌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일상 그 자체가 예술이 된다면, 그건 바라보는 사람의 시선이 발견해내고 개입해야 가능하다. 인증샷을 찍는 행위보다는 더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작품 같은 전시
글린트 | 김범상 대표
글린트에 대해 처음 들은 건 2013년 전시인 <ECM, 침묵 다음으로 아름다운 소리>를 통해서였다. 전설적인 독일 음반 레이블의 역사를 입체적으로 재구성한 이 프로젝트는 마니아부터 일반 대중까지, 폭넓은 관객을 불러들이며 화제를 모았다. 2014년 말부터 2015년 초까지 아르코 미술관에서 열린 <즐거운 나의 집> 역시 상당히 주목받은 기획이었다. 관람객들은 삶의 터전에 대한 애틋한 판타지와 잔인한 현실을 모두 마주하고 돌아갔다. 그런데 ‘집’에 대한 글린트의 관심은 전시장 안에만 머물지 않는다. 시행 착오를 겪으며 진행 중인 ‘새 동네 프로젝트’는 청년들에게 안정적인 주거 환경을 제공하기 위한 임대주택 모델 실험이다. 남가좌동에 들어선 두 채의 건물은 현재까지의 가시적인 성과다. 언뜻 동떨어져 보이는 관심사들은 글린트라는 연결 고리를 통해 접점을 찾고, 자연스럽게 교류한다. 그래서 신사동의 사무실을 찾았을 때는 일단 이런 질문부터 떠올랐다. 글린트는 대체 뭘 하는 회사인 걸까?
“새로운 콘텐츠를 만드는 곳이라고 해야 할까요?” 김범상 대표의 대답이다. 그러면서 현재까지는 정리 중이거나 자세히 설명하기에는 시기상조인 내용이 많으니 일단은 ‘전시기획사 글린트’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를 나누는 편이 좋겠다고 덧붙였다. 그는 관람객의 입장에서는 불친절하게 느껴지는 전시를 여럿 경험하면서 직접 나서 기획을 하는 데 관심을 갖게 됐다고 설명한다. “예를 들어 현대미술은 컨텍스트를 모르면 그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울 때가 많아요. 하지만 갤러리에 가기 전에 언제 그걸 다 찾아 읽겠어요. 내용을 사람들이 파악할 수 있는 맥락과 함께 제시하는 게 중요합니다.” 영화 연출을 전공했다는 김범상은 콘텐츠를 재구성하는 방식에도 스토리텔링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작가 못지않게 기획자의 관점이 드러나는 방식인 셈이죠.”
드물게 적극적인 시도인 만큼 준비 단계에서는 설득 과 회유의 과정도 필요했다. 한국의 자체 기획이었던 ECM 전시만 해도, 이런저런 난항을 숱하게 극복하며 얻어낸 성취였다. “레이블 측에서 조심스러워한 부분이 있었죠. 결과적으로는 그쪽에서도 크게 만족했지만요.” <즐거운 나의 집>에 참여한 일부 작가들은 오프닝에 와서 기겁을 했다고도 한다. 작업이 설치되고 보여지는 방식이 자신들의 예상과는 크게 달랐기 때문이다. “저는 전시를 하나의 작품처럼 만들려고 해요. 작품을 보여주는 플랫폼으로만 기능하는 게 아니라 기획 자체로도 나름의 완성도와 목소리를 지녔으면 합니다.” 아카이브의 단순 나열이 아닌, 작업에서 영감을 얻어 완성한 새로운 작업으로서의 전시가 바로 글린트의 지향점이다.
다소 생소할 수 있는 예술에 대한 창의적인 재해석, 그리고 지금의 사회에 대한 흥미롭지만 가볍지는 않은 문제 제기. 글린트가 구상 중인 기획들은 크게 두 축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빠르면 올해 말, 늦으면 내년 초에 보게 될 프로젝트는 아무래도 전자에 가깝겠다. 현재 김범상은 자신이 아는 가장 뛰어난 예술가 중 한 명이라는 영화감독 오즈 야스지로의 전시를 준비 중이다. 물론 장기적으로는 좀 더 넓은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는 약 100분간 관람객에게 시각 이외의 감각을 탐색하도록 하는 전시인 <어둠 속의 대화>를 특히 좋아한다고 꼽았다. “뭔가를 보여주는 게 아니라, 체험 자체로 성립하는 전시를 저희만의 콘텐츠로 해보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글린트의 목표는 업계의 관성이 놓쳤던 틈새를 찾고, 그 틈으로 한발 더 나아가는 것이다. “뭔가 다른 것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기존의 기획자들에게 선점되지 않은 제 역할이 있겠죠.”

말하는 영화관
CGV 아트하우스 큐레이터 프로그램 팀 | 안현주, 김성희, 윤나리
CGV 아트하우스관에 자주 들르는 관객이라면 큐레이터 프로그램에 대해서도 들어본 적이 있을 거 다. 주기적으로 작품을 선정해 특정 회차의 상영이 끝난 뒤 15~20분 정도 설명을 곁들이는, 일종의 관객 서비스다. 2011년부터 벌써 5년 가까이 계속된 프로그램이며 현재는 총 6명의 영화 평론가가 활동 중이다. 엄밀히 따지면 큐레이터보다는 도슨트에 가까운 역할이기는 하다. 해설할 작품은 CGV 측에서 주도적으로 선정한다. “좀 더 많은 관객이 봤으면 하고, 배경 지식이 이해에 도움을 줄 만한 작품들 위주로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편이에요.” 아트하우스 극장팀 안현주의 설명이다. 3월 현재는 <캐롤>과 <사울의 아들>에 대한 해설이 제공되고 있으며, <헤일, 시저!> <아노말리사> 등도 그 뒤를 이을 예정이다.
여섯 명의 큐레이터는 동일한 작품을 각자의 시각과 방식대로 이야기한다. 김성희의 경우, 초기에는 친절한 정보 전달에 초점을 맞추려고 했다. “그런데 진행을 하다 보니, 의외로 비평에 대한 관객의 갈증이 크더라고요. 제가 이 작품에서 무얼 읽어냈는지를 묻는 분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대화의 관점으로 접근하는 편이에요.” 15분은 논지를 펼치기에 여유로운 시간이 아니다. 2013년부터 참여해온 윤나리는, 그래서 내용을 경제적으로 구성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다른 통로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내용은 가져오지 않아요. 전작과의 연관성을 살핀다든가, 나름대로 초점을 잡아서 말씀을 드리죠. 그리고 상영관에 들어갈 때마다 관객층은 매번 바뀌거든요. 그 부분 역시 고려해야 합니다. 젊고 작품에 대한 관심이 높은 분이 많을 때는 평소보다 심화된 이야기를 하기도 해요.”
관객과의 대화는 작은 영화 시장에서 대표적인 마케팅 수단으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다. 가끔은 흔한 걸 넘어서 과하게까지 느껴질 지경이다. 넘치는 말들 사이에 서 CGV 아트하우스의 큐레이터 해설은 어떻게 스스로를 차별화할 수 있을까? “부담스럽지 않게 짧아서 더 집중도가 있는 것 같아요. 예술 영화에 아직 익숙지 않은, 경계에 있는 분들도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형태라고 생각합니다.” 안현주의 이야기다. 사실 이 프로그램은 주로 글을 통해 소통하던 평론가들 입장에서도 의미 있는 경험이다. 관객을 직접 마주하면서 바뀐 생각이 많았다고 두 사람이 입을 모았다. “한 퀴어 영화를 이야기할 때였어요. 나이 지긋한 여성 관객께서 커밍아웃이 뭐냐고 물으시더군요. 말씀을 드렸더니 굉장히 열린 태도로 이해를 하셨어요. 노년층은 특정 장르에 거부감이 있을 거라고 예단하는 것도 편견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김성희) 윤나리는 적극적인 피드백을 받을 때 특히 보람을 느낀다고 말한다. “개봉 때마다 제 해설을 들으러 오는 분들이 있어요. ‘전에 이런 말씀을 하셨는데, 이 작품과도 연관 지어볼 수 있을까요?’ 이럴 때면 열심히 귀 기울이고 계신다는 생각이 들어서 뿌듯하죠.”
안현주는 큐레이터 프로그램은 내부보다 외부에서의 평가가 월등하게 높은 사례라고 이야기한다. “저희끼리는 ‘계속 이렇게 가는 게 맞나? 이미 오래했으니 새로운 걸 시도해야 하지 않을까?’ 나름대로 고민도 했어요. 하지만 관객들의 호응이 꾸준해서 수년 째 이어가는 것 같아요.” 앞으로는 상영관별로 전담 큐레이터를 정해 해당 지역의 주 관객층에 특화된 해설을 제공하는 방식도 고려 중이라고 한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간 뒤에도 극장에 더 머물러야 하는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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